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건너 북한산, 도봉산은 물론이고 동네 산이라고 할 수락산, 불암산도 눈 앞에서 사라질 정도로 퍼붓는 폭설에 후륜구동 하는 차들은 눈길에 비탈이 조금만 져도 바퀴가 헛돌고 차체가 결가부좌 돌부처처럼 앉아서 사바 세상을 바라보았고 사륜구동 차들이 눈 세상을 사방팔방 돌아다녔던 엊그제였다. 어딘가 미끌할 눈길에 볼이 얼얼할 추위에 바깥나들이가 뜻과 어긋나고 벽에 걸린 소품 그림이 눈길을 끌어당기는 시간이었다.
_바젤에 가보자는 말도 베니스에 가보자는 말도 베니스에 가보자는 말도 내게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림 속의 검은 물이 흘러나와 [후략] 작가님 글에서요.
_미술관이 있는 바젤과 물의 도시 베니스. 그림 속의 검은 물이 흘러나와. 글에서 물밑 작업이 느껴지네.
_베니스의 상인은 물밑 협상이 아니고 대어놓고 말했지요.
_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인물 샤일록과 발음이 비슷하여 학창 시절 급우들이 지어준 별명이 샤일록 박이라는 분이 계셔.
_고서 동호회 같은 회원이라고 하셨지요?
_응. 샤일록 박은 고전영화 마니아이고 마릴린 먼로의 이마가 넓다고 말하곤 했어.
_마당 이마이네요.
_마당 이마를 고서 동호회 월례 모임에서 화제에 올린 적이 있어.
_퇴계 이 황 선생이 마당 이마라고 했어요. 관련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읽어볼게요.
이 황은 시선을 끌 정도로 이마가 넉넉하게 넓어서 지방행정기관장을 지내던 숙부 이 우가 넓을 광, 이마 상 하여 '광상'이라는 별명으로 이름 대신 불렀다. 이 황의 제자이며 이 우의 외손인 오수영의 글 모음 '춘당문집'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춘당은 오수영의 호이고, 문집은 시 등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광상'은 '마당 이마'쯤으로 옮길 수 있겠다. 이 우는 조카 이 황에게 유교의 기본 경전인 논어를 가르쳐 주었다.
_마당 이마 마릴린 먼로 이야기를 할게.
조세프 맨케비츠(Joseph L. Mankiewicz)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쓰고 1950년에 내놓고 호평을 얻은 영화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에 마릴린 먼로가 보인다. 1926년 생 먼로가 당시 이십대 때다. 유명 여배우 베트 데이비스(Bette Davis)와 앤 백스터(Anne Baxter)가 주역이고 먼로는 초창기로 단역이었다. 앤 백스터가 맡은 이브 이야기 중에 군인으로 가서 전사했다는 남편 이름이 '에디'인데 먼로와 결혼하고 군인으로 간 뒤 헤어진 남자 이름 '테디'를 생각나게 한다.
_남자 배우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_캐리 그랜트에서 넓은 이마가 한몫 한다. 히치콕 감독의 1959년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에서 캐리 그랜트가 주연을 맡았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미 중서부 사우스 다코타 주 러시모어 산의 큰 바위 얼굴에서 아슬아슬한 연기로 긴장을 피날레로 당긴다.
_거기 암벽 맨 오른쪽에는 링컨 얼굴이 새겨져 있어요. 링컨도 마당 이마를 갖고 있어요.
_링컨을 존경하고 링컨 덕을 보는 오바마 미 대통령도 마당 이마 '광상'이야.
남편이 오엽송 잣나무 둥치에서 김치 하나 둘 셋 하고 뱁새를 찍은 듯한 사진을 보여줬다. 남편의 이마는 좁고 헬리콥터가 내려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이마는 넓이를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