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있었다. 그렇게 중요해 보이는 벽은 아니었다. - P7
반장에게 폭도를 제압하는 경험이 없었다면 그들에게는 폭도가 되어 본 경험이 없었다. 집단의 요소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왔기에 그들은 집단 의식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고, 사람 수만큼 다양한 감정이 공존했다. 그들은 지휘관이 고압적으로 군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명령에 거스른다는 행동도 해 보지 못했다. 아나레스의 승객은 그러한 그들의 무경험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 P10
그에게는 의심하거나 저항할 권리가 없었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끌어올려 달라고 외쳤다. 타고난 결정권을 포기했다. 그 권리는 그의 세계이자 약속의 땅인 그 황막한 돌덩이와 함께 떨어져 나가 사라져 버렸다. - P16
그나 쉐벡이 당연시하는 개념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경우도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우라스 인들은 우월함이라든가 상대적인 높이 같은 신기한 문제를 중요시했다. 그들은 종종 글에서 ‘더 높은‘이라는 말을 ‘더 나은‘과 동일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아나레스 인이라면 ‘더 중추적인‘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대체 더 높다거나 더 낮다거나하는 것이 외부인이라는 사실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쉐벡이 풀수 없는 몇 백 가지 퍼즐 중에 하나였다. - P23
"당신들의 아나키스트를 손에 넣었어요. 이제 그를 데리고 어쩔 작정인가요?" - P34
"말하기는 나누는 거다. 상호 협동의 기술이지. 넌 나누고 있지 않아. 자기중심적으로 굴고 있을 뿐이야." - P39
"이런, 망할. 아냐, 말도 못해? 네 문제는 무슨 말이든 했다 하면 무거운 벽돌 한 트럭분은 될 만한 논쟁을 통째로 쌓아 올린 다음에 전부 뒤집어 엎어 놓고 그 밑에 깔린 피 흘리는 몸은 절대로 보지 않는다는 거야" - P58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난 형제애가 진짜로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하려는 거야. 형제애는 고통을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그럼 끝은?" "몰라. 아직은 몰라." - P77
오이에는 파에처럼 싹싹한 친구는 아니었다. 물리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 그는 모호하고 비밀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런 태도 밑으로 뭔가 쉐백이 느끼기에는 믿을 만하다 싶은 면이 있었다. 반대로 파에의 매력 밑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뭐, 상관없다. 그는 그들을 다 믿어야 했고, 믿을 것이었다. - P89
마지막 우주선이 마지막 정착민들을 실어온 이후로는...... 무시뿐이었어요. 우리는 당신네를 무시하고, 당신네는 우리를 무시하고 당신들은 우리의 역사에요. 우리는 어쩌면 당신들의 미래겠지. 난 배우고 싶어요.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온 거예요. 우린 서로를 알아야만 해요. - P92
"그런 건 들은 바 없는데요, 쉐벡 박사님." ‘벽‘이다. 쉐벡은 지금 그가 부딪친 벽을 알고 있었다. 그 벽은 이 젊은이의 매력과 정중함, 그리고 무관심이었다. - P99
아나레스 정착자들은 옛 세계와 그 과거에 등을 돌리고 오로지 미래만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래가 과거가 되는 것만큼이나 틀림없이 과거도 미래가 된다. 부정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라스를 떠난 오도니안이 그 역사를 부정하고 돌아갈 가능성을 버린 것은, 그 절망적인 용기에도 불구하고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돌아오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줄 배를 돌려보내지 않는 탐험가란 탐험가가 아니라 모험가일 뿐이며, 그 자식들은 유배지에서 태어난 것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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