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en Lives (Paperback)
Graciliano Ramos / Univ of Texas Pr / 196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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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한갓진 연애사를 쫓다, 레바논, 터키, 이태리 높은 성에 사는 성주님을 알현하였다가 다시 

브라질 중에서 북동부 가장 메마르고, 궁핍한 벽촌, 물가난을 머리에 이고, 벗은 발의 굳은 살이 샌달보다 더 편한 메마른 맨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언어보다 의성어가 더 살가운 깡촌의 무지렁이 가족, 빌린 땅에 소를 치고 살다 가뭄탓에 피한 길에 오르는 모습, 그 여행 끝에 뼈가죽만 남은 이들로 시작을 하는지라, 궁상스러운 삶은 입이 바싹 들어가고, 손바닥이 절로 얼얼한 느낌은 마지막 장까지 가시지 않지요. 그러니까 향토성 짙은 향토문학에 서정성은 탈수기로 탈탈 털어버렸습니다. 

한 여름 불볕 더위에, 앞이마와 등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마른 입으로 혀를 끌끌하고, 부치던 부채로 무릎척척 치고 저런저런 허이고저이고-거리면서 읽기 딱 좋습니다.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롸무스 Graciliano Ramos,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브라질 모더니스트 작가라고 합니다. 

북동부 벽촌에서 상점주인, 시장, 늦깎이 작가로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고, 공산당 활동으로 감옥살이도 하였으니 

작가의 대표작 '메마른 삶들'은 모더니즘보다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입니다. 포크너 상을 받았지만, 비견되는 포크너보다 스타인벡에 가깝지요.

동화도 몇 편 쓴 작가인탓인지, 여기는 글이 쉽고 중간에 삽화까지 곁들여져 있어 브라질에서 중고등학교 필수독서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하는 짐작을 해보았습니다. 제제의 라임나무와 망고거리와 브루클린 사과나무가 낯설지 않게 허허벌판 외로운 대추나무와 이웃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국내번역작이 대학잡지에 실린 게 있어 무단으로 올려봅니다. 이건 좀 모더니즘 냄새가 풀풀 납니다. 


병원의 시계 

(어색한 번역투가 나지만, 일독을 권하며-) 

http://s-space.snu.ac.kr/handle/10371/77313



많지 않은 목록 중에 두번째로 유명한 작품이 '상 베르나르두' 동일 이름의 목장, 어느 궁핍한 산간벽지, 자수성가 걸걸한 입담의 싸나이가 일인칭 시점으로 재치있는 말발로 재미나게 풀어간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건 조만간(백년내로) 국내 번역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유는 딱히 없고, 그냥 그럴 것 같다는 느낌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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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Identity (Paperback)
Maalouf, Amin / Harvill Pr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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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정체는 "les identités meurtrières/Murderous Identities"인데, (영국) 영어 제목이 심했다 싶었는지 

정체성에 관하여라고 순화하였고, 미국판은 아일랜드 감독의 in the name of the father을 은근 따서 in the name of the identity이다. 초지일관 들어가는 그 정체성, 에 관한 에세이임 미리 짐작가능하다. 


Amin Maalouf "지금도 활동중인; 레바논 출신 프랑스 거주, 콩쿠르 상 수상경력 작가의 프랑스어 작품이라, 

민족과 종교, 혹은 국가와 다민족간의 갈등, 특히나 서방세계와의 직접적으로 호불호와 애증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자아와 타자가 아니라 자아가 속한 그룹, 자아의 확장 체계, 그 공통분모에, 정체성을 유합시키는데 중점을 둔 글로 이뤄졌다. 

중간중간 격변하는 시대상에 따라 정체성의 구성비율이 어디에 치중되느냐를 두고 저 멀리 서방, 소아시아, 동유럽의 이야기를 곁들이고 역사를 흩뿌려놓기는 하는데 주로는 레바논 정세와 상황에 대한 성토이자 촉구, 서방세계 특히나 프랑스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 적절히 섞여 있다, 작금의 세계가 가하는 압박 속 다양성에 대해서도 조금 고민을 하는 책이긴 한데-상식선을 넘지 않는 얌전한 문제제기. 더군다나 나로서는 '먼 나라, 먼 종교'들일 수 밖에 없는 글이다. 


문제는 다만, 한참 아민 말루프에 빠진 친척이 여러 권의 책 중에서도 딱!! 이 책을 읽으라 강권한 바,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아니 읽을 수 없어 끝까지 읽었고 읽은 내내 따라다니던, 대체 왜 나에게 이 책을 추천을 한 것일까-하는 

대륙탄도로케트 곡률과 탄약량보다 더 어려운 문제만 이제 남았다. 


국내 제목은 (아무도 읽지 마라고 미리 소금을 뿌리는) 사람 잡는 정체성이다. 

죽여주는 작명 센스, 골 때리는 제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래저래 투덜거리며, 미워도 다시 한권 정신으로 

2십년 전 한꺼번에 봄날 우박처럼 쏟아지다, 여름 장마에 다 휩쓸려 간 아민 말루프 책중에 93년 콩쿠르 수상작 

"Le Rocher De Tanios/  La Roca De Tanois"/ 타니오스의 바위 (영역으로) 읽고 있다. 

               이건 좀 재미난다. / 6800원,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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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같은 M시에 내려 와서도 정작 해변은 멀리 구경만 하고, 차로 옮겨 다니며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지내는데  

점심에 거나하게 조개버터구이와 생선구이에 띤또와 블랑꼬 두 병을 "까면서" 후안 마르세의 별세 소식을 뉴스로 접하다. 

아는 작가냐하면 당연히 금시초문, 사람들이 뭐라뭐라 그리는데,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넘겨짚고 나중에 그럼, 살펴볼까, 

싶은 마음에 한쪽으로 쟁여두자 싶어 제목으로 올린다.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원래는 '징허다 연애 소설," 혹은 "승자에게, 감자를" 둘 중에 뭘로 할까 고민하던 터였다. 

그 대상은 정작 짧은 기록을 남기려는 작가는 1908년 9월 28일 몰한 브라질 작가 

마샤두 제 아시스이다. 된소리성애자 창비에서 나온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의 저자이다. 



(v와 b, f와p는 전혀 구별 못하는 언어권의 나라에서, 정작 이 문제는 싹 무시하고, 본토에서는 거센소리, 된소리에는 막귀라 그닥 구별하지 못하는데 창-출판사, 그 제목이며, 작가명 초지일관 된소리선호를 유지하지만, 또 정작 그 소리 따라하면 되려 왜 그렇게 강하게 말하냐는 핀잔 들으니 원, 


아, 다 모르겠고. 그래서 포르투갈 모음 발음은 무지한 관계로,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부를 예정이니 양해 바랍니다)






작가의 책으로 처음 접한 게 작가의 마지막 작품

사관 아이레스의 연대기/기록, Memorial de Aires 1908) 인데, 사후에 출판되지 않았나 짐작을 해본다. 왜냐면  

이야기가 조금 성기고, 중간에 다른 책에 비해 자유자재로 끼어들던 작가의 사변들은 마치 미완성인듯 짧고, 30년을 유럽에서 외교 업무에 종사하던 참사관의 일상 기록치고는 (의외로) 정치색이 쏙 빠져 있는 데다가, '징헌 연애사를 메인 요리로 "곁들이던" 다른 책과 달리,

 60넘은 전직참사관 외바라기 사랑, 아슬아슬한 젊은 미망인의 경탄은 슬그머니 부성애로 둔갑을 하고, 뒤늦게 등장한 남주인공의 웬지 구린, 호의호식 중심 못 잡고 전전하던 젊은이 알고 봤더니 깊이는 얇아도 뚝심은 좋고 야심도 있는데, 그런 (정치적) 야심 받쳐주는 뒷배도 튼실하다. 자신을 내친 아버지 병수발까지 마다않는, 미모와 절개는 물론이요, 재주란 재주는 다 갖춘 세상 보기 드문 여인은 결국 순정에 굴복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과부생활을 접고, 자수성가한데다 사람 좋기 비길 데 없는 무자식 부부의 총애와 축복 아래 맺어지나니-

외부적으로는 1880년, 남미에서 마지막으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그 농장 노예들에게 공동농장으로 증여까지 한다! 

이마 치는 반전이, 설마하니 비낀 눈초리 의심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아, 오히려 의아한 마음에 당황으로 책을 접어야 하는 착한 소설이다. 



아무려니, 이런 작품으로 이 작가는 '최고봉'이란 찬사를 꿰찬 것이려나, 

그 심심한 진행에 갸우뚱거리다 










한 권만 더 읽어보자 싶어 선택한 것이 '킨카스 보르바/된소리로 "낑까스 보르바" 

브라스 꾸바스에 등장했던 철학자가 애지중지하던 개, 그 개 이름이 낑까스 보르바 이다.  














휴마니타스 정신에 훌딱 빠진, 미치광이 철학자, 결핵으로 몸져 누워 사경과 섬망(치매 아님!)을 헤매며 누웠던 보르바가, 이 일가친척없던 이를 극진히 돌보던 배움짧고 생각 짧은 서생 루비앙에게 전재산을 상속하는 엄청난 일로부터 시작을 한다. 휴마니따스에 따라 같은 이름의 '낑까스 보르바"를 돌보라는 조건으로! 혹시 죽으면 몰수 될까 (변호사가 아니라는 데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라고 (시키는) 루비앙! 

(시골 서생은 은근 속으로 셈을 하며 바라긴 해도 다 상속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렇게 많을 줄도 몰랐다가) 벼락부자에 되어 수도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 살아볼까 대도시로 가고, 그 길에 (현대인이 보기에 얍삽하고 아부 잘하는) 그 시대의 정신에 맞게 예의 깎듯한  젊은 부부, 그 (조신해 "보이는") 아리따운 소피아를 만나는데-사람좋고, 곧은 성정, 남자다운 기개와 야심이라면 찬탄을 마지 않는 시골 전직서생은 이 여인에게 나락같이 외사랑에 빠져들고, 주위에 배고픈 파리떼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얼쑤! 


블랙 코미디, 순 카카오를 그대로 바순 쪼코렛 맛으로 쓰다. 있을 법 하지 않는 인물과 사건들에 사실주의라는 느낌은 없으나 만 해학적인 상황과 그 가소로운 인물들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브라만과 헤겔과 다윈 진화론을 적절히 섞은 개똥철학, 폄하부터 시작하는 첫장에 루비앙에게 한줄 요약 "승자에게, 감자를!"만이 그의 머리에 콕 박힌다. 

-배고픈 두 부족이 싸워 한부족이라도 튼실하게 먹어야 미래로 이어지지 둘다 풀과 벌레로 연명하면 인류는 끝장이다-라는이 내용이 간접적으로 실현이 되고, 작가는 성현과 철학자들의 이름에 기대어 자신의 감상을 전하는 대신에, 그런 먼나라 접장의 잔소리들은 다 접고 '재담'으로 그 중간을 메꾼다. 그런 짜임새와 거리두기가 브라스 꾸바스에서 시대를 넘나들던 남다른 구성이 되려 매끄럽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반전을 스물다섯 번쯤 거치면 그 화려한 막을, 딱 화려할 때 내린다. 

(아차, 이 시대 배경은 미성년 흑인노예는 자유인으로 풀어준다는 법이 통과되어 노예제 폐지의 첫걸음을 떼던 때이다.) 


"사후회고록"Memórias Póstumas de Brás Cubas 1881은 시대를 향해 비아냥과 조롱을 섞긴 해도 한 가운데가 뭉텅이로 주인공의 간통 '애정사'를 닮고 있는 연애소설이다. 알고 봤더니 작가는 다섯 편의 그저그런 연애소설을 내고 평이한 비평과 꽤많은 독자를 끌어들였다가, 사후회고록이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이후 그 이후 다섯 편은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책들을 썼다고 한다. 최고작이 꾸바스(이의제기!)이지만 두권을 꼽으면 이 "승자에게 감자를!" 킹까 보르바이고, 세개를 꼽으면 Dom Casmurro, 네개까지 어찌 끼워넣으면  Esaú e Jacó이 들고 에라, 너도 끼워주마, 저 멀리 곁다리가 "아이레스 참사관의 연대기 혹은 이웃 연애사 관찰기'란다. 


다음 기회에 돔 카스뮤호(오쟁이진 남편 입장에서 본 애정소설)와 에사우우 에 자쿼(야곱과 이삭 쌍동이 사이를 저울질하는 여인의 애정소설)을 "꼭" 읽을 것이다. 단 여름 기나긴 휴가에 바닷바람에 비스듬히 반쯤 눈을 감고 생각은 절반은 비우고, 한손에 차가운 틴토 베라노 우아하게 들고서- 다만 마스크 없이, 사람들 흘깃거리는 시선은 없이! 

살루뜨! "승자에게 또 다른 감자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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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두 지 아시스의 소설 연달아 읽다가 잠깐 브라질에서 건너 안데스에 죽음 사이로 두런거리는 리투마를 띄엄띄엄 읽다가, 녹색장원이 그 녹색장원인 줄 알고 아르헨티나로 건너 팜파스 위 Far away long ago(WH 허드슨) 또 다른 어린시절 자서전적 이야기를 읽어 가다가- 재미 있기는 한데 자서전은 고만 읽자 싶어 건너 브라질로 건너 왔더니 얻어 걸린게 


자저전 소설을 주로 쓰기로 유명한 작가-

Selected Cronicas de [Clarice Lispector, Giovanni Pontiero] 'selected chronicles' CLARICE LISPECTOR 

연대기 선택취합' 말 그대로 자전적 이야기들을 짧게는 세 줄 

길게는 대여섯 장의 에피소드들로 이어지는 어려운 작가의 '어렵지 않은' 책이다. 표지가 예뻐서 이걸로 올려놓아 본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우크라이나 출생 브라질 이민 유태인에다, 그쪽에서 최고 지성들이 다니는 중고등-대학교 그것도 법학대학을 졸업했으며, 포르투갈어권에서는 꽤나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데다 이전에 본 적 없는 글쓰기를 일찌감치 선보였다니 '나탈리 사로트'의 데자부다. 나이 지는 자매쯤으로 여기면 되려나. 

단편작가로 이름이 났지만, 정작 크게 평가를 받는 것은 중-단편들이고 뭐니뭐니 백미는 















(바퀴벌레 보고 놀라 식겁한) G.H에게는 수난이라고 다들 그런다. 그 외 유명한 장편이 대충 아래 두 개 




(보통 읽지 않은 책은 올리지는 않지만 

표지가 예뻐서 올려놓아 본다) 


작가가 무슨 고전영화배우 마냥 아리땁다-










이게 다 자전적인 소설이란다. 


그리고 수난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 "A hora de estrela/스타의 시간'이고 

국내 번역명이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이다. 




이 스타는 저 하늘에서 뭇사람의 운명을 점지해주는 그 별이 아니다. 올려다보지 않고 영화관에서 화보에서 마주보는 그 스타이고, 작중의 인물, 너도 아닌 '그녀' 마카베아, 타이피스트에게 아무 운명도 점지해주지 않는 것처럼 저 하늘의 별만큼이나 아무 연관이 없다.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라는 이런 생경한 작명 센스는 

 

1 자전적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이력을 위해서인지 

2 책에 전면으로 드러나 작중 인물을 '쥐고 흔드는' 또 다른 작중인물 나, 리카르두의 '소설쓰기'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3 작가가 작가의 틀을 벗어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사회 변두리' 자각도 없고 타자의 인식도 없고 굶주림을 간신히 벗어난 상황이라 불행이 행복인지 아닌지 지각이 딱 언저리에 얹혀있는 (정말 이름말고는 없는) 주인공을 존중하겠다는 의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굳이 찾자면 자전적인 요소들이 많지만 분류하자면 자전적 소설이 아니다, 소설 쓰기의 거울상, 그것도 그 공허한 허상을 바라보는 책이다. 이 책은 절판이다. 


중편이라 책은 짧고, 아포리즘, 금언처럼 열어가는 처음은 야트막하게 깔아놓고 때놓친 가을보리 처럼 성겨 "다른 작품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유쾌하지는 않더라도 코믹하다. 





이 비슷하게 멋지구리 여성작가의 옆(으로 누운)모습의 표지는 

좌 "국내판-달걀과 닭'단편"선집'

우 700페이지가 훌쩍 넘은 단편 전집 "complete stories"이다. 

 


표지를 베꼈나 했더니, 포르투갈어, 독일어까지 "전집"이 우와 표지가 동일하다.  

다만 다른 점이 선집이란 건데, (성공하면) 이어서 내겠다는 

출판사의 의도라고 해석하고 싶다. 





왜냐면 동일 출판사에서  출판사마다 중구난방 내용이 줄었다 늘었다 애초부터 불완전한 책,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을 엄청 길게 낸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 페소아를 존경했다고도 하고 페소아와도 조금 비슷하다) 문제는- 


생일에 절판으로 정가의 2배가 넘는 귀한 책과 더불어 70 에우로 아MZ 자유이용권을 (한꺼번에 지르지 말고 아껴아껴 쓰라는 당부와 함께) 받았는데, 저 집이 9에우로 밖에 하지 않는다는 -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제껏 읽은 작품이 보리밥처럼 껄끄럽고, 깍지콩처럼 풋내가 감돌아 다음 책으로 선뜻 어째 나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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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lie Sarraute 어린시절 
















나탈리 사로트, 러시아 출신 프랑스 작가, 1900년대 생, 앞의 두 자전적 소설의 작가보다 두서너 살 많은 누님이다. 

그 두 작가가 중년에 자전적 소설을 내던 1938-9년에 늦깎이 첫 소설 'Tropismes'로 화려하게 데뷔하지만 이후 안티-로망 세대의 대표주자로 선명한 한 획을 긋는다. 

(소르본에서 문학과 법학, 옥스포드에서 역사학, 독일에서 사회학 공부를 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가정도 꾸리고

저들 두 사람에게 전혀 뒤지지 않게 '다른 일'로 바쁜 사람이다) 


이 책 역시, 소설의 표피를 쓴 자서전, 자서전의 외피를 뒤튼 소설이지만 당연히 안티로망의 작가답게 전형적인 자서전도, 소설도 아니라서, 그 경계가 아주 애매하다. 

작가는 이 책을 내기 불과 몇년 전 자신은 자서전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을 하였다가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책을 쓴다. 그래서인지 첫 장면이 '정말 할 것이냐', 쓰지 않겠다던 다짐에 대한 '정말 안 할 것이냐' 스스로의 도전처럼 시작한다. 

가위 들고 (아마 때를 쓰던 아이에게)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어린시절 어머니의 다그침과 얼림질, 으름장에 불끈 솟구치던 반발심처럼, 그때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할 수 있을지 의문처럼, 그때 정말로 했는지 의문처럼 더듬어 나간다. 


내용은 단편/파편적이다. 시간적 흐름을 대충 따라가지만,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다. 구성은 두 명의 '나'가 서로 주거니받거니 선명한 기억들만 고운 체로 거르고 있다. 낡은 사진 한 장 덜컥 나오지만 그 사진이 이어져 이야기가 되는 것은 

순전히 '나'라는 자서전으로 소설이 된 남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다. 책 속에서는 마주 앉은 자신과 서로 보듬고, 다독이고, 세월의 단상들을 되짚으며 질문과 대답, 질책과 의문을 주고 받는다. 


읽어가다 보면 여섯 살 소녀의 시선으로 상류계급 이혼한 두 부부 사이에서 핑퐁처럼 오가는 삶을 '지리멸렬'하게 

되풀이 상세하게 그렸던 헨리 제임스의 'what Maisie knew/메이지가 본 세상'의 기본골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쉽게 쓰여' 가장 접근이 쉬운 작품인 탓도 있겠지만, 

똑부러진 이 어린 소녀의 세상(가정의 담장 안이지만)을 염탐하는 일이 더 와닿는다. 

헨리 제임스와는 달리 작가가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였으니 과거 애증의 갈등에 역지사지, 현실 반추도 들지 않았을까 넘겨짚어 본다.  




계속 소설의 외연을 넓히려는, 벗어나려는 작품들을 읽다 보니 소설이 원래 실수가 아닌 허수의 체계, 픽션이라는 외부를 둘러 nonfiction의 내면을 도리어 정의하는 셈인지라, 안티-로망이라는 말, 누보-로망이라는 말을 보면서, 

저널리즘에 가까운 소설, 사실주의를 표방한 소설이 추상과 인상, 표현, 초현실주의 등 른 문화적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수에서 실수로 돌아오는 셈이니, 가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역행인지라 이게 더 반시대적 조류 같아 보이고, 

안티로망 등등은 마치 외연을 넓히려는 몸부림, 방향을 틀려는 키질인 것만 같다. 

특히 이들 사유적, 고백적인 어조들의 책들, 근자에 읽었던 책들만 한데 묶어 보자면 

이전의 작품들을 반대방향 모색이 아니라 그 자리를 뛰어넘으려고 멀리뛰기를 하다 도움닫기에서 스텝이 꼬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기도 하지만, 그거야 정신 헐거운 내 인상이고, 성큼성큼 내딛고 휘엉청 뛰어오른 모습이 마냥 감탄스럽긴 하다.  


어쨌든 이들 세 작가가 공통적으로 흠모하고, 모범을 삼던 작가가 있었으니, 

그 작가, 홍차에 마들렌을 푹 담가 먹었던 덕분에 '자전적 소설'이 부흥을 맞기는 했지만- 



다만, '어린 시절'에 작가가 흠모하던 작가들의 어투를 흉내내 묘사하는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르네 보일레스브(Boylesve)라는 19세기 작가가 언급이 되어 찾아보니 

브리태니커 왈, 이 작가가 프루스트의 전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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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7-1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망을 안티하다보니, ‘읽는 재미‘라는 요소는 확실하게 증발되더군요.

서산_影 2020-07-11 18:33   좋아요 0 | URL
팔팔 끓인 탕약이라 쓰기도 많이 쓰죠. 그래도 이 책은 (이빠진 호랑이 마냥 힘을 많이 빠져서인지) 나름 재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