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론의 방법론으로 광기를 선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새 이브의 수난' 


앤젤러/안젤라 카터의 1977년 작품입니다. 

74년작 호프만 박사의 영묘한 욕망 기계와 더 가깝고, 후기작 '서커스의 밤' '똑부러진 아이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우울합니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우울한 근미래, 뉴욕 아리조나 보지 못한 미국의 그럴듯한 현실, 프로이트, 라캉, 포스트모던 뒤바뀐 외디푸스의 모험, 더불어 페미니즘 조금, 환상 리얼리즘의 욕망 조금, 우울, 우울, 우울입니다. 77년작인데, 75년 끝난 베트남의 그림자는 희미하지만, 서서히 현재 역사를 신화로 적어내려갈 수 밖에 없는, 신화가 신화의 의미가 아닌 미국의 진 자리들이 현실 역사화하여 저절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화자는 젊은 영국인 (남)강사, 뉴욕으로 강사자리를 알아보러 왔다가 면접에서 미역국 먹고, 뉴욕을 배회하다가 

 디스토피아의 근미래 영화들 배경, 매드맥스가 현실이 된 사막을 헤매며,

 꼭 장고한 문화적 배경, 배운 티를 내는 영국 작가의 남부러운 서술에, 건조하지만 시큰둥하게, 간결하지만 비아냥거리며 치고 들어오는 미국식 어투로 '모험/수난'을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보니것이 언급했던 '슬릭' 매거진용 어투를 차용하고 있죠. 


펭귄판 세러/사라 워터스 서문을 보면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닐 조던 감독이 'the company of wolves' 작품을 '피부림 방'을 토대로 만들면서 조금 반짝 인기를 끌고, 

이후로 나온 유쾌 상쾌, 통쾌(하기를 바랐던) 책 '서커스의 밤'이 후광 덕분인지, 아니면 가벼운 체질에 어울려든 덕분인지 인기를 끈 것 같습니다. 














국내 출간작으로 한권 더, 2009년 민음사에서 아마 그런 줄 알고 다시 만들 생각이 없었는지 작가의 이름을 '빌어' 700여쪽의 방대한 전세계 신화 모음집을 간행한 바가 있더군요. 지인 책장에서 그 두껍게 핑크한 색을 접했던 기억이, 참 타겟 한 번 간결지향적이라고 생각한 기억이 났습니다. 책장을 폈던 기억은 나지 않는 걸로 봐서, 인상에 안 남았거나, 진짜로 펼치지 않았거나-- 


마지막 소설 'wise children' (현명한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에서 나온 말) 일흔다섯 은퇴한 보더빌 시대의 마지막 세대였던 어느 할머니의 회고록인데 완전 복잡한 가계도에 '한국'아침 드라마 저리 가라로 뒤얽힌 런던 템즈강 남부, 런던의 뒷동네에서 벌이는 뒤죽박죽 소동의 코미디입니다. 세익스피어 전문 장구한 가문의 이야기가 어떻게 16인치 흑백텔레비젼 드라마가 되는지 보여주죠.

마지막에서 두번째 소설, 19세기 마지막 해, 세 장소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소동입니다. 















처음 런던, 영국 뒷골목 줄신의 어느 곡예/공중부양/날개달린 비너스의 이야기가, 찰스디킨스의 초기작처럼 유쾌한 모험담을 

하룻밤 사이에 두 명의 세레하자드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이고, 두번째 러시아와 (가지도 못하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는 길목, 도스토예프스키의 도시 '생트페쩨르부르그'에서 난장판 서커스 소동이 고골의 이야기처럼 펄쳐지고, 세번째 시베리아, 시간과 역사가 없는 토착민(이누야트족)이 마지막으로 역사로 편입되기 직전, 러시아 민담에서 쫓겨난 농부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맥빠지게, 하지만 마지막에 빙긋웃음을 선사하며 펼쳐집니다. 환상이면 환상이고 리얼리즘이면 리얼리즘이지 그 헷갈리는 정의, 환상 리얼리즘이 이런 거로구나, 여기서 알았습니다. 여기서는 스스로를 매직리얼리즘이라고 칭하지요. 


국내판은 '카터' 작가 식으로 말해 '썩을' 눈이 시베리아 찬바람에 백태 끼었는지, 이 재밌는 책을 어떻게 산 채로 목젖을 따서 솟대에다 꽂아 놓고 까마귀 저승밥으로 만들어 놓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분통이 터집니다. 


카터 작가는 이렇게 후기작 4권을 읽고 느낀 점, 하나. 

작가는 장소가 바뀌면 화자의 어조가 바뀐다는 겁니다. 신화의 장소에서는 신화의 목소리로, 미국에서는 간결하지만 시니컬한 유럽인의 어조로 능수능란하게 바뀌죠. 욕망 기계는 (남미가 배경으로 추정되도록 해놓았으니) 남미 작가들의 유령들이 젊은 인디언의 목소리 속으로 넘나들고, 똑똑한 아이들은 너무 젠체 하는 속물은 싹 벗어버리고 소동 속에 흥겹게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러고도 점층하는 긴장감이란, 환상을 있음직하지 않은 현실로 만드는 재주란 탁월하니, 이야기꾼은 이야기꾼입니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아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죽음에 친구와 부퉁켜 안고 주저앉아 울었다던 사라 워터스나 작가의 사망에 긴 조사를 쓴 마거릿 애트우드보다 솔직히 55배 쯤 대가가 아닐까-하는. 

단편집 신화와 민담은 곁가지, 아이스크림을 담는 콘이었나 봅니다.  장편이 그 알맹이를 오롯이 이루는데, 

제일 좋은 하나만 고르자니, 장편들은 다들 다른 맛과 색채라서 사실 우열은 논하기는 조금 어렵다는 낭패감이 듭니다. 시간을 거슬러 나머지도 천천히 먹어가다 보면, 어디 덜 떨어진 녀석 하나는 만날 수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앤절라 카터 영국작가의 1972년 SF 작품입니다. 작가는 환상문학, 동화와 우화, SF등을 넘나들며 

상당한 아취 있는 글귀들과 필체로, 여성답지 않은 깊은 필력과 철학으로 폭력없는 폭력으로 독자를 뒤흔들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70-80년대 성적 환타지에 상당히 많이 기댄, 주옥같은 아홉권의 장편과 그외 단편집을 내고 

91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작가로서는 꽃다운 나이 향년 51세. 


국내에는 2010년-1년 귀신에 씐 건지, 아니면 페미니스트 동화재해석에 조류에 슬쩍 한발 걸치려던 물결인지 

3권의 책이 앞다투워 나란히 출간이 되었더랬지요. 















카터 작가 접근하기 쉬운 책, 피로 물든 방, bloody chamber가 곡해를 불러오기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동화를 비틀어 뒤틀어 

쥐어 짠 탓에, 심성 약한 독자인 나로서는 떨떠름하게 치미는 신맛에 중간에 고이 접어 넣어두었지요. 

다시는 읽지 않으리-였건만 십년 지나 강산이 변하는 대신 기억이 호프만 박사의 기계 고장으로 남은 몇 가닥 신호로 혼선이 일었는지 그만, (중고 가게 3 파운드에 눈이 멀어가지고서는) 멋도 모르고 읽기 시작하고서야 같은 저자임을 알았습니다. 

장편들이 대체로 주종으로 유명하고, 단편집으로는 '피로 물든 방' 유명합니다만, 치사하게 이것만 내고 쓰윽 내고 

이 출판사는 다른 책들은 나몰라라 약삭빠르게 접습니다. 다른 책들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니까요. 


유명한 장편이 작가의 마지막 두 장편, Night at the Circus, 

그리고 같이 유랑극단과 그리 다르지 않은 무대 인생을 그린 wise children입니다. 
















국내에서 뒤에서 두번째 장편 "써커스의 밤"과 처음에서 두번째 장편 "매직토이숍"이 번역 되었습니다. 

 피비린내방은 제법 지전을 만졌지만 두 편 다 시장에서 아주 조용히 사장된 걸로 추정합니다. 성공했더라면 아마 줄줄이 

번역되어 나왔을 테니까요. 이 헛발질 이후로 뚝. 














왜 그런고 슬며시, "써커스의 밤'을 미리읽기로 보았더니  

많이도 아쉬운, 힘줄이 몹시도 질겅거리는 책입니다.  

앤절라 카터' 식으로 표현을 하면 '찬비가 --- 두 번씩 쑤셔대며 있는 대로 능욕하고

들개들 먹어라 질퍽한 뒷골목에 내다버리고, 오줌까지 찍 갈기고 내뺀 모양 너덜거립니다. 

매직토이숍도 비슷한 욕을 먹고 있는지라 안 봐도 대충-


'호프만 박사의 악마같은 욕망의 기계'는 다른 책에 비하면 이름이 덜 나고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웬걸, 재미있기는 더 재밌습니다. 

물론, 섬뜩한 내용이 아니 든 것은 아니지만, 명동한복판 넝마주이 보기 힘들듯 아주 '간간히''만 맛보여서 

우선 속이 덜 울렁거린 탓도 있고, 피노키오 마냥 운명에 휘말려

대륙과 대양을 시간을 넘나들고, 아프리카와 남미의 전설과 동유럽의 민담과 그리스의 고전을 세익스피어SF와 아우르며

위험에 휩싸이는 관계로 손에 땀을 쥐는 모험담 마냥, 똥줄 타게 하는 면도 없지 않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몇 권 더 읽어볼 작정을 하고 있는데, 어째 선뜻은 또 손길이 뻗히지는 않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2016/2019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신작이다. 이야기는 그러려니, 차르다시처럼 폴짝거리면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고맙게도 중간에 줄도 바뀐다. 마침표가 문단 하나에 하나 밖에 없어도 그냥 두런거리는 말 이리저리 길게 빼는 수준이다. 더군다가, 얄짤없는 피비린내를 가다가다 섞어 긴장의 끈을 단단히 죄기도 하고-


모든 것을 어둠 저편, 공포 아래, 우울증 한꺼품 위, 어두운 11월 비 추적거리는 헝가리 어느 동편 평야지대에서 반복하는 작가답게 다시 찾은 곳이 작가의 "이름없는" 출생지, 쥴라, 저항의 멜랑콜리의 주무대, 그리고 그 오십 년 후를 그렸다.  

















벤크하임 바로 (벤크하임 남작) 대로가 평화 대로로 이름이 바뀌고, 해방군이 점거하던 시청이 도서관이 되고, 

몇 개 자분정이 덮이고, 올마시 궁이 고아원으로 바뀐 거 빼고는 오십 년간에 거의 바뀐 것이 없다.


쾨뢰시 강에 두 다리, 괸되치 공원, 시민 공원, 요커이 거리, 갈수록 시간표를 어기는 기차역, 코믈로 호텔, 

카지노(신사클럽, 예전의 의미와 현재의 일반적 의미로 일부러 혼동을 일으키는 장소), 분유공장, 급수탑이, 대성당이 

루마니아 구역이 공동묘지들이, 손 안 본 중세의 성벽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남은 이 곳, 반세기 지나 시는 넓어지고, 사람들의 손에 아이폰을 들리고, 무릎에 노트북을 얹고 있기는 해도 

거리는 동유럽에서 밀려든 난민들로, 어린 거지들떼로, 50년전 그 유명한 "깔끔한 정원 말끔한 집안"을 모토로, 그에 따른 

질서에 한몫을 여전히 하는 나치추종 폭주족으로 시끄럽긴 해도, 

툭 하면 딸리는 휘발유에, 훔쳐가느라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에, 여전히 세찬 11월 비바람을 맞받으며, 

세상은 그렇게 계속되고,  사람들은 여전히 땅밑의 얇은 얼음판 같은 삶을 발을 짚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 구성은 이번에는 다 카포, 처음으로 되돌아가 갔다가 삼분의 2쯤에서 돌아온 인물이 그 초라한 끝을 맞은 뒤에

완전히 새로운 모티브로 이전의 주제를 반복한다. 

세상에 격리되기를 자처하는 교수(이번에는 '이끼"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이다)가 철학적인 사변을 직접적으로 

뜬구름 잡는 일없이 까놓고 대변하는데, 현실의 공포와 환상의 환희를 맞붙어 놓지만, 이번에 책에는 벌루시커는 없다. 

온통 현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그리고 전쟁과 전쟁, 더불어 마지막 늑대의 인물들이) 

전쟁과 전쟁에서 선보였던 나레이션으로 서로의 생각의 꼬리를 물고 등장을 한다. 

"사탄탱고", 이 소도시에서 가는, 이제는 운행을 중지한 지선에 놓인 집단농장, 다들 어딘가로(아마 여기로) 떠났다가, 

"저항의 멜랑콜리", 벽지에서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이 가장 낮은 자분정 물에 고이듯 모여 들었다가, 

"전쟁과 전쟁", 삶의 낙이라고는 없는 늙은 사서 소도시 도서관을 관두고 암시장에서 전재산을 바꾸고 뉴욕으로 떠났는데, 


서두에 서두를 지난 서두는 물론 누군가의 귀환으로 시작을 한다.

이번에는 마을을 버리고 도망 갔던 사기꾼에, 짭새 앞잡이도 아니요, 

동쪽에서 파괴를 목표로 천천히 기어오는 고래 속 난장이 대공도 아니요, 

대공과는 비교되지 않는 가장 하위 서열의 귀족 남작, 키다리아저씨보다 더 키가 큰

 벤크하임이 영락한 신세가 되어, 무성한 소문의 기차를 타고 떠났던 고향을 향해 

서쪽에서,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온다. 마을은 김칫국부터 먼저 원샷을 하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옛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책이 몹시 길다. 애절하다, 안타깝다, 허망하다, 그리고 "우습다" 

하늘 아래 슬픔과 비애로, 저 아래 서왕모로, 세상은 계속 된다로 세상을 돌던, 자신의 질문에 질문을 던지던 

 작가가 그 초기 발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그 속에 잊혔던 인물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보살핀다. 사탄탱고가 언급되고, 영화에 나온 

음악학교 교장까지 언급이 되지만, '전쟁과 전쟁' 속, 전쟁후 고향을 향해 떠났던 4명의 병사, 

시간과 세계를 헤매던 이 4병사들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그분까지 시간의 정지 속에 등장을 하지만, 

끝끝내 벌루시커는 없다, 

빛이 꺼지고 멈춰선 벌루시커와 "전쟁과 전쟁"의 주인공 카린을 합쳐놓은 인물인 남작, 그리고 넌지시 등장하는 노인네 정도

그러니 얼마나 암울하게 추적거릴 것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손 시린 겨울에 딱 맞는 서늘한 이야기, 하필 그 자리, 그곳에 태어나 달리 어쩔 수 없는 

 다시 찾은 그 암울한 메시아없는 "메시아주의", 천년왕국의 도래다. 디비나 코메디아의 가장 아래로 거꾸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래도 세상은 계속 되냐고?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탱고를 추고 있었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Mr Bridge (Paperback)
Connell, Evan S / Penguin Classics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Evan S. Connell 작가가 1969년 작이며, 

희한하게 1930년대가 배경이다. 내가 읽은 건 아래 표지로 바뀐 새 책, 




사실 표지에서 웃고 있지만, 브리지 씨, 여간해서는 웃지 않고 늘 똑부러지게 

한 소리 늘어놓고, 실없는 웃는 사람에게 가차없는 눈초리를 던지는 "꼰대" 전형이다. 

내용은 길어봤자 세장, 짧으면 반장의 에피소드들로 웃기기도 하고, 생각거리를 주기도 하는 

짧게 치고 들어오는 펀치들이다. 


중산층보다는 상류층에 가까운, 늘 일에 치이고, 돈 걱정에, 가족들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는, 

그렇다고 사사건건 간섭이 아니라, 엄중한 결단이 필요한 경우에만 번복없는 판정을 내리는 

오른쪽으로 홱 돈 정치관도 또렷하고, 인간 관계에 맺고 끊는 일 중요하고, 남에게 해끼치지 않는다는 지론 역시 지당하나, 

그 시대의 (30년대의) 시대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한 "옹고집쟁이" 시민이다. 


글 읽어나가는 일은 무난하다, 재미 있는 일화들이 일화들이라, 책은 쉽게 넘어간다. 

작가가 이 알랑한, 속좁은, 편견을 자랑하는 소시민의 삶에 가타부타 끼어드는 일은 없이, 오로지 브리지 씨의 

   생각만 책은 진행되는데, 

그래도 매번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응어리가 지는,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다. 

자식들은 하나씩 (소소하지 않은 말썽들을 부리며) 떨어져 나가고, 시대는 40년대로 고비로, 하나씩 억눌렀던, 모른 

척 넘겼던 일들이 그렇게 세월의 격랑 속으로 딱 한발자국 앞에서 책은, 멈춘다.

뒤의 해설자 말대로 펜을 놓을 때를 절묘하게 아는 것이다. 


이 책은 Mrs. Bridge 인디아 브리지 여사(1959), 그 10년 후에 나온 후편인 셈인데, 브리지 여사는 

같은 시기를 두고, 뒷전에서 등장하는 일 별로없는 브리지 씨를 두고 아이들 피우는 말썽에 머리는 앓지만  

남에게 폐끼치 않고, 사람 몫하는 아이들 키우는 일에 열심인 아주머니, 

점차 이유없이 우는 일 많아지던 중년의 가정주부 주인공을 중심으로 역시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재미난 에피소드들로 연결이 된다. 사실 브리지 씨 보다 독자층이 10배는 넓고, 이름도 훨씬 많이 났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걸음걸이, 웃기면서도 웃지 못할 상황, 끝이 끝이 아닌 책. 좀 미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