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지면 이 말을 명심해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너처럼 혜택을 누리고 사는 건 아니란다."
아버지는 더 이상 긴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말에깊은 뜻이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P7

판단을 보류한다는 건 사람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 P8

아마도 이 세상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낭만적인 자질일것이다. 결국 개츠비는 훌륭한 인물로 판명이 났다. 그러나 개츠비를 희생시킨 것들, 그의 낭만적인 꿈이 깨진 후에 남겨진 더러운 잔해들 때문에 나는 한동안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 P9

"웨스트에그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막막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질문에 답하고 길을 걷는데 더는 쓸쓸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마을의 안내자이자 길잡이, 그리고 오랜 주민인 셈이었다. 우연하게도 그의질문이 나에게 이 동네의 시민권을 부여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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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실직하게될 것이다. 공방 일은 특수 전문 분야라서 새 일자리를 얻으려면 같은 종류의 작업이 필요한 곳을 알아봐야 하는데카스카투라 공방은 이곳이 마지막이다. 자매처럼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사람들인데, 앞으로 그들은 뭘 해서 먹고 산다는 말인가?
- P153

줄리아는 지붕 위 실험실로 올라갔다. 바다를 마주보고않았다. 아버지의 자리다. 이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고있을 때는 몇 시간이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버지도 바다는 아무리 오래 봐도 지루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줄리아는 혼자서 바다를 본다. 그의 절망은 아랑곳하지 않는 바다를.
- P155

젊은 과부의 윤곽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품속의 비슈누 신상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저 여인의 여행길에 또 그곳 피난처에서 맞게 될 삶에 동행하며 저 여인을 보호해달라고.
- P184

사라는 이네스의 연기를 조금도 믿지 않았다. 처음부터 믿지 말았어야 했다. 이네스는 교활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에게 보통 ‘정치적‘ 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결국 그 단어는 ‘위선적이고 ‘권력 지향적‘ 이라는 말을 고상하게 포장한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당하지 못한 수단도 주저 없이 동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네스는 성공할 것이다.
- P199

이네스는 면밀하게 업무 주도권을 장악해나갔다. 사라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그 점에 대해 사라가 주의를 주면 이네스는 짐짓 상처받은 척하면서 그건 ‘사라가 자리를 비워 업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사라가 병원에 가고 없었다‘고 응수해왔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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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은 대개 그다. 가장게 퇴근하는 사람도 그다. 경력이란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 쌓아가는 것이다. 
- P34

출근할 때 남자들은 필요한 서류만 챙겨 나갔지만, 사라는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죄의식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 P40

예전에 일하던 로펌에서 한 여자 동료가 시니어로 막 승진한 상황에서 임신한 사실을 공표했다. 다음날 그의 승진은 취소되고 주니어로 강등당했다. 소리 없는 폭력이었다. 고발하는 사람이 없을 뿐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었다.
- P41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일이지만, 어쩌면 사라는 남자를 고용함으로써 엄마로서의 자기 자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 P45

사라의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완벽한 화장과 유명 디자이너 정장 아래 감춰져 보이지않는다.
그렇지만 상처는 존재한다.
- P45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랄리타는 불안한 듯 눈을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아이를 겁먹게 하는 것은 트럭이 아니다. 엄마가 주려고 하는 낯선 세계다. 이제 아이는 홀로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P52

스미타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기뻐하렴, 너는 나처럼 살지 않아도 돼. 나처럼 숨을 참느라 폐가 망가지는 일 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해. 더 오래, 존중받으며 살아야 해. 
- P51

그의 희망, 어쩌면 정신 나간 꿈, 그의 뱃속에서 날개를 팔랑거리는 나비에 대해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54

바로 그 남자, 유쾌하고 흥 많고 건강한, 포도주 애호가이며 집안의 가장이자 공방의 주인이기도 한 남자가 줄리아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서는 안된다. 아직은 이런 식으로는.
- P59

확인할 수 없는 갖가지 가정들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구경꾼처럼 보고만 있었어. 만약 내가 끼어들었더라면・・・・・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 P64

의사의 입에서 들으나마나한 말이 흘러나왔다.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경우란 없어요."
- P72

‘달리트는 얼마나 많은 호수를 우리의 피로 채워야 이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다음 생은 더 좋을 거야.‘ 라는 희망을 품고서.
- P88

‘안돼, 랄리타가 그들 앞에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어‘
그의 반란은 말없이 고요하다. 그의 결심은 정적에 가려 들리지도 않고 어둠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 그의 반란이 움텄다.
- P89

줄리아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공방으로 돌아왔다. 걱정하고 있던 노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전거 바퀴에 구멍이 났다고 둘러댔다.
자전거가 아니라 자기 영혼이 전복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 P101

그의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은 걱정하던 사실을 통고받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젊은이도 노인도, 나이와 상관 없이모두가 그랬다. 누구라도 자신의 눈앞에서 삶이 뒤집히면 덤덤할 수 없을 것이다.
- P102

이번 사건은장기 소송이다. 신경전이 난무하고, 희망, 회의, 또 다른 감정들이 꼬리를 물고 교차할 것이다. 간혹 패배감이 고개를 들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런 종류의 전투에서는 끈기 있게 버티는 쪽이 이긴다.
- P107

사라의 내면은 부서져 조각났지만, 원래 이런 사실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 P108

그는 용기 있는 여자다. 고통을 견디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
도시로 나가서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 P113

인도에서 매년 살해당하는 여자의 숫자가 200만 명이라고 했다. 그 숫자를 듣고 스미타는 두려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해 200만, 이들의 죽음에 모두가 무관심했다. 온 세상이 이들의 죽음을 방관했다. 세상은 여자들을 버렸다.
- P116

"나는 다음 생을 기다릴 생각 없어."
스미타는 잘라 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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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 이 시간, 내 손이 춤추는 시간이 좋다.
손가락들은 특이한 발레 무용수가 되어
얽히고설킨 하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나의 것은 아니다.
- P9

내 어머니는 자기 딸이도랑에서 구토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나는 내 딸이 토하는 모습을 보지 않겠어. 그럴 수는 없어. 결코 그렇게 하지는 않겠어. - P16

아버지가 머리카락에 쏟아붓는 정성에는 참을성과 엄격함, 애정이 녹아 있었다.
- P27

노나의 손가락은 굽고, 살갗은 양피지처럼 쭈글쭈글하지만 눈빛만큼은 세상을 꿰뚫어보듯늘 창창했다. 그가살아온 일흔다섯 해 세월 위에 올라앉아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 P28

독서광이라고 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는 책들이 가득 들어찬 도서관의 고요한 분위기에 매번 홀린 듯 끌려들어갔다. 가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뿐인 그 공간에는 종교적인 무엇인가가 흘렀다. 비밀스런 의식이 숨겨져 있는 분위기랄까.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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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가 전생에 뭔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거라고, 속죄해야 하는 거라고, 아무튼 이번 생은 앞서왔던 생이나 다음에 올생에 비해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수많은 생 가운데 그저 하나일 뿐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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