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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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후세에게 지구를 물려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구에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_이정모(추천의 글)

 


 

파란 하늘이 너무 좋다. 불멍·물멍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면, 하늘멍은 왠지 희망적인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을 준다. 이런 나에게 책 표지에 적힌 인류는 더이상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은 꽤 충격적이다.

 

태양 지구 공학은 화산이 지구를 식힐 수 있다면 인간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무수히 많은 반사 입자를 성층권에 살포하여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광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예일 대학교의 웨이크 스미스와 뉴욕 대학교의 거노트 와그너는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 전용기(SAIL)’ 개발을 검토하고, 태양 지구 공학은 다른 방법들과 비교할 때 저렴하면서 빨라 SAIL함대가 가동에 들어가면 냉각은 곧바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해법이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다. 성층권에 뿌린 방해석(탄산칼슘)이나 황산염(혹은 또 다른 후보 물질인 다이아몬드)입자는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땅으로 떨어지므로, 계속 보충해주어야 한다. 또 온난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SAIL의 탑재 용량은 점점 커져야 할 것이고 비행 횟수도 늘어나야 할 것이며 이는 결국 CO2를 더 많이 발생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입자가 성층권에 주입될수록 기이한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태양 지구 공학으로 CO2 농도 560ppm-21세기 후반이면 거뜬히 이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를 상쇄하는 방안을 검토한 연구자들은 이것이 하늘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흰색이 새로운 하늘색이 될 것이다._p237

 

하버드 대학교 환경센터의 센터장이며 맥아더 재단상 수상자이기도 한 댄 슈래그는 만일 우리가 내일 CO2 배출을 중단한다고 해도, 최소한 수 세기 동안은 온난화가 지속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린 이미 2°C라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 ‘운이 좋아도 4°C에서나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당장 내 나라, 내 집이 물에 잠겨 사라지지 않기에 우리는 실감하지 못하지만 정말 위기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 인천공항과 해운대도 잠길 수 있다고 한다. 202110, 남태평양 가운데 해발 고도 2~3m에 위치한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한 수중 연설이 큰 화제가 됐다. 지구가열화가 현재 속도로 유지될 경우 나라가 50년 이내 수몰될 수도 있으며 전국민이 기후 난민이 될 지경에 놓였다며 국제 사회에 적극적인 대책을 호소한 것이다.

 

시카고 운하로 인해 미시시피강과 오대호 두 수생 권역이 연결되면서 발생한 아시아 잉어의 재앙(오대호 생태계에 아시아 잉어의 유입은 큰 위협이 됨)을 해결하기 위해 수문학적 분리가 절실하지만,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뉴올리언스 미시시피의 대홍수 이후 미시시피강 홍수 통제권을 국유화하고 나자 공병대는 제방을 연장했고, 범람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퇴적의 종말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사탕수수를 괴롭히는 딱정벌레 유충을 퇴치하기 위해 수수두꺼비를 호주 사탕수수 재배 지역 강과 연못에 방출했다. 애석하게도 딱정벌레 퇴치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독이 있는 수수두꺼비에 대한 경험이 없는 호주 토착종들은 수수두꺼비를 먹으려다 멸종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일어난 또 다른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다루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엔지니어와 유전 공학자, 생물학자와 미생물학자, 대기 과학자와 대기 기업가를 인터뷰했다. 그들은 예외 없이 자기 일에 열정적이었지만, 그 열정은 또한 예외 없이 의심으로 상쇄되었다. 전기 물고기 장벽, 콘크리트 크레바스, 가짜 동굴, 합성 구름에 들어있는 정신은 기술 낙관론이라기보다는 기술 숙명론에 가까웠다._p258

 

인류와 생명, 지구를 위해 연구하고 애쓰고 있는 많은 전문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지금 지구는 어떤 가능성도 열어놓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연구만을 위한 연구는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후위기의 기술적 대책을 고민할 때, 정치인들은 그 대책이 실현될 수 있는 법적 방안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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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 - 살 안찌고 사는 법, 개정증보판
존 A. 맥두걸 지음, 강신원 옮김 / 사이몬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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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자본주의가 심어준 건강한 음식에 대한 통념을 깨부수는 책이다

 


 

얼마 전, ‘사이몬북스의 책 사라진 암을 읽고 단순한 채식이 아닌 자연식물식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맥두걸 박사의 책을 포함한 많은 자연치유 관련 도서와 논문을 공부한 뒤 음식 관리, 습관 관리, 마음 관리를 통해 전립선암을 극복한 내용이었다. 그 책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당뇨와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신 엄마였다. 엄마는 이미 천연 조미료 사용, 유기농 음식 섭취, 밀가루 음식과 단 음식 조절 등의 식단 관리를 하고 계시지만, 계란과 올리브 오일, 유제품, 견과류 등을 많이 드시는 등 자연식물식과는 방향이 달랐다. 하지만 당수치 때문에 과일도 거의 못 드시는데 과일을 맘껏 먹으라니, 당뇨 환자인 엄마에게 함부로 권하기는 부담스러웠다. 자연식물식이 모든 질병에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맥두걸의 자연식물식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이 체중 감소는 물론 복용하고 있던 당뇨와 혈압약을 모두 끊게 되었다는 후기들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도 냉장고가 집집마다 들어서기 시작한 1900년대 중반 이전만 해도 고기는 항상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어쩌다 먹을 수 있는 잔치음식이었다는 말이다. 냉장고가 보급되고 공장식 축산업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뚱보왕국이 시작된 셈이다._p42


 

우리 선조들만 봐도 매일 꽁보리밥에 밭에서 캐거나 뜯어 온 채소와 된장이 주식이었고 현대의 우리가 집착하는 단백질을 얻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도 험한 일을 곧잘 했다. 식단에서 절대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단백질을 잔치 날에야 겨우 고기 구경하는(그것도 국에 들어가는 정도로)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보충했을까?

 


맥두걸 박사는 식물만으로 단백질은 충분하며 건강한 성인의 경우라도 하루 20g 이하의 단백질이면 되는데, 초과된 단백질은 에너지로도 사용되지 않고 탄수화물로 전환되지도 않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는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초과된 단백질은 신장과 간에서 거치는 제거 과정 중에 엄청난 양의 칼슘(뼛속) 손실을 일으켜 골다공증과 신장 결석을 초래한다.

 


자연식물식(Whole Food Plant·based Diet)’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채식이라는 개념과 조금 다르다. 이것은 고기, 계란, 생선, 우유, 각종 기름을 먹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식물만 먹는 채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살아있는 과일과 채소를 주로 먹고, 통곡물(현미, 감자, 고구마 등)을 추가하는 방식이다._p30

 


맥두걸 박사는 살이 찌는 원인을 지방이 많은 음식섭취움직이지 않는 생활로 본다.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인 칼 루이스도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힘든 고통이었는데 맥두걸 박사를 통해 자연식물식을 접하고 실천한 뒤 스트레스 없이 체중 유지와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2번의 금메달을 더 딸 수 있었다고 한다.



살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깨끗해졌고 시력도 좋아졌어요/ 위장병뿐만 아니라 고통스런 변비도 사라졌죠. 신경질적인 성격까지 차분하게 변했어요/ 허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관절염도 거의 나았어요. 지긋지긋한 소염 진통제도 이젠 필요가 없게 되었죠/ 음식습관을 바꾸면서 몸과 마음이 항상 가벼워요/ 혈당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콜레스테롤은 127까지 내려왔어요. 약은 모두 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다이어트 시작 전보다 식사량은 늘었는데 허리는 12인치나 빠졌습니다/ 배가 고프지도 않고 요요현상은 전혀 오지 않았어요.”

맥두걸 자연식물식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말이다.

 



맥두걸 박사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우리가 먹고 있는 가짜 음식(지방과 정제탄수화물 덩어리의 과자, , 케이트, 라면, 초콜릿 등)들은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 몸을 살찌우고 아프게 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배불리 먹되 한꺼번에 밀어 넣지 않고 충분히 씹어 입안에서부터 소화가 될 수 있게 하고, 충분히 먹고 20분 정도 소화할 시간이 지나고도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을 경우 더 먹으라고 한다. 구체적 목표를 정하는 것(: 몸을 00개월, 1년 안에 날씬하게 만들겠다)부터 시작해서 실천할 수 있는 과정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 실천해야할 라이프 스타일이었던 것입니다_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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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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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존재와 불변하는 기억 사이의 대립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_마르셀 프루스트



많은 철학자와 지식인들이 ‘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명확한 답도 없는 논쟁거리를 두고 왈가왈부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뭘까? 철학서를 많이 접해 보지도, 철학자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몇 권의 철학 관련 도서를 읽으며 도달한 철학의 필요성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철학은 평소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죽어있던 뇌를 굴려 전체적으로 뇌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어떤 현상이나 주제를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며, 내 삶에 대한 고찰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바쁜고 정신없는 일상에 쫓기듯 살다 보면 솔직히 철학적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끌어내는 책들을 읽고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 허먼 멜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프리드리히 니체, 윌리엄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알베르 카뮈] 이 책은 저자 미하엘이 10인의 작가들의 ‘삶과 죽음이란 문제에 대한 고찰’에 관해 탐구한 내용을 전해 준다.


「독자들이 그들 작품의 핵심 관심사를 이해하도록 돕고, 그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그 안에서 죽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면에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지 밝혀내고자 한다/ 책에 등장하는 대답들은 단지 세계와 세계 속 인간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하는 가설로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_p14


책의 두께와 ‘철학책’이라는 이유로 압도당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저자에게도 이 책을 쓰는 것이 ‘문학적·지적 모험’이었고, ‘책에 등장하는 작가 중 몇몇은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는 거의 알지도 못했다.’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세계는 지극히 나쁜 곳이며,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본질적으로 삶은 고통이며, 일시적인 고통의 유예가 ‘행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세계는 인간의 필요와 욕구, 야심과 열망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세계는 냉정하고 냉혹하다. 연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험악하고 무자비하며 비협조적이다.’고 보는 알베르 카뮈의 입장은 공감이 간다. 카뮈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원하는 것과 세계로부터 얻는 것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상황을 ‘부조리’라고 부르며 『칼리굴라』라는 희곡에 등장하는 광기 어린 로마 황제를 부조리한 세계에 빗대어 표현한다. 카뮈는 이렇게 무의미한 세계에서 삶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을 “철학의 근본적 과제”로 본다. 그리고 세계의 무의미함, 무심함을 결국 우리에게 자유롭게 선택하여 살 수 있게 하는 기회로 본다. 나는 『이방인』에서 자기 삶의 어떤 것에도 무관심하던 뫼르소를 통해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세상 앞에 무기력한 인간상? 아무렇게나 버려도 되는 삶을 말하는 것 같아 마음에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설명을 보고 정말 조금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뫼르소에게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의미가 없는 세계에서조차 좋은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 궁극적으로 무의미함에도 우리는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뭉게뭉게 뭉쳐 다니는 구름들”을 보는 능력이라든가 순전히 살아 있다는 경험이 있다.」 _p414


‘레프 톨스토이’는 일찍 부모님을 여읜 일 외에 82세까지 삶이 매우 순조롭고 성공적이었으나 늘 ‘자신이 충분히 괜찮지 않다’는 느낌에 시달렸다고 한다. 청년 시절부터 삶의 목적을 찾고자 했던 그는 결국은 죽음이 삶의 종착지라는 것에 깊이 고민했고 40세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는 죽음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사실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만약 죽음에 대한 지식이 이승에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특이한 종류의 지식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런 특이한 지식을 ‘믿음’이라 불렀다. 노년이 톨스토이는 의미있는 삶,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에 이르는 열쇠로 제시한 ‘보편적 사랑’, ‘공감이자 연민이자 용서’가 지금 우리 시대에 특히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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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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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꼭 필요한 다섯 단어는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쪄였다.

 


 

첫 문장을 쓰기 몹시 힘든 책이 있다. 도통 할말이 없는 책이거나 하고 싶은 말이 마음속에 가득 찬 나머지 서로 먼저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문장의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그렇다. 이 책은 당연히 후자다. 심윤경 작가의 책 영원한 유산에서 보았던 한 장의 사진이 첫 페이지에 담겨 있다. 할머니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다소 새침해 보이는 손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계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사진을 다시 보니, 왠지 할머니가 잠투정하는 손녀에게 예쁜 사람, 왜 그러나.”고 말씀하고 계시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자라는 온갖 비뚤빼뚤한 모습을 모두 예쁘다고 요약했고 분투하는 모습은 장하다고 했다. 어른이건 아이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입술을 삐죽이며 별나다고 했다. 더 나쁘면 고약하다였다._p78~79

 

언어의 미니멀리스트이셨던 할머니는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나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아우라 같이 은은하게 막내 손녀딸을 사랑하셨다. 저자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할머니의 간략한 언어 사용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깊은 사랑의 표현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할머니에 대한 예찬과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할머니가 남기고 간 강렬한 자식 사랑법을 저자가 딸 꿀짱아(애칭)’에게 적용하는 육아서 같기도 하다. 할머니의 말 없는 사랑법은 영원한 유산처럼 되물림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외동딸 꿀짱아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였는데 그 자그마한 아이가 등장함으로써 저자가 겪게 되는 당혹감과 좌절감, 자괴감을 나는 너무나 잘 알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저자의 유머러스한 표현들에 낄낄대며 봤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저렸는데 그 통증은 미안함 내지는 죄책감이었다.

 

나는 야단침의 효용과 쓸모에 대해 늘 고민하고 회의했다/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핏대를 올리며 무수히 많이 야단을 쳤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 무용하다는 깨달음은 일찍부터 희미하게 찾아왔다/내 성질과 좌절감에 못 이겨 폭발하고 있을 뿐, 이 행위는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_p80

 

방금 주의를 줬으나 돌아서면 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아들들로 인해 신랑과 나는 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고 만다. 물론 아무리 별난들 여자아이하나를 돌보는 할머니와 아무리 착한들 남자아이셋을 돌보는 나와 야단침의 유혹에 노출되는 빈도와 강도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저자의 못된 행동에도 근본적으로 사랑을 담은 마음으로 예쁜 사람 왜 그러나~”하고 다독여 줄 수 있는 너그러움과 혼낸다는 말이 고작 언성 높임 한번 없는 별나다!”라는 말이라는 사실이 나를 반성하게 한다. 나는 가끔 하지 않아도 될 못된 말을 퍼붓고 나서 나는 진정 이 정도 인간밖에 못 된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에 한동안 허우적댄다. 그 자괴감은 상품에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남은 스티커 자국처럼 끈적이고 불쾌한 기분에 괴롭다. 아이들에게만은 저자의 할머니처럼 나도 언어의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보통 아이가 속상해서 울면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괜찮아라고 말하는데, 사실 아이는 괜찮지 않거든. 저런, 이라는 말 속에는 정확한 공감이 숨어 있는 거야.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놀라고 속상해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말인 거지._p125

 

심리상담가이자 저자의 절친인 친구가 저자에게서 배운 저런이란 말을 놀이치료 상황에서 적용해보고 그 효과에 대해 극찬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매우 막내다운 우리집 막둥이는 수시로 징징댄다. ‘~마아아아아 형아가하아아아~ 나만 안해주고오오오오~ 어쩌구저쩌구속상한 상태로 달려와서 징징대면 속으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지만 종종 아이고 저런~ 그랬어~”라고 하고 토닥여주면 금방 괜찮아져서 휑하니 갈 때가 있다. 나도 이미 저런!”의 효과를 경험했지만 사실 늘 통하지는 않기도 하고 내 마음의 상태로 저런~에서 끝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오늘부터 다시 마법의 단어 저런!”을 좀더 실생활에 적용해보려 한다.

 

잔소리 없이 믿음의 눈빛으로 나를 길러주신 나의 위대한 엄마를 떠올리며 서평을 갈무리한다.

 

아름다운 할머니의 사랑을 소개해주신 작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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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고수 - 신 변호사의 법조 인사이드 스토리
신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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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양쪽 당사자의 입장을 반반씩 본다는 뜻이 아니라 양쪽 당사자 입장을 모두 온전히 본 다음에 균형 잡힌 판사의 눈으로 다시 본다는 뜻이다._p208

 


 

어제 둘째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느닷없이 장투더다투더원!”라고 하며 나의 리액션을 기다렸고 그 기대하는 표정이 귀여운 나는 마지못해 정투더영투더선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변호사로서 겪게 되는 내적 갈등과 명백히 무죄인 피고인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사건의 사례를 소개하거나, 극적이며 성공적인 승소사례들로 단순히 감동을 주려는 의도로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변호사, 판사, 검사 각 당사자들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보고 판단하는 변호사, 판사의 모습이 흥미롭고 변호사의 일도 열정만 가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열정 없이는 지루하고 기계적인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의 고수는 막 10년 차가 된 30대의 변호사였던 저자가 초심자의 용기로 사건 하나를 맡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던 시절에 쓴 책이라고 한다. 저자 본인의 사건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물론 인간적인 정에 흔들리거나 우영우 변호사 같은 무모한 도전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른 변호인들의 잊지 못할 변론들을 글로 쓰기 위해 열정과 지혜를 가지고 사건을 처리해온 변호사 10인을 찾기 위해서고군분투한다. 그중 몇 분의 변호사들, 판사와 대화와 변론 사례를 통해 사형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간통죄 존폐’, ‘판사의 도덕적 양심과 법적 양심 사이의 갈등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법조계 골품제도라는 말이 있단다.

 

출신대학, 재학중 합격 여부, 사법 시험 성적, 연수원 성적, 이 네 가지 항목에서 모두 상위 그룹인 경우 성골, 한 항복이 처지면 진골, 두 항목이 처지면 6두품, 세 항목이 처지면 잔반, 네 항목이 다 처지는 경우는 평민이라는 것이다._p245

 

어디서든 사람들을 등급을 나눠 다르게 대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 것 같아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성골들 중에서 인품까지 뛰어난 경우 교수님들은 금상첨화라고 총애를 아끼지 않았다는데 그중 한 명인 이 판사의 고뇌를 보며 판사라는 자리의 무게감을 통감하게 됐다.

 

사건 요약> 결혼 10년차에 두 딸을 둔 공무원 박순애, 원만하지 않은 결혼생활 중 남편이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냄. 박 씨는 양육권과 재산 분할 및 위자료를 요구. 남편은 재산 분할 거부. 어영부영 3년의 시간이 흐르던 중 박 씨에게 애인이 생김.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미행, 경찰을 대동해 모텔에서 벌거벗고 있는 둘을 현장을 덮침.

 

여러 정황상 유죄라는 판단이 불가피해 보였으나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이 판사에게 이 사건이 넘어온 것이다. 이 판사는 왜 고민하는 것일까? 무죄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면 간통죄는 형법에 들어가므로 징역형이 나올 것이고, 공무원이라는 직업도 잃게 되며 벌금까지 물게 된다.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고 이미 부부라고 볼 수 없는 관계였던 점을 감안하면 너무 가혹한 벌이었다.

무죄라 하자니 양심에 반하고 유죄라 하자니 피고인의 처지가 너무 안된상황인 것이다. 선고 기일까지 미루며 고민하지만 결국은 유죄 판결을 내렸고, 선고를 하고 나서야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제청결정(재판 중에 어떤 법률이나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의 헌법재판을 해달라고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는 결정)’이란 방법이 떠올랐는데, 도 판사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내려 선고가 유예됐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 7년이 되어가는데 간통죄 폐지를 주장한 김 변호사가 걱정했던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전히 간통죄가 있어야만 자신의 인간다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법적 보호를 받고 있을지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나의 내면에서 사법제도에 의한 해결에 대해 갈수록 회의가 깊어졌던 것을 가장 큰 이유로 10년간 법정의 고수 속편을 쓰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뼈아픈 성장통에 관한 기록이 담긴 속편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속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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