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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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명성아파트(무경, 래빗홀)
#서평단

믿고 보는 무경작가가 다시 한건 해냈다. 본인 스스로 '역사적 고증에 집착하여 하나하나 따지던 고질을 놓고 편안하게 썼다'고는 하지만 마치 1939년 경성에 와 있는듯한 생생한 시대감과 공간감을 느낄수 있는 '무경 유니버스'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흑백요리사2 결승전의 최강록 음식같다. 겉으로 보기엔 일제 강점기 경성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소박한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 작가가 독자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이스터 에그들이 가득하다. 아니 어떤 장치들은 단지 재미가 아니라 이 작품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기에 이스터 에그가 아닌 퍼즐조각이라 해도 되겠다.

먼저 이 작품은 작가가 그간 잘해왔던 두 가지를 버리고 시작한다. 하나는 악마로 대변되는 어두우면서 냉소적인 작중 분위기이며, 다른하나는 작가의 정체성인 '부산'이다.

작품의 화자가 (비록 똘똘하다고는 하지만) 열두세살의 어린 여자아이이자 식모인 '입분'이기에 작품의 분위기는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풋풋하다. 또한 작가가 작품초반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1939년 경성의 분위기와 명성 아파트의 인물들을 차분히 묘사해 나가기에 언뜻보면 미스터리보다는 역사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무려 130여페이지 가까이 공을 들인 세계관은 첫 시체 등장이후 139페이지부터 시작되는 2장부터 빛을 발하게 된다.

독특한 아파트의 구조부터 개성 넘치는 인물구성과 작위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발언에 이르기까지 마치 무언가 수상쩍고 위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영특하지만 아직 세상경험이 부족한 입분의 시선에서 하나하나 사건들이 이해되고 정리되어 나가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후반부의 힘이 좋은 무경작가답게 탄탄한 중반부 이후 반전과 재반전으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결말은 상당히 인상적 이었으며, 산뜻하면서도 차기작의 여운을 살짝 남기는 에필로그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가가 고증에 힘을 뺐다고는 하지만 작품의 구성 자체에는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전개였다.

'멋진 집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다 멋진것 같진 않다'는 캐치프레이즈와는 반대로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더 멋지게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차기작은 또 어떤 새로운 시도로 독자들을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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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
플로랑스 멘데즈 지음, 임명주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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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플로랑스 멘데즈/임명주, 오팬하우스)
#서평단

출판사 책 소개대로 그야말로 '광기와 유머가 동시에 번뜩이는 사이코 범죄 스릴러'다. 이 소개만으로도 난해할것 같은 느낌인데 무려 프랑스 소설이라 난해함이 배가된다. (그러고보면 베르베르옹은 참 글을 쉽게 쓴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에서 만든 '혐오를 멈춰 주세요' 광고를 본 적 있는데, 이 소설은 점점 증오와 광기, 혐오와 폭력에 물들어가는 현대사회를 향한 프랑스식 블랙 코메디로 읽힌다.

이 작품은 자살에 실패한 다프네란 여자가 다크웹에서 자신을 진짜로 죽여줄 살인청부업자를 찾다 초보 청부업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유명 코메디언이자 사회운동가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때로는 이사카 고타로 같은 기괴하고 엉뚱한 발상으로 살인, 강간, 학대같은 끔찍한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프랑스사회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약물중독 등의 사회문제까지 유려한 필체로 툭툭 건들고 지나간다.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를 사랑한다'는 프랑스 독자들처럼 이 소설에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게임'처럼 다크웹 커뮤니티의 각종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블랙 코메디를 보는 재미는 나름 쏠쏠했다. 장르적 기법으로 사회문제를 잘 풀어낸 괜찮은 문학작품을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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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칼날은 차갑게 1
조 애버크롬비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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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도서지원

조지 R.R. 마틴이 극찬했다는 띠지의 문구처럼 '왕좌의 게임' 책 원작이 생각나는 설정과 전개의 중세 판타지물.

전 2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1부는 냉혹하고 아름다우며 능력있는 용병대장인 몬자 머카토가 인생의 정점에서 배신을 당해 죽음에서 살아돌아와 복수를 계획하는 이야기다.

제목이 잘 표현하듯 이 작품의 분위기는 뜨거우면서도 차갑다.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 빠뜨리고 동생을 살해한 옛 동료, 지인, 고용주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을 마음속에 담아둔 채 용병, 독물학자, 고문 기술자 등의 전문가 팀을 꾸려 차근차근 복수를 전개해 나간다.

사실 1권은 복수의 준비와 초기 단계의 실행, 전체적인 세계관 설정 등이 주를 이루기에 생각보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진 않다. 마치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나오는 기사들의 대결처럼 묵직하고 웅장하면서도 살짝 느리고 답답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이런 독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왕좌의 게임처럼 1권이 끝나기 전 갑자기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던 주인공 파티에 큰 시련이 닥치고, 검만 존재하던 세계관에 마법적 존재가 등장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놓으며 끝나버린다. 가히 엄청난 절단신공이 아닐 수 없다.

중반이후 전개를 보니 결말이 예측 가능해보여서 2권을 어떤 내용으로 채우나 싶었는데, 1권 말미에 등장하는 '그'의 존재덕에 어서 빨리 2권을 주문해 읽고싶단 생각이 든다. 다크판타지의 대가란 작가 설명이 어울리는 마무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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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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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극도로 불안한 심리 상태를 가진 믿을 수 없는 화자와 초호화 크루즈라는 매력적인 클로즈드 서클 설정을 결합하여 잘 짜인 심리 스릴러이자 가독성 좋은 선상 미스터리를 만들어냈다.

심리학자가 썼나싶을 정도로 주인공은 물론 독자의 정신 상태까지 쥐락펴락 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띠지 문구처럼 주인공이 점점 스스로의 관찰과 추론을 의심하게 만드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면서도 사건의 본질 자체가 흐려지지는 않게 작품내의 혼란도?를 교묘히 잘 조절한다.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클로즈드 서클물은 폐쇄적인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와 그 해결과정에서의 카타르시스를 다룬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클로즈드 서클물의 갈등해소 방향과는 반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알콜, 수면부족, 폐소공포증 등으로 인해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갈수록 불안해지므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건이 해결되어가기는 커녕 그 사건 자체가 있었는지조차 점점 의문시되기에 플롯 전체가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다.

특히, 이런 혼란 상태에서 작품에 청량감을 더해줄 믿음직한 조력자의 존재마저 주인공이 불안과 의심으로 인해 스스로 회색의 영역으로 던져버린다. 이에 독자 입장에서는 이 지치는 주인공과 함께 지쳐나가면서도 이 시궁창에서 어떻게 빠져나갈까하는 학문적? 호기심이 들게 된다.

이런 고난의 행군을 거치고 맞이한 결말부분은 의외로 괜찮았다. 어쩔수 없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해결방식을 취했고 빌런이 갑자기 신으로 바뀌는 점에 대한 개연성 문제도 살짝있지만, 앞의 400여페이지에서 주인공이나 독자가 너무 고생을 했기에 오히려 이런 속시원한 해결에 작가의 등을 툭툭쳐주고싶은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가독성 좋고 구성도 좋은데, 여러 독자들이 지적하듯 역대급 발암캐, 짜증유발자 주인공 덕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점이 이 작품의 큰 약점이다.

과한부분은 살짝 건너뛰고 감정이입도 덜하려 노력했는데 이 비호감캐릭터 덕에 나름 잘짜인 플롯의 빛이 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 작가가 정성들여 세공해냈듯이 이 캐릭터는 정신의 병을 가진 사람이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을 하니 독자도 어느정도 감안해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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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실종자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반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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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서평단
시간의 마법사, 시점의 마술사.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단 한편으로 국내 독자들의 기억속에 그 이름을 단단하게 각인시킨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8번째 작품이자 국내 두 번째 출간작이다.

전작의 충격이 원체 컸기에 이 작품에 거는 기대도 컸는데, 놀랍게도 300여 페이지 까지 너무도 평범한 영미권 심리 또는 도메스틱 스릴러 정도여서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할런 코벤의 실망스러웠던 최근작 '네가 사라진 날' 정도의 느낌으로 별다른 번뜩임없이 실종된 젊은 여자를 찾는 경찰과 애끓는 부모의 마음 정도를 그리고 있기에 작가가 전작의 성공으로 매너리즘에 빠졌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밝힌 '완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소설 중간 부분의 반전', '8개의 초안을 검토하는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플롯 구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이 작품은 그야말로 알을 깨고 나와 환골탈태를 한다.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더 밝아 보이듯, 평범함을 가장한 전반부(라기엔 좀 길긴하다) 덕에 후반부의 반짝임이 더 빛난다.

사실 그 빛나는 중간의 반전 이전에도 미스터리 팬들이 살짝살짝 느낄 위화감의 층은 이미 켜켜이 쌓여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플롯이 너무 평범하고 답답하기에 이 위화감들을 단번에 해소하는건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중간 반전 이후 복선이 하나하나 회수되면서 이전의 의문점들 역시 하나하나 해결되가기 시작한다. 사건 진행과 상관없어 보였던 뜬금없는 정보의 조각들과 각종 소화불량 덩어리들은, 반전 이후 작품을 다층적 layer를 가진 고품격 요리로 승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중반부 이후 작가는 그야말로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시간과 시점을 자유롭게 이동해가며 물 흐르듯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실제로 반전 이전에는 각 챕터의 길이가 다소 긴데, 중후반부는 짧게는 7~8페이지씩 끊어가며 두세명의 시점에서 사건을 다각도로 조망해 주기에 상당히 복잡한 플롯임에도 쉽고 빠르게 이해가 된다.

좋은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이 전체적인 균형감인지 다 읽고 난 뒤의 상쾌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많은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결말의 아쉬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초중반의 지루함을 조금만 덜어냈으면 좋겠다싶지만 그래도 단 두 작품만으로 개인적인 취향에서는 현 시점 영미권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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