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꿈을 꾼다
최학 지음 / 좋은수필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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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한 권이었다. 그리고 담겨진 수필도 길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낮 시간에 낮잠을 또 자려는 나의 발목을 잡은 책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그는 글 쓰는 작가일 뿐이라는 것과 나와 나이차가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런 세대차에서 오는 글들은 흔히 듣게 되는 모순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기계치’에서 들은 이야기는 마치 나의 엄마가 처음 나에게 컴퓨터를 배울 때를 생각나게 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타자보다는 화투나 사천성 게임에 더 푹 빠지셔서 컴퓨터 고장 나서 혼나는 쪽은 오히려 나이다. 엄마의 독수리타자를 보고 웃는 것은 나지만 말이다.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한 예이지 않을까 싶다. 공감은 곧 즐거움이 되어 나를 때때로 즐거운 마음을 들게 했다.

귀로 전해 듣는 것에는 말이 갖는 한 특징인 와전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해지는 이야기라 ‘아직도 나는 꿈을 꾼다.’에서 직접 보는 이야기는 현실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된 책이기도 했고 일관된 주제 없이 쓰여 있어서 더 사람냄새 나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왈가닥 같은 수다를 듣는 기분이 나는 좋았다.

월남에서의 전쟁 이야기로 시작하는 선택은 탁월했다고 본다. 첫 시작이 흥미로웠고 끝은 끝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소소한 이야기라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있었고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한 편의 수필이지만 그 안에 새겨진 시간은 내가 어린 시절 버스비와 라면 값과 200원짜리 주스를 기억하는 것과 같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이것도 공감의 하나다.) 전쟁의 이야기가 있었다. ‘개미의 향연‘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그런 모습은 유쾌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에서 느껴지는 깨달음 같은 것은 이 책이 소중할 수밖에 또 다른 한 가지 이유이다.

자신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이 교차되는 그 만남이 언제나 기대되고 즐거운 게 수필의 변하지 않는 멋진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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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일상 - 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
백영경.박연규 지음 / 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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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본 생명이란 위태로운 존재였다. 그렇게 만든 주범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고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생명공학시대의 개막이었다. 하지만 그 옛날이라고 해서 생명이 지금보다 더 많이 보장받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생명공학시대. 그 정확한 개막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한 귀퉁이의 기사로만 보던 그 시대를 이렇게 두 눈으로 책이지만 목격했다는 의의는 생각외로 크게 작용했다.

생명을 다루고 있어서 때로는 두근거렸다. 그 경이로움은 비록 글로 말해지고 있지만 생명이라는 그 이름만으로 드는 감정은 실로 생명을 존경하게 된다. 때로는 생명이 너무 가볍게 그려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경계심을 일깨워주는 것도 이 책은 맡은 한 가지 역할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되었다. 생명공학이라는 이름과 함께 생명이라고 하는 그 경이로움에까지 뻗친 인간의 손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인간의 손은 이익을 먼저 하기 때문에. 파괴의 손 같이.

두 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발달된 의학 속에서 생명이 다루어지고 있는 두 가지 상태. 생명이 무시되고 있거나 오히려 생명에게 이점을 주고 있거나. 인간의 손과 머리는 두 얼굴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장점인 것이다. 두 모습을 모두 보이고 결론은 우리가 내린다. 결론이 없을지도 모를 문제이지만 책에서 내린 결론에만 목을 메인다는 것은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생명으로서 부끄러운 면이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꽤 호의적으로 보았다. 그 호의적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것이 기술에 한해서지 결코 위선까지 덮어줄 만큼은 아닌 따끔하기도 한 눈초리이기도 했다.

생명이 주요 주제이지만 성장 호르몬이라든지 한때 인간의 한 생명들이 거쳐가는 여성의 몸과 생명윤리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깊이 그러나 깊지만 않게 생각하면 떠오를 만한 생명들의 작은 갈래까지 다루고 있다.

다양해서 좋았다. 두서없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생명이라는 주제 안에 펼쳐지는 그 다양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몽땅 그러면서 뚱뚱하게(내용의 양이 적당했다는 뜻이다.) 알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일컬어질 만한 일이다.

상품화되는 것이 마냥 좋아 보이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허용범위를 설정해두는 것도 좋아보였다.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 되지 않게 생명을 다루는 만큼 자신의 생명처럼 생각하는 자세를 바란다.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시대에서 바라는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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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운드 아이
김도경 지음 / 들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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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숨 막힐 듯 끊임없이 펼쳐지는 액션의 향연! 여기서 질 수 없다. 손에 땀을 쥐더라도 끝까지 읽어나간다. 액션의 모습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독자가 책을 놓을 순간이 주지 않고 자신의 만들어낸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 매력! 작가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액션의 향연 속에서 수없이 자행되는 죽음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죽이는 그 냉정한 모습에도 가슴 아파온다. 때로는 증오할 수밖에 없는 그들, 인간이라고 부르기조차 거절할지도 모를 만큼 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은 비상식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비치는 인간적인 모습이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던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최창식의 오강태의 집에 향한 그 눈길이 인간적인 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데니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를 베푼 안젤라의 모습까지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코 액션만이 가득한 소설이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인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독특한 설정도 기다리고 있는 이 소설의 구성 또한 치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데니의 우연. 그렇게 시작된 원치 않는 일들. 그러나 수현을 향한 그의 마음까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데니의 한없는 희생이 비록 소설 속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보여 졌지만 자꾸만 드는 부러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사적인 감정을 넘어서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그런 희생이 보여 진다는 것이 마치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상상이지 않길 바란다.

무서울 정도로 잔인한 그들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똑같은 인간이 되려는 모습을 보면서 컴파운드 아이를 향한 욕심을 보는 것만큼이나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이런 말을 하는 나마저도 참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그 결말이 거짓이 아니라 현실이기를 바란다. 데니도 무서운 인물이지만 사형수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조금은 공감할 것 같다.

서로 정반대의 것이 격렬한 듯 아니듯 한 가지 이야기로 모인 이 소설은 무섭도록 재미있다. 숨 가쁜 스릴이 마치 한 편의 액션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영화만큼 생생하다. 짜릿함을 원한다면 이 책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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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퍼즐
기모토 신지 지음, 송희진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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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생 와타누키. 이 주인공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호미즈는 천재다! 와타누키가 호미즈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나도 호미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와타누키가 조금이라도 아는 기색이 보이면 괜히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소설을 즐기지 못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과 더 교감이 통하는 것 같은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내 생각이지만). 그리고 과학이란 게 수없이 많은 이론으로 접근을 해서 의문을 푸는 멋진 학문이라는 거라는 생각되었다. 쉬이 알기 어려운 이론들이 바로 과학을 만든다. 그 이론이 한순간에 발칵 뒤집힐지라도 의문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일단 가산점이 부여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의문을 갖는지 궁금하다. 누군가 가르쳐주면 우리는 거기서 끝인 것처럼 의문을 뱉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의문을 갖기는 했지만 포기했다.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밀려드는 허무감에 나를 맡기기에 나는 너무 젊다! 우주가 아주 적은 먼지덩어리에서 폭발을 일으켜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고 그 먼지가 있었던 공간을 뭘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이 이 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무(無)였다고 생각한다. 무에서 탄생한 우주를 무에서 탄생한 인간이 만든다는 독특한 발상을 이 소설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해결되려는 찰나..

이 소설에는 가속기가 등장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무한이란 가속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우주를 자멸시킬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문명의 이기였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의문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궁금해 하지 않았다면 산업화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책에서 본 구절이 기억이 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지 않아도 벨이 전화를 발명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발명했을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벼농사는 무슨 의미일까? 무한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만들어질 때 무한이 내려다보고 있는 땅에서는 벼들이 자란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사는 할머니의 손에 그리고 와타누키 그리고 모두에게. 상반되는 두 이미지가 왠지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보면서 아쉽게 느낀 점이 있다. 와타누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어보였다.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하라며 호미즈가 와타누키를 부추겨서 힌트를 몇몇 얻게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도 그리고 힌트를 제공하는 순간에도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그 은은한 느낌이 바라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허무감으로 버무려져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이 허무하기보다 허무감 그 자체를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우주가 팽창하든 않든 우주보다 작은 게 인간이고 무에서 태어난 우주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천재 호미즈. 인간의 솜씨가 이 정도라면 어느 날 우주가 정말로 만들어져 있지 않을까 하고 문득 생각해본다. 혹은 자멸. 허무하게 생각 말고 그 존재 자체가 신비로운 우주에서 산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의 있는 일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때로는 겸손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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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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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본 비트는 3박자. 즉, 왈츠인 것이다.’

관료들과 같은 의학에는 초보자들에 의해 지역의료붕괴가 이루어지는 그 안에 이제 곧 문을 닫을 마리아불임클리닉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환자 임부 다섯명과 아픈 마리아 원장을 대신한 소네자키 리에와 묘코. 그리고 대리모 의혹이 퍼진다.

나는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을 때 나는 기어코 공감을 하고 말았다.

티비에서 보면서 안타까움과 정부의 각성과 같은 여러 생각을 낳았던 방송들이 내 머릿속을 다시 헤집었다. 지금 의료현실에서 문제만이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방송프로에서 나는 두 이야기를 말해보려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소방관을 채운답시고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을 대신 보내었다. 아무런 지식이 없는 회사원이 졸지에 소방서 쪽으로 직장을 옮기고 입장이 난처한 것은 양쪽 모두였다. 정부는 말이 없다. 관료들에 의해 내려진 대단한 오판.

국과수 문제 또한 볼 수 있다고 본다. 기술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국과수직원들. 한 명이 지키던 곳마저 혼자서는 너무 벅차서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곳이 되기도 하는 지방에 세워진 국과수. 국과수를 책임지는 기관은 다소 엉뚱하다고 볼 수 있다. 경찰 쪽이 아닌 것이다. 경찰 쪽 기관이 국과수에 대한 현실적 지원을 해줄 수 있지만 국과수의 책임 기관이 옮겨지지 않는다. 말이 없다.

이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산부인과의 붕괴까지 초래하는 모습이 소설에서까지도 소재로 쓰였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실을 토대로 한 소설이자 비판의 소설이다라는 것이다.

알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에 의해 침묵하려 않는 소수들마저 설득을 당하고 있다. 혹은 저지당하고 있고 설령 그것이 알려지더라도 소수들의 목소리는 묵살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마리아불임클리닉의 부활. 그리고 그것을 저지하려할 위에 높으신 분들. 리에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냉철하기 때문에 붙어진 얼음마녀라는 변명까지 붙은 리에의 소설에서 다 쓰지 못한 활약상이 있기를 바란다.

의료현실에 대한 처절한 비판 속에서 생명이란 경이로움까지 다스리고 가히 신적이고 광적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료현실 앞에서 한숨 짖게 만들다가도 결국에 그런 나조차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에 더 큰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일본과 바다를 건너 우리들에까지 소설에 빗댄 채 건너왔다. 그러나 한숨이 멈칫 하는 것은 역시나 새 생명의 탄생일 것이다. 비록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지만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곧 죽을 것만 같이 쇠약해진 마리아가 두 발로 서서 새 생명을 받아내었다. 경이롭다!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과 이제 갓 두 눈으로 생명을 인정받은 두 숨 쉬는 것의 만남.

권력싸움에 휘말려 10년간 봉사해온 의사는 당연한 죽음 때문에 수갑을 찬다. 또다시 한숨을 쉬겠다. 이런 모습을 당연 의료계에서의 얘기라고는 생각 안 할 것이다. 생명의 탄생의 장면으로도 다 용서 못할 모습들이 너무나 적절하게 용해되었다. 리에의 그 냉철한 계획에 의한 충격적 반전 이 또한 놓칠 수 없는 이 소설의 묘미다.

가이도 다케루의 이전 소설과 다르게 강력한 소재가 쓰이지 않았음에도 나는 이 책을 보는 동안 푹 빠져들었다. 의료현실은 더 처절해져 있었다. 생명을 더 처절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의미를 가지 않기를 바란다.

꺼져가는 마리아불임클리닉의 다시 숨통을 트고 세상을 마시는 그 모습이 이제 우리 전체의 모습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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