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존재한다면종교는 영혼을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의사들처럼 정확히 진단해야 합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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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금방 돌아올게. 운명이 허락한다면."
저 마지막 문장, "운명이 허락한다면"에는 "스토아철학의 유보조항"이라 불리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롭이 처음 이 개념을 언급했을 때 나는 무슨 어려운 법률 용어 (아마도 서명해야 하는 각서 같은 것)인 줄 알고 걱정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유보 조항은 법률용어가 아니라 치료 요법이다. 삶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스토아철학의 또 다른 기술이다.
- P419

욕망한다는 것은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 아닌가? 어떻게 이미 가진 것을 욕망할 수 있지? 내가 보기엔 니체가 이 질문에 가장 훌륭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에체념하지 마라.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라.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욕망하라.
- P420

시카고행 열차에 올라타는 스토아주의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 시카고에 도착해있겠지. 운명이 허락한다면." 승진 물망에 오른 스토아주의자는스스로에게 운명이 허락한다면 승진하게 될 거라고 말할 것이다.
이 유보 조항은 이슬람교의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나 유대교의 비에스랏 하샴bezrat hashem (신의 도움으로)에서 종교적 색채를 벗겨낸것과 유사하다.
- P420

하지만 이 원통들이 여기저기 부딪치며 힘들게 굴러갈지 부드럽게 굴러갈지는 원통에 달려 있다. 이 원통들은 매끈하게 다듬은 완벽한 형태의 원인가? 아니면 거칠고 울퉁불퉁한 원통인가? 즉 이 원통들은 도덕적인 원통인가? 언덕이나 중력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종류의 원통이 될 것인가는 통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 P42

스토아 철학은 힘들다. 스토아철학은 쉽지 않으며 쉬운 척하지도 않는다. 그리스의 중용 사상은 거의 들어있지 않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철학이다. 사람은 고결하거나 고결하지 않거나 둘중 하나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니다.
- P423

우리 모두는 각자 조금씩 로고스를 지니고 있다. 스토아철학에 따르면 로고스는 전 세계에 스며 있는 신적 지성이다. 이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며 유일하고도 진정한 행복의 근원이다. 우주에는 신적이면서도 전적으로 합리적인 지성이 스며 있다.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이 지성과 악수를 나눈다.
- P423

하지만 스토아철학의 세계관에서 당신은 사실 코트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반납한 것이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거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보다 더 충격받을 이유가 없다. 내가 영국에서 잃어버린 애정하던 노트? 잃어버린 게 아니다. 반납한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 자리에서 즉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해라. 네 유모와 어머니 앞에서 훌쩍훌쩍 우는 게 더 낫다고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남자답게 굴어야 한다.
- P425

그렇다면 더 큰 상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 큰 상실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그런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므로 스토아철학도 장려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틀렸다. 스토아철학은 슬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나친 슬픔은 인정하지 않는다. 세네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물이 흐르게 두라. 하지만 동시에 멈추게 하라." 한번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느라 손자 손녀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며 한 여성을 꾸짖기도 했다. 스토아철학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적절한 반응은 다음과같다. "나는 내가 언젠가는 죽을 인간을 낳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토아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슬픔을 억압하면 그와 함께 기쁨도 억압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슬픔을 포함한 인간성의 모든 스펙트럼에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P426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지? 대답은, 최선을 다해 좋은 아빠가되는 것이었다. "그 모든 분석과 증명은 아주 조금도 중요치 않아요. 내가 더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다면요. 좋은 아빠가 된다는건 뭘까요? 내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사람이 되는 것,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신줄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롭은 스토아주의자로서 더 도움이 되는 아빠,
더 나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에서 거의 사용하지않는 단어이긴 하지만, 더 다정한 아빠가 되었다.
- P428

세네카에게 기대본다. 세네카는 내가 당면한 고난(이자 내가 평생해온 일)인 휴양 여행을 즉시 비난한다. "여행을 한다고 기술 중의 최고 기술인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내 말을 들어라. 그 어떤 여행도 너의 성질머리와 두려움에서 너를 꺼내줄순 없다. 로마의 개자식 같으니.
- P429

이름을 다시 붙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처한 곤경을 짧은 휴가이자 동료 스토아주의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로 명명한다. 파리는 수세기 동안 그 자리에있었다. 아마 좀 더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눈은 평생 내리지않을 것이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눈은 곧 멈출 것이고, 나는 남쪽으로, 스노위 산맥을 지나, 와이오밍의 널따란 하늘 아래 덴버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결국은 파리의 환한 불빛 아래 설 것이다. 그래, 나는 곧 파리에 있게 될 것이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 P430

보부아르는 혼란스러웠고 배신감을 느꼈다. 한때는 친구였던 시간이 이제는 자신이 모르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언제나 다음 프로젝트나 탐험을 계획하며 앞을 향해 "미래로 뻗어 나가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 보부아르는 어깨 너머로 과거를 돌아보며 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자기 나이와 충돌한 것이다.
- P436

보부아르의 오래된 파트너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노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절대로 온전히 내면화할 수 없는 상태, 오직다른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늙어 보이고, 늙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누가 봐도 늙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노화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P436

소설가이자 철학자, 페미니스트 영웅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예상 밖의 롤모델 후보자임을 인정한다. 보부아르가 노년에 관해 쓴 글은 암울하다. 보부아르는 우아하게 나이 들지 않았다. 나이와 싸우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나이 들었다. 보부아르는 불빛이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했고, 자신의 분노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노했다. 하지만 결국 보부아르는 노화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노화를 받아들였으며, 본인은 아마 부정하겠지만 나이듦을 사랑하게 되었다.
- P437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이다. 시계 속의 분, 달력 속의 달이다. 카이로스는 딱 맞는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무르익은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카이로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 P441

이 여행은 나의 ‘기투‘였다. 기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존주의 용어다. 기투는 우리가 일상의 환경을 초월하게 해주고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우리의 기투가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기투와 부딪칠 거라고 경고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뒤얽혀 있다. 우리는 타인이 자유로운 만큼만 자유롭다. 나의 기투(부녀간의 사랑 넘치는 프랑스 여행)는소냐의 기투와 정면충돌했다. 소냐의 기투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고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 P442

실존주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다룬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진정성 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실존주의자들은 이 질문의 답이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좋은 소식을 전한다. 그 답은 신이나 인간 본성에 있지 않다. 하나의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각기 다양한 특성들이있을 뿐이다. 또는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본성이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 P445

‘임신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 증상은 다 나타나는데, 임신은 아넌닌거야. 그냥 임신했다고 생각만 한거지."
"흥미롭네. 근데 그게 이거랑 무슨-"
"아빠도 상상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빠는 저 쿨하게 생긴다리가 무슨 대단한 생각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건 그냥 쿨하게 생긴 다리야."
철학자들은 도를 잘 넘는다. 심오한 생각이 너무 하고 싶어서 지적 환영에 빠질 위험을 감수한다. 때때로 희미하게 빛나는 저빛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장난일 뿐이며, 때로는 가장 단순한 설명이 가장 좋은 설명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둘씩 짝을 이뤘을 때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2인조 방식이다. 지나치게 멀리 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줄다른 사람, 다른 정신이 필요하다. 소냐는 내 소크라테스다. 소냐는 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심을 심는다.
- P449

어린 나이에, 실존주의자가 되기도 전에, 실존주의자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전에 보부아르는 "내 삶은 현실이 될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낼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바로 실존주의다. 따라야 할 각본도 지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삶이라는 이야기의 저자이자 감독이자 배우다.
- P450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없으면 판결도 없다. 무인도의 여성은 생물학적 노쇠를 경험하겠지만 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 P452

내 생각에 보부아르는 키케로의 밝음을 지나치게 만회하려 했던 것 같다. 보부아르는 로마인의 장밋빛 렌즈를 새까만 선글라스로 바꾸었다. 선글라스는 해로운 광선에서 눈을 보호해주지만 빛을 차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빛은 엄연히 존재한다. 보부아르의 말처럼 노년이 천천히 죽어가는 암울한 시기여야 하는 것은아니다. 노년은 커다란 기쁨을 느끼고 창의적 결과물을 내는 시기일 수 있다. 가장 좋은 사례가 누구냐고? 바로 시몬 드 보부아르다.
- P453

"어려운 일인 거 알겠어.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에 관해 쓰고있는데 어떻게 우아하게 나이 들 수 있는지를 모르는 거지? 주제를 살짝 바꿔서 쓰는 건 어때? 예를 들면 나이 들지 않는 법에 대해 쓰는 거야.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 P455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반쯤 잠든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본질을 혼동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시선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진정성이 없다 (진정성authenticity 이라는 단어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우텐테스authentes에서 나왔다).
나는 노인들이 특히 이렇게 자유를 포기한다고 생각한다. 
- P458

노인은 자신의 과거를 버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실수다. 과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나는 치유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 측면이다.
- P461

"추억에는 일종의 마법, 나이에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마법이있다." 보부아르는 말한다. 그 마법의 뿌리는 과거에 있지만 마법이 꽃을 피우는 것은 현재다.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든 상관없이우리가 과거를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 P461

최근 연구들은 2000년 전에 에피쿠로스가 한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준다. 바로 우정이 행복의 가장 큰 원천 중 하나라는 것, 우리가 맺는 관계의 질은 행복 방정식의 가장 중요한 변수다. 보부아르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회고록<모든 것이 끝나고All Said and Done에서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 나의 애정과 우정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친구는 중요하다. 나이 들면 친구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 P463

보부아르와 실비는 함께 노르웨이 피오르드로 크루즈 여행을떠났다. 보부아르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비는 이렇게 말한다. "보부아르는 마치 모든 것을 잊기로 한 것 같았다. 그녀는우리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관계가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고,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난 너를 위해 살지는 않지만 너 덕분에, 너를 통해서 살아‘ 우리의 관계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 P465

나이가 들면 특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465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 P482

소나와 나는 몽테뉴가 450 년 전에 오른 것과 똑같은 원형 계단을 오른다. 몽테뉴가 고독을 음미한 곳이다. 나는 몽테뉴가 나처럼 필요할 때는 그럴듯한 외향형처럼 굴 수 있는 내향형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우리 같은 사교적 내향형들은 세상을 속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꾸며낸 외향성은 우리를 소모시킨다. 진을 빼놓는다.
- P485

몽테뉴는 말 그대로 회의론자였다. 일부러 사사건건 끼어들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망쳐놓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 헤매며 늘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몽테뉴는 확신하기 위해 의심했다.
한 번에 하나씩 의심하며 자기만의 확신의 탑을 쌓았다.
- P487

에세이는 실험이자 시도다. 몽테뉴가 쓴 에세이들도 하나의 거대한 시도다. 무엇에 대한 시도냐고? 스스로를 더 잘 알기위한 시도다. 몽테뉴는 삶을 잘 살아내지 않고서 잘 죽을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않고서 삶을 잘 살아낼 수 없었다.
- P488

죽음은 체스나 와인 제조처럼 통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기술이 아니다. 죽음은 하나의 지향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몽테뉴는 "자연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쓸모없음이라는개념 자체도 없다"라고 말한다. 죽음은 삶의 실패가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 P495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절망의 해결책이 희망이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보부아르처럼 몽테뉴도 결국 받아들였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완전하고 관대한 수용이었다. 죽음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수용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다. 
- P497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그리고 몽테뉴는 동포인 시몬 베유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제발, 주의 좀 기울여.
- P501

걷는 동안 대답이 떠오른다. 짧은 두 단어다. 낯설지만 익숙하고, 터무니없지만 타당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말 다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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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면 서로 작은 상처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 P1

하지만 그 윗사람도결정권은 없다네~
있는 건
매뉴얼이라고~
- P19

다음 방문 시 라씨 한 잔 무료.
당신에게만.
이 가게가 있는 한 언제든지.
- P46

"아무도가르쳐주지않았다."
"선택의자유가"
"가진 자들의최대 이점이라는것을"
"바다 민달팽이는모르고 살아왔다."
"그는 몰랐다.
무엇을 선택할수 있었는지 조차도."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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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두 사람 다 예의가 바르다. 하지만 친절한가? 예의는사회의 윤활유이고, 친절은 사회의 초강력 접착제다. 예의있는 문화가 꼭 친절한 문화인 것은 아니다.
- P306

《논어》는 지하철에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짧은 대화와 간결한 격언으로 이루어져서 역과 역 사이에서 조금씩 소화하기 쉽다. 이 책의불규칙적 리듬은 F 노선의 리듬과 비슷하다. 공자는 효의 미덕에대해 자세히 설명하다가 갑자기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한다.
이 책에 통일된 하나의 주제나 설득력 있는 생각이 없다고 결론 내리기 쉽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노선은 움직이다서다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공자도 마찬가지다.
- P307

"공자상 밑에서 멈춘다. 상 아래에 중국어와 영어로 "위대한 조화의 시기"라 쓰여 있다. 이 구절에서 공자는 지도자가 현명하고범죄자가 적으며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기원전 5세기였던 당시에는 친절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개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나 대담한 상상이었다.
나는 초봄의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다. 이 완벽한 세상과, 아주 오래전에 이 완벽한 세상을 상상한 불완전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 P308

수천 킬로미터가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갈라놓고 있지만 두 철학자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공자가 죽은 기원전 479년에서 10년도 지나지 않았을때 태어났다. 두 사람 다 위치가 불안정했고, 제자들에게는 존경을, 엘리트들에게는 불신을 받았다. 두 사람 다 추측에 의문을 제기했다. 두 사람 다 지식을 귀하게 여겼고, 무지는 더욱더 귀하게여겼다. 두 사람 다 형이상학적 사색에는 관심이 없었다. 
- P310

공자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에게 인 만큼 중요한 단어는 없었다. 인은 《논어》에 105번 등장하는데, 그 어떤 단어보다많은 횟수다.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자 자신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연민, 이타주의,
사랑, 어짐, 진정한 선, 온전한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번역은 ‘인간다운 마음‘이다.
- P311

나는 이 부분을 읽고 한숨을 쉰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유교의이미지다. 부모를 공경하고,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문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규칙을 근간으로 한 철학. 훈훈하고 모호한 ‘무위‘ 개념으로 뉴에이지 그룹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노자가 공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당연하다. 노자가 중국 철학계의 서핑족이라면 공자는 땍땍거리는 선생님이다.
- P312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서로 간의 거리는 중요한 요소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라. 우리가 자기 자신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국가로, 모든 지각있는 존재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할 때 친절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처럼 점점 커다란 원을 만들며 퍼져 나간다. 한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면 모든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다.
- P314

<이매진>은 공자가 상상한 유토피아 "위대한 조화의 음악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정함은 잔인한 의도가 아닌 상상력 부족의 결과다. 불친절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며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한다. 하지만 존 레넌은 말한다. 노력하면 어렵지 않아요. 
- P315

하지만 맹자는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그 아이를 도울 것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측은한 마음과 행동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많은 좋은 의도가 그 사이로 떨어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 P318

친절은 힘든 것이다. 우리는 돕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중간생략)
  하지만 말했듯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못랐다. 열차 안의 그 누구도 몰랐다. 그럴 때 친절은 어떻게 전염될수 있는가?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
- P324

내가 아는한 나의 목록은 가치를 인식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의 목록은 내가 세상을,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보다 더 철학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 P332

좋은 목록 작성의 비결은 범주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범주는 다양한 항목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커야 하지만 생각을 잘 감쌀 수 있을 만큼 작아야 한다. ‘역대급 음악‘은 법위가 너무 넓은 반면 ‘1930년대 시카고의 폴란드계 미국인이 작곡한 역대급 폴카 음악‘은 범위가 너무 좁다.
방금 수첩에 적은 목록을 바라본다. "내가 살아본 해외 국가?" 항목이 세 개뿐인 짧은 목록이지만 나의 사고방식과 정체성 형성에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영향을 미친 목록이다.
- P332

첫 페이지를 펼친다. 《베갯머리 서책》은 개인의 일기처럼 보이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진짜로 개인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세이 쇼나곤은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내가 생각하고느낀 것을 적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글을 읽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이 쇼나곤의 글을 그토록 재미나게 읽는 이유다. 세이 쇼나곤은보통 혁명의 저자나 죽어가는 저자에게서나 나타나는 투명한 솔직함으로 《베갯머리 서책》을 썼다.
- P335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쇼나곤은 사쿠라, 즉벚꽃을 무척 좋아했다. 벚꽃은 순식간에 져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삼 일쯤 만개했다가 다 떨어져버린다. 다른 꽃(예를 들면 매화)은 훨씬 오래 피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연약한 것을 피우려고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 P340

벚꽃은 그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짧은 수명 때문에 사랑스럽다.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 P341

간이 테이블이 견고하고 만족스러운 딸깍 소리를 내며 고정된다. 나이스nice. 창밖으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에메랄드빛 들판의 하이디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나이스. 몇분 후 이상한 생각이 허락도 없이 내 상념에 무단 침입한다. 이모든 게 나이스하긴 한데, 지나치게 나이스해.
- P361

승무원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어쩌면 고통이 좋은 삶의필수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고통은, 나름의 뒤틀린 방식으로, 나이스한 것일 수도 있다.
- P362

1세기도 더 전에 스위스 열차를 타고 여행하던 또 한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실패한 작곡가이자 시인, 산속에 살기 위해 이른 나이에 거둔 성공에서 도망친 학계의 신동, 웃음과 춤을 찬미하고 "위험한 삶을 살아라!"를 모토로 삼았던 "정신의 비행사" 그 사람 또한 고통을 갈망했다.
- P363

<사랑의 블랙홀>은 로맨틱코미디로 분류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지금껏 나온 영화 중 가장 철학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필 코너스가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라는 축복이자 저주와 씨름할 때,
그는 철학의 주요 주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 도덕적 행위인가?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가? 다 큰 성인 남자가 폭발하지 않고 블루베리 팬케이크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가?
- P364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열기가 식으며 다음 문장의 형태로 굳어졌다.
[깊은 밤 한 악마가 찾아와 네게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반복해서 수없이 되풀이 해야한다. 그 삶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고, 모든 고통과 기쁨과 생각과 한숨, 네 인생의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가 전부 똑같은 순서로 되돌아온다. 이 거미도,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이 순간도, 나 자신도 전부 다.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끝없이 다시 뒤집힐 것이다. 그안에 있는 모래알 중 하나인 너 자신도!"]
- P369

"모든 진실은 구불구불하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여백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막 모습을 드러낸 미래의 자신과 갈라주는 텍스트 사이의 빈 공간. 이 여백은 무언가가 누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백은 무언의 과도기이며, 우리 삶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 P372

나는 늘 철학이 명백한 근거와 냉정한 논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그러한 믿음에 흠집을 냈다면,
니체는 그 믿음을 분쇄해버린다. 충동과 비이성을 조용하게 (그리고 종종 조용하지 않게) 찬양하는 목소리가 책 속에 스며 있다. 니체에게 감정은 방해가 되는 것도, 논리로 향하는 길의 우회로도 아니다. 감정은 목적지다. 고결한 사람은 비이성적이며, 누구보다 가장 숭고한 사람은 " 자신의 충동 앞에 굴복하며, 최고의 순간에 그의 이성은 완전히 소멸된다."
- P376

어떤 철학자는 충격을 준다. 많은 철학자는 논증을 한다. 일부철학자는 영감을 준다. 오직 니체만이 춤을 춘다. 니체에게 패기와 아모르파티, 즉 운명애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춤추는 법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미친 것처럼 열렬히, 일말의 자의식도 느끼지 않고 춤을 춘다.
- P377

영원회귀는 우리의 환상을 벗겨내고 우리의 성취가 거짓임을드러낸다. 큰 거래를 성사시키고, 책을 쓰고, 승진을 했는가?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영원히. 우리는 모두 시시포스다. 신이 내린 형벌로 영원히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다가 그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가여운 그리스신화 속 인물. 뉴저지 몽클레어의 발코니와 친구 제니퍼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나는니체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안다.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의 모습은 시시포스의 행복이다.
- P386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정반대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선택할 수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삶 (외부인의 관점에서는 전과 똑같은 삶)은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심란한 일은 하루의 끝에 이를 갈며 와인 한 잔을 더마셔야 할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묘하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세상이 전과 달라 보인다. 니체 또한 이러한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P388

더 나은 것이 있다.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것. 그냥 춤출 것.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내키는 대로 홍겹게 춤을 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춤을 줄 것.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 다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 P389

스토아 철학은 나이든 사람을 위한 철학이다. 몇 번의 전투를 이겨내고, 패배도 몇 번 해보고, 상실도 경험해본 이들을 위한 철학이다. 크고 작은 인생 역경의 시기를 위한 철학이다. 
- P398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과 혼란을 관리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 P399

 바로 고난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것. 로마의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 박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는 기회다. "
- P401

스토아학파는 유리잔에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잔이 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긴다. 정말 아름다운 유리잔이 아닌가? 수백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유리잔의 끝을 예상하고 유리잔이 있음에 더욱 감사해한다. 애초에 유리잔을 가져본 적 없는 삶을 상상한다. 친구의 부서진 유리잔과 그때 자신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상상한다. 아름다운 자기 유리잔을 타인과함께 나누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로고스, 즉 합리적 질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P402

스토아학파는 이기적이지 않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다.
감상벽이나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손가락이 손을 돕듯이 그렇게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돕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불편, 심지어 고통까지도 기꺼이 감내한다.
스토아학파의 이타주의는 가끔 냉정해 보이지만 상당히 효과적이다. 
- P402

키케로는 궁수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궁수는 자기 능력이 허락하는 한 가장 훌륭하게 활시위를 당기지만 시위를 놓고 나면 화살의 궤적이 더 이상 자기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고 숨을 내쉰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 P408

우리 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아철학의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 개념을 설명해 주자 딸아이는 그것이 "멍청한 짓"이며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보다도 더 멍청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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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 요구한다."
- P258

나의 친구 카일라스의 이야기를 들은 여행사 직원은 "노프라블럼 No problem" 이라고 말한다. 인디안 레일웨이에서 일하는 카일라스의 친구도 "노프라블럼"이라고 한다. 하지만명백한 결말은, 빅 프라블럼 big problem이다. 인도에서는 그 무엇도 마지막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심지어 마지막도 끝이아니다. 모든 결말은 하나의 시작이다. 모든 피날레에는 암묵적인 투비컨티뉴드to be continued 가 들어 있다.
- P260

사람에게 물의 깊이가 1미터인지 100미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익사는 익사다. 대기 명단은 대기 명단이다.
- P261

카일라스의 말이 맞지만 비행기를 탈 수 없다. 간디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간디는 늘 기차를 탔고, 나도 기차를 탈 것이다. 간디는 목표보다 수단이 더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가 중요하다.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그곳에 어떻게가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이다. 기차를 탈 것이다. 요가 익스프레스를 탈 것이다.
- P261

한 번의 기차 여행이 간디의 삶과 역사의 추세를 뒤바꾸었다.
- P265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악에 맞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상상력의 실패를 나타낸다. 비폭력은 창조성을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헤맸다.
- P267

간디는 싸움을 필요악이 아닌 필요선으로 보았다. 우리가 잘 싸우기만 한다면 말이다.
- P274

필요하다면 그것이 폭력이더라도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것이 <바가바드기타》의 기존 해석이다. 결국 (스포일러 경고!) 크리슈나는 친족과 맞서 싸우라고 아르주나를 설득한다.
간디는 이 책을 다르게 읽었다. 그는 《바가바드기타》가 "오늘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묘사한 하나의비유라고 말했다. 진짜 전쟁터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아르주나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기초적인 본능에 굴복하는가, 아니면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하는가? 간디는<바가바드기타>가 사실은 비폭력을 향한 찬사라고 생각했다.
- P279

 <바가바드기타>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시도에는 100퍼센트의노력을, 그 결과에는 정확히 0퍼센트의 노력만을 기울일 것.
- P280

간디는 결과를 지향하지 않았다. 과정을 지향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이 아닌,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추구했다. 일단 인도가 독립할 자격을 갖추면, 잘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간디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 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 중심적인 접근법이 결과 중심적 접근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 P280

마침내 간디는 새로운 형태의 비폭력 저항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사티아그라하, 사티아satya는 산스크리트어로 ‘진실‘이라는뜻이고, 아그라하agraha는 ‘결의‘ 또는 ‘단호히 하다‘라는 뜻이다.
진리의 힘(‘영혼의 힘‘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이다. 이것이 바로 간디가 품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에는 수동적이거나 물렁한 면이 전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능동적인 힘"이다. 사티아그라히, 즉 비폭력 저항가는 무장한 병사보다도 더 능동적이며,
더 용감하다. 간디는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는 그 어떤 위대한 용기도, 지능도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오직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만이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간디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처럼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대의명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 P284

간디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상대편을 친구로 바꿀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한다. 대부분의 폭력은 부도덕한 충동이 아닌 상상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리거나 충에 손을 뻗는다. 너무나도 빤한 반응이다. 간디라면 나의 파커 문제를 힐끗 보고 창의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충고할 것이다. 실험을해봐.
- P290

대부분의 인도인은 간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카일라스가 내게 말한다. 인도인들은 간디의 사진이 들어간 돈을 좋아한다. 그게 다다. "사람들은 간디가 겁쟁이라고 말해요. ‘상대방이나보다 더 강하면 간디처럼 행동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더 강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해요." 슬프게도 이것은 흔한 오해 중 하나다. 간디의 비폭력은 약자가 아닌 강자의 무기였다.
- P291

나는 충돌을 피하려고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말없이 뚱하게 있는 것으로 내 불만을 표현한다. 나는 은밀하게, 깨끗하지 못하게 싸운다. 겉으로는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쟁 중이다. 간디는 수동-공격적이지 않았다. 간디는 공격-수동적이었다. 그의 행동은 겉으로는 공격적이거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보였지만, 그 밑에는 그 어떤 적의도 없었다. 오직 사랑뿐이었다.
- P292

반대로, 파트너에게 ‘양보‘해서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내내 뚱한 채로 저녁을 먹는다. 이건 그저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심지어 더 나쁘다. 부정직하고
"깨끗하지 못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아무 원칙도 없는 척하느니 자기 원칙을 두고 싸우는 편이 낫다.
- P294

간디에게는 반대자가 많았지만 적은 없었다. 간디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선량함도 보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지금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았다.
- P295

 지금껏 함께 살펴봤듯이 간디가 늘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요구가 많았고, 가끔은 냉혹하기도 했다. "간디와 함께 사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한 추종자가 말했다. 나는 그만큼 균형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해졌다.
- P299

간디는 신도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새로운 싸움법과 사랑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실험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 아인슈타인이었다.
- P300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비좁은 공간과 복잡한 관계 사이에서 협상을하며, 사랑하고 싸우며, 싸우고 사랑하며. 보통은 따로따로지만,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동시에 싸우면서.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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