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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색 고양이라는 생김새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하는 ‘깜냥’은 어느 비오는 날 경비실의 문을 두드린다. 비가 오는 것만으로도 고단할 고양이 깜냥은 경비원 할아버지의 배려로 하룻밤을 묵을 권한을 얻는다. 그 타고난 천연덕스러운 언변으로 할아버지의 참치도 슬쩍 얻어 먹는다.
비가 오든, 밤이 깊어가든 경비원 할아버지의 일은 끊임없이 찾아 들어 경비실을 비워야만 한다. 깜냥은 빈 경비실 한 켠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잠을 청하지만 그의 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인터폰 벨소리. 모른 척할 수 없게 계속 울리는 바람에 인터폰을 들었으나 그것은 형제들의 장난이었다. 그 장난을 소강하기 위해 깜냥은 형제들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부모님이 늦게 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형제가 안쓰러웠던 깜냥은 부모님이 오시기까지 함께 있어주기로 하는데, 참 묘하다. 함께 있어주는 것인지,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슬쩍 헷갈려 피식 웃음이 난다. 아닌 척, 돕는 척 슬쩍 더 즐기는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공감하고도 남으리라.
퇴근하신 부모님과 만나게 된 아이들을 두고 경비실로 돌아온 깜냥은 층간 소음을 호소하는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춤 연습 중인 여중학생에게 조용히 춤 추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택배 아저씨를 도와 물건 옮기는 일을 돕기도 한다. 자신을 몹시 싫어하는 주민을 만나기도 하지만 자신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천연덕스럽고, 느긋하기도 하며, 만사가 여유로운 고양이는 봄볕 아래 놓인 고양이들처럼 나른한 움직임과 태도로 편안한 소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힘 주어 결심하고 실천해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언뜻 보여주는 것도 같다.
작가의 말에서 달아놓은 ‘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깜냥의 뜻을 다시 확인하며, 재치있고, 눈치 있고, 센스 있는 깜냥의 일들을 다시 곱씹게 된다. 깜냥의 트렁크에서 나온 소통의 증거들이 뒤늦게 깜냥의 탁월함을 더 생각하게도 한다. 그동안 어떤 ‘일상 여행’을 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선물 받은 물건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모두가 우리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과 갈등을 담고 있다. 우리의 후일담도 이런 것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의 깜냥으로 살아가는데, 이렇게 힘 빼고 소소하게 소통하며 이웃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것도 좋겠다.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러 기다려 줄 줄 아는 작은 배려만으로도 평화가 전파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였다.
어른들이 읽기엔 다소 심심한가 싶은데 초등 고학년 아이도 재미있게 읽는다. 그리고 2편을 기다리는 눈치다. 아파트의 평화를 지킨 깜냥이 그 어느 곳의 평화를 지켜낼지 궁금하리라. 깜냥의 깜냥이 얼만큼 발휘될지 궁금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심심한듯, 소소한듯, 그러나 담백한 제시어, ‘평화’와 ‘소통’, ‘배려’가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