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작가 책을 시작한다면 이 책부터 하라는 영상이 있었다. 내 생각엔 절대 그러면 안될 것 같은디. 한강 작가 책 중에 이 책은 어쩌면 폭력적이거나 가슴 아픈 게 다른 책보다 상대적으로 덜해 감정상 쉬운 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절대 쉽지 않았다. 일부러 작가의 불친절한 구성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등장인물들이 쉽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다. 남주의 첫사랑도 장애가 있고, 여주의 실어증 원인도 자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아이라는 걸 계속 친척들한테 들어서고. 남주의 친구조차 쉽게 산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걸 알려주는 방식은 누구 얘기인지 분명하지 않게, 장소도 헷갈릴 만하다. (혹시, 나만?) 그래서 작가가 이 불친절한 세계에 ‘약간 한번 들어가 볼래?‘ 하고 초대한 것처럼 일부러 작정하고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원래도 그렇게 친절하진 않은데 특히 이번엔 그랬다.

🪨 모임을 하며 느낀 건, 내가 이 책을 잘못 읽었다는 것이었다. 빨리 읽으면 안 되는 소설이었다. 분량이 길지 않아 새벽에 네 시간 정도 읽어 완독했는데, 하나하나 감정을 곱씹어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무채색 느낌인데, 그 무채색이 엄청 엷은 색깔로 다가와서 선명하지 않고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조차 한강 작가가 사실은 원했던 분위기인 것 같았다. 뭔가 내 앞에 약간 김서린 유리창이 자꾸 보이는 그런 느낌. 유리창 안을 가만히 보면 어렴풋이 보일 것 같은데, 나는 안 보인다고 답답해 하는 조급함.

🪨 이 모든 당혹스러운 감정과 나의 실패에도 이 책을 완독하고 나니, 연약한 인간의 삶이 역설적으로 아름답다는 걸 이리 잘 표현했을까 감탄한 건 사실이었다.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시대적으로 아픈 얘기. 얼마 전 읽은 <내 여자의 열매>는 역사적 배경이 나오지 않지만 각 개인의 어떤 아픔들. 모두 사회적 약자가 나온다. 이 사회적 약자들은 항상 냉대와 결핍,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 그 사회적 약자들이 강하다는 것, 지지 않는다는 것. 누구에게도 이해받았던 삶은 아니지만, 그리고 참고 참고 또 참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정신이 강하지 않지만, 버티고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슬플 정도로. 아름다울 정도로.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잘못 읽었다. 그것이 나의 결론. 난 글렀다. 다시 읽어야 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김초엽, 장강명, 이슬아 등 여러작가의 글쓰기 관련 인터뷰 모음이라는 신간 소개에 망설임 없이 올 해 첫 희망도서 대출로 신청한 책. 이 책 직전 최진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소설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작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란 궁금증이 커졌다. 소설이나 나온 출판물로도, 일부 나온 작가의 말로도 알 수 있겠지만, 남들에게 아직 공개하지 않은 어떤 사연,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엿듣고 싶었다.

📖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에 건네는 위로와 세상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쓰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삶의 문제이자 인생 그 자체다.˝ 사실 이 구절을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정말 그러했다. 여기 나온 작가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오래된 친구, 선배를 얻은 느낌이었다. 치열했던 삶을 말하기엔 ‘라떼이즈홀스‘가 될까 허세나 주책으로 보일까 움추려들고, 위로와 애정은 당연시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왜 인터뷰집이 위로가 되는걸까라 내게 물었다. 알 것도 같았다.

📖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썼다는 얘기를 듣다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의도치 않았지만 훌륭한 작법서이기도 하다. 노동요와 휴대폰 멀리하기라니. 직장인이거나 수험생같은 이 친근한 작법이라니. 9p에 보면 (글을 쓰는 것은 곧 자기 삶이라고.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재미를 위해, 혹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작가들에겐 돈의 논리와 별개로, 펜을 놓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9p) 우리는 왜 쓰는 것인지 생각하게끔한다. 얼마전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연이 올라왔었다. 나는 왜 글을 쓰며,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다른 작가분의 이야기를, 그저 글이 모인 걸 읽는 것 이상의 마음이 드는 지 역시. 스스로 납득할 만한 명확한 대답은 없으면서도 알 것 같았다. 책 표지처럼 일단 쓰겠다. 멈추지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가 달아난 뒤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같았다. 특히 가족의 말은.
가족은 인생을 통째로 요구하니까.
- P21

아빠가 두번째 파산을향해 전속력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지구가 쫄딱 망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선생도 당연히 망해야 했다.
- P29

아빠는 카사바 인형 대신 우리를 두고 떠났다. 엄마가 아빠를 대신해 카사바 인형이 됐고, 다음엔 내 차례였다. 엄마도, 나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게 주술 때문이라 생각하니 세상일이 퍽 단순하게 느껴졌다.
- P70

복잡한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돼. 시간이걸리긴 하겠지만, 기다려봐.
- P134

"내가 태어난 곳이 내 인생의 많은 걸 결정한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해?"
그곳을 떠나올 때 레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길 떠나고싶은 내 마음과 비슷했을까.
- P146

레무는 카사바
인형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세계에서 살기 원한다. 아빠의 영혼이 있는 곳은 인쇄골목이라고 스티카 아저씨가 말했다. 그곳을 떠나선 살 수 없다고. 그 세계의 메시지를 생산하다 그 자신이 중독돼버렸다고. - P1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짧고 그림도 천연색인데 제목도 환경과 여행인가 싶어 읽었다. 아기자기한 그림은 아니었다. 길쭉하고. 그래도 숨 쉴수 있는 초록이 많았다. 작년 늦 봄 선재길을 추천 받았다. 곧 여름이 와 못가고, 가을은 바빴고, 지금 겨울은 위험하다. 주말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평일 아침에 가야 오롯이 숲과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강원도로 당일 갔다가 돌아오려면 어차피 평일 아침 출발해야 했다. 가본적도 없는 선재길을 떠올리며 읽었다.

🏕 루프스의 숲은 내가 떠올린 선재길과는 달리 깊디 깊고, 산책이라기 보다 야영이었다. 그렇지만 숲은 여전히 쉬고, 생각을 비우고, 다시 힘을 채우는 곳이었다. 숲으로 가는 길 또한 그곳이 바로 집 밖이든 차 안이든 어디든, 이미 숲이다.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왜 이 책을 즉홍적으로 읽었는 지 알겠다. 요즘 더 물소리가 듣고 싶어 유튜브 음악으로 틀어놓다가, 일단 다이소에서 이천원 수반과 수반 안에 까는 돌을 샀다. 물만 받았다. 이 년 전 사천원 주고 산 아이비가 너무 커져 화분갈이는 엄두를 못 내고 일부 줄기를 잘라 씻은 양파절임 유리병에 담았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 이번 주 집안에 있던 스킨답서스를 수반에 넣고, 3월 집 안에서 숲과 물을 봐야겠다. 얼음이 더 얼면 물은 흐르고 오리는 헤엄칠까. 사실 얼음도 고맙다. 나는 무해하고 무위한 곳에서 멍과 쉼을 하고 싶었구나. 백수가 과로한다고, 하나씩 필요하면 정리를 해야겠다. 그리고 몸이좀 괜찮아지는 4월이면 선재길을 가야겠다. 숲으로 간 차냥, 이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문낭사 2025년, 2월모임. 도망친 유기견을 찾는 사연과 자매의 갈등과 화해, 두 개의 고리로 연결된 소설이란 책소개에 공존, 연대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소설은 주인공 예빈이 마지막으로 유나(사람이었는 줄…작가의 의도, 별나 역시)를 목격했다는 제보에 관해 독백을 하며 시작한다.

🪨 후반부로 가고 결말까지 낭독하면서 살짝 당황했다. 전개가 이런식으로 갈지 생각도 못했다. 무엇이 진실인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이 앞에만 해도 약간 두리뭉실하게 나왔었다. 채빈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 애매하게 묘사되고. 사실 난 채빈이 불편했다. 무섭기까지 했다. 십 년 만에 만난 채빈은 예빈도 지내지 않는 엄마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 조차도 뭐가 있나 싶었다. 엄마의 죽음, 채빈의 기이한 행동들. 책을 다 완독하고 나니 진실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갖춰진 프레임에서만 보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나서 진실은 무엇이지라고 의아한 건 아닌지.

🪨 그리고 후반부 유나를 발견. 유나를 찾았다고 했을 때, 잠시 소장이 아무 강아지를 내 놓고 유나라고 하는 게 아닌 가 하는 추측을 했다. 예빈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유나는 유나일까? 아니 그 보다는 유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입장. 처음엔 그저 행방불명된 유나를 찾기 위한 사람들인줄 알았다. 사실 그건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소장, 간호사, 마지막 임보자아 중국인 학생, 예빈까지 각자의 입장은 너무도 달랐다. 내가 아는 진실, 진실 아래 또 다른 진실. 진실이라 하기엔 그저 생활, 현실, 입장. 그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 한두냥이 남매, 마당이, 룩이를 생각했다. 실제로 2주간 보호를 하다가 안되면 안락사를 시키는 보호소가 많다. 예전 마당이 룩이를 입양했을 때 이미 한냥이 두냥이 남매 나이가 있었다. 그 때 몸도 안 좋고, 집에 거의 있는 시간도 없었고, 동네에 길냥이로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마당이나 룩이가 이미 성묘인데다가 품종묘도 아니라서, 보호소에 가면 입양될 확률이 거의 없었다. 말이 보호소지만, 그건 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덜게 하는 방안이지 마당이나 룩이는 거의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입양을 하게 되었다. 입양을 하고도 얘들은 길에서 자유로운 존재인데 실내에 가둬놓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

🪨 가족, 다른 생명.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끼리도. 그리고 생물의 종을 넘어서도. 짧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불편하지만 따뜻해질거라 믿고 싶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