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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일기장 - 백문백답으로 읽는 인간 다산과 천주교에 얽힌 속내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본 서평은 김영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에게 1975년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년 가까이 다산 정약용에 대해 연구를 해 온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는 <다산의 일기장>을 통해 최초 완역 상세 해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를 꺼낸다. 다산은 천주교를 제외하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정민 교수는 말한다. 다산은 초기 천주교회 신부이자 주문모 신부를 탈출시킨 장본인, 교회 지도자 이존창을 검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다산의 일기장>은 정민 교수가 다산의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을 연구하면서 궁금한 질문들을 모아 백문백답으로 만들어 냈다.
<다산의 일기장>은 1975년, 다산이 33세일 때부터 35세 사이에 2년 동안 쓴 일기를 담고 있다. 충청도 금정으로 좌천이 되어 쓴 금정일록, 금정일록의 부록인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 일록 이렇게 4개의 일기를 통해 다산이 처해있던 상황들을 유추해본다. 자신의 내밀한 술회나 심경고백이 담긴 일기장이 아니라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다산 일기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치적 행위, 동선에 따른 정황,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들, 인용한 글 등이 담겨 있다. 마치 암호와도 같아서 이승훈을 이형이라고 기술하고 이승훈이 머물렀던 예산 유배지를 감사(구덩이에 처박힌 듯 지내는 집)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다산의 일기장에 담긴 암호들을 하나씩 풀어 헤친 정민 교수의 노고가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1795년 정조는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을 좌천 또는 유배시킨다. 유배의 목적은 입적소지로 자신이 천주교와 관련이 되지 않았음을 자취로 입증하고 뜻을 분명하게 밝히라는 것이었다. 다산이 주문모 신부를 구해준 사실이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던 시점에서 금정으로 유배되었고 이에 정약용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교회 지도자 이존창을 검거하고 지역 천주교 조직을 무너뜨린다. 과연 다산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죽란일기>를 끝에 갑자기 1794년 강세정이 이가환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한 것도 분명한 의도가 있다. 처남 이승훈의 석방 소식 앞에 의도적으로 강세정의 비굴한 편지를 넣은 건 이들에 의한 비방이 실제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 이들의 공격을 사전에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씩 의도를 파악하다보면 다산의 일기장이 결코 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산은 “나는 품성이 조급해서 궁리를 함에 있어 본래 오래 견딜 수가 없다. 혹 한 가지 일이나 이치에 대해 궁리하다가 때로 꽉 막혀서 통하지 않을 때는 문득 심사가 번다하고 다급해지고 정신이 거칠어져 미혹됨을 느껴서, 절반쯤 하다가 그만둠을 면치 못하였다. 독서에서 특히 이러한 병통이 있었다.”고 했다.
- <다산의 일기장>, 금정일록 p.286 -
다산의 조급하고, 견디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부분이다. 다산에게 쏟아지던 각종 비난에 대한 대응들을 전략적으로 일기에 배치하며 언행을 가볍게 해서 비방과 재앙을 자초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한다. <다산의 일기장>을 통해서 서학이라는 거대한 체계와 대면한 다산과 18세기 조선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다산에 대한 연구는 갈 길이 멀지만 하나씩 체계를 이뤄나가는 모습들이 감격스럽다. 학자이자, 정치가, 신자이자 배교자였던 인간 다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무려 690페이지의 두께만큼이나 켜켜히 쌓인 <다산의 일기장>을 통해 다산의 면밀한 세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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