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
일레인 제임스 지음, 김성순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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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라는 징후

 

"현대인들은 종종 비현실적인 목표와 기대치를 설정해놓고는 무리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곤 한다. 모두들 큰 집, 빠른 차, 좋은 직업, 고액의 연봉, 장래가 보장된 미래, 행복한 결혼, 완벽한 가정, 명문대에 다니는 똑똑한 자식들, 최신 패션,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최첨단 장비와 기기를 손에 넣으려면 아등바등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해도 이 모든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기대치를 초과 달성한 사람도 가끔 있긴 하지만, 불행히도 기대치를 충족시켰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p105)

한병철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각자의 소망은 충만하였으나 반복된 좌절로 피로가 누적되어 종전의 생동성은 사라져버렸다. 이에 대한 반작용일까? 대중들은 이제 '자기계발'에 탐닉하기보다는 '힐링'에 주목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표되는 ‘힐링서적’은 물론 이름 자체가 힐링인 TV프로그램 '힐링캠프'도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다. 또한 '청춘콘서트'와 같은 이벤트는 얼어붙은 청춘들의 마음을 녹여주기 충분해 보인다. '힐링'이라는 범주의 탄생과 급부상, '힐링'이라는 징후, 과연 힐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힐링'의 기류는 다층적인 문화적 차원에서 발현되지만 내가 '우선' 주목하고 싶은 기류는 출판 분야에서 감지된다. 힐링 기획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무려 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최근에는 중국 대륙으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이를 필두로 ‘힐링’이 새로운 장르로 굳건히 자리 잡았는데, 이러한 기획은 불경기와 취업난 등 의지할 데 없는 젊은 층의 구매심리를 파고들기 충분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0년 12월 24일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 이후 1년 6개월에 남짓한 기간 동안 수백 권의 힐링서적이 출간된다. 이 분야의 책들은 당당히 '베스트셀러'의 반열의 오르기 시작했고 '위로가 절실했던' 독자들은 열광했다.

 

이러한 인기를 시샘한 것일까? '성공학'과 '자기계발'이 그랬듯 '힐링'에 대한 의심의 시선들도 생겨났다. 힐링 비판자의 요지는 힐링서적이 가뜩이나 궁한 ‘상처 받은 사람들’, ‘가난한 청년’, ‘실패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비한 마케팅이므로, 즉 그들을 (여러 의미로)두 번 죽인다는 것이다. 또한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문제의 원인을 감춘 채, '내일을 더 잘 될 거야!'라는 식으로 독자들을 기만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위안을 주는 '선의의' 책들이 과잉 범주화되어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심들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몇몇 힐링서적은 베스트셀러다(힐링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현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들은 무엇보다 '팔린다'. 이러한 인기에 편승하고 싶은 출판업계는 얼렁뚱땅 유사 힐링책들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다. 그래서 서점에는 수많은 '가짜약'들이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노리고 진열되어 있는 것이다.

 

좋은 힐링 책은 부족하지만 양적으로는 범람하고 있는 현실, 어쨌든 이러한 힐링서적의 인기는 우리 사회에 속한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 

2012년 6월 12일, <아프니까 청춘이다>와는 근 반년의 간격을 두고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류노스케가 집필한 유명 힐링서적인 <생각 버리기 연습>과 같은 출판사 '21세기 북스'에서 출간된 책으로, '힐링'이라는 목적성을 명확히 지니고 미국에서 수입된 책이다.

 

이 책은 피로를 양산하는 이 복잡한 세계에서 단순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논하는데 저자는 "우리가 말하는 삶의 단순화란 삶의 규모를 줄이고, 편안함을 유지하며, 복잡함을 없애고, 여유로움을 갖자는 것이다."라며 이 책의 존재 의의를 규정한다.

 

그가 제시하는 단순한 삶이란 '여유로운 삶'이다. 이를 위한 100가지 실천 방법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심리적인 차원의 치유라기보다는 일상을 간소화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을 제안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우리들의 단순한 삶을 위해 제안하는 것은 무엇일까? 잠시 목차를 살피도록 하자.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은 당장 버려라'(2)

'옷장을 가볍게 하라'(7)

'아스피린만 빼고 모든 약을 버려라'(24)

'지겨운 모임은 나가지 마라'(32)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라'(36)

'신용카드는 한 두개만 남기고 몸땅 잘라라'(65)

 

그가 제시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것이다. 저자는 왜 저러한 일들을 제안하는 것일까? 이러한 단언적인 제목의 100개 챕터에 그 나름의 이유가 적혀 있으니 이것을 확인하는 일은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단 이러한 제목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저자가 지극히 일상적인 차원에서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지침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즉 구체적으로 직장생활, 인간관계, 건강, 재정문제, 여가시간 등을 어떻게 조직해야 '단순한 삶'에 다가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한다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수만 가지의 상품, 수백 개의 TV채널, 지하철에 가득 찬 사람들,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도배된 복잡한 현대 도시는 비움 보다는 채움의 양식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며 각자 나름의 '멀티태스킹 일상'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어쩌면 인식의 과부하는 필연이다. 다시 한 번 비움이 절실한 이 시간에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100가지 방법>이 우리에게 전달됐다. 이 책은 다시금 우리에게 '여유'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그리고 정말로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들을 일러준다. 그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여유 시간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이때 무엇을 해야 하나? 저자는 그 시간에 일기 쓰기, 여행, 산책, 텃밭 가꾸기, 애완동물 기르기 등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묻는데, 각자의 시간은 스스로 기획하는 게 나는 가장 현명할 것이라 생각한다.

 

힐링과 그 대안

사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전부터 꽤나 유명한 책이었다. 출생지인 미국에서는 무려 1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미국 사회도 힐링이 절실하다는 하나의 증거일까? 아무래도 미국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구조가 비슷한 것이 아닌지.

 

그런데 이 책이 겨냥한 '바쁜 사람들'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의 처지는 심리적인 강박에 의해 초래된 것일까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일까? 저자는 분명 우리가 마음가짐과 일상의 습관을 바꾼다면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유 있는 삶을 허락해주는 정치경제적 구조가 전제되지 않은 우리사회에서 '여유 없음'을 마음가짐과 생활습관의 문제로 '퉁'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한계를 지닌다. 'OECD 최대 노동 시간' 타이틀은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소비 습관 개선'과 같은 이야기는 하자 없는 소비자에게만 해당되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무조건 처분하라'는 이야기는 생필품도 손에 넣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즉 '라이프스타일 선택권'이 없는 배제된 사람들은 이 책의 '예상 독자'에서도 부재한다.

 

다만 실질적인 삶의 양식의 재배치를 도모하는 저자의 의지는 전적으로 위로와 마음가짐에만 초점을 맞춘 다른 힐링 책과 미세한 변별점을 지닌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방식을 제안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말이다.

 

복잡한 세계에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 홀로 로그아웃하겠다는 것이다. 즉 공동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겠다는 것인데, 나는 아직 이러한 해결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이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힐링의 효능 문제' 따위가 아닌 우리 사회가 공통적으로 떠안고 있는 '숨통'의 문제다.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않는 위로는 공허할 뿐이다. 진정 우리가 깨우쳐야할 지혜는 나 홀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아닌, 우리 모두 바쁘게 살지 않아도 존엄한 삶을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사회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에 담겨있지 않을까? 즉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하자는 것이다. '문화사회'라는 소실된 유토피아, 2012년 7월, 지금은 그것을 호출하기 알맞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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