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말했어! 그냥 기타누락자가 검 확 뽑게 뒀어야 하는 건데."
미안함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투덜거리며 저승은방문을 열고 나갔다. 도깨비가 음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그러게. 그게 나았을지도."
은탁이든 저든 조금 덜 아플 수 있었을 때 무로 돌아갔어야 했다. - P76

끝까지 모두 자신의 탓으로 안고 가야 했다. 아이의아름다울 스무 살, 행복할 서른 살, 그 모든 생을 위해. 그 어떤 달콤한 것보다 다디단 고백이 될 뻔했던고백은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고백이 되어 있었다. 도깨비의 무감한 표정을 보며 은탁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요. 아니요! 싫어요! 죽어도 싫어요. 그러니까그냥 나 찾지 마요. 나 찾지 말고 각자 모르는 사람으로 살자고요. 나한테서 멀리 가서, 그냥 오래오래 살라고요. 김신 씨는 알겠어요? 다신 나타나지마요. 또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면 그땐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차갑게 받아치는 은탁의 진심을 모르지 않았다.  - P79

은탁은 주먹 쥔 손을 끌어내렸다. 도깨비가 울고 있다. 그가 무섭다고 하고 있다. 은탁은 더 무서웠다. 은탁의 구원이었고 은탁이 구원이 되어주리라 마음먹었던 이가 우니까. 저승의 말이 아른거렸다.
‘네가 그 검을 빼면 그자는, 먼지로, 바람으로 흩어질 거야. 이 세상, 혹은 다른 세상 어딘가로 영영.‘
눈물이 눈물을 만나 슬픔이 바다와 같이 넓어졌다.
애처로운 연인들이 서로를 안은 채 울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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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은탁의 마음에 조금 더 깊숙이 자리 잡았다.
좋아하는 것은 은탁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둘의 감정이 되어 있었다. - P56

"감사합니다. 조금 정리되면 다시 뵈러 올게요."
써니의 마음이 고마워 은탁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실은 다시 혼자가 되는 게 싫었다. 혼자인 것은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달리 방도가없어 떠나야만 했다. 겨우 갖게 된 안락한 공간을 떠나게 만든 도깨비는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었다.
아, 사람도 아니지. 가장 미운 도깨비였다. 너무 미워서 이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 P67

은탁이 당장 검을 뽑아줄 필요는 없었다. 안 예쁘게해줘도 됐다. 가슴에 검이 꽂혀 조금 못생긴 채로, 그러나 행복하게 함께 백 년 정도 더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려고 했다. 그러니 은탁을 찾아, 네가 내게 죽음이 되는 일은 네가 죽는 순간뿐일 거라 말해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조차 없었다. 울었다고 했다. 꿋꿋하지만 작은 아이는 많이 울었을 것이다. 화 또한많이 났을 테니, 은탁이 도깨비를 먼저 부를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허나 은탁에게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때였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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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약속 있니?"
"아니요?"
"그럼 오늘부터 우리 1일이다. 일해."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다.
은탁은 얼른 일어나 감사 인사를 올렸다. 진짜 열심히 일하겠다고 우렁차게 외치는 은탁은 보고 사장은 픽 웃고 말았다.
사장도 어리고 귀엽고 당찬 은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써니는 은탁을 뽑고는 볼 일이 있다며 바로 나가버렸다.
정말로 수호신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자기는 아니라고하지만, 도깨비도 맞지 않을까.  - P97

제 생은 정말로 덤이었다. 고마워해도 모자란데 화를 냈네.
미안하다가도 또 퍼뜩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게 처음부터 친절히 말해줬으면 은탁도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해하지도 않고, 고맙습니다. 하고 밝게 인사했을 거였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고. - P114

자기 필요 없다고 한 도깨비를 미워하고 싶었는데 은탁이야말로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고맙고, 어쩐지미안했다. 저를 보는 그의 눈빛이 씁쓸했다.
"죄송하네요. 이렇게 신부도 아닌 저를 바쁜 와중에 구하러와주시고."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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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평원이 하늘과 닿은 곳이었다. 도깨비는 그 한가운데를 향해 걸었다. 그 중심에 묘비들이 늘어서 있었다. 검은정장과 손에 든 꽃다발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유금선, 고려에서 태어나 이국땅에서 잠들다.‘
"그간 편안하였느냐."
캐나다의 땅에 한자로 적힌 묘비는 무척 이질적이었다.
‘유서원, 그대 위의 흙이 가볍기를.‘
‘유문수, 좋은 벗이자 좋은 스승 여기에 잠들다.‘
그는 묘비에 적힌 글자들을 훑었다.
"자네들도 무고한가. 나는 여태 이렇게 살아 있고, 편안하진 못하였네." - P82

"꿈에서 깬 것 같아서요. 저, 살면서 외국여행 같은 거 상상도 못 했는데, 덕분에 외국도 가보고 감사했습니다."
단풍잎 사이에서도 그랬지만, 도심 한복판에서도 참 멋지다. 은탁은 그를 눈에 한번 더 담았다.  - P86

"음…. 캐나다 예뻤는데, 거기 살면 행복하겠다. 그래도 잠깐은 행복했네 생각하다 보니까 아저씨 생각이 당연하게 나서.. 옷도 비싸 보이고 시계는 더 비싸 보이고 호텔도 자기거 같고 좋은 건 다 가졌는데 왜 슬퍼 보이지?"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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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도깨비 신부는 이번에도 찾지 못했다. 상이자 벌로 내려진 생,이생을 마감하기 위해 도깨비는 도깨비 신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만을 견디고 잊지 못하는 생. 아주 긴 세월을 보낸 도깨비가 느끼기에이제 이 생은 상이라기보다 벌에 가까웠다.
"전 다행인데요, 나으리. 검 때문에 고통을 받으실 땐 빨리신부가 나타났으면 싶다가도, 이리 뵐 땐 또 아무도 발견 못했음 싶고, 그저 인간의 욕심입지요."
"...나도 다행일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나온 답에 유회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P54

검은 눈동자를 빛내는 은탁에 못 이겨 케이크 상자 한 번,
은탁 한 번 바라본 도깨비가 결국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내밀었다. 손을 뻗어 냉큼 받아든 은탁이 코를 묻고 향기를맡았다.
"근데 메밀꽃은 꽃말이 뭘까요?"
"연인" - P59

그랬다. 사랑한다는 말이 귓가를 울려서 도깨비는 화가 났다.
도깨비 신부가 아니니 현재를 살라고 했는데, 사랑한다고 쉽게도 말하고 있었다. 939년을 살았다. 이제 18년 산 아이 하나 어쩌지 못할 건 없었는데, 사랑해요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또 한 번 반복되어서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멍하니 굳어버린 도깨비를 향해 은탁이 짓궂게 웃었다.
"오, 처음 들은 척하는 거 봐."
"하지마."
"적극적으로 거절도 안하는거 봐."
기가 찬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도깨비를 한 번 툭 치고, 은탁은 거리를 향해 달리듯 걸어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은탁을 잡으려던 그의 팔이 무안해졌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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