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집행에 모든 집단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없으면 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어집니다. 
텍사스 주에서 흑인과 멕시코계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40퍼센트에 이르지만, 법조계에서 이들의 비율은 훨씬 적다. 홉우드가 입학 원서를 낼 당시, 이 대학원은 입학생의 약 15퍼센트를 소수 집단에서 뽑는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 P252

소수집단우대 정책이 보상의 수단이라는 주장이 이러한 반대에 대답할 수 있는지는 집단적 책임이라는 어려운 개념에 달려 있다. 우리는 과거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도덕적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도덕적 의무가 어떻게 생기는지부터 자세히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의 책임만 지면 되는가,  아니면 역사적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도 져야 하는가? 
- P255

아이다호 출신 농장 일꾼은 보스턴 출신 학생이 가져올 수 없는 것을 하버드 대학교에 제공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흑인 학생은 백인 학생이 가져올 수 없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 하버드 학생이 경험하는 교육의 질은 부분적으로 학생들의 성장 배경의 차이와 거기서 오는 관점의 차이에 좌우된다.
- P257

학교의 사명이 신입생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정하지, 학생의 능력이 학교의 사명을 정하지 않는다. 대학 입학과 관련된 정의 문제에 관한 드워킨의 설명은 소득 분배의 정의에 관한 롤스의 설명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것은 도덕적 자격의 문제가 아니다.
- P260

텍사스 법학대학원은 홉우드가 열등하다거나 대신 입학한 소수 집단 학생들이 홉우드에 비해 우대받을 자격이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학교와 법조계에서 인종적 · 민족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학교의 교육 목적에 부합한다고 말할 뿐이다. 또한 그러한 목적 추구가 입학을 거절당한 사람들의 권리를 어떤 식으로든 침해하지 않는 한, 실망한 지원자들은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법적으로 항의할 수 없다.
- P263

또한 정치 공동체는 그저 다수에게 주도권을 맡기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자들도 틀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민주주의자‘란 우리가 다수결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는 정치의 목적이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 P288

도덕적 탁월성은 쾌락과 고통의 총합을 따져 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별하여 고상한 것에서 기쁨을, 비도덕적인 것에서 고통을 느끼는 데서 나온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미덕에 부합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 P292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적합성의 문제다. 권리 배분이란 사회기관의 텔로스를 확인한 뒤 이에 걸맞은 역할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본성을 실현할 기회를 주는 작업이다. 사람들에게 제 몫을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마땅한 공직과 영예를 주고 본성에 어울리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 P297

그들에게 정의는 적합성을 따지는 문제가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즉 권리 배분은 각자의 본성에 맞는 역할을 찾아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역할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텔로스와 적합성이라는 개념은 의심스럽고 싶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과연 누가 내게 어떤 역할이 맞고, 내 본성에어떤 역할이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회적 역할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 P298

인간을 주의주의적으로 보는 시각의 대안으로 매킨타이어는 서사narrative라는 관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의 삶은 서사적 탐색과도같다. "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그전에 ‘나는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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