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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작가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과학자들이 생명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하는 과정들을 설명하려고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쓰는 과정에서 생명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류하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연구를 하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들이 나오자 혼돈에 빠진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론은 모두 4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가 된 린나이우스의 생애와 업적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린나이우스는 28살에 수세기동안 생명의 체계화와 명명의 기준을 세운 책 <자연의 체계>초판을 출간했다.
그가 생명 세계의 본질을 포착하는 핵심요소는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움벨트 비젼이었다.
1부의 내용은 분류학의 잔혹사를 다룬다. 물론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되지만 1부가 가장 치열하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 분류학은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분류학은 갑자기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진화론에 의해 치명타를 입은 분류학은 줄리언 헉슬리의 등장으로 다시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이전의 분류학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계통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대체하면서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다윈이 밝혀낸 진화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물간의 차이와 비슷함을 느끼는 감각 즉 모호한 직관,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무의식적 감각을 따라갈 순 없었다.
따라서 보수적 분류학자들은 여전히 새로운 물결에 방어적이었고 무의식적 인식이었던 ' 움벨트' 에 의존했다.
움벨트는 분류학의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지만 의존할 수 있는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없었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연질서에 대한 자신의 감각이 잘 작동하기를 바랄 뿐 이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움벨트 방식은 과학적으로 정교해지는 생물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분류학자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어떤 분류학자들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한가지에 매달렸는데 그것은 바로 '종' 이었다.
마이어는 이전의 분류학자 처럼 자연의 질서 체계가 아니라 그 밑 바탕이 되는 진화의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 종의 정의도 얼마안가 난관에 부딪힌다. 마이어는 짝짓기로 종을 정의 하였는데 짝짓기로 번식하지 않는 동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심슨이다. 심슨은 짝짓기 기준을 버리고 자신이 경험하고 감지했던대로 종을 계보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것도 많은 문제들이 대두 되면서 결국 분류학자들은 거대한 혼돈 속에 빠져 버린다.
여기까지가 분류학의 혼란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2부에서는 움벨트에 관한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진화분류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던 것은 바로 인간의 움벨트였다. 움벨트란 생명의 세계 및 그 세계의 질서를 지각하는 본능적 경향성을 말한다.
문제는 움벨트가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똑같이 보이지 않고 주관적이며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현대과학과 대치되는 점이다.
하지만 움벨트는 불변하는 생명체의 세계를 보여주는 특별한 기능이 있었다. 움벨트는 진화로 인해 변화되는 어떤 조건에도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생명의 세계였던 것이다.
작가는 본성 속에 숨어있는 움벨트 비젼에 관해 민속 분류학을 토대로 다양한 증거들을 보여준다. 또한 움벨트는 인간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모든 종들이 모든 종류의 감각에 대해 서로 다른 각자 고유의 움벨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2부 중반부에서는 뇌손상 환자의 움벨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움벨트가 단순히 분류 수단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생명을 알아보고 체계화하는 기능을 갖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움밸트가 없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도, 살아가는 방법도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뇌에 민속 분류학을 담당하는 영역이 있고 만일 그곳이 고장나면 일상에서 책상과 고양이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움벨트는 처음부터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서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움벨트의 치명적인 문제는 삶의 반경내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내의 모든 생물권에 대해서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움벨트가 형성되어 있지만 환경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면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횡적 경계선 뿐 만 아니라 종적 경계선 즉, 진화적 변화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1960년대 이르러 컴퓨터가 분류학으로 흘러 들어와 움벨트를 조금씩 밀어내고 새로운 분류학의 시대를 열었다. 3부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1부에서 시작된 분류학의 잔혹사가 3부에서 다시 이어진다.
3부는 소칼로부터 시작된다. 소칼은 유서깊은 전통적인 분류학으로 벗어나 생명의 분류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첫 발을 내딛은 인물이다.
소칼은 린나이우스처럼 타고난 움벨트가 없었다. 대신 수학이라는 비분류학적인 도구를 사용하기 사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니스라는 학자가 소칼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똑같은 결론에 이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소칼을 중심으로한 수리 분리학의 등장으로 움벨트는 위기를 맞이한다.
그렇다고 수리 분류학이 탄탄대로를 달린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진화적인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무엇보다 인간이 해야 할 신성한 일을 컴퓨터가 한다는 사실에 학자들은 모욕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수리분리학에 이어 나온 것은 화학을 통한 분류학이다. 단백질 서열의 유사성 차이점 등을 통해 모든 생물의 질서를 한꺼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다.
그동안 분류학자들은 보이는 외양을 기준으로 분류 작업을 해 왔는데 분자생물학자들이 이제 외양은 필요없고 보이지 않는 단백질과 DNA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분류학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분류학자들과 분자생물학자간의 투쟁은 1993년 최고점에 이르렀는데, 분자생물학자들이 RNA를 비교하여 균류가 식물보다 동물과 더 긴밀한 관계임이 밝혀내면서 분류학자들은 더 이상 이들의 경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분류의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따른 분류학계의 내분은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기학파의 시초가 된 헤니히가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는 계통학 방법론을 가지고 진화사의 진실을 찾아냈다.
헤니히는 분류과정에서 감각과 움밸트를 완전히 잘라버리고 오직 한 조상의 모든 후손만 한 분류군으로 인정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분기학자들이 그렇게 순수하게 진화적 관계의 계통수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유명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물고기의 죽음과 함께 움벨트도 마지막 남은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다.
이렇게 움벨트와 과학간의 오랜투쟁은 결국 과학이 승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3부의 이야기다.
책은 이렇게 끝나는 듯 싶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다.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가 4부에서 펼쳐진다.
4부에서 작가는 과학이 죽였던 움벨트를 살려낸다. 움벨트가 없으면 우리 삶을 온전히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잣대로만 본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인종이나 성별 따위를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소규모 집단에서는 인종의 경계선을 그을 수 있지만 전 지구적 규모로 보면 경계선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남녀의 경우도 DNA 로만 보면 트렌스젠더처럼 명확히 성별을 나누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병아리 감별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수평아리와 암평아리의 성기에는 단순 명료하게 정의 할 수 있는 특징이 없기 때문에 그냥 감으로 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움벨트가 살아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과학의 도구로 물고기를 분류하면 물고기는 사라진다. 하지만 움벨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물고기는 존재한다. 과학은 이와같은 방식으로 생명세계의 수 많은 종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사라져가는 움벨트의 재건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작가가 처음 이 책을 쓰려고 했던 내용은 책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이 되었다. 오히려 정 반대 되는 내용을 기술하였다.
작가는 과학자이고 과학을 대변하는 글을 쓰고자 했지만 결론에 도달해서는 과학의 반대편에 섰다.
바로 움벨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생 과학에만 몸 담고 있다보니 자연을 공식에만 대입하여 바라보았는데 이 책을 쓰면서 자연을 볼 수 있는 다른 시각을 보게 된 것이다.
"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는 일, 자연의 질서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감지하는 일은 오늘날 축소된 형태의 분류학, 즉 추상적인 실험실 과학보다는 훨씬 더 큰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p35)
작가는 과학에 가려졌던 생명 세계의 슬픈 현실을 깨닫고 이제는 과학의 대변자가 환경의 대변자로 바뀌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분류학에 관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큰 세계가 들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분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이름이 붙기 마련이다. 이름이 붙어야 하나의 존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에서도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하나의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 붙여준다는 것은 관심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출생 신고가 결여된 그림자 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출생신고는 공식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다. 신고 되지 않은 아이들은 마치 물고기처럼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사회가 발달하면서 인류의 조상들이 지녔던 자연에 대한 관심을 많이 잃었고, 그 때문에 지금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있다. 작가는 이와같은 현 세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서라기 보다는 철학서에 가깝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해가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점점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돌아보게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