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는 다빈치가 피렌체에 머물던 16세기 초에 그렸습니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모두가 피렌체에 머물던시기였죠. 덕분에 막내인 라파엘로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을 관찰하며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차근차근 확립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모나리자>를 발견한 시기도 이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후에 그린 그의 초상화를 보면 ‘그녀‘의 영향력을 곁눈질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 P385

다빈치가 ‘발명가‘에 가까운 업적을 남겼다면, 라파엘로는 훌륭한
‘디자이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뛰어난 색 배합 재능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이렇게 그가 디자인한 색상을 하나하나 주목하면서 그림을 감상한다면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P399

한 작품 안에 음악, 미술, 건축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이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종합 예술‘이라 부릅니다. 대표적인 것이 연극, 영화등입니다. 여기에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의 작품 <가나의 혼인잔치>Lea Noces de Cana 를 추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안에는 음악, 조각, 건축, 회화, 심지어 패션까지 아주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하객들이 입은 독특한 의상입니다. 연극배우들이 입을 것만 같은 의상이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 P410

 루브르 박물관의 <사계>도 막시밀리안 2세가 자신의 아들 루돌프에게 합법적으로 황위를 물려주기 위한로비용으로 주문한 작품입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아주 확실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사계절을 모두 합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죠? 그리고 겨울을 끝으로 다시 반복되는 성질을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계>란 우주 또는 영원함을 상징하곤 합니다.  - P417

스페인 회화의 전성기는 17세기 초입니다. 이때 스페인 왕국은유럽 회화의 중심축인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오늘날 베네룩스의 일부)까지 도달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자랑했기 때문에 두 지역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중심을 지키던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은 루브르에 없지만, 그에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평가를 받은 호세데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 와 바르톨로메에스테반 무리요 BartolomeEsteban Murillo, 1617-1682의 대표작은 만날 수 있습니다.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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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백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보석이 있죠. 깨지지 않고 영원히 빛나는 사랑의 상징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희소성도 있어 권력자들이 권위와 전통성의 상징, 즉 선택받은 자로 보이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폴론 갤러리에 있는 상시, 레전트, 오르텐시아는한때 왕관을 장식했던 다이아몬드입니다. 왕들은 보석에도 이름을 붙여 세상에서 유일한 것을 소유했음을 과시했습니다.
- P315

성경에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물로 씻기는 축성(세례)을 받았다는기록이 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도 담긴 세례는 가톨릭 신자들에겐 중요한 일입니다. 프랑스 왕은 가톨릭의 수호자 역할도 해서 왕가에 새 생명이 탄생하면 제일 먼저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생루이의 세례 그릇> Baptistère de Saint Louis 은 유아 세례식에서 주교의 축성을 받은 성수를 담는 그릇이었고, 퐁텐블로성에서 루이 13세를 위해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P321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 천장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있습니다. 베르사유궁전이나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비할 만한 화려한 장식과 천장화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이처럼 옛 왕궁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살롱 카레 sation carre 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곳의 천장은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프랑스의 찬란했던 과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P326

‘재탄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 예술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화가가고대 조각을 참고해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화가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0.1431-1506입니다. 그는 올림포스 신이 연상되는 성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aint Sébastien d‘Aigueperse는 그림의 주인공 모습에서 군신마르스가 연상됩니다.  - P346

다빈치의 수중에서 무려 10여 년이나 있었던 만큼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상>은 그의 가장 많은 흔적이 묻은 작품입니다.
비록 미완성에 그쳤지만, 그는 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연습을 거쳤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드로잉에서 이러한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성 안나‘(Sainte Anne) 드로잉을 찾아 그림과 함께 비교해보세요. 그가 이 작품에 얼마나 많은정성을 쏟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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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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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여러모로 복잡하다. 어떤 날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또 어떤 날에는 슬프고, 힘들고, 지치고, 불행하다. 그렇다고 이 여러 가지의 감정들과 살아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모든 것을 일치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모든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자유 죽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느껴왔던 앞서 자유 죽음을 선택한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자유 죽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인과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무의 뿌리가 흔들리듯 그동안 나의 생각들은 무지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자유 죽음 앞에서 여러 생각들 보다 왜?라는 물음이 더 컸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들 말하는데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은 말이 없다.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망각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죽음과 자유 죽음 사이에 인과관계나 어떤 유사성이 존재한다면 많은 이들의 선택지는 2가지가 될 수도 있을 테지만 본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질적인 특성은 자연적인 죽음이기에 그 과정에 있어서 자유 죽음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살아있는 남은 이들은 왜?라는 심리적인 조금 더 말하자면 자유 죽음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궁금해한다. 그 질문에 답은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유 죽음 책 초반부에서는 심리적인 부분을 논하지 않고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며 쓴 내용들이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자유 죽음이라는 책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심리적인 부분에서 무언가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유 죽음을 실행해 옮긴이들과 일반적인 사람들 간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졌던 내 질문이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죽음은 무(無)로 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있었다가 없어지는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자유 죽음을 옳다 그르다 왜?라는 질문 대신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전제를 예시로 든다면 죽음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자유 죽음이라는 것도 있다는 또 다른 선택지에 대한 내용을 깊이 있게 쓴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진실과 사실 이렇게 사건을 두 갈래로 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 죽음이라는 또 다른 이미 벌어진 죽음 앞에서 함부로 결론지을 수 없으므로 더욱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유 죽음이 여러 의미를 지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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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너스가 바다에서 태어나 처음 닿은 곳이 키테라섬이고, 그래서 이 섬은 사랑의 탄생지로 표현되곤 합니다. 앞에서 감상한바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가 대표적이죠. 한편 "사랑의 비너스"
라는 광고 문구가 떠오르는 분들도 있겠죠?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는 1820 년에 밀로스섬에서 발견된석상입니다. - P286

승리의 여신 니케Niké 가 물 위를 달리는 뱃머리에서 우리를 덮칠 듯보고 있습니다. 1863년 사모트라케섬에서 발견될 당시 파편으로 남아 있었는데, 터키 주재 영사로 활동하던 샤를 샹프와조Charles Champet-Seau의 주도로 발굴됐습니다. 프랑스 발굴단은 1차(1863년), 2차(1879년) 발굴을 통해 석상 아랫부분(뱃머리)과 윗부분(니케상)의 파편들을발견했으며 이후 머리와 팔이 없는 현재의 형태로 복원해 1884년 이후 루브르에서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 P293

<반항하는 노예>의 이마와 <죽어가는 노예발에 망치와 끌 자국이 있어 미완성이라 볼 수 있죠. 그는 왜 교황의무덤 장식물로 노예를 조각했으며,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았을까요?
당대 예술가는 존경받는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후원을받아야 먹고살 수 있었고, 교황의 무덤 장식도 예술가로서가 아니라일꾼 정도로 인식되어 의뢰받은 거였죠.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원하는주제로 창작하지 못하는 처지를 노예의 모습에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업 흔적을 남겨놓은 것도 그런 반발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자신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노예로 묘사한 것이라는해석도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영혼이 육신에 얽매여 자유를 누릴 수 없지만,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영혼이 참자유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 P303

프시케와 에로스는 어떻게 됐을까요? 프시케는 에로스의키스로 영원한 잠을 몰아내고 깨어났습니다. 에로스는 한때 실망하긴했지만 연인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올림포스산으로 올라가 제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결국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의 허락을 받아신들의 음료를 마시고 영원 불멸의 신이 되었으며, 제우스의 주재로에로스와 결혼합니다. - P309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궁전이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몇 군데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하고 잘 보존된 공간이 ‘아폴론 갤러리 Galerie d‘Apollon 입니다. 16세기 헨리 4세 때 만들어 ‘프티 갤러리 Perisegalerie로 불리던 이 공간은 1661 년 궁전 파티를 위해 발레 공연장으로꾸미던 중 화재가 발생해 실내 장식 대부분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후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궁정화가 샤를 르 브륑Charles Le Brun, 1619-1690이 실내장식의 총지휘를 맡고,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가 재건축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 베르사유궁전을 지을 때 활약한사람들이기도 해서 아폴론 갤러리를 베르사유 건축의 축소판으로는 견해도 있습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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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예부터 영국에서 수입한 양모를 이용해 레이스를 생산하는 산업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17세기 네덜란드 여성들의 주된 일 중 하나가 바로 레이스를 뜨는 일이었습니다. 판 위에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핀을 촘촘히 박은 뒤 보빈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그사이로 실을 엮어가며 만드는 레이스는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받고 있습니다. 레이스를 짜는 여인들의 모습은 당시 네덜란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좋은 주제로 많은 화가가 그렸죠.
AL - P183

이 초상화는 그의 손자이자 훗날 스페인 왕위에 오르는 필리프Philippe d‘Anjou 를 위한 것으로, 이야생트리고 Hyacinthe Rigaud, 1659-1743 가.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받아든 루이 14세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만족스러워 원본은 베르사유궁전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만들어유럽 전역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루이 14세는 자신의 초상화를 손자를 비롯해 각국의 왕과 귀족들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대표적으로 루아르 Loire 지역의 슈농소Chenonceau 성에 가면 당시성의 주인이었던 삼촌 방돔Védome 공작에게 선물한 그의 다른 초상화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삼촌을견제할 목적으로 선물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평소에 지켜보고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라는 의미였던 것이죠.  - P198

당시 파라오들은 현재 최고 권력은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내기위해 이전 왕들의 카르투슈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하거나, 적을 공간이 없을 때는 선왕의 이름을 지우고 새겼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카르투슈를 보면 망치질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작품이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측정할 수가 없고, 기원전 2600년경으로만 추정하고 있습니다.  - P237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 처녀들의 신, 사냥의 여신으로도 불렸으며 아폴론과 더불어 활을 아주 잘 쏘았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이 조각처럼 주 사냥감이던 사슴과 같이 묘사된 경우가 많고, 사슴이 그녀의 상징 동물이기도 하죠. 사슴 대신 사냥개와 함께 표현된 작품도 많습니다. - P255

‘로마식으로는 주피터 유피테르 Jupiter 로 불리며, 로마 황제의 문장에그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쓰였습니다. 황제의 권위와 권력의 정통성이제우스로부터 비롯됨을 표시한 것이었고, 이는 왕권신수설의 시작이라 볼 수 있습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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