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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ㅣ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평점 :
"그리고 만약 범인이 죽을 작정이었다면,"
그녀가 입술을 한 번 핥고 나서 말을 이었다.
"너저분한 도쿄보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를 골랐을 것 같아. 만일 이곳에 뭔가 추억이 있다면 더구나......"
나카니시 다카코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카니시 다카코의 한마디는 지금까지 이러니저러니 했던 대화를 일시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이 있었다. 이래서 여자의 직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녀처럼 아무 생각이 없는 여자도 열 번에 한 번은 유효한 말을 한다. 그것도 상당히 유효한 말을.
- P.228 중에서
오디션에 통과한 7명의 연극배우는 어느 한적한 산장에 모인다. 연출가인 도고는 나흘간 단원들을 산장에 밀어 넣고, 이곳이 폭설 때문에 고립된 완전한 밀실이라고 가정한다. 그 나흘의 시간 동안 산장지기나 다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버텨낸다면, 이곳에서의 단원들의 행동을 토대로 주연 배우와 각자가 맡을 역할이 정해진다. 하지만, 외부에 연락을 하는 순간 모두의 오디션 합격은 취소. 아이디어가 고갈된 연출가의 괴짜 행동이라고 생각한 단원들은 어느새 첫 번째 밤을 맞이한다. 다음 날 레크리에이션 룸에서 살인 현장에 대한 설정이 적혀있는 쪽지가 발견되고, 피아노를 치던 아쓰코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매일 밤 한 명씩 사라지는 산장, 그리고 구겨진 상태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흉기에 대한 쪽지. 이야기는 7명의 오디션 합격자 사이에서 유일한 외부인인 구가 가즈유키의 독백이 중간중간에 섞인 채로 서술된다. 완전한 외부인의 입장에서 극단 내부에서 암암리에 숨기고 있는 사건들을 하나씩 밝혀내고, 실종된 단원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헤쳐 간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극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리얼한 도구가 발견되고, 과연 이렇게나 완벽한 사건 연출이 멀리 떨어진 연출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어쩌면 철저히 외부인을 표방하는 가즈유키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디션을 빙자한 살인극을 꾸민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책 제목 때문에라도 다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인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되는데, 읽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줄거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비슷한 복선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쿨하게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출간 연도를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92년도에 나온 작품이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 스타일, 《살인 현장은 구름 위》, 《명탐정의 저주》 같은 작품과 비슷한 결의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의 심도 있는 반전이나 사회상을 반영하는 살짝 무거운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살짝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에 가깝달까. (이것은 가즈유키의 가벼운 것 같은 독백도 한몫한다.)
요즘처럼 무더운 이 여름에 눈 덮인 산장을 상상하며, 과연 범인은 누구! 이유는 무엇! 을 고민하면서 읽어보면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