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 있던/없던 자리로 돌아와 새 일을 시작하며 이것저것 읽다 버리기 일쑤인 나날이다.
그 중의 한 작가, 페터 한트케는 아는 것이 없음을 불현듯 깨닫고 작가의 책을 몇 권 깨작거려 보았다.
어쩐지 제목이 내 현재와 맞을까 싶어 읽기 '시작'했던 책이
<느린 귀향>이다.
무지하게 느리게 진행하는 말간 책인데, 한참을 읽어도 이야기가 곁가지에서 본가지로 빠지지를 않는다. 게다가 막 놓았던 일을, 아주 다부지게 해치우겠다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용맹함을 무장하고 헤덤비느라, 지쳐 자빠지는 나날이 거반이라 5분 취침용으로 적절히 활용하고 다음에 만나서 꼭 만나서 밥 한번 먹자는 기분으로 정말 얼마 진도를 빼지 못하고 접었다.
chinese des Schmerzes
<가로 건너>이다.
역시, 가로 건너온 처지에 혹시 작금의 자신을 반영하고 닥쳐올 미래에 일말의 희망의 끈덕지(근거의 찰떡같은 사투리)를 찾을까 하여 열어보았다. 느린 귀향으로 미리 정신적인 각오를 한 덕분인지 책은 제법 진도를 나가, 주인공이 자신의 현실의 턴닝포인트를 어영부영 딱 가로지르는 장면까지 도달하였지만, 녹록치 않은 생활의 무게가 두 눈꺼풀을 잡아채는 통에 결국 7분 수면제의 역할만 하다가 뒷방신세로 쫓겨나, 저 독일어 원제는 무슨 뜻인지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여유롭지 않은 마음과 정신에 과한 스트레스라 단정하고 남들도 다 읽고, 나도 읽어볼까 혹하던 바로 그런 책으로
다시 도전을 해보았다. 이것마저 비오는 장대비 맞으며 개울 건너는 할망 마냥 힘들면, 겸허한 자세로 이 작가분은 눈이 컴컴해져 더 이상 접하지 못할 때까지 접자 싶어 선택한
작심 3권이
페널티킥 앞에 선 골리가 사방으로 시선각의 모든 것들에 휘둘그리듯이, 짧게 아주 짧게 연결점들이 희소한 일들을 휙휙 내던져진 서술들이 "다행히" 쉽게 눈에 다가온다. 물론 이제 일도 조금 익고 마음에 여유도 조금씩 생긴 탓도 있다.
언어의 유희는 즐길 틈은 없는지라 그냥 방수처러 표면 미끄러지는물방울 같이 겉도는 언어들만 머리 속에 슬쩍 담갔다가 빼며 흘러보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눈 번뜩이는 블로흐(전직 골키퍼, 현직 자-타청 무직 범죄자) 정신없는 제삼자 독자의 시선을 얻어 속이 조금 울렁거리긴 했어도 책 한권의 근 넉달 만에 오롯이 끝내었다! 크게 상심할 일만 많은 나날, 맨날 드는 자괴감에 몇 발을 물리보려고 고갯짓을 하는 중이라 끝내었다!라는 짧다막한 느낌표가 그래도 의미가 깊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하는 일도 보면 깊이는 하나도 없이, 이곳 저곳, 여기로 저기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 반대방향으로 가쁘게 돌리는 일이라, 영 남의 불안한 심정만은 아니지 않나 싶어- 저 맞을까 두려운 골대로서 한 마디 남겨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