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몰래 만나다
원재길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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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니까 작가가 소엽 선배랑 많이 닮았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얼굴형도 비슷한 거 같고. 직접 말 걸어볼 일은 없겠지만 선배 같은 느낌일까.

검색해 봤더니 낸 책이 많은데 대부분은 번역서다. 자기가 낸 책도 있긴 있지만 상업적으로 그다지 빛은 못 본 모양이다. 단편집으로 온전히 원재길의 글을 읽은 건 처음이다. 음.. 이 사람 글은 뭐랄까. 상당하게 따뜻하고 꿈꾸는 듯 부드럽게 씌어져 있는데 뭐랄까. 좀 읽으면서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이 너무 짜여서 빈틈이 없어 보였다. 반듯반듯하고 단정단정하게 씌어졌는데 별로 인간미가 안 느껴졌다. 하하. 웃을지도 모르겠다. 문장을 보고 그 사람 성격을 이렇게 단정짓다니 너란 놈도 참 한심한 놈이구나. 뻔한 놈이구나. 그래도 느낌이 그런 걸 어떡하냐.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모래의 집>이란 글이 젤로 좋았다. 바삭바삭 모래 느낌 나는 게 문장 맛이랑도 비슷한 게.

그래도 전체적으로 글은 다 재밌다. 내가 아까 인간미 떨어진다고 한 건 그냥 잊어달라. 그건 다 내 개인적인 거니깐. 사람들이 다 똑같이 느껴버리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 꺼냐.

아, 참 중요한 얘길 안 했군. 작품들 전부는 뭐랄까. 웃고 즐기면서도 뭔가 알멩이가 있다. 그건 어떤 한 여자의 외로움에 대한 것도 있고 황폐해 가는 사회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도 있다. 멀쩡하게 일상이 나오다가 그 일상에 툭툭 끼어드는 비일상적인 요소들이 주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느낌이 일단은 원재길이 주는 글의 느낌이다. 뭐 일단 읽어두어야 할 작가목록에 올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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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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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그랑.
이름도 특이하기도 하지. 봉 씨다. 헤헤. 무슨 물방울 떨어져서 생기는 모냥 같기도 하고 비누이름 같기도 하고. 프랑스 신인작가라는데 그건 초판이 나왔을 때의 이야기니 지금은 중견작가가 되어 있겠다.
주인공 콩스탕스도 지금쯤은 중년 아줌마가 돼 있겠다.
constance는 한결같음. 이란 뜻인데 이 덕목은 내가 세상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중의 하나라서 괜히 반가웠다. 이 책은 프랑스 소설이란 느낌이 팍팍 난다.
콩스탕스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관계를 맺는 방식.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고독을 무슨 장식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발랄하고 생기 넘치고 톡톡 튀는 프랑스 아가씨가 눈에 막 보이는 듯하다.
이 책의 매력은 무엇보다 제목대로 딴 작가의 작품에 과감하게 밑줄을 긋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내화하는 능력이다.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 봉그랑은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수없이 읽고 소화하고 상상했을 거다. 작품에서 묘사한 콩스탕스의 방과 꼭 같은 방에서 작가가 비슷하게 책을 읽고 글을 썼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은 묘하게도 은밀하면서도 즐겁다.
결국 외로운 한 아가씨가 자신의 상대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다룬 글이긴 하지만 맛깔나는 글솜씨, 생기발랄한 콩스탕스의 매력으로 이 책은 훌륭한 읽을거리가 되었다.
끝은 다소 지리멸렬하다. 백마를 탄 왕자는 결국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가 찾아낸 연인은 그 존재하지 않는 왕자를 찾으려고 집착증까지 보인다. 그 속에서 현실을 깨달은 그녀는 여전히 외롭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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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넘어선 자본 리라이팅 클래식 2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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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본>을 읽은 적이 없다. 해서 이진경이 쓴 이 책의 얼만큼이 마르크스의 생각이고 어느 만큼이 이진경의 것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그리고 한때 어설프게 공부했던 성긴 지식만으로 보았다. 원전을 읽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 얼마나 드문 일인가. -.-"

이 책은 쉽게 쓰려고 노력한 티는 확연하지만 쉽고 재미나게 읽히지는 않는다. 뭐 내용 자체가 어렵고 딱딱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거다. 뒤에 나온 <자본>원전의 목차를 보니 비슷한 수순을 밟아서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개념들을 따라 가느라 버겁기도 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쉬운 예를 들어서 이해를 도와줬다.

교수신문에 나온 강신준 교수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보았다. 대체적으로 무난하지만 논의의 시점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진경이 말하는 '외부를 통한 사유'와 '코뮨주의'에 대한 언급이 그것이다.

잘 모르면서도 이진경이 여러 번 강조해서 얘기하고 있는 말도 두 가지였던 것 같다. 난 이진경은 '외부'가 경계를 넘어선 경지를 말하는 것이라는데 난 당최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어렴풋이 감만 온다. '코뮨주의'는 그가 몸담고 있는 '수유+너머'를 통해서 그가 실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나는 그에 대해서 평가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뒤에 나오는 우리나라에 소개된 마르크스 관련 저작과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는 개괄적이고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참고할 만하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고 싶다는 어떤 욕망 같은 거였는데 그거야 나도 하고 싶은 일이고 자본주의를 뒤집을 수 있는 확 눈에 들어오는 방법이란 게 아마도 거의 힘들겠지만 그런 속 시원한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나처럼 즉물적인 사람한테는 그런 발언이 좀 필요한데 말이다. 몸에 와서 콕콕 찌르는 말 같은 것. 결국 대안은 코뮨의 건설과 그 연대인가?

하루하루 밥 벌어 먹고살기도 버거운 나에겐 결코 쉽지 않은 문제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참으로 값졌다. 내가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봐야겠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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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63
임대근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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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에서 나온 문고는 처음에는 마땅치 않았다. 미국에 관련한 엉성한 시리즈부터 시작했기 때문인데 사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첫인상만 구겼다고 해두자. 

살림문고는 대체적으로 한 개의 테마를 잡고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물론 그것이 아주 작은 주제가 아니고서는 웬간한 주제를 잡으면 개론 수준으로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분량이 몹시 적다. 그러나 의제설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문제제기를 하기에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다. 비용도 적당하고.

이 책 <중국영화 이야기>는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다루고자 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방대하다. 중국영화에 대한 인상에 대한 적어두기로부터 시작해서 중국영화의 개괄적 흐름, 그 흐름이 도출된 역사적 배경까지를 다루려고 하다 보니 글이 두루뭉실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는 중국영화를 보는 방법과 관련해서 제기하고 있는 의제다. 그건 그 내부적 맥락에서 보기다. 내부로부터 바라보기 위해서 학제적 연구를 할 것을 제안하면서 지역학이 영화를 바라보는 데 유용할 수 있겠다고 전언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역학이란 해당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섭렵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중국학, 미국학... 이런 식의 이름으로 되어진 '학'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학문은 제대로 말하자면 있으면서도 없다. 학문은 그 나름의 고유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지역학이란 '학'은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의 기존에 인정된 '학'으로부터 방법론을 이것저것 끌어와서 사용하지만 정작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론은 없다. 학문의 개념을 논하면서 지역학이 학문이 아니라고 성토하는 사람들의 지론은 일단 그렇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학문이란 게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가? 그 근본목적을 캐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체계를 갖춰서 제대로 이해하고 보다 깊은 이해를 통해서 인간이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학문이 아니겠나,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게 참된 학문이 아니겠나 말이다. 그런 견지에서라면 지역학이 문제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것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자.

근대로 들어서면서 모든 학문은 나눠질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나눠졌다. 그래서 무슨무슨 박사라고 해봐야 자기가 공부한 그 작은 부분만을 알 수 있을 뿐이지 어떤 전체를 개괄하거나 꿰뚫는 시각은 가지기 어렵다. 학제간 연구란 그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말하자면 폭넓은 교양인을 만들자는 얘기다. 지역학이란 건 그를 위한 방편이다.

저자는 영화가 서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네의 시각으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지양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도 이 방법이 유용하다고 본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살짝 맛만 보여준다. 어떤 것이 지역학적 방법을 이용한 영화보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차후에 나올 저자의 글을 유심히 봐야겠다. 이 책을 보면서 영화란 것을 보면서 이것저것 같지 않은 말을 늘어놓게 되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런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해 진짜 궁금해졌다. 생각해볼 문제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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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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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이유가 뭘까.
<연금술사>를 읽지 않아서 선뜻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작가로서 가진 어떤 달변 기질이랄까, 로맨틱하게 말을 풀어내는 능력이랄까 그런 부분이 발군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어떤 다른 경지를 열어보이는 힘 같은 것.

브라질의 한 순진한 처녀가 스위스에 가서 창녀가 되어 여러 가지 섹스에 대한 경험, 사랑의 경험을 하다가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구성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서사도 간단하다. 이 단순한 서사를 단순하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힘, 무미건조한 듯한 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은 전적으로 코엘료의 힘이다.

이 책에는 제대로 된 계급의식이란 게 없다. 그리고 평범하게 보이는 우리의 사랑과 삶은 경시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리아는 사랑의 각자(覺子)다. 그녀는 경계의 초탈을 꿈꾼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다가 왕자와 유복한 궁전에서 행복하게 평생 살기를 바라는 뭇사람들의 욕망을 뛰어넘는다. 그 뛰어넘는 과정을 바라보는 우리는 현실로 돌아오면 마리아와는 반대의 속물이 되어버리고 만다.(나에겐 그런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먼지 나는 현실에서 이전투구로 살아야 하니까. 이 점에서 이 책은 판타지다. 아마도 코엘료는 판타지 작가일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뿌리 박지 않은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 낸다.(모든 소설이 그렇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건 마리아가 미녀라는 점, 그리고 그녀가 계속 새로운 경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 속에서 그닥 큰 곤란을 당하지 않는다는 점 마지막으로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시종일관 곱고 순수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창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속되거나 더러워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생각이 그런 현실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마리아는 스토리 구성에서 내내 긍정적인 인물로 나온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시키기 쉬운 주인공이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주인공보단 낙관적인 주인공에게 더 끌리게 마련이니까. 코엘료의 글빨은 엄청나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남는 느낌은 허무하고 퇴폐적이다. 판타지는 판타지이며 순간의 쾌락만을 제공할 뿐이며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마리아가 깨달았던 것과 같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순 없다. 그래서 난 별을 두 개밖에 줄 수 없다. 말하자면 코엘료는 내 취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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