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타운 - 양쯔 강에서 보낸 2년
피터 헤슬러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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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과 연관을 맺은 수많은 서양인들이 있다.

혹자는 오리엔탈리즘의 안경을 쓰고 인종차별적인 단순하고도 무식한 안경이랄 것도 없는 백태가 낀 눈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으며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의 저자같은 옮긴이의 말을 따자면 눈 밝고 속 깊은 이도 있다.

중미평화봉사단원으로 양쯔강의 한 소도시 푸링에 2년간 머물면서 지은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는 이 책은 지은이의 긴 인생 중 2년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일종의 일기이기도 하고 2년간의 여행을 풀어낸 여행기이기도 하다.

이 글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저자의 솔직하고도 담백한 자기 성찰의 능력이다. 이 글은 저자가 서양인이 아니었으면 절대 씌어질 수 없는 성격의 글이다. 나도 길진 않지만 잠시 중국에서 머물었던 적이 있지만 같은 동양인으로 피터 헤슬러가 겪었던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소위 잘나가는 미국인이었다는 점이 우선 전제되지 않으면 이 책은 읽히지 않는다. 다만 현지인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이유의 저간이 어떠했건간에 저자가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읽을 만한 글을 써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쓸 당시 저자의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아니 쓴 시점은 더 뒷날의 일인지도 모른다. 여튼 그가 겪은 이 경험은 20대 후반에 이뤄졌다. 그는 방외자의 눈으로 중국인, 푸링 사람들의 대화를 나누고 속내를 짚어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그의 시선은 온건하며 지나침이 없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관찰력이나 섬세함, 자기 성찰의 힘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장은 아름답고 잔잔한 데다가 속이 깊기까지 하다. 게다가 중국의 미친듯이 발전하고 있는 중국 대도시가 아닌 저기 구석탱이 아주 벽촌의 시골에 눈을 주고 있어서 일종의 현장보고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아직까지도 중국 대다수인 중국 농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엿볼 수도 있다.

중국 오지의 벽촌, 서양인 그것도 강대국인 미국인이 만나서 이뤄내는 어떤 미묘한 관시(關係)는 그 옆 나라 한국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도 감흥을 주었다. 오랜만에 읽는 좋은 글이었다.

좋은 글은 훌륭한 관찰력과 그 관찰헤 바탕을 둔 깊은 사색과 열린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이 글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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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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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표지에 빨간 테두리를 두른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그는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이다.직함을 언급한 이유는 그가 살아온 평생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재야 국어학자로 평생 국어를 바르게 쓰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조사, 어미, 호응, 생략, 축약, 높임말, 시제로 나누어서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조사에 주격 조사의 이/가와 은/는 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은 충격이었다. 그의 논지는 표지에도 나와 있듯 바르게 쓰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국어와 관련한 책은 자꾸만 들쳐보게 되고 이 책을 한 번 읽기는 했지만 솔직히 반이나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시간 날 때 다시 한 번 들쳐보고 확인해봐야겠다. 축약이나 도치에 관한 부분은 다소 억지스런 부분이 없지도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잘못된 비문의 예로 기라성 같은 작가나 비평가들의 글을 사례로 드는데 세대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광수나 이인직과 같은 사람들의 글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보다 젊은 세대를 생각했다면 사례를 좀더 대중적이고 귀에 익은 요즘 문인이나 작가들을 대상으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것은 우리말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이다. 국어는 모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조금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더 갈고 닦을 일이다. 간결하면서도 논리적이고 분명하게 뜻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까치에서 나온 책답다. 국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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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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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유+너머의 인류학적 보고서 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글쎄 인류학적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고미숙이 탁월한 선전선동가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어떤 묘한 공동에 빠진 느낌이 든다.

그의 이야기가 다소 현실과 괴리되는 부분이나 내가 살아가면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기가 얼마나 지난한가 또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라는 점을 절절히 깨닫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글에는 뭐라고 반박하기 힘든 묘한 열정이나 힘이 녹아 있어서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것인데 누군가의 말대로 이 글은 사회과학적 전망이 눈녹듯 사라진 이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조직론이기도 하고 어떤 코뮌에 대한 대안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면서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보고서이기도 하다.

고미숙이 얼마 전에 쓴 <열하일기>리라이팅 본을 읽으면서도 내내 느꼈던 바이지만 저자가 쓴 글에 녹여낸 애정과 열정의 정도만큼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고미숙이야말로 그 산 표본이라 할 만하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수유+너머가 궁금해질 것이며 좀더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접속을 시도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능성의 접목에 대해서는 앞으로 내가 살면서 직접 적용할 일이거니와 그의 말 중에 삶과 동떨어진 이론, 학문은 그 자체로 무용의 극단이라는 말. 새겨둘 말이라고 보았다.

그런 단체에서 모여서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기쁨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쁨을 아무나 누릴 수는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다만 그 무게중심을 어느 곳에 더 두느냐가 관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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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전기
험프리 카펜터 지음, 이승은 옮김 / 해나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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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가에서 인정한 유일한 전기라고 했다.

톨킨에 대한 책들이 요즘 쏟아진 이유는 영화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 크게 흥행한 데 힘입은 것이다.

전기는 전혀 스펙타클하거나 흥미롭지 못하다. 톨킨 마니아들에겐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아니었다. 문장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문장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고 구성도 그다지 적절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품만 나온다. 다만 톨킨의 쓴 작품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점은 잘 알 수 있다.

영어 원서로 제대로 어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다면 모르겠으되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톨킨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처럼 보인다.

<호빗>, <실마릴리온>, <반지의 제왕>을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닥 끌리지는 않는다.

그가 동화를 썼다는 사실도 알았다. 제법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도. 이 책을 출판 관계자들이 봤다면 아마도 그런 동화들에도 손을 뻗칠 법하다.

이 책을 보면 언어학을 무척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이전에 있던 나라들의 언어를 재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조선, 고려, 이전, 신라와 백제, 고구려 등의 언어를 재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톨킨이 평생을 바쳐 사랑해 마지 않았던 중세 영어처럼. 우리도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 그런 학자가 있을까? 국문학하는 사람이나 언어학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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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샘 메서 그림,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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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출판사가 심했다. 책값 7,500원에 그 내용이라니.

열린책들에서 폴 오스터를 발굴하고 키워서 매니아들을 만들어내고 한 일련의 과정을 난 참 의미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좀 아니다.

글은 얼마 되지도 않지만 대체적으로 폴 오스터가 반평생을 사용한 타자기에 대한 감상을 적은 것인데 폴 오스터에 따르면 이전에는 타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샘 메서라는 화가가 와서 자꾸 타자기를 그려쌓고 하면서 자기도 뭔가 타자기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은 그게 무슨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지더라 하는 내용이 전부다.

지나치게 평범하고 무난한 내용이다.

이 책은 글이 중심이 아니라 그림이 더 중심이다. 실제로 그림은 나중에 점점 타자기가 사람 모양으로 변해간다.

타자기를 다루어서 타자체로 본문서체를 잡은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했다. 다소 읽기에 불편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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