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한번 쉴 사이에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봄날의 아침 해가 시시각각 환해지며 이제 막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벚꽃을 비추고 있었다.
쇼노스케는 그 모습에 반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 P68

"내홍이라는 것은 말이다, 쇼노스케." 도코쿠는 큰 얼굴을 더 가까이 갖다 대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 무사들만 하는 것이 아니야. 상가에서도 있는 일이지."
- P89

글에서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쇼노스케, 사람이 타인을 완전히 위장할 수 없듯이 글도 타인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 그러니 저 문서는 내가 쓴 것이 틀림없다. 허나 나는 쓴 기억이 없구나.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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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부에게 시건방진 말투로 묻는다.
"당신들도 성공하고 싶어?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를해."
그러자 복희가 대답한다. "아니, 우리는 성공 같은 건 하기 싫어."
- P21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 P23

"대단하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둘은 교실 뒤쪽의 낙제생들처럼 쿡쿡대며 웃는다. 그러고선 덧붙인다.
"솔직히 하나도 안 부러워."
"나도"
- P24

"왜 갑자기 영어를 배우지?"
"몰라."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그러네."
잠깐의 침묵 뒤에 복희는 말한다.
"우리는 테레비나 보자."
둘은 TV를 본다. 뻥튀기 기계처럼 펑펑 웃음을 터뜨리며 본다.
- P27

그는 불특정 다수를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자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익명으로라도 말을 아낀다. 누군가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수치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나. 기록된 글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며 이리저리 오해될지 복희는 두렵다. 
- P29

모부의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딸은 들풀 같은 작가가 되고 아들은 들개같은 음악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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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아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열한 식구를 다스렸다. 한 명의 부인.
세 명의 아들, 세 명의 며느리, 네 명의 손주가 그의 휘하에서 지냈다.
- P7

마감이 있는 삶과 마감이 없는 삶으로 인간계를 나눈다면 서른 살의 이슬아는 전자의 삶을 성실히 수행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P17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이라도 종교인의 정체성을 추가하여 기대수명을 메꾸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는 문득 비구니 스님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 P18

"걸으면서 심호흡도 하고……… 그렇게 차분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책상 앞에 돌아오면 딱・・・・・ 이런 생각이 들 거야."
슬아가 묻는다.
"어떤 생각?"
웅이가 대답한다.
"씨바, 그냥 아까 쓸걸."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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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활짝 필 때면 못가에 핀 벚꽃과 수면에 비친 벚꽃이 이중으로 보여 아름다웠다. ‘거울 벚꽃‘이라고 불렸다.
- P14

미래는 불확실했으나 잠을 자면 아침이 오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 P35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마음에 깃든 불안이며 작은 희망을 살펴주지 않는다. 
- P36

이제는 아니다. 길이 다르다. 똑같이 세간의 시선을 꺼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거리는 좁아졌을지 몰라도, 걷는 길이 달라지고말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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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게 아닙니다. 벚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변명처럼 말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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