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halie Sarraute 어린시절 
















나탈리 사로트, 러시아 출신 프랑스 작가, 1900년대 생, 앞의 두 자전적 소설의 작가보다 두서너 살 많은 누님이다. 

그 두 작가가 중년에 자전적 소설을 내던 1938-9년에 늦깎이 첫 소설 'Tropismes'로 화려하게 데뷔하지만 이후 안티-로망 세대의 대표주자로 선명한 한 획을 긋는다. 

(소르본에서 문학과 법학, 옥스포드에서 역사학, 독일에서 사회학 공부를 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가정도 꾸리고

저들 두 사람에게 전혀 뒤지지 않게 '다른 일'로 바쁜 사람이다) 


이 책 역시, 소설의 표피를 쓴 자서전, 자서전의 외피를 뒤튼 소설이지만 당연히 안티로망의 작가답게 전형적인 자서전도, 소설도 아니라서, 그 경계가 아주 애매하다. 

작가는 이 책을 내기 불과 몇년 전 자신은 자서전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을 하였다가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책을 쓴다. 그래서인지 첫 장면이 '정말 할 것이냐', 쓰지 않겠다던 다짐에 대한 '정말 안 할 것이냐' 스스로의 도전처럼 시작한다. 

가위 들고 (아마 때를 쓰던 아이에게)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어린시절 어머니의 다그침과 얼림질, 으름장에 불끈 솟구치던 반발심처럼, 그때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할 수 있을지 의문처럼, 그때 정말로 했는지 의문처럼 더듬어 나간다. 


내용은 단편/파편적이다. 시간적 흐름을 대충 따라가지만,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다. 구성은 두 명의 '나'가 서로 주거니받거니 선명한 기억들만 고운 체로 거르고 있다. 낡은 사진 한 장 덜컥 나오지만 그 사진이 이어져 이야기가 되는 것은 

순전히 '나'라는 자서전으로 소설이 된 남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다. 책 속에서는 마주 앉은 자신과 서로 보듬고, 다독이고, 세월의 단상들을 되짚으며 질문과 대답, 질책과 의문을 주고 받는다. 


읽어가다 보면 여섯 살 소녀의 시선으로 상류계급 이혼한 두 부부 사이에서 핑퐁처럼 오가는 삶을 '지리멸렬'하게 

되풀이 상세하게 그렸던 헨리 제임스의 'what Maisie knew/메이지가 본 세상'의 기본골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쉽게 쓰여' 가장 접근이 쉬운 작품인 탓도 있겠지만, 

똑부러진 이 어린 소녀의 세상(가정의 담장 안이지만)을 염탐하는 일이 더 와닿는다. 

헨리 제임스와는 달리 작가가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였으니 과거 애증의 갈등에 역지사지, 현실 반추도 들지 않았을까 넘겨짚어 본다.  




계속 소설의 외연을 넓히려는, 벗어나려는 작품들을 읽다 보니 소설이 원래 실수가 아닌 허수의 체계, 픽션이라는 외부를 둘러 nonfiction의 내면을 도리어 정의하는 셈인지라, 안티-로망이라는 말, 누보-로망이라는 말을 보면서, 

저널리즘에 가까운 소설, 사실주의를 표방한 소설이 추상과 인상, 표현, 초현실주의 등 른 문화적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수에서 실수로 돌아오는 셈이니, 가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역행인지라 이게 더 반시대적 조류 같아 보이고, 

안티로망 등등은 마치 외연을 넓히려는 몸부림, 방향을 틀려는 키질인 것만 같다. 

특히 이들 사유적, 고백적인 어조들의 책들, 근자에 읽었던 책들만 한데 묶어 보자면 

이전의 작품들을 반대방향 모색이 아니라 그 자리를 뛰어넘으려고 멀리뛰기를 하다 도움닫기에서 스텝이 꼬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기도 하지만, 그거야 정신 헐거운 내 인상이고, 성큼성큼 내딛고 휘엉청 뛰어오른 모습이 마냥 감탄스럽긴 하다.  


어쨌든 이들 세 작가가 공통적으로 흠모하고, 모범을 삼던 작가가 있었으니, 

그 작가, 홍차에 마들렌을 푹 담가 먹었던 덕분에 '자전적 소설'이 부흥을 맞기는 했지만- 



다만, '어린 시절'에 작가가 흠모하던 작가들의 어투를 흉내내 묘사하는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르네 보일레스브(Boylesve)라는 19세기 작가가 언급이 되어 찾아보니 

브리태니커 왈, 이 작가가 프루스트의 전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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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7-1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망을 안티하다보니, ‘읽는 재미‘라는 요소는 확실하게 증발되더군요.

서산_影 2020-07-11 18:33   좋아요 0 | URL
팔팔 끓인 탕약이라 쓰기도 많이 쓰죠. 그래도 이 책은 (이빠진 호랑이 마냥 힘을 많이 빠져서인지) 나름 재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