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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세월호.
이제는 그 이름을 듣는 일이 없다.
그렇게도 자주 들리던, 티브이만 틀면, 신문의 곳곳에서 보던 그 글자가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호가 잊혀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세월호를 기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고민하는 이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굳이 찾아서 들어야 한다는 단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일뿐이다. 단지 관심과 노력이.
그들은 노래로, 시로, 글로, 영상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세월호를 통해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런 노력들 중에서 작가와 평론가들의 노력이 한데 모인 책이 나왔다.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김연수, 박민규 등 우리와 친숙한 작가들도 보이고 이름은 낯설지만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글을 써보낸 작가들도 함께 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작품 속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에서 세월호에 대한, 아니 타인에 대한 이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는지, 얼마나 이해했는지 묻고 있다. 우리가 세월호의 당사자가 아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김애란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바깥'에 서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또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 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 세대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이들 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그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후동의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뭔가를 자주 보고, 듣고, 접했단 이유로 타인을 쉽게 '안다'고 해선 안 되는 이유도,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구분하고, 악수와 약탈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발전하고 있는가를 다시 묻고 있다. 김연수 작가는 과거보다 진보한 것이 맞는가? 과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진보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나이든다는 이유만으로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착각인 만큼, 인간의 역사 또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로 진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월호를 교통사고로 비유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사고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민규 작가는 '사건'과 '사고'의 사전적 의미를 들어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되살아나는 기억들에 괴로운 밤을 보냈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갈 날은, 그리고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떨지.....
황정은 작가의 말처럼 질문없는 삶, 무감한 삶, 상상하지 않는 삶이 만들어 낸 사건을 기억하며 우리는 질문하고 되짚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