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의 발현이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의 쇄신을 요청하기보다는 삶의
‘처음‘으로 돌아가 기득권에 속하게 되기를 바라는 쪽에 가깝다. 
- P110

보잘것없는 최선을 선택해야 하는 삶 속에서 사랑 같은 가치조차 사라져버린 세계는 무의미하다. dd의 죽음은 d가 삶을 ‘리셋‘시키고싶은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황정은은 여소녀와 박조배를 d의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그런 세계를 어떻게 견뎌나갈 것인지,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 P120

그럼에도 리셋의 태도란 그런 것이다. 망함이나 망하지 않음도 없이 늘 망하기 직전인 것 같은 현실 위에서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이미 도착해버린 지금을 견디는 것이다. 지금들을 견뎌나가다보면 그것을 견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하나의 인간의 생애로 계속해서 쇄신된다. 망하거나 망하지 않으리라는 신념이 지금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인간 존재만이그 시간을 있게 한다. 소설은 그런 늘 망하기 직전과 같은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얼마만큼이나 처절한 현실 속에 던겨졌었는지를 돌아보고 인물들에게 묻고 응답을 듣는다. 리셋을 갈구할 만한 현실의 문제를 보여주고 인간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을소설은 한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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