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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삶 -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
라훌 잔디얼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4년 1월
평점 :
유사 이래 의사에 대한 여론이 가장 안 좋은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필수과 기피 문제와 의과대학 정원 문제, 대리 수술 등 의사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고, 인터넷상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의사가 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완치 불가능한 암을 수술하는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 라훌 잔디얼이 집필한 책, 칼날 위의 삶이 그것입니다. 이 책은 이 혼란한 시국에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요?
의사의 삶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의사는 대부분의 경우 멀쩡한 상태로 환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 선생님 같은 모습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의사의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수술실에서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며 암세포와 싸우는, 아니 어떤 면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치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두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자 자신도 스스로를 포기하게 되는 마지막의 상황, 그 상황에서 1퍼센트도 안 되는 희망에 자신을 던지는 의사가 있습니다. 요즘 TV를 통해 방영되는 의사 드라마도 있고, OTT를 통해 다양하게 각색된 작품 속 의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의사의 모습은 그런 꾸며진 모습이 아닙니다. 지독하게 리얼하며 현실적이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처절한 모습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수술실의 모습만 그려내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환자를 떠나보내며 의사가 품게 되는 생각, 그 생각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사의 독백과 사색까지 상세하게 표현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는 환자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의학 드라마였다면 적절한 기승전결에 맞춰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 속 환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무기력하게 떠나가기도 하고, 분노와 무력감만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의사 입장에서 쓰인 이 책을 읽다 보면 조금 새로운 관점이 생기게 됩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의사가 화자인 이야기인데 어떤 면에선 삶의 끝자락에 아슬하게 서있는 환자의 인생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 환자의 에피소드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생의 마지막에 선 어떤 절박감과 무력감의 정점에 서 있는 감정에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사는 많은 감정을 지나오며 인간 본연에 대해 탐구하게 됩니다. 자아, 회복탄력성, 이런 것들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암세포와 사투를 벌이는 수술실의 의사가 생명을 담보로 사색하고 전쟁하며 배우게 되는 인간 본연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근래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독특하고 신선한 책이었습니다. 전문 작가가 일부러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교훈을 전해주는 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정말 독특합니다. 그다지 감수성이 뛰어나 보이지 않는 의사가 계속해서 수술하고 고민하고 사색할 뿐인데 독자는 인생이 무엇인지, 삶에 대한 의지는 무엇인지, 치열하게 보내는 하루는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진짜 현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 칼날 위의 삶을 추천해 드립니다. 의사의 이야기로 시작된 책이 실제론 생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특정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결국 인간 본연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집니다. 이 특별한 책, 칼날 위의 삶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얻게 되길 바랍니다. 생명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진리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꼭 확인해 보세요.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