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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ㅣ 59클래식Book
코시바 마사토시 지음, 안형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대 우리를 지금까지 그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는 악랄한 독재자의 얼굴과 함께 이 말은 오버랩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필히 거쳐야 하는 군대에서도 이 말은 되풀이 학습되고 각인된다.
하물며 이 말은 얼마전에 영화 제목으로까지 쓰이면서 명실공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말을 들으면 여러가지를 환기시키도록 프로그램됐다.
"하면 된다."
이 얼마나 무대포적이면서도 근거없는 긍정이면서도 터무니없는 궤변이자 폭력인가.
여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 책의 원서 제목이 그렇다는 얘기고 그 내용인즉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 학자의 인생이야기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 에디터십으로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놀랍게도 어려울 내용인 줄 알았던 이 책은 핵심이 그 노벨물리학상의 수상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기는 하지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개인의 다양한 사연과 그 사람의 캐릭터에 맞춰 끌어나간다. 짧게 툭툭 끊어읽도록 편집되었고 그렇게 읽다 보면 금방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 책은 이공계 특히 그중에서도 기초과학연구의 황무지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상황에서 마땅한 경각을 줄 수 있다. 일본의 어떤 장인의식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도 있겠다.
일본책이 주는 느낌과 관련해서 하나 더. 이 글의 번역투는 우리가 흔히 일본어 번역에서 느끼게 되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데 그 점은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매력이라는 건 이 사람의 정서라든가 감정 상태를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식의 형태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약점은 여하간에 아름다운 한국어로 재창조된 번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전자다. 어쩌면 두 가지를 다 살릴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