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연정, 자홀 , 시기로, 이것들이
자꼬 금메달처럼 만져지는구려하나, 

내 모든 것을 여념 없이
물결에 씻어 보내려니
당신은 호면으로 나를 불러내소서

<이적> 중 - P58

산협山峽의 오후午後

내 노래는오히려
설은 산울림.

골짜기 길에
떨어진 그림자는너무나 슬프구나

오후의명상은
아 졸려.
- P65

황혼

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길죽한 일자一字쓰고… 지우고..

까마귀떼지붕 우으로
둘, 둘, 셋, 넷, 자꼬 날아 지난다.
쑥쑥, 꿈틀꿈들 북쪽 하늘로,

내사.…
북쪽 하늘로 나래를 펴고 싶다.

(1936) - P90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숙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P112

공상空想

공상 ~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언과 허영의 천공天空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의 수평선을 향하여.
- P136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濃灰色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自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별똥 떨어진 데> 작품에서 발춰
- P159

나무가 있다.
그는 나의 오랜 이웃이요 벗이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성격이나 환경이나 생활이 공통한 데 있어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극단과 극단 사이에도 애정이 관통할 수 있다는 기적적인 교분交分의 표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 별똥 떨어진 데 > 에서 발췌 - P161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여기에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빨간 노란 단풍이 꽃에 못지않게 가지마다 물들었다가 귀또리 울음이 끊어짐과 함께단풍의 세계가 무너지고 그 우에 하로밤 사이에 소복이 흰눈이 나려나려 쌓이고 화로에는 빨간 숯불이 피어오르고많은 이야기와 많은 일이 이 화로가에서 이루어집니다.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 발췌 - P163

시간을 먹는다는 (이 말의 의의와 이 말의 묘미는 질판 앞에 서보신 분과 칠판 밑에 앉아보신 분은 누구나 아실 것입니다)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루를 휴강한다는 것보다 하긴 슬그머니 까먹어 버리면 그만이지만)다 못 한 시간, 숙제를 못해왔다든가 따분하고 졸리고 한때, 한시간의 휴강은 진실로 살로 가는 것이어서, 만일 교수가 불편하여서 못 나오셨다고 하더라도 미처 우리들의예의를 갖출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화원에 꽃이 핀다 >에서 발췌 - P164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 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말이 나의 역설이나, 나자신을 흐리우는 데 지날 뿐일가요. 

<화원에 꽃이 핀다 >에서 발췌 - P166

나한테 하는 권고는 아니었으나 이 말에 귀틈이 뚫려상푸둥 그러리라고 생각하였다. 비단 여기만이 아니라 인간을 떠나서 도를 닦는다는 것히 한낱 오락이오, 오락이매생활이 될 수 없고 생활이 없으매 이 또한 죽은 공부가 아니랴. 공부도 생활화하여야 되리라 생각하고 불일내에 문안으로 들어가기를 내심으로 단정해 버렸다. 그 뒤 매일같이 이 자국을 밟게 된 것이다.

<종시>에서 발췌 - P169

내가 나린 곳이 나의 종점이오,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전이 되는 까닭이다. 

<종시>에서 발췌

- P175

한 시인의 작품이 만일 별처럼 빛나고 그 시편들이 오래도록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면, 비록 그 시인이 이 세상에 오래 살지 않았다 해도 빛을 잃지 않은 찬연한 삶을 누렸다고 얘기할 것이다.

성춘복 시인의 <윤동주의 작품세계> 에서 발췌
- P178


현실적으로 시인의 사상과 꿈이 쉽사리 성취될 것 같지않는 어려움에 대한 예감의 징표로서일까. 아니면 그러한현실세계로부터 영원한 자유롭고 영원히 아름다운 무한에의 지향으로서의 별, 이 별을 나로 발견하여 낭만적으로 노래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 아닐까.

성춘복 시인의 <윤동주의 작품 세계>에서 발췌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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