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우전윈이라는 작가의 책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의 이름도 처음 들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게 압도되었다.
그의 글은 현실에 뿌리 박고 있어서 착실하면서도 허튼소리 따위는 늘어놓지 않는다.
그냥 단도직입.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하게 전달한다.

사실 난 소설은 잘 읽는 편이 못 된다. 문학 외적인 글들을 읽다가 머리 말랑말랑 용으로
종종 읽을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제대로 된 문학 작품 한 편이 두툼한 사회과학 서적을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3편의 중편을 모았다. <닭털 같은 나날>에선 중국 소시민의 생활을 여지없이
만끽할 수 있고 <관리들 만세>에서는 중국의 관료체제가 어떤지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1942년을 돌아보다>는 픽션과 논픽션을 교묘하게 뒤섞은 걸작이다. 1942년 43년에 허난 성에서 발생했던 300만 명이 죽은 기아를 다루었다. 실감하기 어려운 규모다.
개가 사람을 먹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 상황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근데 작가 리우전윈은 이 엄청난 내용을 아주 냉랭하게 거리를 두고 살핀다. 그곳이 자신의 고향이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피붙이들이 연관돼 있는데도 그렇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망과 줄곧 유지하려고 하는 객관적인 시선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작품들이 재밌다.

중국 소설은 잘 안 팔리는 한국이다. 기껏해봐야 위화의 책이나 좀 나갈까.
그래도 이 책은 제법 팔려나간 모양인데 그 이유라면 작가의 발군의 능력일 것이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번역이 유려하진 않다.
그런데도 글엔 힘이 있다. 문장이 대부분 짧고 화려한 수식이 없는 뼈체인데도 기운이
넘치는 것이다. 촌철살인이란 표현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이다.
아는 게 부족한 탓이겠으나 중국의 언더그라운드 영화감독들이 만든 작품 중에
굳이 찾자면 <소무> 정도가 비슷해 보이는데 그보다 더 명확하고 또렷하다.
중국에는 그 말고도 수많은 작가가 있을 텐데 그 수많은 작가들의 글이 번역되지
않고 고스란히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 아닌가. 아깝지 않나.
고전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번역된 고전 재탕하고 삼탕하고 하지 말고
이런 책들이나 잘 골라서 번역해내면 좀 좋은가.
이건 발견이다. 그의 다른 작품도 있는 것 같은데 곧 번역되길 바란다. 그리고
중국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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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10-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우리소설만큼이나 재밌고 괜찮은 소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