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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현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마치 신화 같다 싶더니 원제대로 풀면 운명의 세 여신과 분노의 세 여신을 의미하는 것이란다. 대괄호로 끼어드는 전지적시점이 부추킨 것이기도 하고 , 노골적으로 끼어드는 섹스에 관한 묘사가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이나 회화를 보는듯한 분위기를 불러내는 것도 그렇다.
운명의 여신의 사랑을 받은 자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한단다. 오호 위험하나 구비구비 짜릿하다는 의미? 그 사랑이 커서 최하점에서의 반등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빛이 나고, 사람이 주위에 몰려들고, 그들을 보이는 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스스로는 모르면서 버려놓은 궂은 일을 수습은 다른 이의 몫이다. 그럼 인정하자, 운명의 여신의 사랑을 받았음을. 그는 성공의 꼭지점에서 요절하기까지 한다. 전설이 되어라.
분노의 세 여신은 더 초라하고 괴팍한 모습으로 정의와 분노를 담당한다는데 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힘을 빌어 살아내는 삶도 있다. 그 존재가 신이어서 인지 그들이 부여한 이 삶도 나쁘지 않으니 인생답다.
묻지 않았으니 답을 안 한 것을 굳이 거짓이라고야 못 하겠지만, 스스로는 숨겨진 기막힌 삶에서 벗어나려 제 힘껏 살아낸 삶이었다. 남편이 급사하고 그 허전함을 견디지 못 해 못남자들과의 섹스를 찾아다닌 여자의 갈망이 오히려 그녀의 사랑같았다. 표현하지 못 하고 쥐어지지 않는 실체를 잡아보려는 안간 힘 같은. 애도에 빠져 있다 서서히 빠져 나올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도 부러운 일이다.
삶은 어느 신이 부여했든 열심히 살아낼 것인 모양이다.
‘지난 여름 로토가 본 오페라는, 세상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을 때 레오가 자신을 침몰시키려는 슬픔, 그 패닉의 감정과 싸우면서 탄생시킨 것이었다. ˝날 대체로 곡을 쓰면서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요.˝레오가 말했다. ˝음악과 나, 둘
다 지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음악과 싸우죠.˝ ‘
‘잠시 뒤 그녀는 서늘한 그림자들과, 건물들 사이로 쏟아지는 강렬하고 농밀한 오후 햇살을 통과했다.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숨도 거의 쉴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그 겁먹은 망아지 같은 다리로 걷는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에어리얼이 죽어가는 아파트를 나서며,
그녀 나이 예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