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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이 책은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느냐는 편지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답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당시 영국 여성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에세이가 쓰여 질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고 있었으니, 이 글이 전 세계를 돌아 우리나라에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 학자들을 배출하고 여성 인권 증진에 기여했는지는 말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전 세계적으로 선구적인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첫 신경증 발작을 일으켰던 버지니아 울프는 계속 약을 복용하며 자살기도를 한다. 글을 보면 예민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이 글을 누군가가 잔소리로 듣고 앉아 있다면 반쯤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양도 많고 긴 문장에 가독성은 사실 떨어진다. 읽다보면 지치기도 하지만 가끔 빵 터지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너무 적은 기부금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당시 사회에 대한 ‘썩소’를 날리는 것 같아 기분 좋아지기도 한다.
오래된 글이다. 그런데 너무나 세련되고 논리적이라는 게 놀랍다. 마치 논문을 읽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 누구라도 읽고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 책에는 ‘교육받은 남성의 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계층을 내 세운다. 사회가 여성에게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군인과 학사의 신분을 가지고 남성을 이야기 한다. 한때 영국에서는 자신의 이름 뒤에 B. A.(학사)를 붙여 대학을 나온 사람임을 나타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군인이 군복을 입고 그것을 과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젠 대학교육까지. 여성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서 위세를 과시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데에서 읽는 나도 거부감이 들었다.
저자는 교육받은 남성의 딸이라는 지위의 여성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남자들처럼 전쟁에 나가지도, 대학교육을 받을 수도 없는 환경인데,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이 하는 전쟁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방안을 내 놓으라니,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발끝에서부터 모으고 모아서 터뜨리는 느낌이다. 남성과 여성,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고 ‘교육받은 남성의 딸’과 군인, 학자라는 계층을 내세운 것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배운 자들의 리그’같아 보이기도 한다.
읽다보면 선진국인 영국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싶다. 산업혁명 후 근대사회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이었겠지만 아마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남자들의 전쟁 사이에서 ‘여기있다’며 여성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작품을 읽으며 당시 영국 분위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