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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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나를 그릴 수 있는 여행



 

 그림 그리기는 오래전부터 나의 작은 소망 중 하나였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반에서 그림 좀 그리는 아이를 부러워하는 정도, 그 정도가 나는 심했다. 그림이 글과 마찬가지로 나를 표현해주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다. 안에 잠겨 있는 나를 오롯이 직설적으로 내뱉기보다는 오묘하고 추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며 사회에 물들고, 점점 나다움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글은 중심을 잡게 해주는 생명력을 지녔고, 그림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의 저자 오은정 작가처럼 그림으로 나다움을 지키고, 그림으로 어두운 면들을 헤치고 나아갔으면… 그녀처럼 여행다니며 소박한 스케치를 하고, 그 그림에 겉멋 잔뜩 든 글귀를 적어두고 킥킥 웃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했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실망하면서 천진난만했던 내 모습도 사뭇 달라져갔다. 그래, 어른들은 그런 내 모습에 철이 들었다고 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세상의 어두운 면들을 마주치며 '나다움'을 잃어갔던 것이다. 

P. 10

 

 

 

 그런데 나는 그림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내가 가진 붓은 도화지에 닿지가 않았다. 전문가 수준의 그림을 바란 건 결코 아니었지만,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항상 못 그린 기린 그림이었다. 적어도 그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참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잘 그리진 못하지만 나만이 그릴 수 있는 특색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건만, 내가 뭘 그린지도 못 알아보는 그림이 되기 십상이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그리다보면 나아질 거라고 말하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프로 농구 규정에 따라 305cm 높이에 있는 농구 골대라면 슛을 던지는 연습을 할만하겠지만, 농구 골대가 300m 높이에 있다면 연습할 엄두가 나겠는가? 그저 미술은, 참 잘도 그렸네 라며 보고 즐기기 적당한 상공에 있었다. 

 

 나 역시 갖가지 방법으로 여행 스케치를 시도했다. 돌아다니는 동안 그릴 시간이 없다면 집으로 돌아와서 그리면 된다. 전문가들처럼 능숙하게 그릴 수 없다면 서투르지만 멋지게 그릴 수 있다. 모든 재료를 다 같추기엔 배낭이 너무 무겁다면 펜과 딱풀 하나면 된다. 

P. 12

 


 

 정말일까? 팔랑팔랑 거리며 흥분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했다. 내 그림은 그냥 서툴뿐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스케치 기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은정 작가는 이미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이라는 기본 스케치 기법을 가르치는 책을 냈다. 대신에 이 책이 지향하는 모습은 급변하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은 빈둥거리며 여행 스케치를 통해 '나'라는 생명력을 지키는 모습을 그려냈다. 유명 관광지를 배회하기보다는 작은 마을을 둘러보고, 허겁지겁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보다는 길가에 주저앉아 동물들과 소통하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여유로운 스케치 여행.

 

 미국의 어느 경제학자가 1900년부터 2005년까지의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을 조사한 결과, 여가시간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분명 근무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많은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그에 비해 정작 인간은 여유시간이 더 없어진 셈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하긴 기계의 도움으로 어떤 일을 빨리 끝마쳤어도 그다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대신, 다른 일을 곧장 해버리는 것이 일상이다. 애써 시간을 벌었는데 그 시간에 놀면 아깝다는 생각에 말이다.

P. 14

 

 

 

 책에는 오은정 작가가 여행을 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 경험담과 함께 작은 스케치들이 있다. 스케치와 함께 하는 여행을 즐겁게 하는 방법, 노하우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가 그리는 길을 따라 걸으며 나도 절로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 다행히 나는 내가 뭘 썼는지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글은 가지고 있다. 그녀의 스케치를 따라할 순 없지만, 그녀의 편안한 삶은 따라 나의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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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
신의진 지음 / 북클라우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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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게임 중독법과 디지털기기, 그리고 책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를 읽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저자의 블로그를 찾았다. 독서를 할 때도 거울 뉴런이 효과적으로 활성화 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질문은 둘째 치고서 네티즌들이 신의진 씨 블로그에 가한 테러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알고보니 저자 신의진 씨는 현직 국회의원이었고,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게임 중독법을 발의한 중심 인물이었다. 

 

 신의진 의원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바로 11월 11일에 작성된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대한 오해와 진실 포스트가 있다. 이 포스트는 하루가 지난 지금 12일 벌써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있고, 온갖 인신 공격과 비방이 가득하다. 블로그 외에도 공식사이트는 마비되어 접속조차 되지 않고, 페이스북에도 끊임없이 반대 댓글이 달리고 있다. 신의진 의원이 펴낸 책은 별점, 댓글 테러로 꽉 차 있으며 심지어 연관 검색어에 '신의진 암살'이라는 충격적인 단어가 있기도 했다.

 

 이게 바로 디지털 세상이 아프게 한 아이들의 실체인가 하는 혼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게임 중독법은 게임 매출액의 6%를 징수 한다는 점에서 그 의도를 의심받고 있으며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섰지만, 그게 어쨌든 단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행동이 아닌,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공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행동은 디지털 기기에 중독돼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느끼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책의 주장이 딱 들어 맞네? 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이 역할을 스마트폰이 대신했으니 정서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별일 아닌 일에도 과격한 반응을 보여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으면 디지털 기기에 매달리는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P. 68

 

 


 아플 거라는 아이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디지털 기기와 아날로그 도구를 둘 다 충분히 접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에는 스마트폰에 밀리는 추세지만, 여전히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의 대표주자 컴퓨터에 보통 중독된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책에서 언급하는 바로 그 '정서적 교감'을 나눌 기회가 많이 없어서 자연스레 혼자 시간은 컴퓨터와 함께 보내게 됐다. 요즘 자기 전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자는 것처럼, 밤에도 메신저 프로그램을 켜두고 세상과 나를 연결하려 했으며, 학교 외의 시간은 게임으로 보내는 건 당연한 하루 일과였다(심지어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는 학급 컴퓨터에 몰래 깔아둔 게임을 즐기곤 했다).

 

 그런 열정적이고 디지털적인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재능이 있었을까? 나는 우리나라 최고 게임 케이블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대회에도 참가하며, 준우승을 거머쥐고 준프로게이머 자격증까지 땄다. 이정도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디지털 기기 중독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요즘도 게임은 종종 즐기고 있지만, 다행히도 하루의 대부분을 책과 보내고 있고, 집에 TV도 없으며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없어 꺼진지도 모른 채 하루 이틀을 보내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도 중독에서 벗어났다 싶다. 스스로도 느낄만큼 점점 팝콘 브레인이 되어가는 시절이 계속 됐다면, 얼마나 많은 사회성을 잃었을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런 상태의 두뇌, 즉 팝콘 브레인은 시간이 갈수록 더 폭력적인 것, 더 충동적인 것, 더 즉각적인 것, 더 화려한 것만 찾게 된다. 이미 너무나도 강한 자극에 노출된 아이에게 돌과 나뭇가리를 갖고 노는 자연놀이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강한 자극만 추구하는 팝콘 브레인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약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것은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매우 치명적인 해가 된다. 학습은 스스로 반복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P. 117

 


 

 성인의 남녀는 물론, 디지털 세상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저자까지도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하니,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게 얼마나 큰 매력으로 다가올지 상상이 간다.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아이들이 어떤 어떤 증상을 보이며 어떻게 아프고,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야할지 제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추세로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페어런팅(육아법)에 대해 언급하며, IT 초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이 이에 얼마나 뒤쳐져있는지 역설하고 있다. 

 

 각 가정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규제를 통해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막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초·중등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2010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는 법류을 공포하기도 했다. 독일이나 핀란드에서도 어린이들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일본 및 스위스는 전자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자파 인체 보호기준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을 정도다. 영국은 게임중독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시설까지 개설해놓았다.

P. 193

 




 

 책을 보며 그리고 신의진 의원의 블로그를 방문하며 심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책에 언급한대로, 아이들과 충분한 동의와 적당한 규칙을 통해 디지털 기기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처럼, '게임 중독법' 또한 그렇게 발의 됐으면 이런 불편한 화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차별적인 테러를 가하는 사람들 역시 아무 근거도 없는 비방만 일삼지 말고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를 통해 디지털 기기가 어떤 파괴적인 모습으로 다가올지 이해했다면 이처럼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할하게 만들어줄 스마트폰이 오히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서로의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소통을 방해하는 것처럼, 게임 중독에 대한 대처가 서로의 골만 상하게 될 것만 같다. 이럴 때일수록 아날로그적 소통의 대표주자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바로 지금 서로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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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개정증보판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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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세계 도서관 기행」도서관이 비추는 불빛



 

 

 "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 새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물이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을 연 20세기 대표적 지성인 보르헤스가 남긴 말이다. 「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는 그를 향해 "인류에게 장차 1천 년을 먹고 살 양식을 남기고 갔다"라고 평하며 본인 소설에 등장하는 눈먼 도서관장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 

 

 그의 삶을 추적하다보면 도서관과의 운명적인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1세 때까지 수천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국립도서관에 자주 갔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한 후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위해 사상과 지식의 보급을 필수적으로 꼽으며 세운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에서 시력을 잃은 상태로 무려 18년 동안이나 관장으로 지냈다.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붉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확고부동하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

 「바벨의 도서관」중에서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세계 도서관 기행」에는 세계 각 곳에서 빛을 밝히고 있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얽힌 흥미로운 인물, 에피소드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링컨, 마오쩌둥, 정조와 같이 도서관이 만들어낸 지도자가 있는가하면 빌 게이츠 같은 도서관이 만들어낸 천재도 있고, 조지 부쉬, 클린턴 등 도서관에서 사랑을 키워 대통령자리까지 오른 사람들도 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를 살펴보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이야기가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사후 안토니우스와 결혼할 때 지상 최고의 결혼 선물을 받았다. 안토니우스는 이 절세미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로마의 정복지인 오늘날 터키 지역에 있던 페르가몬도서관의 20만 장서를 통째로 배에 싣고 와 바쳤다. 화재로 도서관 장서가 손실되어 상심하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이곳의 왕국이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잘 말해준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원용하여 말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

P. 30

 


 도서관이 나에게서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어딜까. 나는 도서관이 담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체 건강에는 이롭지 않지만 정신 건강에는 매우 이로운 것. 그것이 공통점이다. 신체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과 정조가 선왕으로부터 '건강을 해치니 책을 그만 읽으라'는 금서령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책을 읽으려면 가만히 자리에 앉아 한곳을 적당히 응시하고 있어야 하니, 근육이나 눈 건강에 이롭지 못한 것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담배와 도서관의 가장 큰 공통점은 한번 맛들이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책에 어지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에 다니지 않는다. 기껏해야 어렸을 때 엄마 손 잡고 놀러 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험이나, 학창 시절에 심부름이나 과제를 위해 한두 번 들러본 경험밖에 없는 게 대부분이다. 문예창작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내내 도서관 한번 가본적 없는 동기들도 있었으니 알만한 노릇이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도서관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놀이와 재미가 있는 공간이고, 청소년들에겐 이야기와 경험이 있는 공간이며, 그밖의 사람들에겐 이야기와 삶이 있는 곳이다. 마치 지식의 영혼이 아름답고 순수한 시골 처녀처럼 미소짓고 있는 그곳을 잊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이란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 생활과 밀착된 도서관을 경험해본 일이 거의 없다. 나만 하더라도 독서실과 도서관을 혼동하기 일쑤였다. 맥도널드보다 도서관이 많은 나라라고 불리며 지상 최대의 도서관 공화국이라는 미국은 실생활에 접근성 높은 도서관을 잘 구현해놨다. 

 

 영화 <투모로>를 기억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야기한 재앙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집어삼키는 해일과 살인적 강추위가 뉴욕을 엄습할 때 시민들이 피해 들어간 곳이 바로 뉴욕공공도서관이다. 그만큼 이 도서관은 시민 생활과 밀착된, 아니 시민 생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도서관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P. 233

 


 다행히도 국내에도 이런 노력이 보이고 있다. <세계 도서관 기행> 377페이지에 소개된 경기도 용인 수지의 '느티나무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놀자!" 라는 말에 정확히 부합하는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5배 이상의 많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숲 한복판에 자리를 잡아 접근성을 높였다고 한다. "도서관에 왜 가지 않습니까?" 라는 물음에 "멀어서 가지 않습니다" 라는 답변이 가장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현명하고 용기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도서관 기행>에 소개된 이집트, 영구,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의 도서관을 살펴보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국내의 도서관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약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국내 도서관에 대한 소개가 가장 후반부에 나오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었지만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규모나 장서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도서관에 대한 인식과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 중 하나의 빛줄기라도 발견한 것처럼 아주 즐거운 소식이 담긴 지면을 볼 수 있었는데, <세계 도서관 기행>의 저자가 바로 내가 사는 관악구의 구청장이며, 관악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운동이 담긴 지면이었다.

 

 내가 20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 구이기 때문에 더 많은 흥미가 생겼지만,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운동 자체로서 너무나 반갑고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도서관이 설치되고, 관악통합도서관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해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북스타트 운동 등, 내가 평소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도서관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힘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니 새삼 감격했다. 

 그저 하나의 구에서 펼쳐지는 운동이긴 하지만 이 운동이 여러 곳을 밝히는 지식의 등대가 되어 다른 혹시나 놓치고 있을 정신 건강의 이로움을 챙기길 수도 있을 것이다.

 

 2010년 필자는 국회도서관장으로 재직하던 중 관악구청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지역에서 도서관 운동을 한번 전개해보자는 뜻도 출마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떤 일을 좁은 범위에서 성공시켜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16쪽 분량의 선거공약서를 대부분 도서관과 책 읽기 운동으로 꾸몄다. 주면의 걱정을 물리치고 과감하게 시도한 것인데, 놀랍게도 구민의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동안 경제 제일주의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지식 문화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따.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다. 경제만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경제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을 풍부하게 누리려면 지식 문화가 필수적 요소이다.

P. 440

 

 선진국에서는 도시를 조성할 때 도서관 위치를 가장 먼저 결정한다고 한다. 그만큼 시민들의 지식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고 그 가치를 알아준다.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과연 미래를 탄탄히 다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가 미래를 놓치고 있진 않은가 하는 걱정이 든다.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도서관이, 나나 우리의 영혼에도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 도서관 기행>은 여러 국가의 선진 도서관 문화에 물들어 지식에 대한 갈망을 꿈꿀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비추는 지식의 불빛이 우리에게도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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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 전 30분 공부법 - 인생을 바꾸는 공부 혁명
다카시마 데쓰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아이콘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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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잠자기 전 30분 공부법」1분이 사로잡는 꿈의 기적 (e-book)

 

 

 

 인간은 평생의 1/3을 잠으로 보낸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그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1/3 시간을 다른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한창 좋아하던 인기 만화 도라에몽을 보면 그런 도구가 나온다. 그 도구를 사용하면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내 몸이 저절로 움직여 미리 적어두었던 일을 끝마친다. 예를 들어 숙제라던지 공부라던지 하는 일 말이다. 

 

 물론 실제로 저런 도구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수면하는 동안 채워질 에너지를 써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얼마나 놀랍고 획기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잠자기 전 30분 공부」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전한다. 잠자기 전, 저자가 제시하는 7가지 도구와 여러가지 공부 기술을 통해 자는 동안에도 뇌가 저절로 공부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도라에몽처럼 기적과 꿈과 희망과 우정, 사랑, 희망, 승리…… 등 자는 동안 모든 걸 쟁취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우리는 자는 동안 뇌도 잠을 잔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뇌는 잠들지 않았던 셈이다. 우리의 깜냥으로는 '뇌도 좀 쉬어야지'하며 눈을 감고 휴식했지만, 뇌는 깨어서 제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P. 26

 


 이 놀라운 발상은 사실 어제 오늘 연구된 꿈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뇌 과학자들이 수면의 메커니즘을 연구한 결과 뇌는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열심히 일하며, 이러한 활동은 잠에서 깨어난 후 뇌의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핵심은 바로 렘수면과 논렘수면이다. 아마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용어일 것이다. 렘수면은 흔히 말해 얕은 잠을 자는 상태로, 몸은 휴식하고 뇌는 활동하는 수면이고, 논렘수면은 그 반대다. 렘수면의 경우 7시간정도 자는 사람의 경우에는 1회 약20분정도 4~5회의 렘수면 시간을 가진다.

 바로 이 렘수면 상태에서 뇌는 기억을 재생하기 때문에 우리가 잠자기 30분 전에 재생할 기억의 재료를 던져준다면 알아서 공부를 척척! 한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은 많은 실험을 근거로 뒷받침 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1924년 미국에서 실시한 실험이다. 실험은 '수면 그룹'과 '각성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됐다. 양쪽 그룹에 무의미한 10개의 단어를 외우게 한 다음, 어느 그룹이 더 많은 단어를 정확하게 외웠는지를 시험해본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수면 그룹'은 반 이상의 단어를,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던 '각성 그룹'은 '수면 그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어밖에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면 그룹은 잠을 자는 동안 뇌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기억의 정리와 정착화' 작업을 해준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이 실험으로 뇌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P. 67

 


 그런데 왜 뇌는 수면 중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렘수면 중에 신체가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어 있을 때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신체 지령 기능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정리하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오감이 차단된다는 점이다. 깨어 있는 상태라면 듣고, 보고, 맡고, 느끼는 감각들이 일시적인 파업 상태라는 것이다. 고로 뇌는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엄청난 성과를 낸다.

 

 사실 소음이라는 것은 집중에 있어서 정말 큰 장애물이 되곤 한다. 나는 몇달 전에 집 옆에 있는 성당의 소음 때문에 곤욕을 치룬적이 있다. 성당에서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수영장을 개방했는데 그 수영장이 야외에 있었던 것이다.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야외 수영장이 웬말이란 말인가. 더위를 이겨내려고 너도나도 모인 온 동네의 아이들이 발산하는 비명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민원을 넣고, 경찰에 신고하고, 환경 어쩌구저쩌구 하는 부에다가 전화까지 걸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 수영장이 문을 닫는 여름방학 끝무렵이 되서야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수면 상태는 어떤가? 어떤 누구도 방해받지 않는 최고의 작업 환경이 아닌가. 

 

 「잠자기 전 30분 공부법」은 30분동안 형광펜으로 칠해 놓거나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을 쭉 훑어보고, 마지막 1분동안 중요한 5가지 항목을 보고 잠든다는 기본적인 토대로 여러가지 공부법을 제시한다. 자연기억법, 눈도장 학습법, 찜하기 속독술, 30글자 암기 카드 공부법 등, 91가지 자격증을 딴 저자의 공부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 잠자기 전 30분을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가이드대로 천천히 따라가면 우리가 아무생각없이 꿈을 꾸며 휴식의 용도로만 쓰이던 30분이, 정말 나의 꿈을 이루어줄 기적의 시간이 될지 모를 일이다.

 

 꿈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는 그대로 두면 금세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아마 여러분도 많든 적든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처럼 멋진 꿈을 꿔도 자리에서 일어난 후 몇 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사이 황홀했던 꿈나라의 기억은 까마득하게 사라진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의 꿈은 현실의 인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꿈속에서 떠오른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잊고 싶지 않은 법이다.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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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생을 사로잡다
이석연 지음 / 까만양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평]「책 인생을 사로잡다」내 삶의 자유로운 독서를 위하여 (e-book)


 

 독서 습관을 잘못들인 사람들이 참 많다. 독서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가득하다. 독서지도사를 하다보니, 여러 친구들에게 독서를 권하다 보니, 다양한 북카페를 방문하다 보니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확실히 느끼게 됐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문학을 반강제적으로 읽는 것이 하나의 예다. 많은 사람이 읽었기 때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독서를 하고, 무엇을 읽을지 몰라 좋다 소문만 들은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위한 하나의 지적 운동인데, 무엇을 읽을지에 대한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웃긴 일이다. 「책 인생을 사로잡다」는 이런 행동을 포함한 모든 '정착적', '부자연스러움'의 독서 행동을 비판하며 유목적인 독서를 권하고 있다.

 


나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세계를 정복한 유목민들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1부에서 '유목적 읽기'에 대한 방법과 기술을 소개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는다.'라는 유목정신(노마드)이 바로 나의 독서편력이다. 건너뛰며 읽고, 밑줄을 치고, 베껴 쓰고, 좋은 문장을 외우고, 독서 메모와 일기를 작성했던 나만의 독서법을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P. 9

 


 「책 인생을 사로잡다」의 저자 이석연 변호사에게 호감이 생겨 프로필을 자세히 살펴보고 검색해보니, 서울대 대학원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법제처 처장까지 지냈으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대단한 사람이더라. 그렇지만 이런저런 공적인 지위보다도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문이 열리더라. 

 「책 인생을 사로잡다」은 주로 이석연 변호사가 일생동안 독서를 한 기록의 한 모퉁이를 보여주며, 그동안 쌓아올린 독서에 대한 지식, 노하우 등을 옮겨놨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 것이, 책이 사람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을 널리 전하고 싶어 하고, 독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절히 가이드하려는 마음을 담아내려 한 것 같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는 예수님 같은 마음이랄까.

 책과 친해지는 방법이나 번역서 공략법, 개론서 공략법, 시간을 절약해서 독서 시간을 늘리는 법, 독서모임 운영법 등에서 그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안 한다. 대신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 당부와 더불어 읽는 것 따로, 쓰는 것 따로 하지 말고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으라고 조언을 한다. 

P. 32

 


 책의 2, 3부에는 '젊은 시절부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책' 이라는 제목으로 항상 허기진 자유와 정신을 채워줬던 10권의 책을 소개하고, 지혜와 감동과 교훈을 준 15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 이후에는 스스로 해왔던 독서 노트의 일부분을 보여주며 어떤 글귀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자유가 억압받지 않았으며 정신을 이롭게 했는지 알려준다. 

 

 여러가지 방법론이나 책소개 등도 이 책에서 얻어갈 수 있는 좋은 지식들이지만, 무엇보다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건 자유로운 독서였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기민하고 풍족한 독서는, '부자연스러운' 독서를 하는 독자들이 필히 습득해야 할 자유로운 정신이었다.

 

 청춘의 열정은 아름답지만 세계의 질서는 냉정하고 차갑다. 그 온도 차이에서 오는 방황과 갈등이 바로 청춘의 빛나는 특권이기도 하지만 이제 막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 그들의 정신은 미숙하고 허약해서 늘 허기지기 마련이다.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만 그에 대한 답은 신통치가 않다. 그래서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게 청춘의 또 다른 아름다움일 것이다.

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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