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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에게 한 가지 허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허구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허점이 아닌 게 있다면 허구라서 그 표현의 자유와 아름다움은 손끝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 한 문장의 표현에 하다못해 문장 안에 들어가기로 선택된 단어 하나에도 감탄해 마지않을 때가 있다. 소설은 그토록 주옥같은 표현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 보면 안녕을 고하곤 하는 나에게 그 표현들은 한 순간이다. 그래서 아쉬워할 때도 많지만 쓰다보면 책 한 권에 책 한 권이 나오겠다면 포기한 때도 많다. 사랑의 언어를 담을 뿐이지만 그 한정적인 주제를 담아낸 책에도 너무나 고맙고 즐겁게 보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아도 알 일이다.
사랑은 나는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본 사랑은 책이나 티비, 인터넷 같은 공간에서다. 가끔씩 부모님에게서도 그런 눈치를 받긴 하지만 소설의 사랑에 대한 언어만큼 강렬한 것 같지 않다. 이 책에서는 사랑의 언어를 세 주제로 나누었다. 쿨한 사랑, 나쁜 사랑, 보통 사랑. 세상의 사랑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여간에 너무 자세하게 들어가지도 너무 겉돌기만 하지도 않은 적정한 깊이로 파고든 소설 속 사랑의 언어. 사랑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도 쿨하다.
이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사랑 언어가 제일 먼저 다루어지고 있다. 그의 사랑 언어의 주제는 쿨한 사랑. 세 편의 작품 모두가 ‘쿨한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하루키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나에게 그 세 편 모두는 낯선 작품들이었고 또 그토록 매력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못한 매력을 담고 있다는 것 또한 단 한 편의 작품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접한 나로서는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사랑 언어를 알게 되고 그 말이 얼마나 감미로운지를 깨닫는 것,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쥐’를 알게 된다는 것, 그 모두가 기쁨이었다.
그 뒤의 사랑 주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아닌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하고 있다. 내가 그 중에 읽은 책이란 역시나 없었다. 아쉽고 내 자신을 향한 약간의 원망 섞인 한숨을 내쉴 때 내 눈에 들어오는 사랑 언어란 얼마나 감미롭고 위안이 되겠는가! 그리고 새롭다. 사랑을 보는 시각으로 소설의 언어를 다시 본다는 것은. 만약 내가 이 안에 담긴 책들 중에 한 권이라도 읽은 책이 있다면 더 새롭게 느껴졌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도 새롭고 책에서 다루는 사랑 언어가 끝났음에도 굶주리기만 하다. 끝났음이 또 아쉽다.
사랑 언어를 말하고 있는 소설의 부분을 직접 데려와 이 책에 실었다. 한 권의 소설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 언어를 직접 보는 느낌은 생동감 있다. 일본소설에 국한되어 다양한 나라의 소설의 사랑 언어를 보지 못하지만 이것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겐지 이야기’도 담는 이 책을 쓴 작가는 시대만큼은 국한하지 않았다.
“육십 억 인류가 다 한다는 사랑은 육십 억 종류의 모습으로, 육십 억 사람에게 다가가니, 그것만큼 오묘한 게 있을까?”-본문 p239
소설의 언어를 사랑을 보는 오묘하고도 감미로운 시선에 한 번 빠져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