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경성, 1937 

소설가 구보 선생이 천변풍경을 신문에 연재합니다. 

전쟁의 기운 탓인지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소나기 피하는 뒷골목아이들처럼 흐지부지, 우왕좌왕거립니다. 


1 마드리드 1943/44/45 


















La Colmena/벌집 

셀라의 1950년 작, 54년 검열관 작가와 무척 껄끄러웠을 망명작가가 서문을 쓴 영문판으로 읽었습니다. 

죽치고 앉았던 카페에서 굶주려서 실신하고, 밤거리 걷다가 불심에 걸리는 시인을 비롯한 주된 인물 백여 명, 잡다한 

인물 3백 여명이 마드리드 거리(구심)을 오고가는 한호흡 길이, 몰입을 방해하며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짧은 에피소드들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작중인물의 서술, 사변과 대화의 기나긴 나열이 공간과 시간을 축으로 도는 듯도 하지만 

가끔씩 시간을 뒤섞기도 하며 (은근히 내비치는)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반파된 마드리드가, (물론 나오지는 않습니다) 2차대전에 완전 세계와 차단되어 담배 한 개비에도 눈치로 구걸을 하는 쌀쌀한 늦가을 거리, 고단한 삶, 굶주림, 불안, 부도덕, 타락, 욕심, 도둑질, 고난한 질병에 넋두리를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그런 현실을 한 발 크게 물리고,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저미고 연결해 다른 서구에서 이미 낯설어진 '가난이 죄','리얼리즘' 객관적인 카메라의 시선을 유지합니다. 적어도. 일부는- 



2 파리 1954 
















역사-지리학 학교 선생인 나는 우연히 너의 외숙(3촌)인데, 또다른, 내재종숙(오촌)이 라틴-그리스-프랑스어 선생 역시 학급을 가르치게 되어 이런 삼각법에 혹하여 촌수와 파리의 지리적 거리사이의 두고 또 다른 친척 관계의 학생들과 선생들의 우연에 자극을 받아 그들의 촌수 혹은 관계척도에 따라 그 뒤/현재를 '캐기' 시작합니다. 책은 역시나 다층적으로 학습의 내용으로 사이가 뜨고, 인물의 동시적 행동과 촌수로 문장을 연결하며 즉 문장내에서 서사가 바뀌며, 벌집보다 더 자잘하게 부스러지며 진행됩니다. 


(스포일러랄 것 없지만 기본구조가 스포일러-) 

직접 관찰 일기에 조카까지 공범으로 끌어들여도, 수업하랴, 수업준비하랴, 관찰일기 쓰랴, 연애하랴, 동료교사들의 정보 모으러 다니랴, 조카수업내용까지 따라 잡으라 촌수로 얽힌 사회생활하랴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프로젝트는 요원해 갈팡지팡, 결국 학생 일곱 명, 선생 여덟 명과 그에 따르는 스무 명-서른 여명의 이야기만 겨우 꾸리고-

 "확실성 사이 메꿀 수 없는 의심의 요소를 참고 사항을 증폭시켜 자세하게 구체화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명확하게 하느라' 줄창 반복을 하게 되고, 상상의 공간은 커져만 가지만, 둥근 지형을 평면 지도에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도법처럼 어려움은 갈수록 늘고 이야기는 흐지부지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에 정보원이자 관찰대상이 충실히 정보를 공급하던 조카가 전면에 나서서, 치환된 나(조카)와 너(외숙)와 그(내재종숙)이야기를 하고,(실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장입니다) 학년을 넘기고 점점 54년의 나로부터 멀어집니다. 이에 다시 내재종숙이 이제껏 그 많은 에피소드 속에서 정작 배제되었던 너(5촌외조카)와 무촌 관계 지리 선생, (결핵인지, 강박장애의 끝판인지) 그만 나자빠져버려 고대그리스어처럼 유적이 되어버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바톤을 이어받아 두  관찰자를 관조하고 틈새를 메우죠. 


벌집이 처참한 외면 혹은 도외시 했던 '그' 현실의 단면이 가위질한 작품의 마지막의 긴장을 조인다면, 

'촌수'에서는 프로젝트 자체가 현실에 섞여들어 거꾸로 무너뜨리는 절정으로 결말을 맞습니다. 차-안창-지이잉-뚝. 


3. 파편화된 소설 

그렇게 동시에 다층 서술, 다중인물로 파편화된 작품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1600페이지 짜리 '장크리스토프'처럼 한 인물의 생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설도 있지만 대체로 장편이란 게 여러 인물의 서사에 기대기 마련이긴 해도, 이렇게 서사 자체가 찢어진 작품들, '단편화'지향 장편을 찾아보니 꽤나 되네요.


누가 친철하게 '파편화된 소설'이라는 제목하에 역사적 경향과 단계, 그에 따른 대표작과 차이점들을 나열한 에세이를 

발견했습니다. "다성부 음악이라고 해도 불협화음을 지향하는 책, 각자의 가사가 다 다른 방언으로 된 책들" 고맙게도 그 대표작들, 저명한 작가 쉰일곱 편을 추려놓았기에 여기에 한편 나열해봅니다. 

또렷한 파편으로 얼기설기 엮지 않는 작품들, 다중 인물이 의식의 흐름을 통해 그라데이션으로 엮은 30-40년대 획기적 작품들, 여러 인물을 대비적으로 그렸으나 막판에 서로 힘을 합치는 M-코믹스와 그래픽노블, 하이퍼텍스트로 인쇄매체서술적구조를 벗어난 작품들은 여기 없고, 파편화라기보다 분절화, 한 가지 단층으로 뚝 절단해 놓은 작품도 들어있고, 주인공은 일정하나 이야기가 연결점 없이 단편적인 경우도 포함되어 있고 진짜 얍삽하게 단편을 잘라붙어 장편으로 뚝딱 

재구성한 책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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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은 건, 찬찬히 읽어봐야지요. (한국어는 국내 출판 제목)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Sherwood Anderson 

-황금당나귀/변신이야기 아풀레이우스 

-the Atrocity exhibition, J.G Ballard 

-2666, 로베르토 볼라뇨 

-When the killing's done   T.G Boyle 

-화성으로 날아간 작가  레이 브래드베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레이 브래드베리 

-피플 오브 더 북   제럴딘 브룩스 

-Stand on Zanzibar   John Brunner 

-거장과 마르가리타   미하일 불가고프 

-the soft machine 윌리엄 버로우즈 

-소유    A.S 바이어트 

-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  이탈로 칼비노 

-Answered Prayers   트루먼 카포티 

-the house of Mango street Sandra Cisneros 

-Rayuela(Hopscotch)  훌리오 꼬르따르자르 

-House of leaves  Mark Z. Danielewski 

-the fifty year sword  Mark Z. Danielewski 

-only revolution  Mark Z. Danielewski 

-Underworld   돈 드릴로 

-발리스   필립 K. 딕 

-맨해튼 트랜스퍼 존 더스 패서스 

-USA trilogy 존 더스 패서스 

-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빨간 집    마크 해던 

-Demon Box Ken Kesey 

-Gods without Men   하리 쿤즈루 

-The wanderer   프리츠 라이버 Fritz Leiber 

-황금 공책    도리스 레싱 

-Wittgenstein's mistress David Markson 

-속죄    Ian McEwan 

-클라우드 아틀라스   데이비스 미첼 

-창백한 불꽃,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시간여행자의 아내   오드리 니페네커 

-At Swim two-birds   플랜 오브라이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Coming through slaughter 마이클 온다치 

-영국인 환자  마이클 온다치 

-하자르 사전   밀로라드 파비치 

-Life : a user's manual   조르쥬 페렉 

-Exercises in style  레몽 크노 (Raymond Queneau)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프랑스와 라블레 

-불완전한 사람들   톰 래크먼 

-Mumbo Jumbo    Ismael Reed 

-N-W  Zadie Smith 

-Mulligan Stew  Gilbert Sorrentino 

-트리스트럼 샌디 (등등)  로렌스 스턴 

-올리브 키트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the white Hotel  D.M Thomas 

-the Mixed man A.E 밴 보그트 

-the voyage of the space Beagle A.E 밴 보그트 

-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the pale king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트레인스포팅   어빈 웰시 



  (여기서 언급되지 않은 작가들 


로버트 쿠버 Robert Coover, 마르크 사포르타 Marc Saporta, 유명한 보르헤스, 미셀 뷔토르 외 누보로망 작가들, 

컬럼 매캔, 제발트(이민자들), 니콜 크라우스(그레이트 하우스)- 도 살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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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ian Shoes (Paperback)
Mankell, Henning / Vintage Books USA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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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단하다는 말에 끔뻑, 포카치아를 만들다. 

설원 같은 하얀 밀가루에 아린 상처에 끼얹는 소금 한술, 그 반분량 손 시린 물에 밑으로 곰삭이는 효모가 다다. 

마른 로즈메리 조금 얹고, 바질 대신에 마늘편을 얹고, 아주 한쪽으로 김장용 고춧가루를 아시안 별미를 내려고 뿌렸다. 

정말 간단한데, 레시피 거의 그대로 따라했는데, 이탈리아 요리 일가견있는 이웃집에서 해준 그 맛은 안 난다. 

실패한 솜씨 그나마 올리브기름 진한 맛이 얼버무려 주긴 하지만


지상을 외면하고 뻗은 삼림과 눈을 감고 얼어붙은 해빙과 설원으로 먼저 2점 먹고 들어가는 스웨덴 소설, 

이탈리아 구두가 모진 스웨덴 날씨를 견딜 수 있을까? 

사연을 안고 일찍 퇴직한 의사, 칩거해 사는 외딴 돌섬에, 40년전 유령같은 애인이 보행기를 밀고 눈밭에 등장을 하고-

소설은 스케줄을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 궤도를 따라가고 

겨울 외딴 국도가 휴게소 아니나 다를까, 다시 데운 시큼털털, 묵은 담뱃진 퀴퀴한 커피 맛을 내는데- 


(얼마 읽지 않긴 했지만) 현대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소설들은 다들 거기서 저기까지, 찍어낸 와플 같은 맛을 내나 모르겠다. 

전문가의 솜씨라서 그런가? 

기대에 맞는 책을 고른 탓인지, 고른 책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인지, 그렇게 부응하는 책만 바다 '위'로 부빙처럼 떠도는 것인지


원제는 Italienska Skor다. 스벤스카아-

책표지가 열일 다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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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인상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레몽 루셀 지음, 송진석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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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Africa 


너무 기억이 까마득해서 앙드레 지드를 새로 찾아 읽었다. 세권 합본 늘 세번째 자리 쯤 진이 빠질 때 끼여있던 배덕자L'immoraliste  우선 골랐다. 안 읽은 책인지, 까맣게 잊은 건지 본 기억이 없다. 

내용은 아버지를 따라 영특한 머리로 문헌학, 역사학의 길을 걷는 20대 중반의 미셀, 죽어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염이라 생각하고 애정없는 결혼을 하고 아프리카, 튀니지로 신혼여행을 간다. 역사학자답게 튀니지 내 로마 유적들만 실망스레 둘러보고, 시름시름 앓다가 각혈을 하고 결핵은 진단 받고 열에 들떠 정신없는 가운데 몸보전을 위해 식민지 알제리 비스크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요양으로 회복을 하고 야만의 건강이, '어린' 소년들의 활기가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이후 활력을 차려 이탈리아를 거쳐 파리, 어머니 장원 노르망디에서 휴식하며 학자로서 첫걸음 떼는데 화려하게 꽃 피운 문명이 맥없이 시들듯 시들고, 옆에서 성심으로 돌보던 아내 시름시름 앓고, 말라리아 진단을 받고 과용량 퀴니네를 울며 겨자먹기로 먹은 9개월 임부 그만 유산을 하고 만다. 이후 각종 산후 합병증에 정맥염에 색전증 게다가 심부전까지 죽을 고비에 말없이 시달리는 동안, 지중해 핏줄, 스페인 모친을 둔 어느 막장 집안의 어린 아들들에게 묘한 호기심에 동해 접근을 시도하며 그 다리로 숲에서 덫으로 밀렵하는 못되어 먹은 아이들과 어울려다니며 순경과 도둑 노릇 동시에 하며 아이들을 망가뜨려 놓는 재미로 지낸다. 그러다 민낯을 들켜 체면을 잃고만다, 

학계, 인척들에게 염증을 느끼는 이 젊은 학자, 좋아지던 아내 결국 결핵 진단을 받고-아마 처음부터 결핵이었을 것 같다-그 아내 핑계로 한겨울에! 스위스 요양을 간다. 결국 남쪽 이탈리아로, 그전에 올라왔던 길을 마치 쫓기듯이 되짚어 내려가 물좋다는 팔레르모(레몽 루셀이 삶을 뜬 곳이다)를 거치며, 희망의 불씨를 보지만 이도 잠시 결국 알제리로 간다.아내를 사랑하노라, 극진히 간병하노라, 이 버거운 여행길에 있는 돈을 다 써더라도 치료하리라 다짐은 헛나발, 그 옛날, 그 회복의 기억에 의존해 돌아가지만 기실, 그 아내로부터 '휴식'이 가장 큰 행복인 비활기성 상태로부터 도망가는 길이다. 촌철살인 날카롭게 마음을 집어내는 아내가 버거운지, 뼈만 남은 아내가 그 몸을 내보이며 암묵적으로 호소를 해도 묵살, 벗어나려던 몸부림이 성공하듯, 모랫바람에 스물둘도 안 된 아내, 젊은 남편을 두고 대량각혈로 절명하고 만다. 

책 중간에 (일지 못할) 스캔들로 세상의 지탄을 받지만,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기는 학자/정치가 메날끄,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겠다며 부평초처럼 세계각지를 떠돌지만, 어느 누구보다 호사스럽게 호위호식 살아가고 묵고 있는 호텔방(들)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네팔을 비롯, '원시적'인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자신이 받는 질책과 자신을 가를 생각이 없으며, 도덕의 정의 거짓으로 매달린 사람들을 질책하고 현재를 미래를 담보 삼아, 과거를 교사 삼아 희생할 생각이 없다 은근히 부추긴다. 이미 비스크라에서 그런 삶의 단면에 이끌렸던 미셀, 아내의 사후에 떠날 생각이 없는 건지, 떠날 힘이 없는 건지 알제리 사하라를 앞에 두고 살아간다. pedorasty로 로 

이런 메날끄 저리 가라로 부유한 삶을 사는 게 아프리카 없는 "아프리카 인상"의 작가 레이몽 루셀이다. 



Out of mind 


이 책의 아프리카는 오페라와 고전비극 속 일차원적 대립관계와 일직선적인 해결, 불규칙한 계단식 진행과 뜬금없는 전환이 통하고, 다다이즘 전시공간 간접체험 아프리카처럼, 원시성과 야만성으로 넘겨짚는 곳, 쥘 베른의 마법적, 상상적 과학이 통하는 곳이라면 극동이든, 남극이든 어디든 해당하는 곳이다.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선보이기 위해 지역적인 특색, 여행기 수준 지식은 철저히 지양하기' 때문이다. 쥘 베른를 사모하고 빅토르 위고를 존경했던 작가, '남들이 자신이 무얼 읽는지 훔쳐보지 못하도록' 장정본 책 껍데기를 다 뜯어낸 뒤 들고 다녔는데, 그 반대로 자신의 작품보다, 적어도 그 작품만큼이나 그의 껍데기와 그 뒷장의 수식어가 더 화려하고, 그 기행으로, 그 정신병력(정동성 장애는 다른 작가들이나 앓으라지, 이 작가 분열성장애 갖고 있다.)으로, 소수적인 성적취향으로 유명하다. 


작가만큼 화려하고 기이했던 어머니, 땅짚고헤엄치는 곳이면 못 가는 데 없을 정도로 부자이니, 열한 살 루셀 식민지 남아프리카 여행까지 한다, 아들 사랑이 유달랐는지, 피아노 영재 아들과 여장과 인형놀이를 즐겼으며, 또래 아이들에게 가장무도회를 열어주고, 어느 누구보다 잘 차려 입은 그 아들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며 우레 같은 찬사를 맛본다. 콘세르바토르에서 피아노 (아마도 여섯 명 쯤 준?) 이등상까지 받았으니, 기고만장한 젊은이, 열아홉에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이 찬란한 빛이, 저 중국까지 뻗어나가 떨치는 환상에 도취되고, 출판과 동시에 세계적인 문호의 대열로 들어서 각광을 받으리라는 오진 망상에 식음 전폐하며, 왜냐 '음식은 자신의 명정함을 해치므로' 두문불출 시를 쓰고 자비출판했는데, 아무도 길거리에서 아는 체는 커녕 돌아보지도 않아 찬물이 싸악. 

아마 그 시대 접근이 쉬웠던 아편, 등장과 함께 중독자부터 생긴 몰핀, 바비츄레이트도 일조하지 않았을까만 중독적인 성향의 이 작가, 이런 것쯤 쉽게 극복할 막대한 유산이 있겠다, 매주 2번씩 정신치료를 받으며 쉽게 치료되지 않는(아마 전혀 치료될 기미가 없는) 작가욕심은 떨치지 못한다. 

18세기 말 마장마술에 막간 공연을 끼우다가 온갖 진기명기 볼거리, 구경거리로 늘어나던 서커스가 20세기 들어 레일과 기계장치와 자동인형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전성기를 맞고, 어느 술집 한켠에서 발전한 뮤직홀이 삿된 영혼들을 망치고, 벨에포크 시대 이후 카페-카바레가 온갖 버라이어티극장으로 흥행을 하고, 오페라와 발레가 자리를 잡고, 정통고전극 뒤편으로 저급코미디극장들이 취객의 웃음보를 이끌던 이 시대, 온갖 발명의 환등기들이 미혹을 하고, 연쇄사진들들이, 그림자공연이 영화로 발전해가던 때, 이 모든 유흥거리들을 아낌없이 구경시켜주시는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 자란 덕에 이 모든 곳들과 공연과 장면들을 야심차게 글로 써내려간다. 

들뢰즈에 따르면 분열형망상 과정에 문학적인 과정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그 유사성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이런 파라프레닉스키조 작가는 이를 유지하고 원래 명제와 전향의 의미 차이에 메울 수 없는 균열이 가해지지만(볼프슨의 말), 루셀은 그렇더라도 상징적인 의미는 견지한다고 한다.  


Out of Text 


그렇게 만들어낸 기상천외/진기명기 쇼단의 갈라  전반부 '지문설명' 후반부 마라톤 공연 '줄거리 요약'과 '제작과정 설명문'이다. 앞에 수수께끼를 내고 뒤에 상상력내기 정답풀이 과정이다. 수학풀이집처럼 무미건조-복잡하다. 


사후에 푸코를 비롯해 초현실주의(정작 루셀 초현실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조금 모호/이해불가라고 말을 흐린다),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고무적인 각광을 받았다가 그것도 60년전, 지금은 다시 원래자리 가까이 돌아가, 두물은 가버렸다, 작가 동시대에서 쇤베르크 등 현대음악은 그와 비슷하게 토마토 세례와 야유를 받고 표현주의 그림들과 그 작품들이 좁은 입지를 다져 나가고 있었다, 사실 서술적 이미지로 전달하는 책 내의 오감, 표현하는 악기는 상궤를 벗어난다고 해도 고전적인 음악이론, 특히나 바로크의 음색을 유지하고, 앙드레 지드의 상징주의와 더불어 피어나던, 감정의 표출과 자아를 전면에 참신하고 대단한 방식으로 내세우는 표현주의와 달리 고전 명작의 아방가르드적인 잔인한 변형에 숨은 쾌락을 찾을까 표면적인 묘사 외 주관적 개입은 없다. (즉물시?) 아마 화려한 색감을 즐길 뿐 그 도료를 빚는 일은 관심 밖이었나 보다. 

아니면 경멸했든가, 두려워했든가 남의 속 모를 일이 모르겠고,

남들 다하는 일 관심 없다, 유다른 강박들을 특권처럼 휘둘러대어도 

'남들이 뒤에서 욕할까 모임에 나올 화제들을 철저하게 사전 연습하며' 가면 속에 철저히 몸을 숨긴 이 인물. 

'배덕자' 딸쌍둥이, '좁은문'의 조숙한 두사촌 에피소드 주인공이자, 그 당시 인기많았던 최면치료의 대상자이자, 숨은 나래이더 에피소드의 온갖 굳은 일은 도맡아 '작품개요서 초벌'을 이어붙이는 Seil-Kor, 모든 공연의 대상 관객이자 모든 것을 관장하는 주관자, 모든 것에 능통한 참여자 드랙-킹 속에 본심을 슬금 숨겨 놓고 실패한 예술가는 작은 구경거리로 내몬다. 

그랬거나말거나 당시에 '경천동지'하리라, 기대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다른 부르주아가 누리고 자랑하는 특혜가 가장 못마땅한 부르주아' 야심차게 두벌 작업한 작품을 무대로 작품을 올려 쓰레기 우레를 벌어들이고, 게다가 시로 개작까지 해서 출판을 한다. 비슷하지만 다르리라 짐작하는 다른 작품도 실패와 실패와 실패 사이의 삽질에, 오기좋게 희망의 묵직한 닻돌을 놓지 않고, "자비" 출판 전시와 공연의 악순환 자선을 계속 베푸는데--

이 사라방드와 푸가와 지그와 파반이 엇모리 장단으로 "여기"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선명한 (발생기) 초현실주의의 심상들이 

빠지고, 변경되고, 치환되고, 착각과 오해까지 따라 붙으니  어떤 때는 안경벗은 제임스처럼 흐릿하고, 어떤 때 양눈에 안대를 다 한 조이스처럼 까막눈이 된다.  

작가는 다중적 의미의 언어로 언어적 유희를 꾀하자고 했지 의미의 전복을 의도하지 않았을 터인데 장날 야바위판에 받은 롯데 이브껌과 해태 아카시아 껌을 단물을 빠질 때까지 먹고 갈기갈기 찢어진 껍데기에와 뭉치고 섞어 내다버린 것처럼 

문장이 풍덩풍덩 자리를 바꿔 의미가 실성을 해버린다. 

책의 전반에 리듬은 애초에 없긴 해도, 단문은 고전적 장단을 답습하려 애썼는데, 그만 여기서는 그 문장의 가락은 휘모리로 쉼표없이 어지럽게, 도통 종잡을 수 없는 12음계 막다른 골목이 턱-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텍스트 밖, 조금 괴롭히려면 미주로 학자연하게, 많이 괴롭히려면 각주로 달아주는 주석이 이 책은 세로로 누워있는데, 

이 공간은 독자의 공간이다. 덧붙여 해석하거나 인상을 남기거나 감탄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넣거나 저녁약속 시간을 적더라도 독자에게 암묵적으로 배분하던 공간이건만 고약한 선례가 될까 심히 저어된다. 


그러니, 이런 정신머리 상그러운 글은 저짝으로- 던져두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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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뉴욕으로 가는 데 대충 일곱 시간 못 되게 걸린다. 화려한 크루즈 여행은 좀 더 걸리겠지만, 

책은 대충 1, 2 부와 여담의 3부로 되어 있고, 비행기 좌석에 앉기 전 대기시간까지 줄창 읽어대면, 쉬엄쉬엄 "뚝딱" 

다 읽어내릴 분량이다. 내용은 1차대전 후 최초로 대서양을 무착륙 횡단한 참전 파일럿, 미국내전 전, 노예해방론자 프레드릭 더글라스 아일랜드 여행 (감자 기근이 기승을 부리던 때), 두 대륙을 오가며 북아일랜드 테러 근절 평화 협상을 거든 미국 정치인의 단상이, 

이들과 인연이 스치는 어느 아일랜드 이민-귀국인 모계 혈통의 영고성쇠로 풀어내고, 

블랙베리처럼 망해버린 노인네의 현재로 얼추 마무리를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이 뉴욕을 잇는 지하 터널의 이야기로 어두컴컴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면 


이 책이나, 날아다니나 의심스럽게 긴 체공시간을 자랑하는 전문댄서의 비상을 그린, "댄서"



















그리고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는 건설현장의 쌍동이 빌딩 꼭대기를 가로지르는 줄광대 이야기를 필두로 

저 아래 발발, 왈왈거리고 사는 뉴욕 사람들 이야기. 















작가가 어지간히도 눈부신 '창공'을 동경하지 않나 의심이 된다. 

장편이라 그렇겠지만 다들 한 가지 연결점을 통해 스치는 인연을 통해 구슬 서말을  꿰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목소리로 풀어낸다. 단 연결점은 그 배경이 될 뿐 여차저차 구구한 사연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공통된다. 

화자의 발현에 따라 이야기의 구조도 다양하게 넘나들어, 마치 단편집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드는데, 


'대서양을 건너'는 그런 복잡한 서술 구조가 없이, 남다르지 않는 사연, 억지가 지나치다 싶은 역사적 접점들이, 너무 앞으로 나와 어쩌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고 그 뒤의 인물들 부분 역시 무미건조하고 평이한 서체로 갈무리를 한다. 그냥 한자리 앉아 하릴없이 뒤적거리며 생각 없이 읽어내릴 수 있는 무난한 책이긴 하나, 왜 이렇게 멀찍이 서서,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는지. 좋은 작가의 평작은 졸작도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하긴, 비행기에서는 동요를 막으려고 차창을 내리고 술을 먹여서라도 재우려고 용을 쓰고 

불을 켜면 옆자리 사람에게 민폐라 어지간한 용기가 없이는 읽고 앉았을 수도 없으니, 


굳이 이런 책은 끝까지 성심을 다해 읽지 않고 "대충" 읽고 접어도, 읽다가가 내쳐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추천서를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두 가지, 

-나머지 책들은 나름 다들, 훌륭한 "콜라보레이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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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1995년 아시아 제바르, So Vast the Prison, Vast est la prison 


아시아 제바르가 영미 문학에서 재발견되고 한참 번역이 되던 80-90년대, 알제리 내전이라는

또 다른 드라마틱한 역사의 장을 쓰고 있던 당시, 죽은 자들의 묘비 위에 곡성 대신 적은 글이다. 

작가의 전작들처럼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자서전의 변주를 먼저 애절하게 풀고, 

튀니지 두가 (Dougga)에 있는 왕묘 위, 카르타고-리비아 판석에 관한 서양 학술차원의 재발견 과정, 학문적인 역사를 

소설화하여 중간에 두고, 다시 처음과 연결하여 고향 마을에서 "Arable Woman(농사꾼 여인)"을 찍으며 느끼는 단상과 모계 혈통의 이야기들을 섞고, 이후 입양한 딸, 그리고 알제리로 돌아와 불안정한 정세 속에 처참한 죽음 당하는 그 여자친구의 이야기로 20세기 묘비명을 적는 걸로 끝난다. 타작에 비하면 긴편인데 후주처럼 조금 늘어난 부분은 개인적 분노에 첨가하지 

않았나 의심도 간다. 


4 개의 장은 뻣뻣한 울에 덧붙인 얇은 명주 베일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재료를 섞어 절묘하게 붙였다. 
















처음 예전에 읽은 책이 "판타지아, 알제리 기병무예" 역시

사랑이라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역사의 탐구하고 

프랑스 식민지화되는 과정을 역사서에 버금가는 탁월한 식견과 이해를 대치, 대조하여 엇갈려 엮어 발전한다. 

  역사를 역사로 두고 차용하여 소설의 이미지 생성에 이바지하는 현대 소설의 한 주류로 예제를 멋드러지게 선보였고,    

"드넓은 감옥"은 현재 진행형 역사에, 비틀거리는 현실에 이전 작품에서 한번 더 나가 변주한 셈이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초기작, "새 세상의 어린이들, 1962"














"재발견"한 작가의 이전 작품, 90년대 들어 30 년도 더 된 작가의 초기작이 뒤늦게 영역되어 나온 책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잠시 작가 생활을 뒤로하던 시절 이전, 26살의 젊은 나이에 격동의 알제리 전쟁 중심 속에 선 

딱 자기 또래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 시점으로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는 역자의 말을 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작품의 요건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시간, 하나의 장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어쩐지 맞지 않은 두 질료를 수려하게 깔끔하게 접합 시킨 후기작에 비하면, 성기게 엮은 천조각처럼 색깔들이 조금 튀는 편이다. 급하게 지은 '가시 가운'처럼 조금 껄끄럽긴 해도, 범작은 내지 못하는 떡잎부터 남다른 천재, 자신의 후기작에 대조되어 그렇지 어지간한 여타 작품 어디에도 모양 빠지지 않는다. 

작품이 "댈러웨이 부인"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장과 상관 없이 불쑥 바뀌고 서로 장소로 엮고 섞이고, 시간을 중심으로 회전을 한다. 단, 알제리 전쟁이 끝나가던 1961년, 50년대 중반 격변의 회오리가 드세지기 전, 

주인공들이 파릇한 스물 중반에 이미 늙었다고 자조를 하던 시대(하도 많이 죽어 인구의 절반이 이십 세 이하라고 하는 말이 

중간에 나온다)와 맞물려 돌아가고, 여자의 관조적 분석적 세계, 남자의 서술적 해설적 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또 그 사이를 두 (부류로 대치되는 사회적, 정치적) 계급의 인물들이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아니 목숨을 걸고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도 처음과 끝을 열고 맺는 인물 역시, 소설 속에 들어간 작가 자신이 나온다.   

타인의 시선을 빌어 자기중심적인, 앵도라진 부잣집 철부지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이후에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어조의 작품에 대해 미리 자조적인 반성/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대표작 사랑 판타지아와 4부작의 1부를 이루는 "세헤라자데의 자매"(내용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는 구할 재간이 없어 읽지를 못했고 

90년대를 지나 작가의 인기가 시들해졌는지 











아예 영역본이 없다. 




국내에서는 다시 20년전 뒤늦게 작가가 재인식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후기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다. 

그렇게, 변주된 자서전을 또 읽을 날이----오려나, 마려나.



  이것은 이동제한 자가 격리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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