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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평점 :
최신형 헬리콥터 빅 B,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신양. 어쩌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개체가 만나 엄청난 두께의 소설이 되었다. (700P에 육박하는 어머어마함) 빅 B가 출정(?)하는 날, 헬리콥터가 납치당한다. 그것도 원전 바로 위에 호버링한 채로, 어린아이 하나가 타고 있는 상태로. 범인은 전국의 원전 가동을 멈출 것을 지시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가 타고 있는 헬리콥터는 원자력 발전소로 그대로 추락할 것이고, 아이뿐 아니라 주변 일대까지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다.
책의 전반부까지는 게이타 군의 구출작전에 혼을 빼앗기고, 남은 후반부에서는 범인 색출이 시작되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원자력 발전과 지역주민, 직원들과의 갈등이 드러난다. 어릴 적 토론 수업에서 한 번쯤 다뤄봤을 원자력 발전소의 설립, 존폐에 대한 토론과 갈등.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단순한 갈등을 넘어서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모한 대응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퐉! 쓰면서 보게 되더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면 결국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
이 말을 들은 멤버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윽고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익 우선주의는 좋은 게 아니야."
그러자 미시마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주의 얘기가 아니라 책임을 얘기하는 거잖아. 우선은 돈을 벌어야지. 나머지는 그다음 얘기 아닐까."
(중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우선 그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거라고 봐. 그러려면 이익을 남겨야지.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 되는 걸 만들거나 고급하는 건 그 수단일 뿐이야.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것 역시 일단은 이익을 남겨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환경 보호라는 건 당연히 지켜야 할 룰일 뿐이야."
- p. 229
가끔 느끼는 거지만, 소설가란 정말 다양한 분야에 있어 폭넓은 지식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다. 나야 원자력이나 무선조종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파내려 갔을 지식은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도면이나 연구소의 모습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형상이었으니까.
일본에서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책 같던데, 일본 원전 사고도 있었고 해서 이번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듯싶다. 얼마 전 우리나라도 지진 피해가 상당했었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긴장감에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작은 조각들이 얼기설기 맞춰지면서 최종 메시지가 드러났을 때, 이 모든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어쩌면 소름 끼치는 사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