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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평점 :
'S.A.코스비의 걸작 사이다 소설인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의 백인-엄마-70년대버전 느낌이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마약-범죄-살해-은폐-복수의 장르소설 문법을 1974년의 '버싱정책'(백인-흑인 거주구역의 학생들을 서로의 학교를 바꿔 통학시키는 정책)을 통해 본 인종차별의 광기, 시대상에 대한 세심한묘사, 베트남전에 대한 참오 등을 통해 문학작품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하드보일드팬이라면 명작이라 칭할수 있을만큼 재미와 의미, 하드보일드의 로망과 사회적 메세지까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속에 잘 담아냈다.
'내눈물이~'가 테이큰, 존윅처럼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식의 사이다 먼치킨물이라면, 이 작품은 주인공이 복수와 폭력의 스위치를 켜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개연성의 그물을 엮어 나간다.
미국사람들에게는 익숙할지 몰라도 우리에겐 생소한 70년대 보스턴의 모습이 촘촘하고 세밀하게 그려지는 초반부에는 다소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다.
독자들 입장에선 주인공 메리 패트가 빨리 실종된 딸을 찾아나서서 다 죽이고 때려부수길 바라지만, 그녀는 경찰과 동네갱단을 가리지않고 주변을 차분히 수소문하며 심지어 버싱 반대 집회에도 간다.
하지만 독자의 작은 인내심은 그리 길지않은(80여페이지) 시간내에 보상받게 된다.
딸의 실종에 대한 진상이 생각보다 이르게 밝혀지게 되면서 엄마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는데, 여기서도 눈깔이 확뒤집혀 무쌍을 찍기보단 마치 제이슨 본처럼 치밀한 정보조사, 신중한 잠입 및 적절한 무력을 바탕으로 적을 조여나가는 '그럴듯한' 복수극을 전개한다.
특히 복수의 주체가 전직 요원도 아닌 평범?한 마흔두살 여성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앞서 깔아둔 각종 설정을 통해 주인공의 무력에 개연성을 부여한 상태임에도, 데니스 루헤인은 많은 평범한 작가들처럼 정신줄을 놔버리지 않고 복수의 진행마저 차근차근 조각해 나간다.
출판사 책소개에 실린 여러 언론매체의 감상평 중 '힘있고 흔들리지 않는 플롯'이 공통되는데, 한 지역의 지배자인 갱단을 상대로 하는 엄마의 복수극을 이렇게 개연성 넘치게, 단단하게 그려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사이다 몰빵은 아니지만 여타 범죄소설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카타르시스와 청량감을 선사하면서도, 인종차별과 전쟁 후유증 등에 대한 묵직한 고찰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레 스며들게 만드는 글쓰기의 힘 역시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