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 역사, 형식, 이론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1
한스 포어랜더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0 페이지 남짓의 얇고 손에 딱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의 책, 민주주의 입문서...! 를 기대하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과거의 나! (몹시 후려쳐주고 싶다.) 고등학교 때 사회시간의 기억이란 '민주주의=가시밭길' 뿐이었던 지라, 이론적 베이스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몽키스키외', '토크 빌', '존 스튜어트', 같은 이름이 나와도 "뭐지... 몬테크리스토 백작인가?" 라고 받아칠 뿐. (앗, 나의 무식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굉장히 이 책이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 또는 사건은 부연설명이 없이 (두어 번 정도는 옮긴이의 역주가 포함되어 있지만) 단편적으로 "번쩍!"하고 등장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인물의 사상이라던가, 사건이 발생한 배경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 그 예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언급할 때,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배경설명 없이 정말 실패한 결과에 대해서만 간략히 이야기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무래도 번역서이다 보니, 문장 자체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달까?

이러한 '현실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문제와 구조적 결함을 분석하기 위한 수준 높은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 이론은 민주주의 국가가 항상 과중한 요구를 받을 위험에 처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 P.177 정치적 공란과 미디어 中에서


위의 문장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는 없지만... '수준 높은 경험적 증거' 또는 '과중한 요구를 받을 위험'이라는 표현이 잘 와닿지 않는다. (요건 나의 문해력이 짧아서인 이유가 크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정치인의 공약과 투표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나 아테나이 폴리스의 한계 - 자유롭지 못하고 평등하지 못한 사람은 시민이 아니었다. - P.50 폴리스 민주주의 中에서 - 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우리가 정치, 또는 민주주의로 대변하는 개념을 정말 재미있게 설명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쉽게 읽으려고 (=대중교통에서 후루룩~ 읽으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각잡고 앉아서 필기해가며 읽으면 그나마 내가 아는 단어로 조합된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입문서로는 적당하지 않지만, 사회학적인 개념이 어느 정도 쌓여있는 사람이 개론서 정도로 읽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대신에 민주주의와 관련된 개념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러프하게 한 번 훑어보고 관심이 가는 시대별로 파고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 이용약관
케이시 지음 / 플랜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마음 이용약관》이라는 책 제목을 보면 자기계발서 같고, 모스부호가 섞인 제목보다 위에 있는 글들을 보면 에세이 같다. 과연 이 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책이 썩 예쁘지*가 않았다. (* 글자체, 자간과 경간 등의 간격이 어우러진 비율이 예쁜 책)

그래서였을까. 답지 않게, 책을 읽으면서 묘하게 불편했다. 절반 정도 읽다가 책을 덮었는데, 두껍지도 않은 이 얇은 책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지하철에서 다시 책을 펼쳤다. 비문인가, 싶은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 날것의 정돈되지 않은 글의 느낌에 가까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거리낌이 있었다. 왜 이런 글이 불편할까, 를 다시 생각해 봤는데, 요즘 양산되어 나오는 출판사에서 보기좋고 먹기좋게 예쁘게* 다듬어져 나온 글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서였던 듯. (* 글쓴이가 쓴 것 같지 않고, 편집자느님의 손에서 완벽하게 다시 재탄생한)

그래서 책 제목이나 레이아웃을 조금 흘겨보면서 (취향에 안맞았다.) 흐름대로 글을 차분히 읽었더니, 의외로 재미있게 잘 쓴 글이 아닌가? 특유의 개그코드는 내 취향이었고, 현재를 덤덤히 살아내는 모습은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래간만에 만난 공감 포인트가 높은 글이었다. 물론, 책을 정말 예쁘게 만드는 출판사를 만났으면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꾸며진 모습보다는 완성되지 않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매력적인 글이 아닌가 싶다.

시간은 나를 지극한 현실주의자로 만들었다. 하루살이의 내년 짝짓기 계획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세월이었다. 영원이라는 환시를 걷었다. 영원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 영원하지 않다는 다큐는 나를 담백하게 만들었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만약 범인이 죽을 작정이었다면,"

그녀가 입술을 한 번 핥고 나서 말을 이었다.

"너저분한 도쿄보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를 골랐을 것 같아. 만일 이곳에 뭔가 추억이 있다면 더구나......"

나카니시 다카코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카니시 다카코의 한마디는 지금까지 이러니저러니 했던 대화를 일시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이 있었다. 이래서 여자의 직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녀처럼 아무 생각이 없는 여자도 열 번에 한 번은 유효한 말을 한다. 그것도 상당히 유효한 말을.

- P.228 중에서


오디션에 통과한 7명의 연극배우는 어느 한적한 산장에 모인다. 연출가인 도고는 나흘간 단원들을 산장에 밀어 넣고, 이곳이 폭설 때문에 고립된 완전한 밀실이라고 가정한다. 그 나흘의 시간 동안 산장지기나 다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버텨낸다면, 이곳에서의 단원들의 행동을 토대로 주연 배우와 각자가 맡을 역할이 정해진다. 하지만, 외부에 연락을 하는 순간 모두의 오디션 합격은 취소. 아이디어가 고갈된 연출가의 괴짜 행동이라고 생각한 단원들은 어느새 첫 번째 밤을 맞이한다. 다음 날 레크리에이션 룸에서 살인 현장에 대한 설정이 적혀있는 쪽지가 발견되고, 피아노를 치던 아쓰코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매일 밤 한 명씩 사라지는 산장, 그리고 구겨진 상태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흉기에 대한 쪽지. 이야기는 7명의 오디션 합격자 사이에서 유일한 외부인인 구가 가즈유키의 독백이 중간중간에 섞인 채로 서술된다. 완전한 외부인의 입장에서 극단 내부에서 암암리에 숨기고 있는 사건들을 하나씩 밝혀내고, 실종된 단원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헤쳐 간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극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리얼한 도구가 발견되고, 과연 이렇게나 완벽한 사건 연출이 멀리 떨어진 연출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어쩌면 철저히 외부인을 표방하는 가즈유키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디션을 빙자한 살인극을 꾸민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책 제목 때문에라도 다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인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되는데, 읽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줄거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비슷한 복선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쿨하게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출간 연도를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92년도에 나온 작품이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 스타일, 《살인 현장은 구름 위》, 《명탐정의 저주》 같은 작품과 비슷한 결의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의 심도 있는 반전이나 사회상을 반영하는 살짝 무거운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살짝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에 가깝달까. (이것은 가즈유키의 가벼운 것 같은 독백도 한몫한다.)

요즘처럼 무더운 이 여름에 눈 덮인 산장을 상상하며, 과연 범인은 누구! 이유는 무엇! 을 고민하면서 읽어보면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도 책 읽으면서 자꾸 결말이 궁금해서 뒷쪽 페이지를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엄청 들었는데요. 그만큼 책을 읽는 내내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와중에 “범인은 누구지…”, “모나…” 혼자 망상을 펼쳤다가, 빨리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책 읽는 동안은 이야기 생각만 하게 됨) 다른 것들에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여튼, 히가시노 게이고 다운 흡입력 자랑하며 굉장히 굵어보이는 책이지만, 엄청 후루룩~ 읽게 되니 개인적으로는 리뷰나 다른 이야기를 미리 보지 마시고 책을 바로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희망의 끈》은 제목처럼 꽤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희생되긴 했지만요.

지진으로 사랑하는 두 아이를 잃은 부부. 죄책감과 허망함으로 인생이 무너져가는 찰나, “다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거야.”라는 남편의 말로 어렵사리 새 생명을 잉태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페 여사장의 살해사건. 용의선상에 올려진 사람들을 한 명씩 조사하는 중, 경찰은 치정살인이라고 추정하고 최근 여사장과 가깝게 지낸 한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게 된다. 이 남성은 바로… 이전에 지진으로 아이들을 잃은 남편!

과연! 이 남자, 유키노부는 진짜 살인마인가? 여사장과는 어떤 관계였을까? 지진과 살인사건의 공통분모인 유키노부를 둘러싼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가운데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마쓰미야 형사는 고급 료칸의 여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고,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자식을 잃고 다시 일어선 유키노부를 둘러싼 메인 스토리와 담당형사인 마쓰미야 형사(가가형사의 사촌입니다)의 사이드 스토리가 함께 진행되는데요. 조금은 흔해보이는 것 같은 사건들이 생각지도 못한 반전들을 맞이하게 되지요.

카페 여사장의 살인범도 의외의 사람이었고, 마쓰미야 형사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은 것도 나름의 섬세한 이유가 있어서 였지요. 모나도 죽은 두 형제를 대체하는 사람이라는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사정이라는 게 존재하고요. 물론, 그 외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숨겨져 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애정이라는 게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책을 읽는 잠깐이나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같이의 세계 - 혼자가 좋은 소설가와 둘이 좋은 에세이스트가 꿈꾸는 인간관계론
최정화.일이 지음 / 니들북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부를 묻는 짧은 편지와 함께 동봉된 에세이. 위트 있는 글에 웃으며 또 다른 에세이를 써 내려가며, 언젠가는 이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잊지 전에 이 에세이에 대한 나의 감상을 간단한 안부 인사와 함께 남겨둔다.

두 작가님이 번갈아가며 써 내려간 특이한 방식의 에세이는 왠지 <냉정과 열정 사이>가 생각난다. 하지만, 에세이의 시작과 함께 남겨놓은 인사말이 너무 정겹달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안부를 묻고, 답장에 소소하게 기뻐하는 모습들이 선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더군다나 두 분 중 한 분은 키미일이로 알고 있었던 일이 작가님! 나는 키미일이라는 이름의 일러스트레이터 듀오라고 생각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 부인의 이름이 키미, 그리고 에세이스트 남편의 이름이 일이였다. 표지와 내지에 그려진 일러스트는 바로 키미 작가님의 것!

냉장고가 없어서 그때그때 먹을 것만 사거나 건조 음식을 주로 사용하는데, 어쩌다가 여러 마리를 사면 할인해 준다는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고등어를 세 마리 사서 고생한 최정화 작가님의 이야기나, 쪼들리며 살던 시절에 누텔라 잼을 샀다가 아내와 들고 오는 길에 짐을 정리하다가 깨버렸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일이 작가님의 이야기.

핑퐁처럼 쏟아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빠져들 때 즈음이면, 일이 작가님의 런저씨 에피소드로 에세이는 막을 내린다.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모두 재미있었던 것도 있지만, 언젠가 에세이를 쓴다면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함께 에세이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