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힘 -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꽃피워라
조엘 오스틴 지음, 이은진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행복불가능의 시대

 

1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 알랭 드 보통

 

인용문이 강조하는 것은 '행복을 위해 기대를 줄여라' 따위가 아니다. 그는 분명 '학습'이라는 단어를 끼워넣었다. 즉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이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인 사회화&재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모든 것을 기대해도 좋다는, 꿈을 크게 가지라는, 욕망하라는 '사주'를 받으며 성장하였고, 정말로 모든 것을 욕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욕망은 행복을 요원하게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모처럼 웃었네!'라는 말이 관용구가 되었듯, 우리는 '행복의 미소'는커녕 정말이지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웃음의 부재는 또한 행복의 부재다. 남은 것은 면접 중에나 활용할 학습된 억지 웃음, 즉 텔레마케터와 영업사원 스타일의 인위적인 웃음 뿐이다. 분명 '웃는 얼굴'은 행복의 표식이지만, 억지 미소는 결코 행복의 시간을 반영치 않는다.  

 

진짜 웃음은 일상이 아닌, 드물고 귀한 사건이 되었다. 웃음이 희박한 이 사회에서 '무려' 행복을 꿈꾸는 것은 한낱 사치열병일 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소원'을 물으면, 주저없이 '행복'(통일이 아니라)이라 말한다(그마저도 '우리의 행복'에서, 그 범위가 '나의 행복'으로 줄어들더니, 이제는 '행복보단 안정'으로 꿈의 크기가 쪼그라들었다); 간혹 내 소원은 '돈 많이 버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만, 그들에게 다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에 대해 물으면 '행복하기 위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것은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통계적으로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그 유명한 OECD국가 중 최고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나라 아니던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 동시대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을 탐닉하고, 행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가치의 정점으로서의 행복, 행복하기가 쉬운 것이었다면 그 누구도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2

더군다나 조엘 오스틴의 신간 <행복의 힘>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기에 행복에 관심을 갖는다. 

 

이 책의 지은이는 목사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중 하나란다. 그의 교회의 성도 수만 45,000명,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한 그는 2005년에 출간하여 흥행한 <긍정의 힘>이라는 저서로 이미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다. 

 

<행복의 힘>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것은 '행복'에 대해, 특히나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연관 키워드는 희망, 긍정, 믿음, 치유 등이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오스틴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솔직히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이야기다. 굵고 짧게 말해 '마음 먹기 달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걸 알고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요즘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 '당신이 우울한 이유는 당신의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즉 당신이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우울한 겁니다.' 이러한 클리닉이 이 책의 핵심이다. 무언가 요상할지라도.

 

3

잠시 책의 뒤표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미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이 책을 소유하지 못해 불행한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할 말이다).

 

나는 저 문장과 생각을 달리하는데, 이 책이 나온 이 시대는 행복을 위한 조건이 이미 갖추어졌다기 보기는 힘들다(국부가 개인의 풍족을 반영하진 않는다). 차라리 행복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이전에도 이러한 유형의 책들은 이따금씩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근대적으로 구성된 '개인'이라는 범주에 대해 과대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문장에 나타난 '개인'이라는 주체의 모습을 살펴보자.

 

"지금, 불행하고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두려운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불행, 슬픔, 괴로음, 아픔,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체도 나고, 거기서 벗어나기로 선택하는 사람도 나다."

 

전형적인 '개인의 (극복)의지'에 대한 과대평가다. 이러한 해결방식은 개인이 처한 조건이라는 범주를 누락하는데, 이 방식은 제 아무리 '악조건'일지라도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개인들에게 조건에의 적응을 권유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이 고착될수록 현재의 조건을 변경하는 것, 즉 '정치적인 것'은 망각된다. '긍정적 마인드를 지닌 개인'의 이미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 사회, 그러나 이 긍정의 이산화탄소는 오염된 사회 공기를 은폐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개인들이 처한 환경은 '악조건'인 것일까? 연일 터지는 이슈들을 보고 있으면 현실은 결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왜 우리 사회를 순진하게 긍정할 수 없는지'를 알려주는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개중 대표적인 사례는 일련의 자살 사건이다. 학생과 일반인들은 물론 '부러움을 사는' 연예인마저도 삶을 비관하며 자살한다. 즉 우리 사회는 연예인'도' 자살하는 사회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연예인의 자살'이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조건을 가늠해본다.

 

"연예인이 자살하는 사회, 그것도 약물중독이나 사고사 같은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궁지에 몰려서 목을 매거나 투신하는 방식으로 자살하는 사회를 좋은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연예인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끝없이 자살한다. 어느새 자살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일일이 입단속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거나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이 현실과 자신의 미래가 더 아플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통념과 달리 자살자들은 결코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과대망상에 빠져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으로 계산했을 뿐이다. 어느 것이 더 아픈가를 두고 말이다. 삶보다 죽음이 덜 아플 것이라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허구적인 진술보다는 '아프니까 자살한다'가 더욱 현실적이이지 않은가. 그들은 그저 덜 아프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오스틴의 관점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글쎄. 이처럼 위협적인 세상에서 절망하는 나를 보고 '네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네가 불행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결국엔 네가 참으라는 그 뻔한 반복.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1994년 9월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들의 80%가 '행복은 성적순'이라는데에 동의한 걸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행복은 결국 소수의 승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희가 착각한거라고, 세상에는 다른 행복한 일도 많으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너 마음먹기 달렸다고 말해주면 끝일까? 분명한 것은 이렇게 말하면 꼰대로 오인받기 딱 좋다는 것이다. 또한 효과도 미미하다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렇게 정신조작에 투여한 열정을 '줄세우기'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질문들을 작성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부산물로서의 아픔'에 대한 인지가 너무도 미미하다는 것, 절망이 필요할 때는 절망해야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인 절망 상태를 응시하기는커녕 은폐하기 위해 거짓희망과 상투적인 위안을 유행시켜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에 희망은 없다.

 

그런데 <행복의 힘>은 이미 전세계 1천만 독자들의 책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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