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헌학자 또는 언어학자를 뜻하는 유럽어의 어원이 '말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아주 적절해 보인다.
문헌 또는 언어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사랑의 말들에 대한 책.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이 글은 체계적이고 정리돼 있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은 어필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됐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언어로 표현된다면
그 경우에 어떤 말들이 사용될까 하고 고종석은 생각했고
그 말들을 제목으로 붙여둔 다음 자기가 그 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언어학적 지식
혹은 개인의 소소한 인상이나 느낌을 적었다.
가끔 일반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자신의 아이들의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를 푼
글도 있기는 하다.
진실한 애정이란 어떤 식으로든 전달되기 마련이라서 고종석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여지없이 읽는 나에게 전해졌다. 애정이란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덩달아서 달뜬 느낌이었다(라고 말하면 좀 오버일까)
행간에서 고종석이란 사람이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제법 나오는데 고종석에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재미질
것이다. 난 그랬다.
그리고 유럽에 대한 나의 대책없는 동경심이 고종석에게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일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 글쎄 그런 동경심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너무나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하지는 않다. 그래도 별로 속이 좋지는 않다. 그것 역시 다른 데서 배운 것들 때문일 거다.
이 책은 누가 빌려줘서 읽었는데 두고두고 조금씩 읽어도 좋겠고 가끔씩 들춰서
읽어도 좋겠다. 나중에 한 권 장만해야겠다. 근데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니까 절판이네.
그러고 보니 고종석 책이 절판된 책이 무척 많다. 헌책방에도 고종석 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던데. 역시 포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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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른 조개껍질 - 스테노 씨가 캔 지구의 먼 과거
앨런 커틀러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지금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일들 가운데
한가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의 나이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46억 년이라는 것.
땅이 겹겹이 누적되어서 쌓여 있고 화석은 이전에
존재하던 동식물이 석화된 것이라는 사실.
너무 당연해서 도무지 이런 사실이 왜 과학책으로
씌어져야 하는가 의문이 날 정도이지만 이때는
중세의 영향력이 엄존하던 시기다. 성경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이 당시 첨단의 지식을 자랑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

주인공인 스테노는 과학자에서 시작해서 독실한
수도자로 인생을 마쳤다.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4-5백 년 전의 인물에 대해서 이토록 소상하게
기록한 자료가 남아 있고 그 자료를 분석해서
후인이 평가할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기록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요즘엔 도무지
가능하리라고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워낙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이야기는 더 재밌다.
우리의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들도 이런
방법으로 씌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재밌는 작품이 나올 거다.

조선이나 고려가 기록에 소홀했던 시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문제는
보관인가. 그리고 혹은 해석의 문제인가.
모를 일이다. 지금 보관되고 있는 자료들을
제대로 해석하고 정리해 놓는 작업이
먼저 이뤄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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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빨간책을 읽었을 때
손에 잡힐 것 같은 그 흥분과 긴장을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읽을 기회도 사라졌고
읽어도 맨숭맨숭했다. 종종 모사이트에 올라오는 소설을
읽긴 했지만 그것도 요즘에는 수준 이하의 글들이 많아지고
신상명세를 죄다 입력해야 볼 수 있게 되면서 끊어버렸다.

카트린 밀레의 이 글은 고도의 집중을 요한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나마 가장 잘 넘어가는 부분이 섹스행위를 묘사한 부분인데
그마저도 지나치게 분석적이라서 흥(?)을 느끼긴 어렵다.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출간됐고 베스트셀러가 됐다는데
우리나라에선 아마도 별로였을 거 같다. 사생활을 까발리면서
이렇게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분석하는 책, 한국인 정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은 도덕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냥 존재 그대로 있는 그대로다. 이런 책도 나온다는 건 참
뭐라고 해야 하나. 별 걸 다 책으로 만든다는 생각까지 든다.

독자가 이 책을 집게 된다면 그건 분명 관음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겠고 책 자체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을 것이다.
나도 그런 의도에서 읽은 것이다. 근데 재미도 없고 이런 책을
무엇한다고 썼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쓴 여자는 지금 나이가
거진 60살은 됐을 텐데 자기의 성 편력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적어서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두고자 한 의도라면 그냥 일기장에
적어두고 혼자 봤으면 됐을 텐데. 굳이 책으로 내서 여러 사람
한테 읽히게 했다는 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기'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한테 인지시키고 싶다는
일종의 자기확장self-enlargement욕이겠다. 그렇다면 난
그 프랑스 할머니의 자기확장욕에 빠져서 4-5시간이나 허당으로
날려버린 셈이다.

이 책이 주위에서 항상 굴러다녔는데도 별로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읽게 된 건 김우창의 대화집 <행동과 사유>에서 언급되고 난
뒤부터다. 쉽게 보기 힘든 장르의 책이긴 하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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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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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 작가의 책이라는데 이 책을 읽고 동유럽의 정서를 느낀다는 건 불가능하다.
출판과 관련된 제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얄팍하다.
이 '얄팍하다'는 느낌은 전적으로 나 개인의 것이다.

저자가 동원하고 있는 유머나 위트, 비틀기 수법 등은 나에게는 지나치게 '오바'로 느껴졌다.
그러니 난 이 책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책에 같이 집어넣은 일러스트도 내용과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책 표지 디자인도 눈을 끌긴 하지만 역시 얄팍하다고 생각되었다.

번역은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이 책은 진성성이란 게 없다고 생각한다. 얘기하다 보니 자꾸 동어반복이군.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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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릇
펑쯔카이 지음, 홍승직 옮김 / 궁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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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의 기획자이자 대표인 김갑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홍승직 교수가 재미 삼아 끼적거린 펑쯔카이의 번역글을
보았을 것이다. 그 글을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나 적어도
어느 정도 팔릴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홍승직 교수에게
연락해서 책으로 내자고 했을 것이고 그의 동의로
이 책은 출간되었을 것이다. 이미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 묶어서
내려다 보니 아무래도 일관성은 다소 떨어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긴 수필의 성격이 일관성을 요구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기도 하니까.

이 사람은 중국의 파란만장한 대격동기를 온몸으로 거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이 고생한 경험들을 다룬
글은 전무하고 (이 책이 선집임을 감안하더라도) 죄다 편안하고
고즈넉한 경험들이 주류를 이룬다. 개중에는 근본적인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외국어 학습법도 나온다. 무조건
외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나의 경우를 되돌아보아도
역시 외국어는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외국어 배우는 데
무슨 다른 왕도가 있으랴.

펑쯔카이는 무척이나 세심하고 민감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글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미치고
뭐랄까 여유가 있다. 뒤에 부록에 나오는 그의 연보를 보면
그는 문화대혁명 중의 고초를 받고 그 여파로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대장정의 과정에서 겪었을 격동의 역사는 여기 나온
이 책에선 볼 수가 없다. 다른 글도 그런지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들어 중국의 논픽션이 조금씩 번역되어 나오는
것이 반갑고 즐겁다. 이 책은 아마도 '셀러'가 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읽고 나서 맘에 든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근근히 읽혀질
정도의 책은 되는 것 같다.

중국 인터넷으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의 글을 원문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丰子恺. 이 글자를 긁어다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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