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느리지만 그래도 더디게 천천히 읽어나갔다. 빠르고 숨 가쁘게 읽어나간다면 아마 작가의 하나라도 더 간직하고 싶은 표현을 휙 하고 지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표현을 간직하고 싶다는 의미. 그 의미는 놓치고 싶지 않은 붙잡음이라고 할 수 있다. 붙잡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표현들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솔직한 고백으로 표현들에 감탄한 소설을 열거하라고 한다면 ‘태엽 감는 여자’ 혼자이지는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의는 내게 특별한 책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 첫 번째. ‘가을 몽정’으로 시작한 책 읽음은 처음 내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가을 몽정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단편 이후로 계속되는 단편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 눈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존재들로 비춰졌다. ‘가을 몽정’ 속 화자가 되는 그녀 또한. 그들이 아무리 현실이 아닌 공간의 사람이라고 해도 한심스럽고 때로는 무섭고 두렵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문득 깨달은 것은 그 감정들이 모두 나를 향한 것이 아닐까 하는 한 가지 의문이었다. 그 존재들은 사실은 내 안의 어딘가의 우연하거나 필연적인 어둡고 위태로운 부분이라고 말이다. 그런 빗댐이 기억에 우선 남기 때문이다.

그 이유 두 번째. 각자 다른 제목을 가지고 겉으로 보이기에 공백을 두고 뚝 떨어뜨려놓은 소설들이지만 그 서로가 연결되어있다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그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편의 작품 모두가 연결되어있지 않지만 나는 때로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가을 몽정’에서는 책의 표지와 닮은 인물을 볼 수 있다. 색한지, 여자. ‘딤섬’에서는 랑이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 그리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연결고리들. 여자, 아픈 과거, 미친 듯한. 난 일부러라도 묶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 마지막이자 세 번째 이유. 여운. 자학. ‘어항’에서 어항이 깨졌을 때 간만의 정적을 깨고 나는 당장 나가버리라는 소리침, “어항이 깨져버렸어!”와 같은 소리침을 더 기대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여운. “통증이 배인 손가락 하나를” 빗속으로 내몰고 “아프다, 아파” 라고 말하는 자학. 내가 단편을 읽을 때 곧잘 말하는 말이 여운이 길다라는 말이다. 자학은 처음 하는 말이지만 이 소설집과 꽤 잘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평화로워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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