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설계도를 찾아서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장혜경 옮김 / 해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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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게르하르트 슈타군.
인문학을 공부하고 과학을 풀어쓰는 데 역량 있는 작가로 소개돼 있다. 내가 보증하겠다. 틀림이 없다. 과학책이랑 별로 친하지 않은 편인데 그냥 집어든 것치고는 홈런이다.

이 책은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막막함과 망연함으로 시작해서 중간쯤 접어들면 어떤 조이는 느낌을 주고 마지막에는 착잡하면서도 왠지 모를 뿌듯함을 준다. 이런 모호한 말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나한텐 그랬다.

사실 무척 재밌었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 '생명의 설계도를 찾는'다길래 좀더 인간 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역시 얘기의 중심은 인간이다. 이런 저자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이렇게 쉽게 풀어쓰기란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잡다한 모르던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과학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동기를 확실하게 부여했다는 점이다. 매력적인 책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책 한두 권쯤 더 읽었으면 이공계를 진학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이! 너무 그러지 말라구. 알아 알아. 나도 어차피 난 그쪽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구!) 암튼 과학책을 틈나는 대로 읽어둬야겠다고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이.

장정도 맘에 든다. 해나무의 표지는 대체적으로 하얀색을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사이즈도 거의 비슷. 짧게 끊어서 독자의 편의를 고려한 에디터십이 돋보인다. 덧붙여 한 가지 더.
번역자 장혜경의 문장은 몹시 훌륭하다. 과학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렇게 술술 읽히게 만들 정도라면 작가가 고생을 많이 했거나 나름대로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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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생존의 경계에서 선 중국 지식인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9
김태만 지음 / 책세상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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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던 중국 관련 저자다. 김태만은 이 책 1장에서 자신의 중국과 관련한 이력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는 한중수교가 맺어지기 전에 중국에 들어가 공부했던 열혈 중문학도다.

첫 장을 보면 부러운 얘기가 좀 나온다. 수교도 하기 전이니 중국에서 그는 나름대로 주목받는 존재였을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것이 그가 활동하는 데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라오서의 아들과 알고 지냈다는 말이나 그가 공부하는 데 필요한 여러 관련 서적들을 거의 땅 위에서 줍다시피 싼 가격으로 부대자루에 쓸어담았다는 부분이 그렇다. 남들보다 먼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그는 그의 욕심만큼 그런 부분을 많이 선점한 것처럼 보인다. 부럽다.

나의 식견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그만한 중국관련 전공자가 어째서 지금에서야 그것도 이런 소프트한 책으로 선을 보였는지 심히 궁금하다. 서문에서도 책세상 편집자가 하도 다그쳐서 글을 썼노라 한다. 그럼 게으른 것인가 아님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인가.

저자는 왜 지식인이라는 코드로 중국을 읽는 것이 필요한지를 전제한 뒤에 중국현대 역사를 개괄하고 그 역사의 세부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코드를 살피면서 중국 현대에서 지식인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실천해왔는지를 살핀다.

후딱후딱 읽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책장을 넘기기는 잘 넘겼는데 그닥 새롭게 와닿는 것은 별로 없었고 중국에서 80년대 이후로 벌어졌던 여러가지 논쟁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분명 눈에 띄었다. 70년 후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시작된 개혁개방의 흐름이 내부 지식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이 중국사회를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그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했는가를 다룬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까.
책값은 아깝지 않다. 지적 논쟁 과정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매체들은 자료 검색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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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망명지
유종호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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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의 글은 한없이 고즈넉하고 유순한 데다 늙기까지 했다. 그래, 그의 글은 늙었다. 좋게 늙은 할아버지의 글 같은 느낌.

서문에 나와 있듯 그가 여기저기 쓴 조각글을 두루뭉실한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묶었다.
그래서 좀 성의 없어 보인다. 노 교수고 뭐 따로 글을 많이 써서 책을 묶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역시 성의 없다.
그가 쓴 글 전체를 관통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작은 것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첫 장이 그의 책읽기에 대한 단상을 적은 것인데 이 장은 무척 유익하면서도 재밌다. 요즘 젊은이에게서는 쉽게 듣기 힘든 이름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가 지향하는 것은 고전처럼 보인다. 서머싯 몸이나 김동인, 레비 스트로스 같은 이름이 그렇다. 개중에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도 있다. 아이자이어 벌린이나 서기원 같은 작가. 서기원이 설마 무협 작가인 서기원은 아니겠지? 그리고 좌파 평론가였다는 김동석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궁금했다.
유럽문학을 영문으로 읽기를 권하는 것은 시도해볼 만한 독서법이라고 생각했다. 쌓인 한글로 된 책들도 제대로 못 읽고 있는 주제에..-.-"

가끔 날카롭고 공리를 꿰뚫는 시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다.

--가령 현대인의 교양 체험에서 가장 큰 영향력으로 떠오르는 마르크스 니체 혹은 프로이트가 모두 '의심의 대가들'이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소여라고 받아들였던 모든 것이 실은 개인들이나 공동체가 혹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의 결과이고 구성물이란 것을 그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폭로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작동을 폭로하고 프로이트는 성의 작동을 폭로한다. 니체의 계보학은 도덕의 기원과 그 작동을 폭로한다. 한 사회학자가 사회학의 기본충동으로 거론한 폭로의 모티프는 모든 인간과학의 기본적 충동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관과 실상이 다르다는 것을 간단없이 설파하는 폭로의 모티프에 향도되는 교양 체험에 감염된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일단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적실하게 이해되면서도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을 줬던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일부 눈에 뜨이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글은 그냥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다. 그리고 비슷한 대목이 여러 글들에서 중복된다. 유종호가 지은 다른 글을 보지 못해서 내가 이 글에서 느낀 것이라곤 그 정도다. 본격 문학평론은 좀더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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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59클래식Book
코시바 마사토시 지음, 안형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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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우리를 지금까지 그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는 악랄한 독재자의 얼굴과 함께 이 말은 오버랩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필히 거쳐야 하는 군대에서도 이 말은 되풀이 학습되고 각인된다.
하물며 이 말은 얼마전에 영화 제목으로까지 쓰이면서 명실공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말을 들으면 여러가지를 환기시키도록 프로그램됐다.

"하면 된다."

이 얼마나 무대포적이면서도 근거없는 긍정이면서도 터무니없는 궤변이자 폭력인가.
여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 책의 원서 제목이 그렇다는 얘기고 그 내용인즉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 학자의 인생이야기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 에디터십으로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놀랍게도 어려울 내용인 줄 알았던 이 책은 핵심이 그 노벨물리학상의 수상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기는 하지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개인의 다양한 사연과 그 사람의 캐릭터에 맞춰 끌어나간다. 짧게 툭툭 끊어읽도록 편집되었고 그렇게 읽다 보면 금방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 책은 이공계 특히 그중에서도 기초과학연구의 황무지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상황에서 마땅한 경각을 줄 수 있다. 일본의 어떤 장인의식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도 있겠다.

일본책이 주는 느낌과 관련해서 하나 더. 이 글의 번역투는 우리가 흔히 일본어 번역에서 느끼게 되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데 그 점은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매력이라는 건 이 사람의 정서라든가 감정 상태를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식의 형태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약점은 여하간에 아름다운 한국어로 재창조된 번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전자다. 어쩌면 두 가지를 다 살릴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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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촘스키 -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7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7
마이클 딘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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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세계적 지식인이니 그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고 해두자. 이 책은 일종의 다이제스트 북이다. 말하자면 촘스키의 지적 편력에 대한(그도 완벽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다만 겉으로 표면적으로 노출된 그의 지적 편력 중에서 극히 일부: 일부라고는 하지만 그 양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방대한!) 개략적인 정리쯤이라고나 할 수 있을런지.

일단 책의 제목에 나오는 '30분'이라는 제목은 상징적인 뜻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아무리 다이제스트 판이라곤 하지만 촘스키를 어떻게 30분에 읽을 수 있으랴.

대개 촘스키의 면모는 두 가지로 크게 대별되는데 하나는 혁명적인 언어학자이고 다른 하나는 좌파 정치평론가이다. 나에게 더 익숙한 것은 정치평론가로서의 그이지만 그가 언어학 쪽에서 이룬 성과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것도 그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은 정리가 훌륭하게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읽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라고는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내용을 내가 백프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면 자신은 없다.그의 언어학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용어와 개념에 대해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

강주헌의 번역도 깔끔하고 맞춤하다. 이 시리즈는 요즘까지도 김영사의 대표상품 중으로 하나로 팔리고 있는 앗!시리즈나 (앗!만큼 잘 팔리는 것 같진 않지만)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에서 다분히 컨셉트를 채용한 듯하다. 이런 문고본을 난 무척 사랑하고 문고본을 내고 있는 출판사의 기획이나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상업적인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문고본으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옛버전은 삼중당 문고, 을유문고이다. 그 문고들 참 좋았는데 왜 이렇게 다들 망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을유문고는 아직 남았던가? 그래도 유명무실하니까..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책세상 문고와 살림지식총서.
책세상 문고는 그 질이 고르지가 않아서 좀 문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필자를 발굴하고 여러가지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살림도 처음에 런칭할 때도 어설픈 미국 아이템으로 좀 객쩍다는 느낌이었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슬슬 읽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부럽다는 말이고 이런 문고본이 활성화되고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일본 책시장에서 문고판형이 잘 나가는 것도 참 부런 일이다. 가볍고 작은 책 얼마나 좋은가! 물론 그렇다고 무겁고 큰 책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간명해서 촘스키를 짧은 시간에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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