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 필사 - 고종석이 가려 뽑은 생각의 문장들
고종석 지음 / 로고폴리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고종석의 문장에서 필사하느니 본인의 글을 쓰라고 말씀하셔놓고 필사에 관한 책을 계속 내시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로 강아지 - 어른을 위한 동시
이순영 지음, 최지혜 옮김, 조용현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서평]「솔로강아지」 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솔로 강아지 - 
이순영 지음, 최지혜 옮김, 조용현 그림/가문비(어린이가문비)


 사회가 재능을 닫아버리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는다는 등 잔혹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보고 어린 작가의 출중한 재능이 눈을 감아 버릴까봐 걱정됐다. 「솔로강아지」는 초판에 담겼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빼고 다른 시 아홉 편을 대신 채워 내놓은 개정판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시인의 표현을 더 깊이,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됐다. 이 어린 작가는 이미 '시'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을 찾자면 표현하는 소재뿐이었다. 이순영 작가는 나이에 걸맞은 일상적인 소재를 언어로 훌륭히 표현해내는, 다 큰 시인이 쓸 수 없는 시를 썼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성장에 따라 풍부한 계절처럼 모습을 바꿔갈 이순영 작가의 시가 기대된다.

 이 어린 작가의 멋진 예술성을 더 파헤치고 느낄 수 없을까, 하며 책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마음에 거슬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순영이는 시 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고 가끔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을 때만 쓰며 살아갈거라고 합니다. 시는 순영이의 베프거든요.' '학원가기 싫은 날'이 대중들에게 거부 당하면서 창작에 대한 마음이 구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같은 시인으로 이미 비슷한 고난을 헤쳐나갔을 어머니(이순영의 어머니는 시인 김바다 씨다)가 좋은 멘토가 될 것이라 위안을 삼기도 한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아이를 보고 막연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쓰고 싶은 글'이 아닌 '대중에게 거부 당하지 않을 글'을 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든다. 물론 어린 작가의 역량과 솔직함을 보면 괜한 걱정이라는 안심... 걱정과 안심... 계속 반복... 앞으로 이순영의 시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중심을 잃어버리거나 창작을 그만둬 보지 못하게 된다면 무척 아쉬울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시는 어린 아이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장래희망처럼 다양한 모습을 띈다. 맨몸으로 집을 돌아다니는 오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아이다운 시가 있는가 하면(22P '오빠의 고추') 그 적은 세월에 어디에서 이런 '어둠'을 느꼈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만한 시도 있다. "어린이가 말하는 건 모두가 다 시 아닌가"(82P '시') 하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나 탁월한 감각, 강렬한 이미지 역시 볼 만하다.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병철 시인의 평가처럼 공깃돌로부터 바다로 넓어져 가는 생각, 상상, 감각은 놀라웠다.

 

공깃돌이라고 하는 작은 일상적인 사물부터 바다를 연상시킨 사유의 확장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ㅡ 이병철 시인


 공깃돌을 보고 소금 알갱이를 연상하고 공중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모습에서 바다와 소금 알갱이를 떠올렸다. 무궁화를 보고 "분홍빛 레이스 / 투명한 피부 아래 보이는 가는 핏줄" 이라는 표현을 쓴 시 '무궁화'에서는 섬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시는 '감금'과 '고기굽기'다. 장롱의 겉무늬를 보고 감금된 사람을 떠올라다니! 내가 어렸을 떄 장롱무늬를 보며 간직하고 있었던 막연한 생각을 마치 척추 뽑듯이 쑥! 하고 봅아낸 느낌이었다. 불 태워서 나오게 하려는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 깊다. '고기굽기'에서 선택한 '말랑한 피가 솟는다', '고기는 온몸으로 운다'라는 표현은 쉽고도 재밌다. 육즙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생각할 법 하면서도 언어로는 쉽게 하지 못했던 표현 아닐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시는 이런 시라고 생각한다. 읽는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다 마른 줄 알았던 우물에서 약수 한 바가지 퍼올리듯 감성을 끄집어 내주는 시. 아직 딱딱하게 굳지 않은 말랑말랑한 생각. 이순영의 시가 좋아질수록 32페이지의 '학원가기 싫은 날' 제목을 달고 있는 텅빈 페이지가 아쉽다.


 그런데 「솔로강아지」에 삽입된 그림은 이해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서 글 대신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이는 결코 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66페이지의 시 '토마토'를 보고 그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젠가 화가나 뭉개진 토마토처럼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그려보다 불현듯 이순영의 토마토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그제서야 이해할 때,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한 문학적 쾌감을 앗아가 버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출판사의 의도는 알겠지만 언어로 그려야 할 세상을 그림으로 채우다니... 시 옆에 놓인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시'로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그림 한 장에 가두어 버렸다. 머릿속 풍부한 세계를 잃어버린 느낌. 문학 작품 대부분 그림이나 사진 없이 오로지 백지와 글로 이루어져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으로 채우라는 의미다. 그게 허구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문학적 상상 아니던가. 출판사의 과도한 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로 치자면 "혹시 이해 못할까봐 말해주는 건데, 여기서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한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거야. 결말은 '이렇고', 아! 몇 페이지 전 쯤에 복선과 암시가 깔려 있으니 다시 한 번 봐봐" 정도의 친절이랄까?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페이지를 양분한 영어 번역이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영문으로도 다시 한 번 읽어보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대로 해외 출판을 하려는 걸까? 아쉽기보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추측한다면 이순영의 '시'를 보여주는 책이 아닌 이순영의 '시'를 재료로 만든, 멋들어지게 꾸민 '상품'이라는 느낌이다. 뭐 물론 책의 구성과 디자인 약간 아쉽긴 하지만 이순영이라는 재능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다음에 보는 '이순영'은 온전하게 시만을 즐길 수 있는 '이순영'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상자 위의 소년 - 홀로코스트에서 피어난 기적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 / 꿈결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에세이:서평]「나무 상자 위의 소년」존엄성을 잡아먹는 괴물



 

나무 상자 위의 소년 -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꿈결



 쉰들러 오스카가 만들어 준 자리, 키가 작아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기 위해 올라가야 했던 그 '나무상자'는 주인공 리언에게 생존이었다. 그 나무상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광기에 현기증을 느끼던 이들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 박고 근사한 그늘이 되어준다. 「나무 위의 소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막아낸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리스트'에 올랐던 가장 어린 리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는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해진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가 새로 지은 공장에서 일할 유대인의 명단으로,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면죄부'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죄인이었던 리언은 전쟁이 오기 전 천진난만했던 시절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고통의 세월까지 선명하게 책 안에 담았다. 

 이야기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이렇게 순식간에 읽어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는 주인공의 감정 표현이 무척 자세해 일품이다. 이 책에서 지루한 부분을 뽑으라면 너무 자세한 나머지 땀을 삐질 흘리게 되는 초반부의 가족과 마을 구성원에 대한 설명뿐이다. 고통과 광기에 휩싸여 변하는 사람들, 이전 모습을 영원히 '상실'해버리는 장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간 겪은 일 때문에 아버지가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힘없고 여윈 모습만이 다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 변해 있었다. 나치는 그의 힘뿐만 아니라(이후 수년 동안 놀라울 정도의 힘을 발휘하긴 했지만), 경쾌한 걸음걸이의 비결이었던 자신감과 자부심까지도 빼앗아 갔다.

P. 63

 

 표지를 보면 「안네의 일기」를 뛰어넘는 감동 실화라는 문구가 있다. 이 책이 「안네의 일기」와 비교되는 것은 영웅적인 인물 '오스카 쉰들러'를 바라본 게 아니라 평범한 개인, '리언'을 바라본 다는 점이다. 리언도 안네처럼 거대한 두려움과 마주한 어린 아이였을뿐이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그 어린 생명들은 나름의 투쟁을 이어간다. 리스트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신을 독일군에게 드러내는 용기, 엄마와 아빠 품에 뛰어들지 않고 꾹 참아내는 끈기는 온실 밖에서 자라는 거친 야생화를 보는 것같이 기특하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리언의 아들과 딸의 헌사를 살펴보면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쉰들러 리스트의 가장 어린 아이'로만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그게 당연한 일임에도!).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또 손자 손녀의 할아버지로, 어디서나 사랑 받고 존중 받아야 할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왜 충격을 받아야 하는가. 홀로코스트라는 괴물은 여태껏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삼켜버린 것인가. 또한 그 괴물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검은 뱃속에서 1,500명의 리스트를 지켜낸 오스카 쉰들러는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나무 상자 위의 소년」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과정과 그 속에서 지켜내는 과정 전부가 절묘하게 담겼다. 어렸을 때 보았던 전래동화처럼 일종의 권선징악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행복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의 기적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최고가 된 사람들의 기적을 만든 독서법!
김병완 지음 / 새로운제안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서평]「내 인생의 기적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내 것이 되는 책읽기





 

내 인생의 기적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김병완 지음/새로운제안

 



 어떤 중년 남성이 10년 넘도록 다녔던 대기업을 그만뒀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결심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대한민국은 오로지 좋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 경주마처럼 채찍질하는 무한경쟁 사회다. 그 거대한 경마장에서 앞서 달려나가던 사람이 스스로 말에서 내려와 다른 풍경을 본다. 그 풍경, 새로운 세상은 '책'이었다. 「내 인생의 기적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의 저자 김병완 작가의 이야기다. 처음 회사를 그만 둘 때만 해도 그에게 '대기업에 취직하는' 기적 외에 다른 기적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주변 사람들은 말이다. 김병완 작가는 그 뒤로 3년 동안 도서관에서 떠나지 않으며 책 만 권 가량을 읽었다. 흔히 '밥막 먹고 ~만 했다' 라는 표현을 하지만, 이 분은 밥도 도서관에서 먹으며 도서관 근처에 있는 싸고 맛있는 식당을 찾으라고 권한다. 작가는 공부법, 독서법, 기업 경영전략 분석, IT, 인문비평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금 50여 권을 출판하며 새로운 기적을 맛보고 있다. 돈과 성공이 기적의 지표를 나타낸다면 대기업에 다녔던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가치와 명예로 기준을 바꾸면 그는 분명 훨씬 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기적을 보고 있노라면 이지성 작가의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의 대화가 떠오른다. "평생 텔레비전 보면 인생이 바뀔 것 같냐?... 평생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면 인생이 바뀔 것 같냐?... 그럼 책을 읽는다 해도 니 인생이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냐?". 기적을 만들기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책읽기 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기적은 한 권의 책이 되고 또 책 50여 권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권하고 있다.


 필자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만 권의 독서가 아니다. 필자를 시시한 인생에서 건져준 기적은 단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한 권의 독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만 권의 독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기적은 만 권 독서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하는 수많은 한 권의 독서인 것이다.

P. 5 


 


 김병완 작가의 책은 「48분 기적의 독서법」,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 「결정적인 순간의 책읽기」에 이어 이번에 네 번째다. 전부 독서에 대한 책으로 어느 정도 겹치는 내용이 있지만 이 책만이 가진 '핵심'은 뚜렷하다. 첫 번째 책은 기적을 만든다. 이 문장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명사, 위인들의 명언과 독서 에피소드를 책에 가득 넣었다. '책'이라는 존재감을 무시하는 사람, 이를테면 "독서로 남는 게 없어요", "인생에 도움이 안 되요"와 같은 불평에 대한 대답이 된다. 두 번째 책을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고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맞춤형 독서법이 나온다. 책을 인생에 적용하기 위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또한 작가는 그동안 낸 책을 통해 여러 번 '임계점'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느 정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약적으로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책에서 나오는 장자의 말이 정확하게 어울린다. '괸물~' 책읽기는 몸 안에 인생의 가치를 띄울 거대한 물을 끌어모은다.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책읽기를 그만 두는 순간 물이 메마르는 것이다. 세 번째 초서를 하라. 독서법은 좋은 방법, 안 좋은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책에서는 여러 가지 '백독백습', '메모 독서법', '단계별 독서법', '반복 독서법', '초병렬 독서법' 등 여러 가지 독서법을 소개하는데 작가는 그 가운데 초서 독서법을 권한다. 초서는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아들들에게 편지로 가르치는 독서법이다.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요점을 추려내어 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주견이 뚜렷해야 판단기준이 마음에 새겨져 취사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 무릇 책 한 권을 볼 때 오직 나의 학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추려 쓰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도 눈여겨볼 필요가 없는 것이니 백 권 분량의 책일지라도 열흘 정도의 공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중에서 


 


 베껴 쓰기(필사)와는 조금 다르다. 책 읽는 시간은 줄이면서 핵심은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내것으로 만든다. 나는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포스트 잇을 붙인 다음 그걸 모아 블로그에 서평을 쓴다.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내 인생의 기적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으니 '초서'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작가의 초서를 소개한 책,「초의식 독서법」을 읽어 제대로 된 초서를 배우고 싶다. 몇 권을 읽었느냐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몇 권을 내 것으로 만들었냐를 기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초서 독서법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기를, 초서를 통해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길 바래본다.


 책을 읽을 때 단순히 글자나 텍스트를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의 핵심 문장과 저자의 견해를 따로 기록하고 한 문장으로 간추려서 정리해보라. 단순히 책의 내용을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단순히 텍스트만 읽는 독서는 기분 전환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이런 식의 독서로는 인생이 변하지도, 성장하지도 못한다. 반면 자신의 주관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사색하게 되고 의식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P. 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세이:서평]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침묵은 슬펐고,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전쟁은 사람을 물들인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세 가지. 첫 번째 군대 이야기, 두 번째 축구한 이야기, 세 번째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이 세가지는 웃으라고 떠도는 말이겠지만, 남자들은 그만큼 군대 이야기를 기관총처럼 쉴세없이 내뱉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아 되도록이면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대화의 주제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 의식은 군대에서 겪은 일이나 감정에 닿아있다. '군대'라는 경험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군대는 사람을 죽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기술을 배운다. 아마도 최초로 죽음이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곳이지 않을까? 몸과 정신은 어떤가? 아무리 편안한 군생활을 했더라도 여태껏 가본 적 없는 한계에 몸이 매달려 있고, 본 적 없는 풍경에 마음이 놓여있다. 약 2년의 시간은 남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나에게 남긴 것이다. 그 시간은 짓밟듯 앞으로 나아가며 마음에 군화 자국을 남겼다. 전쟁을 억제하고, 대비하고, 연습만으로 이런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데, 실제 전쟁을 겪은 사람은 어떨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름을 알린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여자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책은 전쟁의 광기와 피로 물든 인간의 모습을 무척 선명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자들을 통해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처참함, 끔찍함,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온갖 형용사를 다 같다 붙여도 그들의 '전쟁'에는 부족하다. 하얀 속지가 뻘겋게 물들어 흘러내리고, 검은 글자는 멍투성이로 보이며 자꾸 나를 짓누른다. 

 이야기의 구성이 보통 기승전결의 형태를 하고 있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전'이다. 그들의 에피소드 하나, 페이지 한 장, 문장 한 줄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격한 감정과 절정의 울림을 갖고 있다. 실제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전쟁을 느껴보는 가장 좋은 간접체험이 될 것이다. 


 아이는 울지,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에 있지... 수색견까지 데리고... 만약 개들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어. 서른 명이나 되는 우리 목숨이 다... 이해가 돼?
 결국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어...
 누구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어...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어... 우리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었어. 눈을 들어 아기 엄마를 마주 대할 수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지...


P. 46




 목소리의 생생함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장르는 무척 특이하다. 목소리 소설(Novel ~ )이라고 불리며 작가는 '소설-코러스'라고 부른다. 나는 여태껏 누군가의 '인터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종이에 담긴 모든 인터뷰가 지루해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순식간에 읽었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랐다. 벌써 끝이야? 더 읽고 싶은데...

 단순히 인터뷰를 모아놓은 글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수상됩니다) 훌륭한 문학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수백 개의 인터뷰에서 추려내고 배치하고 제목을 달고 작가의 글을 집어넣으며 단순한 인터뷰 모음이 아닌 '문학예술'로 탄생시켰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그 생생함이란! 

 전쟁을 겪은 세대가 전쟁을 연상시키는 것들(총 쏘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 피 색깔과 비슷한 빨간색 등)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처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만들어 낸 생생함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다. 어디선가 견디기 힘든 진실을 전하는 울림이 따르릉하고 울릴 것만 같아 몸서리 친다.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
 '우리 소녀병사들... 우리 소녀병사들부터 덮어줘야지...' 그러면서. 어디선가 솜이나 붕대 조각 같은 것을 구해와서 가만히 '자, 받아, 필요할 거야...'라며 건네주기도 했어. 수하리 하나라도 있으면 같이 나눠 먹었지. 전선에서 남자들은 따뜻하고 선량했어. 다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차라리 아무 말 않겠어... 아무 말도... 무엇이 우리의 추억을 훼방 놓는 줄 알아? 그 추억들을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야...


P. 222


 


 이 책이 승리의 울림이 되길 바라며...

 알렉시예비치는 전화를 받는다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글로 써줬으면 한다는 내용이다전쟁을 훌륭하게 승리로 이끌어 내고도 숨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이 침묵을 깨는 순간이다그들은 마음에 무겁게 쌓였던 총과 포를 내려놓고 목소리를 무기로 다시 전쟁에 나선다.

 남자와 여자의 전쟁은 같았다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하지만전쟁이 끝난  남자와 여자는 달랐다영웅 대접을 받으며 승리를 만끽하던 남자와 달리 여자들은 내쳐지고 만다여자가 무슨 전쟁이냐고그게 무슨 여자냐고전쟁은 전쟁에 참여한 여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쟁이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은 이유'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역사가 있다책에 나온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할  우리나라의 어떤 여성들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살기위한 투쟁치욕을 버텨내는 용기 누구도 그분들이 전쟁 바깥에 있었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전쟁이 끝나고    역시 전쟁이었다일본군에게 몹쓸짓을 당한 수치심에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가서도 마을에서 쫓겨난 분도 있다해방되기만 한다면승리하기만 한다면저들을  땅에서 몰아내기만 한다면이런 생각이 절망으로 바뀌는순간이 500페이지 넘게 가득 담겨 있다그들의 전쟁은 승리나 용기투쟁이 아닌 부끄러움이 되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이제라도 그들의 권리와 승리를 되찾으려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아우성은 무척 아름답다그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쯤이면 책은 끔찍함으로 가득했던 초반부와 달리 전쟁이 끝난  포로로 잡은 적군을 감싸는 모습에서 일종의 '무지개' 찾게 된다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어두운 밤에도 화장한 아침을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절망이 느껴지는 ' 아니라 '희망이 느껴지는 '으로 만드는 이유다 전쟁에서   '목소리' 승리하기를나의 지원사격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전쟁영웅이었고, 더욱이 전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었는데,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의 아들들을, 아내들의 남편들을 구했는데. 난데없이 그럴 줄은... 나는 모욕이 뭔지 알게 됐고 마음을 후비는 말도 들어야 했어. '사랑하는 자매' '친애하는 자매'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들어본 적도 없던 내가 말이야. (...)
 저녁에 다들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데 시어머님이 내 남편을 부엌으로 데려가시더니 우시는 거야. '지금 누구랑 결혼하겠다는 거냐? 전쟁터에서 데려온 여자라니... 너는 여동생이 둘이나 되잖아. 이제 누가 네 동생들하고 결혼하겠니?'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P. 5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