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멜랑콜리와 마지막 늑대 작가의 따뜻한 (영역) 최신작입니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금 실망스러웠던 엄청 기나긴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보다는 한층 짧지만 400페이지, 꽤나 긴 조각들이 모인 사방치기 게임입니다.
저항의 멜랑콜리와 마지막 늑대의 작가라고 했던 이유는
늘 그렇듯, 작가의 사람과 공간들이 같은 곳을 맴돌고 늘 형식적인 조화 혹은 기존 형식의 파괴를 일삼지만 또한 자신의 강박같은 줄줄-글쓰기는 못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그렇다고-해야겠지요?
마을 바보인 약자, 혹은 선지자 같은 지식인, 악의 축인 인물, 성마른 인물이 올망졸망한 고만고만한 독일 소읍의 도시에서 벌이는 이야기가 요요처럼 풀었다 늘였다 되돌렸다, 다시 감아 올리며 이어지는데,
이 인물들 바보는 영 순둥이만은 아니고 어리석지만은 않아서 의뭉하게 슬쩍 모른 척 할 줄도 아는 사람이고, 지식인은 깊은 시름보다 여흥의 과학으로 도피하는 인물이며, 애국심 투철한, 양극성 장애, 이 순둥이에게 손찌검해대는 보스라는 인물도 아주 악한만은 아닙니다.
전편에 비하면 정말 소소한 실제적 사건들, 시간 안 맞는 기차, 나치 추종 떨거지들, 불량배들, 그래피티로 건물 훼손,
물질과 반물질, 양자역학을 소개한 물리 교사이자 기상학자의 실종 사건으로 이어지고, 백여 년 전 사라졌던
"늑대가 출몰"하며 두 부부를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지구 어느 언저리에서 시작한 판데믹이 삽시간에 여기서도
소문처럼 퍼지는 사이, 폭발 사건에 급기야 사고사가 이어지고 살인 사건들이 줄을 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궁으로 빠지던 아주 현실적이던 미스테리들은 하나, 하나, 하나 풀리며, 끝을 맺습니다.
늑대 옆에서.
그러니까, 독자 괴롭히던 일을 관두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선보인 작품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참고
헤르슈트, 07769
헤르슈트는 순둥이 반편이 이름이고, 숫자는 우편번호입니다. 메르켈 수상에게 반물질로 파괴될지 모를 세상을 구해주십사 편지 보낼 때 이렇게 쓰면, 누구나 자신이 어디 사는지 아니까 늘 달랑 이것만 써서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