시사이슈 2024 -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현직 기자들이 직접 쓴 대입 논구술과 면접 대비 필독서
홍기삼 외 지음 / 동아엠앤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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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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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과학자들이 생명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하는 과정들을 설명하려고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쓰는 과정에서 생명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류하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연구를 하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들이 나오자 혼돈에 빠진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론은 모두 4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가 된 린나이우스의 생애와 업적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린나이우스는 28살에 수세기동안 생명의 체계화와 명명의 기준을 세운 책 <자연의 체계>초판을 출간했다.
그가 생명 세계의 본질을 포착하는 핵심요소는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움벨트 비젼이었다.

1부의 내용은 분류학의 잔혹사를 다룬다. 물론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되지만 1부가 가장 치열하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 분류학은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분류학은 갑자기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진화론에 의해 치명타를 입은 분류학은 줄리언 헉슬리의 등장으로 다시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이전의 분류학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계통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대체하면서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다윈이 밝혀낸 진화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물간의 차이와 비슷함을 느끼는 감각 즉 모호한 직관,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무의식적 감각을 따라갈 순 없었다.

따라서 보수적 분류학자들은 여전히 새로운 물결에 방어적이었고 무의식적 인식이었던 ' 움벨트' 에 의존했다.
움벨트는 분류학의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지만 의존할 수 있는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없었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연질서에 대한 자신의 감각이 잘 작동하기를 바랄 뿐 이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움벨트 방식은  과학적으로 정교해지는 생물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분류학자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어떤 분류학자들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한가지에 매달렸는데 그것은 바로 '종' 이었다.
마이어는 이전의 분류학자 처럼 자연의 질서 체계가 아니라 그 밑 바탕이 되는 진화의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 종의 정의도 얼마안가 난관에 부딪힌다. 마이어는 짝짓기로 종을 정의 하였는데 짝짓기로 번식하지 않는 동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심슨이다. 심슨은 짝짓기 기준을 버리고 자신이 경험하고 감지했던대로 종을 계보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것도 많은 문제들이 대두 되면서 결국 분류학자들은 거대한 혼돈 속에 빠져 버린다.

여기까지가 분류학의 혼란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2부에서는 움벨트에 관한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진화분류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던 것은 바로 인간의 움벨트였다. 움벨트란 생명의 세계 및 그 세계의 질서를 지각하는 본능적 경향성을 말한다.

문제는 움벨트가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똑같이 보이지 않고 주관적이며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현대과학과 대치되는 점이다.

하지만 움벨트는 불변하는 생명체의 세계를 보여주는 특별한 기능이 있었다. 움벨트는 진화로 인해 변화되는 어떤 조건에도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생명의 세계였던 것이다.

작가는 본성 속에 숨어있는 움벨트 비젼에 관해 민속 분류학을 토대로 다양한 증거들을 보여준다. 또한 움벨트는 인간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모든 종들이 모든 종류의 감각에 대해 서로 다른 각자 고유의 움벨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2부 중반부에서는 뇌손상 환자의 움벨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움벨트가 단순히 분류 수단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생명을 알아보고 체계화하는 기능을 갖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움밸트가 없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도, 살아가는 방법도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뇌에 민속 분류학을 담당하는 영역이 있고 만일 그곳이 고장나면 일상에서 책상과 고양이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움벨트는 처음부터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서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움벨트의 치명적인 문제는 삶의 반경내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내의 모든 생물권에 대해서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움벨트가 형성되어 있지만 환경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면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횡적 경계선 뿐 만 아니라 종적 경계선 즉, 진화적 변화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1960년대 이르러 컴퓨터가 분류학으로 흘러 들어와 움벨트를 조금씩 밀어내고 새로운 분류학의 시대를 열었다. 3부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1부에서 시작된 분류학의 잔혹사가 3부에서 다시 이어진다.

3부는 소칼로부터 시작된다. 소칼은 유서깊은 전통적인 분류학으로 벗어나 생명의 분류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첫 발을 내딛은 인물이다.
소칼은 린나이우스처럼 타고난 움벨트가 없었다. 대신 수학이라는 비분류학적인 도구를 사용하기 사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니스라는 학자가 소칼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똑같은 결론에 이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소칼을 중심으로한 수리 분리학의 등장으로 움벨트는 위기를 맞이한다.

그렇다고 수리 분류학이 탄탄대로를 달린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진화적인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무엇보다 인간이 해야 할 신성한 일을 컴퓨터가 한다는 사실에 학자들은 모욕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수리분리학에 이어 나온 것은 화학을 통한 분류학이다. 단백질 서열의 유사성 차이점 등을 통해 모든 생물의 질서를 한꺼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다.

그동안 분류학자들은 보이는 외양을 기준으로 분류 작업을 해 왔는데 분자생물학자들이 이제 외양은 필요없고 보이지 않는 단백질과 DNA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분류학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분류학자들과 분자생물학자간의 투쟁은 1993년 최고점에 이르렀는데, 분자생물학자들이 RNA를 비교하여  균류가 식물보다 동물과 더 긴밀한 관계임이 밝혀내면서  분류학자들은 더 이상 이들의 경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분류의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따른 분류학계의 내분은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기학파의 시초가 된 헤니히가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는 계통학 방법론을 가지고 진화사의 진실을 찾아냈다.

헤니히는 분류과정에서 감각과 움밸트를 완전히 잘라버리고 오직 한 조상의 모든 후손만 한 분류군으로 인정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분기학자들이 그렇게 순수하게 진화적 관계의 계통수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유명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물고기의 죽음과 함께 움벨트도 마지막 남은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다.
이렇게 움벨트와 과학간의 오랜투쟁은 결국 과학이 승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3부의 이야기다.

책은 이렇게 끝나는 듯 싶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다.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가 4부에서 펼쳐진다.

4부에서 작가는 과학이 죽였던 움벨트를 살려낸다. 움벨트가 없으면 우리 삶을 온전히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잣대로만 본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인종이나 성별 따위를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소규모 집단에서는 인종의 경계선을 그을 수 있지만 전 지구적 규모로 보면 경계선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남녀의 경우도 DNA 로만 보면 트렌스젠더처럼 명확히 성별을 나누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병아리 감별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수평아리와 암평아리의 성기에는 단순 명료하게 정의 할 수 있는 특징이 없기 때문에 그냥 감으로 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움벨트가 살아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과학의 도구로 물고기를 분류하면 물고기는 사라진다. 하지만 움벨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물고기는 존재한다. 과학은 이와같은 방식으로 생명세계의 수 많은 종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사라져가는 움벨트의 재건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작가가 처음 이 책을 쓰려고 했던 내용은 책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이 되었다. 오히려 정 반대 되는 내용을 기술하였다.

작가는 과학자이고 과학을 대변하는 글을 쓰고자 했지만 결론에 도달해서는 과학의 반대편에 섰다.
바로 움벨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생 과학에만 몸 담고 있다보니 자연을 공식에만 대입하여 바라보았는데 이 책을 쓰면서  자연을 볼 수 있는 다른 시각을 보게 된 것이다.

"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는 일, 자연의 질서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감지하는 일은 오늘날 축소된 형태의 분류학, 즉 추상적인 실험실 과학보다는 훨씬 더 큰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p35)

작가는 과학에 가려졌던 생명 세계의 슬픈 현실을 깨닫고 이제는 과학의 대변자가 환경의 대변자로 바뀌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분류학에 관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큰 세계가 들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분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이름이 붙기 마련이다. 이름이 붙어야 하나의 존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에서도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하나의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 붙여준다는 것은 관심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출생 신고가 결여된 그림자 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출생신고는 공식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다. 신고 되지 않은 아이들은 마치 물고기처럼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사회가 발달하면서 인류의 조상들이 지녔던 자연에 대한 관심을 많이 잃었고, 그 때문에 지금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있다. 작가는 이와같은 현 세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서라기 보다는 철학서에 가깝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해가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점점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돌아보게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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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 - 메타버스라는 신세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사토 가쓰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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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었던 나에게 이 책은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엔 메타버스가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점도 다루고 있긴하지만) 메인은 메타버스를 만드는 작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은 서문과 5장의 본문 그리고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나누면 메타버스 소개, 메타버스 구축, 메타버스 환경, 이렇게 3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번째 메타버스 소개에서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작가는 철저한 과학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기술이 인간을 확장하고 조만간 인간을 가르치며 손바닥에서 시작되어 우주로 퍼져 나간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발전과정은 직선적이지 않고 신기술은 상황에 따라 과대한 기대와 환멸이 교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22년도 메타버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가 이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요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작가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튼 작가는 메타버스를 인터넷 이후의 최대 혁명으로 생각하고 일본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으로 생각한다.
인터넷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에 뒤지고 양자컴퓨터나 우주산업에서는 미국이나 러시아에게 뒤쳐진 상황에서 일본이 유일하게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가 메타버스였기 때문이다.

두번째 메타버스 구축 부분이 어려웠는데 그것은 3차원적 사고 또는 다중적 인지가 필요해서다.
세계 2.0이라는 제목은 가상공간을 마하는데 현재 실물 세상인 1.0을 전제로 3.0, 4.0,.... 계속해서 팽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철학적인 의미는 고사하고 문자적인 의미에서 이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인데 바로 메타버스구축이 바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한다.

메타버스 창조은 2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시공간을 만드는 일이고 두번째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시공간은 실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고, 생태계는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말한다. 시공간은 다시 인간(아바타)과 배경(필드)로 분해 된다.

그런데 이중에서 작가가 가장 추상도가 높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가시적인 공간으로서의 세계는 테크놀로지적 요소가 강해 기술적으로 채울 수 있는 반면 생태계는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작가는 생태계란 우연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사람이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디자인해서 가상공간에 설치하게 되면 세계는 더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가상공간에서는 영토를 빼앗는 문제라든지, 환경문제라든지,주도권 싸움같은 부정적인 사건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세계를 바꾸려면 생태계 만드는 법을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상적인 생태계는 자율적이고 유기적이고 분산적이어야 한다고 말 하는데 여기서 분산적이라는 말은 중앙집권적의 반대말로 사령탑이 없어도 전체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구조를 말한다.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원리와 법칙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인간의 의지라고 강조한다. 즉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선 설계자의 의지와 그것을 형성하기 위한 지식, 그리고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개선을 거듭하는 인내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하다" (p194) 고 말한다.

마지막 세번째 메타버스 환경에서는 메타버스 근저에 있는 사상과 철학에 대한 고찰이다.

현실 세계는 한정된 파이로 서로 빼앗는 제로섬 게임에 지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우주공간이나 가상공간인데 우주공간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대안으로 가상공간이 이상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메타버스라는 3차원의 가상공간이 만들어지면 현실세계의 가치는 지금의 10분의1로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가상공간이 주는 혜택과 이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상공간에서는 정체성과 인격의 난해한 문제가 발생한다.다중 우주 이론처럼 가상 공간상에서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독립된 수억개의 메타버스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마다 다른 인격의 소유자로 등장하는 인간의 멀티 인격화가 이루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우리의 성격이 신체의 영향을 받듯이 가상공간에서도 아바타의 외견적 특징에 따라 새로운 인격이 형성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우주개발과 메타버스의 융합 그리고 메타버스와 AI의 결합을 언급하면서 미래에 펼쳐질 무궁무진한 세계를 예고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글을 읽으면서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들고 미래에 도래할 인류의 또 다른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과학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결과를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가상공간의 존재로 진화해서 전쟁과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속에서 살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군가 과학이 신이라고 이야기 했듯이
앞으로 종교는 사라지고 과학이 그 자리까지 차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인격체가 한 없이 분산되면서 고유한 자기가 없어지고 역할만이 공존하는 세상이 되면 너와 나는 없어지고 거대한 유기체로 하나가 되는 세상도 상상해 보았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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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김진국 의사부부의 행복한 걷기예찬
김진국 지음 / 북앤에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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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는 유산소 운동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 되었다.
운동 같지도 않은 걷기가 건강에 매우 좋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걷기에 관련된 온갖 정보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 왔다.

이 책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작가는 신장 내과 교수이고 오래동안 의료원 소식지에 걷기 칼럼을 썼는데 실제로 현장을 다니며 120개의 코스를 정리했다.
그 중 70개를 선별해서 제작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건강을 위해 걷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즐거움이 전제 된다.
걸음으로 인해 건강과 즐거움과 치유가 동시에 주어진다.
그래서 ' 행복한 걷기 예찬' 이다.

코스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각 코스마다 현장 사진과 작가의 해설이 붙어 있는데 글 솜씨도 대단하다. 읽다보면 유명한 기행 에세이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치 함께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 설명이 생동감이 있다.

지도가 마음에 든다. 복잡한 사진이 아니라 그림판 프로그램으로 마우스를 써서 작성했는데 깔끔하고 보기도 시원스럽다.

그리고  [재미있는 꽃 이야기] 라는 특별 코너가 있다. 평소 자주 보는 꽃이지만 실상은 잘 몰랐던 관련된 정보들을 싣고 있어서 상식도 많이 얻을 수 있다.

또한 본업이 의사라 그런지 건강 상식도 빠지지 않는다. 중간 중간 신체 기능에 관한 것도 있고 건강과 관련하여 음식이나 습관에 관한 팁도 제공하고 있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읽다 보면 소개하는 코스가 전에 가 보았던 장소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놀란 것은 똑 같은 장소인데 작가가 지나간 코스와 내가 갔던 코스가 달랐다는 점이다.
왠지 제대로 된 코스를 밟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생겨 다음에 다시 찾아보려고 마음도 먹었다.

이 책은 종합선물 셋트 같은 느낌이다. 여행 안내서도 되고 여행 엣세이도 되고  건강서적도 된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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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 권리 책고래숲 8
최준영 지음 / 책고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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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저항적인 느낌이 든다. 선택적 가난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도 왠지 있는자의  오만 같기도 하고...
가난이라는 말에 붙는 수식나 서술은 모두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은 장식품이 아니고 어떤 말로 설명하기도 마땅치 않다.
매일 생존의 문제와 싸우는 사람들은 가난을 묵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타인의 가난을 이용해 부를 축척하거나 명예를 쌓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지원금도 받아가고 공모 사업비도 따낸다.
그들은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시키고 사회분위기도 그렇게 조성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난에 접근 해야 하는가
제목이 맘에 안들어도 이 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온 세상이 부와 관련된 책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가난을 돌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가난할 권리라는 말을  좀 순화시키면 가난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조차 옷 잘 입고 좋은 차 타고 오면 특별한 대접을 받지만 허름한 옷에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가면 최소한의 인간 대접 받기도 어렵다.
교회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에는 어떠하랴.

가난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은 마음의 문이 닫혀있다. 그들의 마음을 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는 오래동안 이렇게 사회에서 쇠외받고 무너진 사람들을 재건하는데  
힘써 왔다.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연들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이야기라 상황이 눈에 선하고 실감이 난다.
책 제목과 달리 재미도 있고 감동도 준다.

저자에 대해서는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때문에 아직은 그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책 내용을 보면서 호감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누가 거리에서 쓰러지면 병원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고 노숙인이 죽으면 상주가 되기도 하면서 "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 는 말을 모토로 삼고 살았던 실천가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하며 불공정과 가난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탁상공론만 일삼는 나 역시 작가의 삶 앞에서 한 낱 가난을 이용하는 오만한자의 무리 중에 하나라는 내면의 목리를 듣는다.

다음은 노숙자 인문학 강좌  MT에서 어느 노숙자가 고백한 말이다.
" 인문학의 학문적 의미는 모릅니다. 다만 내기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술 취해 거리에 쓰러져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밥도 주고 지식도 주고 무엇보다 생각이라는 걸 하게 해 준게 인문학입니다"

가난에 대해 여타저타 말하지 말고 진정으로 간난한 자들을 위해 뭔가를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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