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
1995년 아시아 제바르, So Vast the Prison, Vast est la prison
아시아 제바르가 영미 문학에서 재발견되고 한참 번역이 되던 80-90년대, 알제리 내전이라는
또 다른 드라마틱한 역사의 장을 쓰고 있던 당시, 죽은 자들의 묘비 위에 곡성 대신 적은 글이다.
작가의 전작들처럼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자서전의 변주를 먼저 애절하게 풀고,
튀니지 두가 (Dougga)에 있는 왕묘 위, 카르타고-리비아 판석에 관한 서양 학술차원의 재발견 과정, 학문적인 역사를
소설화하여 중간에 두고, 다시 처음과 연결하여 고향 마을에서 "Arable Woman(농사꾼 여인)"을 찍으며 느끼는 단상과 모계 혈통의 이야기들을 섞고, 이후 입양한 딸, 그리고 알제리로 돌아와 불안정한 정세 속에 처참한 죽음 당하는 그 여자친구의 이야기로 20세기 묘비명을 적는 걸로 끝난다. 타작에 비하면 긴편인데 후주처럼 조금 늘어난 부분은 개인적 분노에 첨가하지
않았나 의심도 간다.
4 개의 장은 뻣뻣한 울에 덧붙인 얇은 명주 베일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재료를 섞어 절묘하게 붙였다.
처음 예전에 읽은 책이 "판타지아, 알제리 기병무예" 역시
사랑이라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역사의 탐구하고
프랑스 식민지화되는 과정을 역사서에 버금가는 탁월한 식견과 이해를 대치, 대조하여 엇갈려 엮어 발전한다.
역사를 역사로 두고 차용하여 소설의 이미지 생성에 이바지하는 현대 소설의 한 주류로 예제를 멋드러지게 선보였고,
"드넓은 감옥"은 현재 진행형 역사에, 비틀거리는 현실에 이전 작품에서 한번 더 나가 변주한 셈이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초기작, "새 세상의 어린이들, 1962"
"재발견"한 작가의 이전 작품, 90년대 들어 30 년도 더 된 작가의 초기작이 뒤늦게 영역되어 나온 책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잠시 작가 생활을 뒤로하던 시절 이전, 26살의 젊은 나이에 격동의 알제리 전쟁 중심 속에 선
딱 자기 또래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 시점으로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는 역자의 말을 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작품의 요건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시간, 하나의 장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어쩐지 맞지 않은 두 질료를 수려하게 깔끔하게 접합 시킨 후기작에 비하면, 성기게 엮은 천조각처럼 색깔들이 조금 튀는 편이다. 급하게 지은 '가시 가운'처럼 조금 껄끄럽긴 해도, 범작은 내지 못하는 떡잎부터 남다른 천재, 자신의 후기작에 대조되어 그렇지 어지간한 여타 작품 어디에도 모양 빠지지 않는다.
작품이 "댈러웨이 부인"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장과 상관 없이 불쑥 바뀌고 서로 장소로 엮고 섞이고, 시간을 중심으로 회전을 한다. 단, 알제리 전쟁이 끝나가던 1961년, 50년대 중반 격변의 회오리가 드세지기 전,
주인공들이 파릇한 스물 중반에 이미 늙었다고 자조를 하던 시대(하도 많이 죽어 인구의 절반이 이십 세 이하라고 하는 말이
중간에 나온다)와 맞물려 돌아가고, 여자의 관조적 분석적 세계, 남자의 서술적 해설적 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또 그 사이를 두 (부류로 대치되는 사회적, 정치적) 계급의 인물들이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아니 목숨을 걸고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도 처음과 끝을 열고 맺는 인물 역시, 소설 속에 들어간 작가 자신이 나온다.
타인의 시선을 빌어 자기중심적인, 앵도라진 부잣집 철부지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이후에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어조의 작품에 대해 미리 자조적인 반성/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대표작 사랑 판타지아와 4부작의 1부를 이루는 "세헤라자데의 자매"(내용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는 구할 재간이 없어 읽지를 못했고
90년대를 지나 작가의 인기가 시들해졌는지
아예 영역본이 없다.
국내에서는 다시 20년전 뒤늦게 작가가 재인식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후기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다.
그렇게, 변주된 자서전을 또 읽을 날이----오려나, 마려나.

이것은 이동제한 자가 격리 책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