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조밥에 푸른 아욱국을 곁들인 아침밥을 기념하여 옛 선비들이 '노규황량사'(露葵黃粱社) 글씨 액자를 만든 것이 아침 식탁 화제에 올랐다. 일설에는 다산(정약용) 선생이 그런 아침밥을 차리고 길손은 추사(김정희)이었고 서액 글씨가 추사체라고 하였다. 다산이 애호한 시구 '노규'(露葵, 아욱)과 '황량'(黃粱, 누런 조)을 하룻밤 같이 묵은 추사가 써줬다는 이야기였다.  
_아욱과 단풍나무 잎의 공통점을 아니? 

_아욱은 단풍나무 잎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어요. 
_중국단풍나무 잎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비교가 안 되는구나.  

_언제 넣었는지 보리새우의 붉은 빛이 아욱 속에 섞여 있었다. [중략] 깻잎에 밥을 싸서 입 안에 넣으며 볼이 미어지게 웃었다. 작가님 글에서요.

_새우 중에서도 '보리새우'이고 '볼'이 재밌게 되었네. 
_보리새우가 맛과 빛깔이 좋지요.
_붉은 빛은 새우를 익히면 나타나지.
_황진이 볼은 무엇과 같았을까요?
_이태준의 단행본 분량 소설 '황진이'(1936)에서는 표현한 것을 볼게.

 

밤떡처럼 뽀얗던 볼

 

_밤떡은 밤을 섞어 넣어 만든 떡이 아닌가요?
_쌀가루에 밤을 통째로 섞어서 시루에 찌거나, 밤을 삶아 으깬 것에 찹쌀가루와 꿀을 섞어 넣어 시루에 쪄.

 

남편은 붉은 빛 새우에 언젠가 여름날 아침에 만난 새 이야기 써 놓은 것을 꺼냈다.
전깃줄에 앉은 새 하면 제비가 생각날지 모른다.  까치를 머릿속에 떠올릴까? 참새를 흔히들 연상하지 않겠느냐고 할 듯하다. 야산 산자락을 감도는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외가닥 전깃줄에 동그맣게 앉아 있는 직박구리를 쳐다본다. 평소에는 무리를 지어 시끄럽게 악을 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성에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가 직박구리다. 새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면 귀염성이 느껴진다. 영어명 'brown-eared bulbul'에서도 보듯이 귀 부분이 갈색을 띠어 단조로울 새 빛깔에 변화를 준다. 만난 새들은 참새, 까치, 직박구리, 박새, 청딱따구리, 멧비둘기, 오색딱따구리, 꾀꼬리. 청딱따구리는 낭랑한 울음소리가 듣기 좋다. 멀리서 날아가는 오색딱따구리 두 마리, 붉은 빛 스커트 같은 배 아래 붉은 색이 유난히 눈에 띈다. 마침 부근을 나는 꾀꼬리는 노랑 원피스 차림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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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쌈(부부싸움)의 상대방이 하는 잔소리는 풀로 치면 잡초일까? 부부싸움에서 이기려면 잡초를 약초로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댕댕이덩굴은 잡초 같지만 천하장사 항우도 댕댕이덩굴에 넘어진다는 속담에 나오기도 한다. 줄기는 바구니 등 세공용품에 쓴단다. 예부터 댕댕이덩굴뿌리는 민간에서 약초로 애용되어 오기도 했단다. 상대방의 잔소리에서 약 성분을 걸러내는 눈은 잡초에서 약초로 변신시키는 지혜와 다름없겠다.
부부쌈(부부싸움)의 상대방이 하는 잔소리는 풀로 치면 잡초일까? 부부싸움에서 이기려면 잡초를 약초로 바꿔놓는 혀가 필요하다. 잔소리의 단순반복은 단조롭다. 수사법으로 악세서리 효과를 내어보자. 수사법은 소설 같은 데서 얻어오면 좋다. 부부싸움도 이기려면 다른 세상일처럼 공과 품을 들여야 한다. 

 

_풀물이 들어 있는 [고양이] 뺨 한쪽이 여전히 파랬다. 작가님 글에서요.
_'밥풀이 묻어 있던 뺨 한쪽에 여전히 밥풀이 남아 있었다.'와 멋과 맛이 다르네.
_밥풀은 풀이 된 밥알이죠. 밥이 된 풀이 있어요.

저녁에 워라말이 풀을 조금 먹었다.
1597년 6월 19일 이순신 씀
夕小月羅馬少食草 

 

_이 워라말은 작고 털빛이 얼룩얼룩한 말이야. 밥풀의 풀과 같은 풀이 아니지만 괜찮네.
_밥이 된 풀과 같은 풀 이야기를 해줘요.
_덧글 주고받은 것 들려줄게.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었던 엄마야. 모스크바대에서 러시아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어. 지도교수의 강도 높은 지도에 고생을 하고 나서 공부와 담을 쌓았어. 러시아에서는 외국인은 자국 대학 교단에 설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박사학위를 따도 현지에서는 쓸모가 없어. 

 

나 : 빗자루는 어떤 베개를 베고 누울까요? 
모스크바 엄마 : 풀베개지요.
나 : 빗자루는 무슨 이불을 덮고 자죠?
모스크바 엄마 : 아무것도 덮지 않던데요?..ㅎ
나 : 자장가는요? 마가목이 제 나뭇잎으로 연주를 해주나요?
모스크바 엄마 : 빗자루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는 라일락이랍니다. 향기가 진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자장가를 불러주었겠지요?
나 : 빗자루는 어떤 꿈을 꿀까요? 날아가는 빗자루가 되어...
모스크바 엄마 :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다구요?..ㅎ
나 : 빗자루는 머리 빗질은 빗으로 할까요?
모스크바 엄마 : 어려운 문제입니다.
나 : 빗자루는 장례는 화장을 할까요?
모스크바 엄마 :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으스스하고 찬바람이 휭~ 부네요.

 

_이렇게 주고받은 덧글에 딴 엄마의 반응은 없었어요? 
_아이디가 '개살구'란 엄마가 한마디 달았어. 

ㅎㅎㅎ, 선문답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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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건너 북한산, 도봉산은 물론이고 동네 산이라고 할 수락산, 불암산도 눈 앞에서 사라질 정도로 퍼붓는 폭설에 후륜구동 하는 차들은 눈길에 비탈이 조금만 져도 바퀴가 헛돌고 차체가 결가부좌 돌부처처럼 앉아서 사바 세상을 바라보았고 사륜구동 차들이 눈 세상을 사방팔방 돌아다녔던 엊그제였다. 어딘가 미끌할 눈길에 볼이 얼얼할 추위에 바깥나들이가 뜻과 어긋나고 벽에 걸린 소품 그림이 눈길을 끌어당기는 시간이었다.

_바젤에 가보자는 말도 베니스에 가보자는 말도 베니스에 가보자는 말도 내게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림 속의 검은 물이 흘러나와 [후략] 작가님 글에서요.
_미술관이 있는 바젤과 물의 도시 베니스. 그림 속의 검은 물이 흘러나와. 글에서 물밑 작업이 느껴지네.
_베니스의 상인은 물밑 협상이 아니고 대어놓고 말했지요.
_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인물 샤일록과 발음이 비슷하여 학창 시절 급우들이 지어준 별명이 샤일록 박이라는 분이 계셔.
_고서 동호회 같은 회원이라고 하셨지요?
_응. 샤일록 박은 고전영화 마니아이고 마릴린 먼로의 이마가 넓다고 말하곤 했어.
_마당 이마이네요.
_마당 이마를 고서 동호회 월례 모임에서 화제에 올린 적이 있어.
_퇴계 이 황 선생이 마당 이마라고 했어요. 관련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읽어볼게요.
   
이 황은 시선을 끌 정도로 이마가 넉넉하게 넓어서 지방행정기관장을 지내던 숙부 이 우가 넓을 광, 이마 상 하여 '광상'이라는 별명으로 이름 대신 불렀다. 이 황의 제자이며 이 우의 외손인 오수영의 글 모음 '춘당문집'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춘당은 오수영의 호이고, 문집은 시 등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광상'은 '마당 이마'쯤으로 옮길 수 있겠다. 이 우는 조카 이 황에게 유교의 기본 경전인 논어를 가르쳐 주었다. 

_마당 이마 마릴린 먼로 이야기를 할게.
조세프 맨케비츠(Joseph L. Mankiewicz)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쓰고 1950년에 내놓고 호평을 얻은 영화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에 마릴린 먼로가 보인다. 1926년 생 먼로가 당시 이십대 때다. 유명 여배우 베트 데이비스(Bette Davis)와 앤 백스터(Anne Baxter)가 주역이고 먼로는 초창기로 단역이었다. 앤 백스터가 맡은 이브 이야기 중에 군인으로 가서 전사했다는 남편 이름이 '에디'인데 먼로와 결혼하고 군인으로 간 뒤 헤어진 남자 이름 '테디'를 생각나게 한다.
 
_남자 배우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_캐리 그랜트에서 넓은 이마가 한몫 한다. 히치콕 감독의 1959년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에서 캐리 그랜트가 주연을 맡았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미 중서부 사우스 다코타 주 러시모어 산의 큰 바위 얼굴에서 아슬아슬한 연기로 긴장을 피날레로 당긴다.
_거기 암벽 맨 오른쪽에는 링컨 얼굴이 새겨져 있어요. 링컨도 마당 이마를 갖고 있어요.
_링컨을 존경하고 링컨 덕을 보는 오바마 미 대통령도 마당 이마 '광상'이야.

남편이 오엽송 잣나무 둥치에서 김치 하나 둘 셋 하고 뱁새를 찍은 듯한 사진을 보여줬다. 남편의 이마는 좁고 헬리콥터가 내려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이마는 넓이를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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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연재소설님의 "[신경숙 소설]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제53회"

바젤에 가보자는 말도 베니스에 가보자는 말도 내게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림 속의 검은 물이 흘러나와 [후략] 작가님 글에서. 미술관이 있는 바젤과 물의 도시 베니스. 그림 속의 검은 물이 흘러나와.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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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연재소설님의 "연재를 마치며 - 신경숙"

반가워요. 폭설에는 후륜구동이 아닌 사륜구동이 힘을 내고 세상살이가 돌아가네요. 12월은 보름달이 두 번 떴죠. 새해를 앞두고 이런 일이 생기려면 2028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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