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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고수 - 신 변호사의 법조 인사이드 스토리
신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공정한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양쪽 당사자의 입장을 반반씩 본다는 뜻이 아니라 양쪽 당사자 입장을 모두 온전히 본 다음에 균형 잡힌 판사의 눈으로 다시 본다는 뜻이다.」 _p208
어제 둘째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느닷없이 “장투더다투더원!”라고 하며 나의 리액션을 기다렸고 그 기대하는 표정이 귀여운 나는 마지못해 “정투더영투더선”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변호사’로서 겪게 되는 내적 갈등과 명백히 무죄인 피고인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사건의 사례를 소개하거나, 극적이며 성공적인 승소사례들로 단순히 감동을 주려는 의도로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변호사, 판사, 검사 각 당사자들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보고 판단하는 변호사, 판사의 모습이 흥미롭고 변호사의 일도 열정만 가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열정 없이는 지루하고 기계적인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의 고수』는 막 10년 차가 된 30대의 변호사였던 저자가 ‘초심자의 용기로 사건 하나를 맡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던 시절’에 쓴 책이라고 한다. 저자 본인의 사건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물론 인간적인 정에 흔들리거나 우영우 변호사 같은 무모한 도전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른 변호인들의 잊지 못할 변론들을 글로 쓰기 위해 ‘열정과 지혜를 가지고 사건을 처리해온 변호사 10인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중 몇 분의 변호사들, 판사와 대화와 변론 사례를 통해 ‘사형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간통죄 존폐’, ‘판사의 도덕적 양심과 법적 양심 사이의 갈등’ 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법조계 골품제도’라는 말이 있단다.
「출신대학, 재학중 합격 여부, 사법 시험 성적, 연수원 성적, 이 네 가지 항목에서 모두 상위 그룹인 경우 성골, 한 항복이 처지면 진골, 두 항목이 처지면 6두품, 세 항목이 처지면 잔반, 네 항목이 다 처지는 경우는 평민이라는 것이다.」 _p245
어디서든 사람들을 등급을 나눠 다르게 대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 것 같아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성골들 중에서 인품까지 뛰어난 경우 교수님들은 ‘금상첨화’라고 총애를 아끼지 않았다는데 그중 한 명인 이 판사의 고뇌를 보며 ‘판사라는 자리의 무게감’을 통감하게 됐다.
사건 요약> 결혼 10년차에 두 딸을 둔 공무원 박순애, 원만하지 않은 결혼생활 중 남편이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냄. 박 씨는 양육권과 재산 분할 및 위자료를 요구. 남편은 재산 분할 거부. 어영부영 3년의 시간이 흐르던 중 박 씨에게 애인이 생김.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미행, 경찰을 대동해 모텔에서 벌거벗고 있는 둘을 현장을 덮침.
여러 정황상 유죄라는 판단이 불가피해 보였으나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이 판사에게 이 사건이 넘어온 것이다. 이 판사는 왜 고민하는 것일까? 무죄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면 간통죄는 형법에 들어가므로 징역형이 나올 것이고, 공무원이라는 직업도 잃게 되며 벌금까지 물게 된다.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고 이미 부부라고 볼 수 없는 관계였던 점을 감안하면 너무 가혹한 벌이었다.
‘무죄라 하자니 양심에 반하고 유죄라 하자니 피고인의 처지가 너무 안된’ 상황인 것이다. 선고 기일까지 미루며 고민하지만 결국은 유죄 판결을 내렸고, 선고를 하고 나서야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제청결정(재판 중에 어떤 법률이나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의 헌법재판을 해달라고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는 결정)’이란 방법이 떠올랐는데, 도 판사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내려 선고가 유예됐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 7년이 되어가는데 간통죄 폐지를 주장한 김 변호사가 걱정했던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전히 간통죄가 있어야만 자신의 인간다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법적 보호를 받고 있을지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나의 내면에서 ’사법제도에 의한 해결‘에 대해 갈수록 회의가 깊어졌던 것’을 가장 큰 이유로 10년간 법정의 고수 속편을 쓰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뼈아픈 성장통에 관한 기록이 담긴 속편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속편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