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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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탄으로 화지 위에 엷은 밑그림을 그리듯 한강님의 책을 읽는다. 절반을 넘어서야 먹선을 올릴 수 있는 내용이다.

새로 출간하는 시점에 굳이 사서 보는 책이 많지 않다. 내게 김연수와 한강은 그래야하는 작가이다. 갓 나온 책의 기름냄새 같은 것이 낯설게 후각을 자극하면 다시 읽는 지점에서 매번 낯설게 되는 소격현상(이화현상)을 경험한다. 주인공들의 아픔에 동화 되다가 낯설어지기를 반복한다.

제주 4.3 사건의 고통을 상상하기 힘든 입장에서도 어슴어슴, 스며드는 밀물처럼, 두터운 겨울옷이 찬 바닷물에 공간을 내어주는 것처럼 시리고 생경한 고통의 예감이 엄습한다.

보드랍게 떨어지는 눈꽃이 죽은 것들 위에서는 녹지 않고, 살아있는 것들 위에서는 녹는다는 섬세하며 극명한 차이를 짚어내는 작가의 터치로 보드랍게, 조심스럽게, 아프게 그 시절을 함께 상상한다.

슬픔과 고뇌에서 통으로 건져올린 작가의 옆모습이 최근에 본 작가들의 사진과 달라 한참을 들여다 봤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다지. 그러나 중단된 동안에는 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생생하게 기억하여 애도해야할 역사가 있다. 통사의 한 부위가 움푹, 살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아파해야할 것을 충분히 아파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한 작가의 마음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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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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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고전이 되면 좋겠다. 글쓰는 일을 사랑하게 되고, 나아가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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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알라딘 eBook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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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찾아서 - 사랑했던 교회를 떠나 다시 교회로 비아 에세이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박천규 옮김 / 비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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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은 누군가 자신이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사라지고 무너질 때까지는 퍼져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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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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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레벨업 #어린이책 #한학기한권읽기 #창비 #창비좋은어린이책수상작

‘하이드’는 판타지아를 만든 VR 게임 회사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의 잔인한 인격이었던 하이드가 떠올랐다. 숨겨진 잔인함을 말하기 위한 최적의 단어 선택인지, ‘하이드’라는 숨겨진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지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선우는 하이드가 만든 가상 세계를 사랑한다.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는 자신의 현실 모습에 반하는 강인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선우는 부모님의 계획과 희망에 부응하여 수학/과학 영재들이 가는 특수학교에 갔지만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괴롭힘을 당하면서 ‘하이드’가 만든 ‘판타지아’라는 게임을 유일한 돌파구로 삼게 된다. 그곳에서는 현란한 기술로 멋진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어딘가, 자주 접한 스토리의 행진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달라지는 지점은 가상 세계이면서 선우의 유토피아인 ‘판타지아’에서 수수하게 보이는 후드티 소녀의 도움으로 게임의 난코스를 해결하면서부터이다. 선우의 일상이 새로워지는 지점도 후드티 소녀, 하원지를 만나면서 부터이고. 친구가 없었던 서로에게 친구가 되면서 선우는VR을 더욱 자주 이용하게 된다. 제법 비싼 코인이 적용되는 게임방이지만 선우의 유일한 낙이자 열렬히 바라는 낙원이기에 빠짐없이 간다. 그러나 알바생 형은 그곳을, 자신의 신경과 세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관이라고 하고, 원지는 감옥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우이지만 당장은 원지를 매일 만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원지는 일반 참가자들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며 ‘판타지아’의 곳곳을 누빈다. 원하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선우에게 코인을 지급하게 하여 판타지아에 들어온 괴롭힘의 주체들을 신나게 혼내 줄 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폭발적인 힘으로 권능을 과시하기도 한다. 의아하지만 차마 질문하지 못했던 선우는 여러 대화 끝에 원지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원지와의 대화와 상황에 의해 선우는 범호 무리의 폭력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되고 그 즈음 이 게임을 만든 ‘하이드’의 대표가 선우에게 접촉해 온다.

‘하이드’의 대표는 VR 게임방을 사용하지 않고도 판타지아에 접속할 수 있도록 전용 고글을 선물하고, 부모의 눈을 피해 밤을 세워 가면서 판타지아에 접속한 선우는 학교 생활과 원지와의 관계에 점점 소원해지면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것들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유일한 위로이자 설렘의 대상이었던 원지 조차 귀찮아지는 시점에 이를 때 학교로부터 부적응이라는 통보가 떨어진다. 충격을 받은 선우의 부모는 새로운 학업/진로 계획을 세우기에 여념 없어진다. 그때 하이드의 대표가 영원히 판타지아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특수학교 부적응,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는 부모로 인해 벅찼던 선우는 대표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하지만 선우는 어렵사리 다시 만나게 된 원지와 대화를 하면서 살아있는 세상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 지탄을 받는다.

결정의 날이 임박해오면서 선우는 원지가 바라는 소원, 자신에게는 더없이 아쉬운 소원,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야할 소원에 맞닥뜨리게 된다. 더이상의 레벨이 필요하지 않는 마지막 순간을 위한 선택을 앞두고 두 아이가 고민하는 과정은 어른이 된 나의 선택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선택의 과정을 이어갈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옳은 선택을 매번 하기 위해 오늘의 작은 선택과 큰 선택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두 아이가 만들어낸 결말은 슬픔을 당면하고서도 지켜야할 숭고한 선택에 대해 돌이켜보게 한다.

결정적인 어떤 반전을 잘 숨겨서 얘기한 서평이었길 바란다. 얼핏얼핏 많이 보여주는 듯 보여주지 않은 방식이 통했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참 괜찮은 책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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