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도깨비 신부는 이번에도 찾지 못했다. 상이자 벌로 내려진 생,이생을 마감하기 위해 도깨비는 도깨비 신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만을 견디고 잊지 못하는 생. 아주 긴 세월을 보낸 도깨비가 느끼기에이제 이 생은 상이라기보다 벌에 가까웠다. "전 다행인데요, 나으리. 검 때문에 고통을 받으실 땐 빨리신부가 나타났으면 싶다가도, 이리 뵐 땐 또 아무도 발견 못했음 싶고, 그저 인간의 욕심입지요." "...나도 다행일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나온 답에 유회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P54
검은 눈동자를 빛내는 은탁에 못 이겨 케이크 상자 한 번, 은탁 한 번 바라본 도깨비가 결국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내밀었다. 손을 뻗어 냉큼 받아든 은탁이 코를 묻고 향기를맡았다. "근데 메밀꽃은 꽃말이 뭘까요?" "연인" - P59
그랬다. 사랑한다는 말이 귓가를 울려서 도깨비는 화가 났다. 도깨비 신부가 아니니 현재를 살라고 했는데, 사랑한다고 쉽게도 말하고 있었다. 939년을 살았다. 이제 18년 산 아이 하나 어쩌지 못할 건 없었는데, 사랑해요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또 한 번 반복되어서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멍하니 굳어버린 도깨비를 향해 은탁이 짓궂게 웃었다. "오, 처음 들은 척하는 거 봐." "하지마." "적극적으로 거절도 안하는거 봐." 기가 찬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도깨비를 한 번 툭 치고, 은탁은 거리를 향해 달리듯 걸어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은탁을 잡으려던 그의 팔이 무안해졌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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