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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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은 일단 재밌다. 그가 가진 언어에 대한 관심이나 해박한 지식 덕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그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성향에 더 기댄다고 본다.

그는 지금 <한국일보>의 편집위원이다. 그리고 <인물과 사상>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 여전히 그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고 종종 소설도 써낸다. 그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책을 쓰지만 이 지식은 잘 삭아서 내가 볼 때 지식 이외의 다른 것을 파생해 낸다.

대체적으로 책을 읽는 큰 이유는 하나는 정보 습득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그의 글은 그 두 가지를 교묘하게 충족시키는 힘이 있다. 잘 소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의견을 적어나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모아둔 국어나 외래어와 관련한 여러 글들은 주로 월간지나 계간지에 기고한 글들로 비슷한 성격의 글을 모았다. 언어 순수주의에 대한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관점은 말은 자연스러운 그 흐름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란 것이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옳은 말이다. 외래어표기법과 관련해서 그가 말한 내용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심리적 위안을 주었다.

그가 언어에 관해 쓴 책을 두 권 더 구입해 두었다. 다음 책이 기대가 된다. 그의 문장은 헐렁한 듯하면서도 짜여 있고 짜여 있는 듯하면서도 여유가 있어서 읽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현학적이지도 않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특히 '한자에 대한 단상'은 오졌다.

그의 글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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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내 방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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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사에서 꾸준하게 내고 있는 산문선으로 109권으로 되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리즈다.

이 책을 편역한 김풍기 선생은 수유에서 한 번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둥근 얼굴에 각진 뿔테 안경을 썼고 목소리도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선생이 강의했던 것은 유협에 대한 것이었는데 <조선유협사>를 써볼까 하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유협에 대한 얘기를 길게 하면서 여러가지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솜씨는 말투가 다소는 또박이 말투이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풀어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수유에 관계하고 있는 선생의 말투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앉아서 유목하기'같은... 사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는 건 아니었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허균은 그 당시 뛰어난 선비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시인, 사회개혁가, 떠도는 유랑객이기도 하였고 여러가지에 능했다. 그가 죽은 뒤에 아마도 그의 후손이 모았을 그의 문집은 <성소부부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책은 그 문집에서 김풍기 선생이 내키는 글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짧은 글을 덧붙인 것이다. 개중에는 물론 시도 있을 터이지만 산문선이라서인지 시는 없고 주변이야기를 담은 글이나 주장을 담은 문장을 주로 모아두었다.

산문선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책들이 옛글을 번역한 것이면서도 오늘을 사는 내가 읽어도 마음을 울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불만이나 욕구, 어떤 일을 하는 마음가짐과 기본자세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거명한 이름 중에 내가 들어본 이름도 제법 된다. 한석봉이나 이달 같은 사람이 허균과 교유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산문선의 특징은 뒤에 원문을 꼭 적어두는 것인데 이것은 한문을 공부하는 이에게는 매우 쓸모가 있다. 한자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딱이다. 다만 책값은 인정할 수 없다. 지나치게 비싸다. 책값은 오천 원이면 충분하다. 어쨌든 산문선은 틈나는 대로 두고두고 펼쳐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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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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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은 옮긴이의 소개에 따르면 내가 전에 신경숙 같다던 파트릭 모디아노의 재현이라고 하니 파트릭 모디아노가 프랑스 문단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이 무척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아멜리 노통도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고 한다.
나에게 눈에 뜨인 부분은 그녀가 동양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 아 뉴욕은 아니군.
아버지의 직업이 외교관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벨기에로 가서 정작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주위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독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25살에 전격적으로 데뷔했고 천재작가의 칭호를 얻었다는 것이다.

다른 작품을 읽어본 바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이 <시간의 옷>은 등장인물이 둘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셋이라고 해야겠지만 처음에 잠깐 등장하는 친구는 비중이 거의 없으니 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화만으로 이렇게 이끌어가는 소설이라니...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싶기도 한다. 따다다다 화법. 설정은 이렇다.
폼페이가 화산재에 뒤덮혀 단박에 유물이 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위적인 조작에 의한 것이라면? 친구를 상대로 그런 가설을 풀어내던 작가는 미래로 끌려가고 미래에서 그 '자연재해'를 조작한 인물과 대작하게 된다. 그 다음 소설 전체는 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구성된다.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영화에서 재현하기는 배경이 너무 단조로워서 불가능할 듯싶고 라디오극쯤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선 어려울 것 같고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에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근데 놀랍게도 이 소설은 재미가 있다.
배경도 없고 특이한 사건도 없는데 작가의 재치나 위트, 유머, 역사적인 추리력, 두 사람의 캐릭터, 미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술술 넘어가는 것이다.

이야기 중에 언급되었던 여러 소재들 중에서 미래의 세상이 동방과 서방으로 나뉜다는 부분은 이채롭다. 북방과 남방의 개념은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가난과 비참으로 상징되는 남방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얘기였다. 이런 은근슬쩍 정치적인 얘기도 끼어넣으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계속 유도해 나가기로 한 것 같다.

어떤 부분의 대화는 너무 수준이 높아서(또는 너무 여러 번 꽈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대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 다른 소설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하다. 나중에 다른 책도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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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
황루시 / 풀빛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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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의 <영매>를 보았다.

먼젓번에 티브이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EBS에서 나온 무슨 영상관련 프로에서 박기복 감독이 <영매>와 관련해서 간략하게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사실 영매와 관련되었다기보다는 그의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돈 문제 때문에 이 영매를 찍기가 사실 엄청 곤란을 겪었고 어쨌튼 작품을 마무리했고 자기는 일하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내내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웠노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인터뷰였다. 그의 와이프가 제작자를 겸하고 있는 듯했는데 와이프도 무슨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참 속편한 부부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정답일 수도 있지 않는가 싶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고 비디오를 빌려다 본 것이라 차이는 났겠지만 비디오 제작사의 횡포에는 이를 갈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아무래도 무당을 다루는 것이다 보니 남도지방 사람들의 인터뷰를 자주 딸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그래서 나 같이 토종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시청자를 위해서라면 응당 자막을 크게 해주었어야 했을 것인데 이것이 극장에서 그대로 비디오를 찍은 것처럼 중국 vcd의 그 화질을 연상케 하는 그 모냥으로.

우와. 정말 시간도 140분짜리인데 죽는 줄 알았다. 비디오 제작사는 응당 반성해야 할 줄로 안다. 물론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자막까지 새로 입히는 투자도 아까웠을지 모른다.
그냥 그런 작품을 집에서 안 좋은 화질이나마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정말 배려가 없다.

영화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안 하고 다만 한곁에 묵혀두던 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가 드디어 내 관심권으로 들어왔다.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은 좋다. 25년간 묵은 경험을 책으로 옮겨낸 것이니 수준도 보통 이상일 것이다.

자, 이제 <우리 무당 이야기>를 다 읽었으니 간략하게 느낌을 적어보겠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무당에 관한 딱딱한 보고의 형식을 띠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슨 무당 교과서 같지도 않다. 예전에 나왔던 인문서 쉽게 풀어쓰기 시리즈 이를테면 녹두에서 나온 한국사, 동양철학, 여성, 과학 이야기 주머니 시리즈처럼 무당 이야기 주머니 개념 정도로 보면 딱 적당하겠다.

그 옛날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던 영매였던 무당이 요즘에 와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아직도 근근히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죄다 할머니, 할아버지이고 대가 끊기는 경우가 많단다. 예전에는 매체에서라도 조금씩 나왔었는데 요즘엔 그나마도 보기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무형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멀지 않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사람 이야기로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중간중간 무속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좀더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나라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는데 한강 이남에는 세습무가 많고 한강 이북에는 강신무가 많다고 했다. 음 그러고 보니 진도에서 굿을 한다던 그 사람들은 세습무였던 것 같다. 제주도는 육지하고는 또 무당 풍속이 다르다고도 했다. 무당이 빠르게 늘었던 것이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이고 다시 급격하게 사라진 것이 박정희가 새마을 운동 같은 뻘짓을 하면서라고 했다. 무당이란 존재가 사람의 곤고함을 바탕으로 해서 승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어던 가장 훌륭한 성과는 무당에 대한 시각교정이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무당은 직업의 한 종류라는 것.

앞에서 내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곤고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무당도 굿도 어디선가 판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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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00만부 팔린다
이카리 하루오 지음, 박지현 옮김 / 정보공학연구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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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편집자 아니 출판사의 꿈은 밀리언셀러가 아닐까.

이 책은 좀 모순을 담고 있다. 책을 철저하게 상품으로 보면서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는 책이어야 하고 게다가 저자가 인간이 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제대로 적합하게 지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편집자, 영업자,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두면 좋을 책이다.

특히나 편집자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저자는 판매와 관련된 일을 했던 일종의 영업자다. 그래서 밀리언셀러의 가능성을 일차적으로 영업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편집자와 영업자와의 관계에서 저자는 인간적 친밀함을 거듭 강조한다. 서점과의 관계에서도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다.

일본과 한국의 사정이 같을 수는 없고 시장규모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분명 참조할 만한 내용들이 많았고 도움도 많이 되었다. 책 제본도 누드제책으로 책공방에서 나온 독특한 책등 모양을 가지고 있고 종이회사의 협찬을 받아서인지 오른쪽 하단 제목 공간에 종이 회사와 제질과 그램수를 적어놓은 것이 특이하고 일종의 샘플북 같이 만들어놓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데 아마도 출판관계자들이 사볼 것이므로 이런 협찬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판 한기호라 할 만하다.
말하는 어투나 여러가지 면에서 한기호를 자꾸 연상시켰다. 감수를 한기호가 한 것은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책은 100만 부가 팔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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