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 임윤택 에세이
임윤택 지음 / 해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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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는 8월 17일, 슈퍼스타K4가 시작한다. 참가자는 무려 208만 3447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대국민’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열기다. 더 놀라운 것은 몇 달 후엔 208만 3447명 중 단 한 명(혹은 한 팀)만 남는다는 것이다. TV 밖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2,083,447:1이라는 경쟁률은 가히 살인적이다. 저런 경쟁에서 이기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승자’를 면밀히 조사해봐야 하는데, 우리는 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서인국, 허각 그리고 울랄라세션 - 이들은 저 살인적인 경쟁률을 뚫어낸 능력있는 ‘스타’다. 특히 가장 최근에 우승한 울랄라세션에 대한 기억은 각별하다. 한국 음악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음악을 한다는 점이 대중들이 그들을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겠지만, 리더 임윤택의 기고한 사연도 한 몫 한 것은 분명하다. 임윤택, 그는 춤과 노래는 물론 말도 잘하며 매사의 긍정적이고 리더십도 뛰어나다. 그러나 불행하다. 현재 위암 4기인 것이다. 어느 날부턴가 온갖 루머에 시달리고 있지만 기고한 운명임을 부정할 순 없다.

 

이러한 그의 삶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제목은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이다. 이는 임윤택의 에세이다. 이 책의 출간은 그에 팬 혹은 슈퍼스타K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슈퍼스타K3의 뒷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때의 재미와 감동을 되짚어 볼 수 있다. 책에 쓰여 있는 TV에선 보지 못한 도전자들의 모습이 새롭다.

 

"결승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잊지 못할 사연이 한 가지 생겼다. 방에서 쉬고 있는데 버스커 버스커의 브래드가 나에게 와서 무슨 말인가 열심히 했다. 그는 한국어를 못하고 나는 영어를 못한다. 진지한 표정과 분위기로 봐서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한참을 내게 말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는 투개월의 대윤이 남아있을 때였고, 나는 도움을 청했다.

"대윤아, 얘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답답해 죽겠다. 뭔데?"

"잠시만요."

한참을 듣던 대윤이 입을 열었다.

"브래드 말은요......누가 결승에서 우승을 할지 모르지만 만일 자신들이 우승하게 되면 우승 상금을 형에게 드리고 싶대요. 병 고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요."

 

‘대결’을 강조해야 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방송에는 차마 담길 수 없었던 따스한 사연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실력을 지닌 ‘임윤택’이라는 본보기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5장(임윤택의 노력), 6장(임윤택의 생각)을 특히나 깊이 읽어 보았다. 춤, 노래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조금 더 큰 틀에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어떠한 가치를 강조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심히 읽어본 바, 그가 주장하는 것은 선망 받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별다른 건 아니었다. 그의 성격을 요약하자면 ‘노력을 최선이라 생각하고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쯤 되겠다. 가령 이러한 문장에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동작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연습만 하면 결국 내 것이 되었다."

 

적어도 춤과 노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는 ‘노력의 아이콘’이라 불릴만하다. 또한 게으른 독자들을 자극할 ‘자기계발의 아이콘’이라 불러도 손색 없다.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으려면 어떠한 생활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의 책은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임윤택과 같이 살아가기 위한 지침이다. 그런데 과연 사회는 임윤택처럼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줄까? 글쎄다. 우리 사회는 행복을 쫓는 사람들의 삶을 위기의 연속으로 만든다. 사회는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가 아니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노동사회의 정언명령에 의거하여 설계되었기에 말이다. 임윤택은 "바로 앞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이 결코 옳다!“고 말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지라도 바로 앞에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면 옳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게 현실 아닌가?

 

모두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제 2의 임윤택을 꿈꾸며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에 비해 임윤택의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거의 품절에 가까워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임윤택과 같은 ‘본보기’들의 성공보다는 수백만 이름 없는 도전자들의 실패에 관심을 갖는 편이 낫지 않을까?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우리는 임윤택을 기억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임윤택은 승리했고 대중에게 기억됐지만 임윤택에 버금가는 노력을 했을 또 다른 참가자는 현장에서의 실패와 더불어 슈퍼스타K에서도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야박하기에 그들의 삶은 언제나 궁핍하다. 우울하게도 우리 또한 언제든 ‘그들’이 될 수 있다. 임윤택의 ‘경쟁력’에 취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먹고 살만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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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 절망의 문턱에서 희망을 찾기까지 엄마들의 여정 푸르메 책꽂이 5
김효진 지음 / 부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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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벼랑 끝 인생

한국 사회는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가?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질문들이다. 이 사회의 구조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최적화 되어있기는커녕 뿌리 깊은 불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장애는 행복과는 무관하며 고통, 불행, 비정상, 비극, 절망, 심지어는 죄와 동일시된다. 장애인은 분명 ‘일반’ 사회구성원과는 다르게 취급된다. 즉 ‘장애’라는 기표는 ‘차별’을 함의한다. 차별은 만연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솎아내어지고, 쫓겨난다. 차등대우는 장애인의 운명이다. 국가와 시장에서는 그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이미 사회구성원 전반에게 장애인은 성가신 존재로 인지된 지 오래이고, 정상인들보다는 덜한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미미한 제도는 있지만 소극적이며, 의식구조의 변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즉 사회구성원 다수는 장애인을 어느 정도씩은 차별한다. 이렇게 누적된 차별에 짓눌린 장애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이 성공한 장애인도 있지 않느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례로 만개의 비참을 가려 보겠다는 우의를 나는 헤아려 줄 수가 없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심 끄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TV에서 나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스타들은 사랑받는 사람의 전형이다. 또 재수 없긴 하지만 ‘범생이’들은 ‘요즘 공부 열심히 하니?’가 청소년들에 대한 인사로 통하는 사회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나 무관심을 독차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 그 전형이 장애인 집단이다.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 이러한 무관심에 훼방을 놓기 위한 기획은 간헐적으로 제출되는데, 최근에 출간된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러한 기획의 최신 버전이다. 특이한 점은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다운증후군, 시각장애, 자폐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등의 장애를 지닌 아이들 엄마 12명이 직접 전하는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숨은’저자이자 ‘엄마들’의 인터뷰어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또한 어릴 적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마흔아홉 해를 지체장애인으로 살았다.

 

장애, 차별과 사랑 사이에

김효진이 전하기를 "처음 자녀의 장애를 알았을 때 그녀들은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슬픔을 맛보았고, 앞으로의 삶에 온통 먹구름만 가득한듯한 절망을 느꼈으며,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8p) 그녀들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왜 생명 탄생의 축복과 함께,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감정의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시선을 갖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장애인 혹은 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좀 안됐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게나!'라는 식의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장애인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 냉소적으로 돌변한다.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복지도 비장애인 유권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는 즉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비장애인의 눈치를 보며, 혹여나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살아간다.

 

한 사회가 어느 정도의 ‘평등에 대한 감각’을 지녔는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대우를 살피는 것이 유용하다. 한국 사회도 그들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줌의 제도를 마련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악조건’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이 사회는 권리보단 의무에 예민하기에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비장애인들이 제시하는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차별하기 좋은 대상이 된다.

 

차별에 대한 감각에서 평등에 대한 감각으로

평등에 대한 감각보다는 차별에 대한 감각이 돋보이게 된 아이들에 대한 교사 황주환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수행평가 시간에, 학습 장애가 있어 언제나 전교 꼴찌인 학생을 배려하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날선 고함과 손가락질로 나를 질타했다. ‘왜 그 아이만 특별대우 해주느냐’며 교사에게 퍼붓는 야유로 교실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들의 조롱과 이죽거리던 눈빛을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이들마저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 12명의 엄마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소개하며 이 세상은 ‘독한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차별의 반대편에는 사랑이 있는 바, 엄마들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려고 애쓰지만 “내 아이, 나 자신에 대한 일차원적인 사랑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견디고 있”다.(9p)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에 ‘고된 돌봄 노동’은 그녀들이 방전되기 이전까지 지속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은 장애인이 전부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차별은 연대의식보다는 경쟁의식이 주입된 사회에서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야말로 경쟁적인 구별에 취해있다. 얼마 전에 유행한 스마트폰 계급도, 노스페이스 계급도 등은 물론,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따라서, 집의 시세에 따라서, 학벌에 따라, 심지어 가지고 다니는 가방으로 인해 차별 받고, 특권 의식을 구가하는 사람들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우리가 그 사람들이다. 차별이 일상이 된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다양하고 정밀한 분류체계가 특권을 누릴 사람/차별 받을 사람을 나눈다. 이 분류체계는 폐기되기보다는 증식하고 있다.

 

누림의 시간

12명의 엄마들이 ‘장애아’를 낳은 ‘죄’로 육체적인 고생과 따가운 시선을 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전면화 되어버린 차별에 대한 감각이 완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는 만연한 '차별에 대한 감각'이 그저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 당장에 내일에라도 각자가 '의지'만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감각은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채택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 체제가 구축해놓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존중받으며 살기 위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차별에 대한 감각’이 구성된 것이다. 즉 '차별에 대한 감각'은 '악한' 개인이 선택했다기 보다는 유도되고 길러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겨눠야 할 과녁은 모세혈관이 아니라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임이 자명하다.

 

철학자 이진경은 “장애는 어떤 생명체가 흔히 ‘환경’이라고 불리는, 그가 살아야 할 조건과 만나는 곳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재고해야 할 것은 현재의 환경, 그리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환경’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자유롭게 남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고통을 줄 수 있는, 그것도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그러할 수 있는 한국 사회, 그래야만 존엄한 삶을 ‘쟁취’할 수 있는 이 참혹한 서바이벌 세계라는 ‘환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한 그것이 적용된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나는 그것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결투의 시간'은 '누림의 시간'으로, 즉 권리의 확장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하여 부재했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 애써 외면했던 것들, 그래서 바로 알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기억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 ‘그들’이 ‘우리’가 되는 시간을 요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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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힘 -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꽃피워라
조엘 오스틴 지음, 이은진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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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불가능의 시대

 

1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 알랭 드 보통

 

인용문이 강조하는 것은 '행복을 위해 기대를 줄여라' 따위가 아니다. 그는 분명 '학습'이라는 단어를 끼워넣었다. 즉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이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인 사회화&재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모든 것을 기대해도 좋다는, 꿈을 크게 가지라는, 욕망하라는 '사주'를 받으며 성장하였고, 정말로 모든 것을 욕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욕망은 행복을 요원하게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모처럼 웃었네!'라는 말이 관용구가 되었듯, 우리는 '행복의 미소'는커녕 정말이지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웃음의 부재는 또한 행복의 부재다. 남은 것은 면접 중에나 활용할 학습된 억지 웃음, 즉 텔레마케터와 영업사원 스타일의 인위적인 웃음 뿐이다. 분명 '웃는 얼굴'은 행복의 표식이지만, 억지 미소는 결코 행복의 시간을 반영치 않는다.  

 

진짜 웃음은 일상이 아닌, 드물고 귀한 사건이 되었다. 웃음이 희박한 이 사회에서 '무려' 행복을 꿈꾸는 것은 한낱 사치열병일 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소원'을 물으면, 주저없이 '행복'(통일이 아니라)이라 말한다(그마저도 '우리의 행복'에서, 그 범위가 '나의 행복'으로 줄어들더니, 이제는 '행복보단 안정'으로 꿈의 크기가 쪼그라들었다); 간혹 내 소원은 '돈 많이 버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만, 그들에게 다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에 대해 물으면 '행복하기 위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것은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통계적으로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그 유명한 OECD국가 중 최고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나라 아니던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 동시대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을 탐닉하고, 행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가치의 정점으로서의 행복, 행복하기가 쉬운 것이었다면 그 누구도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2

더군다나 조엘 오스틴의 신간 <행복의 힘>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기에 행복에 관심을 갖는다. 

 

이 책의 지은이는 목사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중 하나란다. 그의 교회의 성도 수만 45,000명,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한 그는 2005년에 출간하여 흥행한 <긍정의 힘>이라는 저서로 이미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다. 

 

<행복의 힘>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것은 '행복'에 대해, 특히나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연관 키워드는 희망, 긍정, 믿음, 치유 등이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오스틴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솔직히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이야기다. 굵고 짧게 말해 '마음 먹기 달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걸 알고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요즘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 '당신이 우울한 이유는 당신의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즉 당신이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우울한 겁니다.' 이러한 클리닉이 이 책의 핵심이다. 무언가 요상할지라도.

 

3

잠시 책의 뒤표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미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이 책을 소유하지 못해 불행한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할 말이다).

 

나는 저 문장과 생각을 달리하는데, 이 책이 나온 이 시대는 행복을 위한 조건이 이미 갖추어졌다기 보기는 힘들다(국부가 개인의 풍족을 반영하진 않는다). 차라리 행복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이전에도 이러한 유형의 책들은 이따금씩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근대적으로 구성된 '개인'이라는 범주에 대해 과대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문장에 나타난 '개인'이라는 주체의 모습을 살펴보자.

 

"지금, 불행하고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두려운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불행, 슬픔, 괴로음, 아픔,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체도 나고, 거기서 벗어나기로 선택하는 사람도 나다."

 

전형적인 '개인의 (극복)의지'에 대한 과대평가다. 이러한 해결방식은 개인이 처한 조건이라는 범주를 누락하는데, 이 방식은 제 아무리 '악조건'일지라도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개인들에게 조건에의 적응을 권유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이 고착될수록 현재의 조건을 변경하는 것, 즉 '정치적인 것'은 망각된다. '긍정적 마인드를 지닌 개인'의 이미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 사회, 그러나 이 긍정의 이산화탄소는 오염된 사회 공기를 은폐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개인들이 처한 환경은 '악조건'인 것일까? 연일 터지는 이슈들을 보고 있으면 현실은 결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왜 우리 사회를 순진하게 긍정할 수 없는지'를 알려주는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개중 대표적인 사례는 일련의 자살 사건이다. 학생과 일반인들은 물론 '부러움을 사는' 연예인마저도 삶을 비관하며 자살한다. 즉 우리 사회는 연예인'도' 자살하는 사회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연예인의 자살'이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조건을 가늠해본다.

 

"연예인이 자살하는 사회, 그것도 약물중독이나 사고사 같은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궁지에 몰려서 목을 매거나 투신하는 방식으로 자살하는 사회를 좋은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연예인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끝없이 자살한다. 어느새 자살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일일이 입단속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거나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이 현실과 자신의 미래가 더 아플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통념과 달리 자살자들은 결코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과대망상에 빠져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으로 계산했을 뿐이다. 어느 것이 더 아픈가를 두고 말이다. 삶보다 죽음이 덜 아플 것이라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허구적인 진술보다는 '아프니까 자살한다'가 더욱 현실적이이지 않은가. 그들은 그저 덜 아프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오스틴의 관점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글쎄. 이처럼 위협적인 세상에서 절망하는 나를 보고 '네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네가 불행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결국엔 네가 참으라는 그 뻔한 반복.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1994년 9월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들의 80%가 '행복은 성적순'이라는데에 동의한 걸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행복은 결국 소수의 승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희가 착각한거라고, 세상에는 다른 행복한 일도 많으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너 마음먹기 달렸다고 말해주면 끝일까? 분명한 것은 이렇게 말하면 꼰대로 오인받기 딱 좋다는 것이다. 또한 효과도 미미하다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렇게 정신조작에 투여한 열정을 '줄세우기'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질문들을 작성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부산물로서의 아픔'에 대한 인지가 너무도 미미하다는 것, 절망이 필요할 때는 절망해야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인 절망 상태를 응시하기는커녕 은폐하기 위해 거짓희망과 상투적인 위안을 유행시켜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에 희망은 없다.

 

그런데 <행복의 힘>은 이미 전세계 1천만 독자들의 책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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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
일레인 제임스 지음, 김성순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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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라는 징후

 

"현대인들은 종종 비현실적인 목표와 기대치를 설정해놓고는 무리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곤 한다. 모두들 큰 집, 빠른 차, 좋은 직업, 고액의 연봉, 장래가 보장된 미래, 행복한 결혼, 완벽한 가정, 명문대에 다니는 똑똑한 자식들, 최신 패션,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최첨단 장비와 기기를 손에 넣으려면 아등바등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해도 이 모든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기대치를 초과 달성한 사람도 가끔 있긴 하지만, 불행히도 기대치를 충족시켰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p105)

한병철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각자의 소망은 충만하였으나 반복된 좌절로 피로가 누적되어 종전의 생동성은 사라져버렸다. 이에 대한 반작용일까? 대중들은 이제 '자기계발'에 탐닉하기보다는 '힐링'에 주목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표되는 ‘힐링서적’은 물론 이름 자체가 힐링인 TV프로그램 '힐링캠프'도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다. 또한 '청춘콘서트'와 같은 이벤트는 얼어붙은 청춘들의 마음을 녹여주기 충분해 보인다. '힐링'이라는 범주의 탄생과 급부상, '힐링'이라는 징후, 과연 힐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힐링'의 기류는 다층적인 문화적 차원에서 발현되지만 내가 '우선' 주목하고 싶은 기류는 출판 분야에서 감지된다. 힐링 기획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무려 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최근에는 중국 대륙으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이를 필두로 ‘힐링’이 새로운 장르로 굳건히 자리 잡았는데, 이러한 기획은 불경기와 취업난 등 의지할 데 없는 젊은 층의 구매심리를 파고들기 충분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0년 12월 24일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 이후 1년 6개월에 남짓한 기간 동안 수백 권의 힐링서적이 출간된다. 이 분야의 책들은 당당히 '베스트셀러'의 반열의 오르기 시작했고 '위로가 절실했던' 독자들은 열광했다.

 

이러한 인기를 시샘한 것일까? '성공학'과 '자기계발'이 그랬듯 '힐링'에 대한 의심의 시선들도 생겨났다. 힐링 비판자의 요지는 힐링서적이 가뜩이나 궁한 ‘상처 받은 사람들’, ‘가난한 청년’, ‘실패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비한 마케팅이므로, 즉 그들을 (여러 의미로)두 번 죽인다는 것이다. 또한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문제의 원인을 감춘 채, '내일을 더 잘 될 거야!'라는 식으로 독자들을 기만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위안을 주는 '선의의' 책들이 과잉 범주화되어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심들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몇몇 힐링서적은 베스트셀러다(힐링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현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들은 무엇보다 '팔린다'. 이러한 인기에 편승하고 싶은 출판업계는 얼렁뚱땅 유사 힐링책들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다. 그래서 서점에는 수많은 '가짜약'들이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노리고 진열되어 있는 것이다.

 

좋은 힐링 책은 부족하지만 양적으로는 범람하고 있는 현실, 어쨌든 이러한 힐링서적의 인기는 우리 사회에 속한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 

2012년 6월 12일, <아프니까 청춘이다>와는 근 반년의 간격을 두고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류노스케가 집필한 유명 힐링서적인 <생각 버리기 연습>과 같은 출판사 '21세기 북스'에서 출간된 책으로, '힐링'이라는 목적성을 명확히 지니고 미국에서 수입된 책이다.

 

이 책은 피로를 양산하는 이 복잡한 세계에서 단순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논하는데 저자는 "우리가 말하는 삶의 단순화란 삶의 규모를 줄이고, 편안함을 유지하며, 복잡함을 없애고, 여유로움을 갖자는 것이다."라며 이 책의 존재 의의를 규정한다.

 

그가 제시하는 단순한 삶이란 '여유로운 삶'이다. 이를 위한 100가지 실천 방법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심리적인 차원의 치유라기보다는 일상을 간소화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을 제안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우리들의 단순한 삶을 위해 제안하는 것은 무엇일까? 잠시 목차를 살피도록 하자.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은 당장 버려라'(2)

'옷장을 가볍게 하라'(7)

'아스피린만 빼고 모든 약을 버려라'(24)

'지겨운 모임은 나가지 마라'(32)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라'(36)

'신용카드는 한 두개만 남기고 몸땅 잘라라'(65)

 

그가 제시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것이다. 저자는 왜 저러한 일들을 제안하는 것일까? 이러한 단언적인 제목의 100개 챕터에 그 나름의 이유가 적혀 있으니 이것을 확인하는 일은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단 이러한 제목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저자가 지극히 일상적인 차원에서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지침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즉 구체적으로 직장생활, 인간관계, 건강, 재정문제, 여가시간 등을 어떻게 조직해야 '단순한 삶'에 다가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한다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수만 가지의 상품, 수백 개의 TV채널, 지하철에 가득 찬 사람들,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도배된 복잡한 현대 도시는 비움 보다는 채움의 양식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며 각자 나름의 '멀티태스킹 일상'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어쩌면 인식의 과부하는 필연이다. 다시 한 번 비움이 절실한 이 시간에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이 우리에게 전달됐다. 이 책은 다시금 우리에게 '여유'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그리고 정말로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들을 일러준다. 그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여유 시간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이때 무엇을 해야 하나? 저자는 그 시간에 일기 쓰기, 여행, 산책, 텃밭 가꾸기, 애완동물 기르기 등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묻는데, 각자의 시간은 스스로 기획하는 게 나는 가장 현명할 것이라 생각한다.

 

힐링과 그 대안

사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전부터 꽤나 유명한 책이었다. 출생지인 미국에서는 무려 1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미국 사회도 힐링이 절실하다는 하나의 증거일까? 아무래도 미국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구조가 비슷한 것이 아닌지.

 

그런데 이 책이 겨냥한 '바쁜 사람들'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의 처지는 심리적인 강박에 의해 초래된 것일까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일까? 저자는 분명 우리가 마음가짐과 일상의 습관을 바꾼다면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유 있는 삶을 허락해주는 정치경제적 구조가 전제되지 않은 우리사회에서 '여유 없음'을 마음가짐과 생활습관의 문제로 '퉁'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한계를 지닌다. 'OECD 최대 노동 시간' 타이틀은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소비 습관 개선'과 같은 이야기는 하자 없는 소비자에게만 해당되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무조건 처분하라'는 이야기는 생필품도 손에 넣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즉 '라이프스타일 선택권'이 없는 배제된 사람들은 이 책의 '예상 독자'에서도 부재한다.

 

다만 실질적인 삶의 양식의 재배치를 도모하는 저자의 의지는 전적으로 위로와 마음가짐에만 초점을 맞춘 다른 힐링 책과 미세한 변별점을 지닌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방식을 제안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말이다.

 

복잡한 세계에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 홀로 로그아웃하겠다는 것이다. 즉 공동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겠다는 것인데, 나는 아직 이러한 해결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이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힐링의 효능 문제' 따위가 아닌 우리 사회가 공통적으로 떠안고 있는 '숨통'의 문제다.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않는 위로는 공허할 뿐이다. 진정 우리가 깨우쳐야할 지혜는 나 홀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아닌, 우리 모두 바쁘게 살지 않아도 존엄한 삶을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사회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에 담겨있지 않을까? 즉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하자는 것이다. '문화사회'라는 소실된 유토피아, 2012년 7월, 지금은 그것을 호출하기 알맞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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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27법칙 - 삼성을 300배 성장시킨 숨겨진 비밀 코드
김병완 지음 / 미다스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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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27법칙, 김병완, 미다스북스, 335쪽, 15,000원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 일류 기업'?

 

맥시멀리즘(maximallism)이라는 말이 있다. '큰 것이 아름답다'로 대표되는 이 용어는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쓰이는데, '최대주의, 최고주의, 극대주의 등을 뜻한다. 이러한 미학 용어는 '방치된' 한국의 예술 분야보다는 어느 한 기업의 경영원칙을 설명하는데 주효한데, 그 주인공은 세계화 물결에 힘입어 '세계 일류'를 꿈꾸는 삼성이다. 현재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17위, 세계 일류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들은 '브랜드 가치 1위' 애플에 대적하며 쉼 없이 정진한다.

 

한국인들이 세계 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다. 삼성을 '일류'로 생각하는 것과 '일류 기업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동자의 눈물과 희생을 강요했다'는 그것이다. 다만 '기업의 이익=국익=나의 이익'이라는 미신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는 바, 전자의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그룹의 2011년 매출은 255조 원으로 한국 한 해 예산인 325조 원의 75%에 달해, 대중들에게 한국 경제의 핵심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한국이 삼성 공화국이라 불릴까. 325조 원 중 몇%가 삼성의 주머니에서 나온지는 모르겠으나, 삼성은 뛰어난 많은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장래희망이 되었다. 삼성의 미래는 이 수재들에 의하여 창창할 지어다.

 

 

 

광개토대왕=세종대왕=이건희?

 

<이건희 27법칙>이 출간되었다.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연구원을 지냈고,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진리를 발견'했다고 자부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건희의 핵심 경영 법칙을 27가지로 추려 우리에 공유한다(실패를 무릅쓰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 리더에겐 관리가 아닌 창조가 필요하다, 1%가 99%를 먹여 살린다, 혁신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보라 등).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책보다도 더 일목요연하면서도 다각적으로, 무엇보다 정확하게 이건희의 경영법칙을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그를 '위대한 경영자'라고 칭송하길 꺼리지 않는다. 사실상 이건희를 오늘날의 통치계급이자 한국의 지도자로 추켜세우는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조선의 세종대왕에 이건희를 견주는 모습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초점을 맞추는 독자는 이건희와 같은 경영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다. 저자는 1987년에 회장으로 취임하여 삼성을 300배 성장시킨 이건희를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지독히 노력하여' 성공한 세속적 신으로 추대한다. 이건희, 그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미래의 리더를 위한 롤모델인 셈이다. '목숨 걸고 자기계발 하라'는 살벌한 말을 서슴지 않는 저자는 결국 이 책을 통해 이건희처럼 리더가 되는 법을 일러준다. '제왕적 리더십'으로 불리는 그 리더십을.

 

이건희 그늘 아래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로 치장된 삼성은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업의 이익=국익=나의 이익'이라는 공식은 더욱 오류에 가까워지고 있다. 예컨대 자유 시장에 힘입은 삼성이 미국 시장에서 갤럭시S로 남긴 이익으로 한국에 있는 생산 공장을 중국으로 이동시켰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에 사는 나는 실업자나 취업에 실패한 청년 백수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실제로 "2003년 9월에 삼성전자는 중국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10개의 자회사와 26개의 생산 공장을 만들고 총 4망 2000명을 고용해" 전체 PC제조 사업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가정이 사실에 근접하고 있는 현실.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안철수는 언젠가 '삼성 동물원'이란 말을 제시하며 국내의 경제 구조를 비판한 적이 있다. 현재 국내의 경제 구조는 0.1%의 대기업과 나머지 영세한 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익 면에서는 비대칭적이기 짝이 없다. 소기업의 창업, 성장, 발전의 경로는 재벌들에 의해 막힌 상태다. 재벌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납품업체를 쥐어짜고, 벤처기업의 기술 인력을 약탈하며,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기를 즐긴다. 상생과 공생은 허울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역설적으로 젊은 층은 대기업 취직을 열망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지원하는 구직자의 절반 이상은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중소기업에 지원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0.1%의 가능성을 위해서 말이다. <새로운 빈곤>이라는 책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날 기업들은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기업 시대에 진보란 무엇보다도 '인원감축'을 뜻한다."고 말했는데, 성장을 위해 내달릴 것이 분명한 삼성에게도 '인원감축'을 필연일 것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삼성에서 일하거나 일했던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56명이라고 한다. 이는 그들이 도취된 무노조의 신화의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홍세화는 "21세기에도 무노조를 고집하는 삼성 왕국은 19세기적 성채다… 노조 설립을 하지 않아야 처우를 더욱 잘 해준다는 사용자의 말에 현혹되고 있다면 그것은 노예근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삼성 왕국과 우리 안의 노예근성을 이중적으로 꾸짖지만 어찌 우리가 이데올로기 주입에서 면제될 수가 있는 지는 간과한다(당신들의 '참여 정부'를 우석훈이 '삼성 공화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평한 사실을 기억하자). 성장의 이면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삼성, 굳이 그늘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국익'의 이름으로 용인되는 '공룡 재벌 그룹'. 그 와중에 출간된 <이건희 27법칙>이라는 책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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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11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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